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화려한 유배

운영자 2023.02.13 10:12:45
조회 94 추천 1 댓글 0

오늘은 일찍 잠이 깼다. 새벽 여명이 깃들기 시작한 창을 통해 붉은 기운이 도는 검은 밤바다를 바라본다. 밤바다 멀리서 붉은 기운이 피어오르고 포구로 돌아가는 고깃배들의 불빛이 보석같이 흩어져 있다. 그 위로 푸르스름한 기운이 팽팽한 겨울 하늘에 번지고 있다. 나는 선물 받은 새벽바다 풍경과 오늘 하루에 감사한다. 포트에 물을 끓이고 인스턴트 커피 한잔을 타서 내 집필실 책상으로 가져왔다. 핸드폰으로 음악을 튼다. 잔잔한 음악이 너울을 일으키며 흐르고 있다. 나는 노트북 앞에 앉아 전원의 스위치를 누른다. 잠시 후 하얀 화면 위쪽에서 커서가 깜박거리면서 기다리고 있다. 어제는 어떤 삶을 살았지? 그 속에서 어떤 진리를 흐릿하게나마 봤을까를 생각한다. 어제는 내가 묵고 있는 실버타운의 직원들을 데리고 가서 ‘곰치국’을 대접했다. 말없이 뒤에서 청소하고 밥해주고 잔디를 깍아주고 잡다한 일들을 해주는 착한 사람들이었다. 같이 밥을 먹으니까 침묵하던 그들의 마음이 열리는 것 같았다. 나는 아직 젊은 그들이 본 노인들의 삶과 죽음을 알고 싶었다. 십오년간 노인들에게 봉사해온 고참직원이 이런 말을 했다.

“노인들이 돌아가시는 모습들을 봤어요. 실버타운에서 요양병원으로 옮긴 경우는 죽음이 비참한 것 같아요. 요양병원은 사람이 죽지 못하게 해요. 인공호흡을 시키고 목을 따서 튜브를 넣고 죽을 투입해서라도 살려요. 매일같이 환자를 괴롭히는 여러가지 검사를 해요. 의사야 매일 같이 필요한 의학적 수치가 있겠지만 죽어가는 환자가 왜 검사를 그렇게 받아야 하는지 몰라요. 몇 달만 지내면 노인들이 정말 해골하고 뼈밖에 남아 있지 않아요. 그렇게 고통 받으면서 목숨만 붙어있다는 건 지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이 기피하는 늙음과 병 뒤쪽의 광경을 그는 생생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더러 행복하게 죽는 모습을 보기도 했어요. 한 노인은 그날따라 사람이 없는 한적한 온천탕의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다가 돌아가셨어요. 몸을 깨끗이 닦고 바로 하늘나라로 간 건 차라리 축복이 아닐까요? 또 다른 어떤 노인은 홍합이 든 미역국을 맛이 있다고 두 그릇이나 잡숫더라구요. 그리고 방에 가서 잠이 드셨는데 그 길로 바로 천국으로 가셨죠. 마지막 식사를 든든히 드셨으니까 저승길에 배가 고프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제가 옆에서 지켜보니까 그런 게 좋은 죽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또 다른 경우를 보기도 했는데 제가 뒷산을 올라갔더니 나무에 곰둥이 인형같은 게 매달려 있더라구요. 가서 보니까 실버타운에 사시던 작달막한 노인이 마지막을 그렇게 정리하셨더라구요. 그런 죽음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옆에서 지켜본 노인들의 삶의 모습은 어때요?”

내가 그에게 물었다.

“나이 팔십이 넘은 분들이 젊은 시절 해병대 기수를 가지고 따지고 삐지고 싸움을 하다가 나가시는 걸 봤어요. 노인에게 그런 것들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밥과 반찬이 맛이 없다고 불평을 하시는 분들이 있죠. 밥맛이 없는 게 건강이 안 좋은 탓도 많아요. 아프신 분이 무슨 식욕이 있겠습니까? 잠이 오지 않는다고 정신과에 가서 강한 수면제를 받아 복용하는 분들은 아침이면 약기운 때문에 식욕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 탓을 하십니다. 몸이 아프니까 매사에 불만이고 짜증이 나시는 거죠. 그런 분들은 여행을 시켜 드려도 그리고 고급호텔 레스트랑에서 식사를 하게 해도 불평을 하십니다.

노인들의 살아가는 모습도 가지가지예요. 재산이 백억이나 된다고 주위에 돈 자랑을 하는 노인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내는 모습을 보면 거지 중에 상거지예요. 옷도 먹을 것도 돈이 아까워서 못 사먹어요. 주위에도 그렇게 인색할 수 없어요. 그런 분한테 재산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

“그 반대쪽 노인들의 훌륭한 모습은 어떤 겁니까?”

내가 물었다.

“오층에 혼자 사시는 엄씨 노인은 나이가 아흔 네 살이신데도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실버타운 노인들에게 약밥이나 과일 같은 걸 때마다 베푸시죠. 자식들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도우미요양사를 고용해서 근무하게 하고 있어요. 그 도우미가 잔심부름도 하고 산책도 시켜 드리죠. 다른 노인들은 식사 때가 되면 츄레닝 바람에 슬리퍼를 신고 내려오시기도 하는데 그 분은 항상 한복으로 단정하게 갈아입으시고 구두를 신고 와서 말 없이 조용히 식사를 하고 가시죠. 다른 노인들하고 거의 어울리시지 않아요. 독서를 하고 명상을 하시고 기도하면서 지내시는 것 같아요.”

그 노인을 이따금씩 보면서 나를 돌아본다. 인생의 시간이 한칸 남은 핸드폰의 밧데리 정도 아닐까. 물결 소리만 가득한 철지난 겨울 바닷가로 나는 화려한 유배를 선택했다.

젊은 날의 추억들이 세월의 햇살 속에서 익어간다. 인생에 뭔가가 더 있을 줄 알았다. 이제 그런 기대를 접고 텅비어

적당한 쓸쓸함과 적당한 자유 그리고 해방감으로 흐느적거리고 싶다. 세상의 갈등과 싸움이 모두 바람에 불려가는 안개가 아니었을까.

추천 비추천

1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SNS로 싸우면 절대 안 질 것 같은 고집 있는 스타는? 운영자 24/05/06 - -
2944 할아버지의 뼈 운영자 23.04.03 90 1
2943 내 남은 생의 첫날 운영자 23.04.03 82 1
2942 잠자는 법원 운영자 23.04.03 74 1
2941 노무현의 일본의회 연설 운영자 23.03.27 164 2
2940 공부란 무엇일까 운영자 23.03.27 104 2
2939 두 판사의 재판스타일 운영자 23.03.27 91 0
2938 전두환가의 비극 운영자 23.03.27 133 0
2937 대통령의 손자 운영자 23.03.27 83 1
2936 좋은 글이란 운영자 23.03.27 80 2
2935 진정한 인맥 운영자 23.03.21 134 1
2934 '챗봇'이 말하는 인간 운영자 23.03.21 78 1
2933 혼자 즐겁게 운영자 23.03.21 87 1
2932 영혼을 교류하는 댓글 친구들 운영자 23.03.21 86 1
2931 젊은시절 삽화 몇장면 운영자 23.03.21 94 0
2930 다양한 품질의 인간 운영자 23.03.21 90 1
2929 학교 폭력의 추억 운영자 23.03.21 98 0
2928 잡화점 노인의 비밀 운영자 23.03.21 99 0
2927 지나간 시간은 어디에 있을까 운영자 23.03.13 126 0
2926 제비꽃 행복 운영자 23.03.13 82 1
2925 내면의 상처 드러내기 운영자 23.03.13 134 0
2924 기도하는 엄마 운영자 23.03.13 95 0
2923 인격을 드러내는 비난 운영자 23.03.13 94 0
2922 재미있는 인생 운영자 23.03.13 154 1
2921 돈 받는 법원 운영자 23.03.13 124 0
2920 나는 신이라는 괴물 운영자 23.03.06 125 1
2919 초등학교 시절 우리반 반장 운영자 23.03.06 115 0
2918 택시기사 입을 빌린 하나님 운영자 23.03.06 101 1
2917 때미는 그에게서 초월을 느꼈다. 운영자 23.03.06 91 2
2916 다양한 색깔의 법조인 운영자 23.03.06 107 0
2915 법조 귀족 운영자 23.03.06 114 0
2914 노숙자의 감사일기 [1] 운영자 23.03.06 118 1
2913 기타리스트의 내사랑 내곁에 운영자 23.02.27 101 1
2912 말 한마디 운영자 23.02.27 130 1
2911 강도범과의 대화 운영자 23.02.27 94 1
2910 영혼의 눈 [1] 운영자 23.02.27 217 6
2909 잔인한 예쁜여성 운영자 23.02.27 118 1
2908 황당한 살인 운영자 23.02.27 104 1
2907 노인과 강아지 운영자 23.02.21 110 1
2906 비가 오면 빗길을,눈이 오면 눈길을 [1] 운영자 23.02.21 151 2
2905 실패의 메시지 운영자 23.02.21 117 1
2904 이게 즐거움을 주는 것일까? 운영자 23.02.21 131 2
2903 주제를 모르고 살아왔다. 운영자 23.02.21 127 1
2902 모퉁이를 돌아가는 청년 운영자 23.02.21 92 2
2901 우정의 유효기간 운영자 23.02.21 113 3
2900 실버타운의 두 노인 운영자 23.02.21 116 1
2899 브랜드거품이 낀 세상 [1] 운영자 23.02.13 143 2
2898 한권의 책이 된다면 운영자 23.02.13 97 1
2897 법을 가지고 노는 사람들 운영자 23.02.13 119 1
화려한 유배 운영자 23.02.13 94 1
2895 돈벼락의 저주 운영자 23.02.13 143 2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