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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시절의 부끄러운 고백

운영자 2023.07.10 10:11:53
조회 78 추천 2 댓글 0

우연히 인터넷 신문에서 ‘사시 출신에게 수모 안 당한 재벌총수 없었다’라는 글을 읽었다.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한 예리한 글이었다. 그걸 보면서 ‘나는 왜 사시를 했을까?’라고 내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동기는 열여섯살 소년의 치기 어린 천박한 복수심이었다. 중학교 삼학년 초 재벌의 건달기 있는 아들에게 칼을 맞았다. 죽을뻔했다. 칼보다 불공정이 더 싶은 상처를 냈다. 교사들이 뇌물을 받고 학폭사건을 적당히 덮었다. 재벌가는 회사의 말단 기능직이던 아버지의 승진을 제시하며 약간의 돈으로 적당한 합의를 보려고 했다. 나는 그들의 이면에 무시가 있는 걸 느꼈다.

어머니는 아들의 ‘피값’을 거절하는 행동으로 내게 자존감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내 영혼은 복수를 꿈꿨다. 그러나 검정 교복의 까까머리 소년은 그 방법을 알지 못했다. 청계천 뒷골목을 밤에 방황하면서 카바이트 불을 밝히고 리어커 위에 책들을 쌓아놓고 파는 노점상들을 뒤적였다.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사기도 하고 공산주의비판서적을 샀다. 비판 부분을 빼면 그 사상의 핵심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사법고시라는 게 있는 걸 알았다. 섬마을 보건소 의사를 하며 문학을 하고 싶던 소망을 바꾸어 법대로 진학하고 사법고시에 도전했다. 시험에 떨어지고 또 떨어졌다. 어느 날 내가 실패하는 이유를 알아냈다. 복수심과 천박한 권력욕으로 고시에 도전하는 사람은 떨어져야 했다. 비뚤어진 정의감을 독점하고 사회에 해를 끼칠 수 있었다. 나는 합격해서는 안 될 존재인 걸 깨달았다. 그런데 그 순간 동시에 내가 중병에 걸린 사실도 자각했다. 고시 낭인들이 얻게 되는 정신병적 비틀림이었다. 신체장애보다 훨씬 심한 정신적 장애라는 생각이었다. 열등감과 비틀린 성격이 되어 평생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불행하게 할 것 같았다. 그것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었다. 나는 뭔가 잡고 호소하고 싶었다. 새벽두시 나는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보면서 믿지 않고 경멸하던 하나님이라는 분께 사정했다. 영혼이 병들지 않기 위해 한 번만 시험에 합격시켜 달라고.

판검사가 되지 않겠다고 했다. 치료를 의미하는 합격증만 주시면 연탄 수레를 끌고 평생 가난해도 행복하겠다고 빌었다.

그해에 나는 최상위권의 성적으로 합격했다. 내 영혼의 병을 완전히 치료해주기 위한 그 분의 섭리였다. 나의 내면에 깊이 있는 자아는 알고 있었다. 내 능력의 부족함을. 그리고 고시낭인으로 떠돌 운명을. 그 운명을 바꾸어준 것은 그 분이라고 확신했다. 나는 법률사무소를 차리고 사십년 가까이 평범한 변호사 생활을 해오고 있다. 우연히 한 살인범이 내게 제보한 사건을 맡게 됐다. 같은 감방안의 살인 청부를 받았던 죄수의 얘기였다. 재벌가의 부탁을 받고 한 여대생을 살해했다는 내용이었다. 돈으로 싸들여 왔던 판사 사위와의 관계가 의심이 되는 여성이 타켓이었다. 재벌가는 거액을 써서 범죄를 덮으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삼류공작을 알 것 같았다. 나는 청부살인범의 변호를 맡았다. 청부살인범은 재벌가에서 입을 닫는 조건으로 오십억을 제의했다고 했다. 그는 이미 그 돈에 넘어가 있었다. 청부살인범의 아내는 현명했다. 그 돈을 받고 남편이 사형을 당하면 의미가 없다고. 나는 살인범에게 진실을 말하고 각자 죄지은 대로 그 값을 치르는 것이 어떠냐고 말했다.

살인범의 마음이 흔들렸다. 돈 욕심이 나지만 죽기는 싫은 것이다. 법정 주변은 온통 돈으로 오염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법복을 입은 판사도 검사도 믿을 수 없었다. 재벌의 조종을 받은 직원들이 법정에서 오너 집안의 결백을 주장하며 시위했다. 재벌가에서 고용한 대형로펌의 장관급 전관출신 변호사는 강하게 무죄를 밀어 붙였다. 어느날 공원묘지에서 혼령으로 떠돌던 죽은 여대생이 내게 나타나는 것 같은 환각을 느꼈다. 변호사가 되기 위해 일분일초를 아끼며 공부하다가 저승으로 왔다고 했다. 죽기전 온몸의 뼈가 부러지는 고문을 받고 아팠다고 했다. 산속에서 머리통에 일곱 발의 납탄을 맞고 버려졌을 때 죽어가면서 너무 추웠다고 호소했다. 법정에 증인으로 나온 그 아버지가 절규하며 오열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얼굴에는 현실의 벽에 부딪쳐 어찌할 수 없는 한이 서려 있었다. 소년시절 칼에 맞았던 기억이 내 마음속으로 쳐들어왔다. 그때 내가 죽었어도 형태는 다르지만 공작은 비슷하지 않았을까. 나는 진실투쟁을 하기 시작했다. 소년 시절 상처의 폭발력이 결사적으로 강하게 밀어붙이는 힘이 되었다. 나는 재벌가가 제기한 다섯개의 거액소송의 피고가 되기도 하고 피의자가 되어 검찰의 조사도 받았다. 마침내 진실이 이겼다. 천박한 복수심이 정의와 진실을 위한 에너지가 되어 준 것 같았다.

네 소년 시절 치기 어린 복수심과 사상서적의 독서. 그리고 고시에의 도전을 계급혁명론자의 치기어린 재벌에 대한 시샘 그 자체라는 글을 봤다. 재벌이 자기보다 유복한 게 수모를 주는 일이냐고 글은 내게 묻는다. 그는 이 사회에 아직도 유치한 혁명론자들이 많은 것 같다고 하고 있다. 그가 두들기는 재벌을 시샘하는 치기 어린 계급혁명론자는   내가 아니다. 그가 허수아비에 나의 환각을 심어놓고 두들겨 패는 것 같다. 나는 하늘에 계신 사랑과 정의의 그분을 믿는다. 계급혁명보다 영혼의 구원을 추구한다. 영혼이 구원되야 사회가 변한다는 걸 안다. 우리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면 안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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