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좋은 돈을 많이 모읍시다

운영자 2023.07.31 10:26:09
조회 89 추천 3 댓글 0

오래전 터론토에서 아이들을 유학시키고 있는 한 여성을 만난 적이 있다. 남편은 유명한 성형외과 의사이자 군의관 시절 장군 계급장을 단 의무사령관이었다. 경제적 여유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그녀의 옷차림은 소박했다. 그녀가 이런 말을 했다.​

“남편이 받아오는 월급 만으로 생활을 할 땐 밥 짓고 청소하는게 여자 일의 다인 줄 알았어요. 그러다가 아이들 유학 뒷바라지를 와서 스시집에서 알바를 하기도 하고 틈틈이 공장에 나가서 일을 해 보니까 돈의 개념이 달라졌어요. 공장에서 제가 하는 일이 씨디를 플라스틱 케이스에 넣고 테이프를 붙이는 단순 작업인데 시간당 6불을 받았어요. 칩을 조립하는 기술만 있으면 좀 더 받을텐데 아쉬웠죠. 간단한 수작업 정도 했는데도 그 공장의 제품이 백화점에서 보이면 좋았어요.”​

그녀는 좋은 돈이 무엇인지 안 것 같았다. 돈에도 품격이 있다. 훔친 돈, 사기 친 돈, 횡령한 돈, 사채로 뺏은 돈, 도박판의 돈 같은 것들은 액수는 커도 품격이 없다. 나쁜 돈이다. 좋은 돈은 액수가 작아도 좋은 운명을 만들고 나쁜 돈은 많아도 나쁜 운명을 만든다. ​

변호사 개업을 한 초창기 돈에 대한 철학을 확실히 세워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만 해도 변호사가 많지 않았다. 아예 변호사가 아예 없는 지방 도시도 있었다. ​

가족이 구속되면 사람들은 집이라도 팔아 변호사비를 대겠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부르는 게 값이었다. ​

교통사고를 당해도 보험을 들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브로커들이 병원들을 장악하고 변호사들과 담합해 피값의 상당부분을 가로채기도 했다.​

성공보수라는 것도 그랬다. 우연한 승소 판결에 돈이 걸린 야바위 도박 같아 보일 때가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화가 났던 적이 있다. 열심히 일했는데 결과가 의뢰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처음에 받은 착수금까지 도로 빼앗겼다. 공짜일을 해 준 셈이고 거기다 내 돈이 더 들어갔다. ​

도대체 그런 일을 겪는 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느날 점심시간 잠시 옆의 변호사사무실로 갔었다. 그 변호사는 검사장 출신이었다. 그가 자랑같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

“오전에 검찰청에 전화해서 후배에게 부탁했어. 그리고 칠천 만원 받았어.”​

“그러다 일이 잘 안되면요?”​

내가 되물었다.​

“돌려주면 돼.”​

사람들은 그걸 전관예우라고 했다. 그리고 전화변론을 한다고 했다. 과거 직장의 인맥을 ‘소셜캐피털’이라고 하면서 청탁과 로비를 하나의 상품으로 인정하는 학자들도 있었다. 어리석은 것인지 몰라도 나는 그런 이론과 행동들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아는 사람을 팔아서 사기를 치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나도 군에서 검사와 판사를 해봐서 안다. 선배나 권력자가 말해도 사건처리기준상 들어 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나를 이용하기 위해 친한 척 하는 사람들이 싫었다. 그들에게는 사기성이 있었다.​

나도 힘을 가진 친한 선배나 친구들이 많다. 그들은 내게 부탁하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부탁하지 않았다. 관계를 유지하려면 부탁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변호사를 지식노동자로 정의했다. 시간당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금액으로 내 노동의 가격을 정했다. 내가 받는 돈은 결과에 대한 것이 아니라 과정에 흘린 땀에 대한 댓가라고 속으로 정의했다. 일꾼이 품값을 받는 건 당연하다는 성경의 말씀을 마음의 중심축에 꽂았다. ​

피자조각같이 작은 일들도 마다하지 않았다. 법률서류를 써주고 수수료조로 삼만원을 받았다. 작은 금액이지만 돈에서 들꽃향기가 피어오르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렇게 돈을 벌고 싶었다. 주위에서 나를 바보처럼 바라보면서 딱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좋은 인맥을 가지고 있으면서 활용을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궁상맞게 버는 작은 돈이 좋다. 좋은 돈이기 때문이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는 속담이 있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개같이 벌면 대개 개보다 못하게 돈을 쓰기 때문이었다.


추천 비추천

3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주위 눈치 안 보고(어쩌면 눈치 없이) MZ식 '직설 화법' 날릴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4/29 - -
3087 아내가 미래의 신문기사를 봤다 운영자 23.08.22 125 2
3086 젊은 시절의 군사법정 운영자 23.08.22 107 2
3085 나는 항상 잘 삐진다 운영자 23.08.22 94 1
3084 잡담 운영자 23.08.22 101 1
3083 부자 팔자는 따로 있다 운영자 23.08.22 133 3
3082 재벌 회장은 행복할까 운영자 23.08.22 130 3
3081 우리는 모두 인생 감옥에 있다. 운영자 23.08.22 135 2
3080 거지에게 행복을 물었다. 운영자 23.08.22 101 2
3079 나도 화가 운영자 23.08.22 60 2
3078 나를 아늑하게 해 주는 것 운영자 23.08.14 73 3
3077 종교보다 강한 밥 한끼 운영자 23.08.14 74 1
3076 인생을 숙제처럼 살지 않기로 했다 운영자 23.08.14 96 2
3075 보조 프로그램 같은 유전자 운영자 23.08.14 70 2
3074 묵호역 운영자 23.08.14 70 2
3073 길고양이와 강아지 세 마리 운영자 23.08.14 58 2
3072 수행방법으로서의 독서 운영자 23.08.07 94 3
3071 훈장 받은 노인의 공허 운영자 23.08.07 114 3
3070 혼자 즐기다 집에서 혼자 죽기 운영자 23.08.07 97 2
3069 벌거벗은 성자 운영자 23.08.07 75 0
3068 컴맹탈출의 달팽이 기법 운영자 23.08.07 70 2
3067 느림과 비움 운영자 23.08.07 84 3
3066 옆방 노인의 죽음 운영자 23.08.07 82 3
3065 내 속에 들어있는 ‘거지’ 운영자 23.07.31 96 2
3064 노년의 자잘한 즐거움 운영자 23.07.31 138 2
좋은 돈을 많이 모읍시다 운영자 23.07.31 89 3
3062 부부간의 ‘불간섭 평화 협정서’ 운영자 23.07.31 98 2
3061 인생 사는 것 처럼 사는 비결 운영자 23.07.31 89 2
3060 인생은 길게 살아봐야 운영자 23.07.31 114 3
3059 가난한 부자노인들 운영자 23.07.31 150 3
3058 깨달음을 전하는 판사 운영자 23.07.24 97 3
3057 기적을 봤다 운영자 23.07.24 97 1
3056 외로운 사람들 운영자 23.07.24 81 3
3055 하나도 안 아픈 스턴트맨 운영자 23.07.24 61 2
3054 악마의 낚시미끼 운영자 23.07.24 78 1
3053 박쥐장을 만들던 남자 운영자 23.07.24 71 3
3052 돈이 절실한 분에게 운영자 23.07.24 96 3
3051 노인이 돼서 꽃을 피웠다 [1] 운영자 23.07.17 127 5
3050 한 편의 영화찍기 인생 운영자 23.07.17 76 1
3049 이혼을 꿈꾸는 늙은 남자들 운영자 23.07.17 98 2
3048 인생 마지막 살 곳 [1] 운영자 23.07.17 113 0
3047 돌아온 재미교포의 질문 운영자 23.07.17 124 2
3046 손자가 공사 현장 잡부예요 운영자 23.07.17 84 4
3045 한 엑스트라의 운좋은 날 운영자 23.07.17 82 3
3044 노년에 혼자 행복해지는 방법 운영자 23.07.10 98 4
3043 기름집 벽의 윤동주 시(詩) 운영자 23.07.10 74 2
3042 사교육 전쟁은 왜 일어날까? 운영자 23.07.10 94 1
3041 품위 있는 노인들 운영자 23.07.10 74 2
3040 밤바다의 주인 잃은 신발 운영자 23.07.10 68 2
3039 소년 시절의 부끄러운 고백 운영자 23.07.10 79 2
3038 고시 출신 노무현이 좋은 세상 만들었나? 운영자 23.07.10 90 6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