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30대 후반 혹은 40대 초반 시절로 기억한다.그때 나는 MBC의 예능국에 재직하면서 주로 <일요일 밤의 대행진>과 같은 코미디 프로그램을 연출하고 있었던 나름 중견 PD 였다.지금은 세월 따라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에는 코미디 프로라 하면 구봉서, 남철, 남성남과 같은 ‘코미디언’들이 연기하는 ‘꽁트형식’ 이 대세였고, 누구라도 코미디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고 믿던 때였다.또 하나 그 당시 코미디가 연기자와 형식, 내용 외에 지금과 근본적으로 달랐던 것은 코미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었다.한마디로 코미디는 저질의 대명사였고 폄하의 대상이었다.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하겠지만, 예를 들어 당시에는 드라마 작가나 탤런트에게 코미디 집필이나 출연을 제의하면 얼굴을 붉히는 분위기였을 정도였다.

여하튼 호랑이 담배 피던 그 시절, 나는 KBS에서 방송되고 있던 미국 코미디 드라마에 푹 빠져 있었다. 제목은 <케빈은 열두살>이었다. 1970년 초를 배경으로 케빈이란 초등학생의 눈에 비친 가족과 학교생활을 웃음과 감동을 버무려 그린 프로그램 이었다.정교한 대본, 어느 드라마 못지않은 연출, 배우들의 리얼한 연기, 그 삼박자의 하모니가 만들어 내는 코미디, 그것은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식의 코미디였다.

바로 ‘시트콤’ 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프로그램에서 나를 제일 설레게 했던 부분은 70년대 배경의 드라마에 걸맞는 70년대를 풍미했던 팝송을 이용한 배경음악 이었고, 그 중심에 포크듀오 ‘사이먼 앤 가펑클’ 이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저런 멋진 코미디 드라마를 만들어 보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7~8년 후!

우리나라의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그 사이에 많은 진화를 거쳐 변화했다.그 중엔 물론 코미디의 변화도 있었다. 1990년경, 꽁트 위주의 형식에서 드라마 타입의 코미디 형식들이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했고, 나름대로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예를 들면 MBC <테마극장>이나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인생극장’ 코너 등이 그런 것들 이였다.새로운 아이디어도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터전이 있어야 한다.우리에게도 <케빈은 열두살>과 같은 새로운 형식의 코미디 즉 시트콤을 만들수 있는 인프라가 준비되기 시작했던 것이다.때맞춰, 나는 졸작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을 연출했다. 그리고 거기서 ‘사이먼 앤 가펑클’ 을 원도 없이 틀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