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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돌체&가바나 쇼에 선 이봉구씨. |
29세에 밀라노 사로잡은 이봉구의 세계무대 진출 비법
2002년 아르마니 최종 오디션 통과
지난해 외국식 모델 에이전시 열어"
<U>한국</U>에선 더 이상 날 알리고 싶지 않았죠. 그렇게 자만했던 내가 지금은 조금 어리석어 보이긴 하지만요…." 멋쩍게 웃었다. 패션 모델 이봉구(35)씨. 생소하게 들릴진 모르지만, 모델계에선 알아주는 실력자다. 이미 2002년
<U>이탈리아</U> 밀라노에서 패션계의 거장 조르지오 아르마니를 만나, 그의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등 해외에서 주가를 높였다. 자신을 알리는 대신, 후배들을 많이 키워내는 게 자신의 목표라는 그는 현재 서울종합예술전문학교 연기예술학부 겸임 교수와 석세스 모델 에이전시 이사를 동시에 맡고 있다. 그를 최근 광화문에서 만나, 잘 알려지지 않았던 뒷 이야기를 들었다.
■큰 물에서 놀아라
2002년 29세. 사회 생활하는 사람들에겐 한창인 나이지만 모델 이봉구에겐 절망적인 숫자였다. "모델 생활을 접어야 한다고들 수근댈 나이였죠." 극도의 절망이 오히려 \'희망\'이라는 오기를 불렀다. "서른 넘기기 전에 무조건 해외 무대로 도전해보자고 마음 먹었죠." 사람들은 무리라고 말했다. 큰 키도 아니었고(1m81㎝), 영어도 제대로 못했고, 누구 하나 도와줄 생각하지 않았다.
밀라노의 겨울은 추웠다. 마음이 추워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별다른 성과 없이 목표로 삼았던 3주가 다 지나갈 참이었다. "그렇게 돌아갈 바엔 \'거물에게 일단 들이대보자\'고 마음 먹었어요. 아르마니 본사에서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나오기만 밤새 기다렸죠."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멀리서 보이는 실루엣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 "눈이 딱 마주쳤는데, 강렬한 눈빛의 아우라가…. 진짜 악마 같았어요."
주변엔 보디가드까지. 진짜 조르지오 아르마니였다. "한국에서 왔습니다! 모델하고 싶습니다!" 달달 외운 말을 아르마니 앞에서 계속 반복했다. 미친 사람 같았던 그 모습에서 \'진정성\'을 느꼈는지, 약속을 잡아줄 테니 오디션을 한번 보라는 답이 돌아왔다.
■난 섹시한 \'수퍼 봉구\'
2002년 아르마니 모델 캐스팅장에 각국에서 온 슈퍼 모델 1000여명이 모였다. "그때부터 1차, 2차, 3차 오디션을 보거든요. 아르마니 같이 유명한 곳에선 1차만 통과해도 영광이죠." 1차 통과한 모델 300명 중 유일한 동양이었다. 상체엔 재킷만 걸쳤다. "제가 키는 작아도 몸이 좋은 편이거든요. 흑인 같은 체형이랄까?" 몸이 좋아서였는지, 아니면 길거리 추억 때문인지 아르마니가 그에게 다가와 어디 출신인지 물었다. 고민이었다. 당시엔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었고, 하필이면 이탈리아가 한국에 패한지 이틀 뒤인 시점이었다. 축구에 \'미친\' 이탈리아에서 한국 사람은 눈엣가시였다. "
<U>일본</U>이나
<U>중국</U>이라 말하려다, 비겁해지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더 큰 소리로 \'한국에서 왔다. 축구 이겨서 미안하다\'고 외쳤죠. 아르마니가 막 웃더라고요." 그는 최종 오디션까지 가뿐하게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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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겐 은퇴란 없어요.2 모델 이봉구씨가 각종 패 션쇼 도전 경험을 이야기 하고 있다. ☞ 동영상 chosun.com / 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
며칠 뒤 \'돌체&가바나\' 쇼 오디션도 합격했다. "도미니크 돌체와 스테파노 가바노, 그 둘 눈엔 제가 좀 이국적이고 섹시하게 보였나 봐요. 옷 디자인할 때도 이렇게 소리지른 대요. \'여자들이 당장 자고 싶어할 정도로 섹시한 옷을 만들어!\'라고요." 그때까지 얕보던 외국 친구들이 갑자기 \'수퍼 봉구\'라며 그 주위를 따랐다.
■쓰레기통까지 뒤지다겉으로 볼 땐 \'운\' 같지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자 마음먹은 것도, 제가 정말 힘들게 일을 잡았기 때문이었어요. 저 같은 고생은 하지 말라고, 제가 아는 노하우를 다 전달해 주고 싶어요."
밀라노와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U>파리</U> 캐스팅은 냉혹 그 자체였다. 모델들조차 그를 거들떠 보지 않았다. 디자이너 브랜드 오디션 스케줄을 알아야 하는데, 도저히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모델처럼 생긴 사람들 뒤를 무조건 쫓아다녔어요. 그 친구들이 쓰레기통에 물건을 버릴 때 마다 바로 다 뒤져서 꺼내봤죠. 가끔가다 오디션 스케줄이 적힌 종이를 구겨 던져버리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말랐다면 파리로, 섹시하면 밀라노로 가라조르지오 아르마니, 돌체&가바나, 에트로, 비비안 웨스트 우드 등 밀라노와 파리를 오가며 각종 무대에 서긴 했지만 쇼를 따내는 건 쉬운 게 아니었다. 디자이너 특유의 이미지와 개성 때문이다. "스키니(마른)한 옷의 유행을 주도한 디올 옴므 쇼를 뛴 모델이 골격이 있어야 입는 돌체&가바나를 소화하기란 쉽지 않죠." 둘 중 하나는 포기한다고 생각하고 캐스팅을 공략해야 한다는 것이다.
"파리는 보통 아주 마르고 특히 미소년같이 생긴 친구들을 선호해요. 나이도 19~21세 정도. 밀라노는 1m83㎝~85㎝ 정도가 적당해요. 너무 키가 커도 옷이 안 맞거든요. 돌체&가바나와 디스퀘어드 같은 경우엔 굉장히 섹시한 친구들을 찾고, 프라다나 질 샌더, 페라가모, 랑방 같은 경우엔 키도 적당하고 체격도, 미모도 적당한 모델을 좋아하더라고요. 뉴욕은 키가 크면 유리해요. 1m84~87㎝ 정도? 스포티한 스타일이 인기고요. 뉴욕 시장이 워낙 크고 에이전시의 부커(스케줄 예약해주는 사람)들이 거의 다 모여있어서 뉴욕에서만 성공적으로 데뷔하면 파리, 밀라노 등엔 쉽게 데뷔할 수 있는 편이죠."
■무표정이면 다 시크(chic)한 줄 안다?
그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한국 모델들 워킹이나 표정이 모두 비슷하다는 것이다. "너무 딱딱해요. \'모델처럼 걸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요. 한 외국 모델 친구는 한국 패션쇼를 보면서 \'시체가 걸어가는 것 같다\'고 표현하더군요. 예전엔 튀면 안 된다고 해서 무조건 \'웃지마\'라고 했지만, 요즘엔 연출력이 필수에요. 개성 넘치고 유연한 게 좋아요." 그가 던지는 조언. 발 앞꿈치로 착지하는 연습을 많이 하고,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으로 마인드 컨트롤 하면 걸음걸이가 조금 달라진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모델 에이전시도 열었다. "외국은 에이전시가 연수비 받으면서 학생들 가르치지 않거든요? 계약을 따내면 수입을 배분하죠. 우리나라는 \'학원\'개념이라 모델 지망생들이 돈을 내고 다녀요. 주제 넘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풍토는 옳지 않다고 생각해, 외국식 에이전시를 차렸죠." 그는 오는 6월 밀라노로 떠날 예정이다. 무대를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이요? 저 30살 때도 거기선 다 20살로 보더라고요. 10년은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최보윤 기자
<U>spica@chosun.com</U>]
한국인이나 동양인 남자들도 도전했음 좋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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