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더빙 안나 발음 좋은거같어 팔천장 넘는 접시 있었thㅓ~~~

Medeok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4.03.30 21:17:31
조회 69 추천 2 댓글 2
														


viewimage.php?id=2bafdf3ce0dc&no=29bcc427b38677a16fb3dab004c86b6fcffb4afa74abd104249a451a5a2fe08b588b1dec698c15fbec5113e7747fdbed1165ffdd7b5a65cc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1PsJa


Medeok




14번째 생일을 맞은, 내가 진심으로 사랑해 마지않는 동생에게


 아주 슬픈 꿈을 꾸었다. 너와 내가 같은 공간에서 뛰어노는 꿈이었지. 그것은 지금의 나로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기 때문에 슬프구나. 너는 슬퍼하지 마라. 외로움을 타니까 사람이 아니겠니. 길이 미끄럽거든 조심히 걸어가고, 길이 끊겼거든 돌아가라. 나는 언제나 네 뒤를 지키고 서 있을 테니.

 너를 본 것은 며칠 전 일이었다. 문득 한밤 중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로 가슴이 답답해서 가끔 가곤 했던 망루에 서 있었지. 그 때의 공기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슬펐다. 그 공기는 네가 다쳐서 아버지와 함께 트롤을 찾아가던 그날 밤의 공기와 비슷했다. 갑자기 그때 생각이 왜 나는 걸까. 나는 내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려 했는데. 애써 무시하기란 이토록 힘든 것일까.

 망루 난간에 얼마나 서 있었을까. 뒤에서 인기척이 나기에 나는 보초인가 했지. 그런데 보초와는 달리 나를 경계하며 살피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음부터는 그렇게 티내지 말고 숨는 게 어떠니. 내 가슴이 약해지지 않도록. 동시에 나는 네가 다음에도 그렇게 티내고 숨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내가 너의 사랑이 여전함을 알 수 있도록. 너는 꽤 오랫동안 나를 바라보는 것 같더구나. 네가 내 모습을 좀 더 오래 볼 수 있도록 나는 다리가 저린 것도 무시하고 계속 서 있었다. 너와 함께 있다고 생각하니 공기는 한결 가벼워졌다. 매번 잠들기 전마다 찾아오는 두통도 그날은 없었고. 역시 너는 존재만으로 내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네가 갈 기미가 안보이자 나는 잠을 청하기로 했다. 나는 언제나 무척 피곤하니까. 일부러 네 쪽이 아니라 돌아서 가는 길을 택했다. 네가 어떻게 행동하나 보고 싶기도 했으니. 너는 곧 내가 서 있던 그 자리에 가 똑같이 서 있었지. 너의 뒷모습이 어찌나 대견하던지. 아직도 마냥 어린애인줄 알았는데, 이젠 제법 아가씨 티가 나더구나. 나는 본능적으로 곧 마법을 조절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너를 위해서. 달빛을 반사하는 너는 어릴 때 보았던 그대로 여전히 천사 같은 모습을 하고 있더구나. 다른 사람의 눈에 네가 어떻게 비치는 지 너는 알고 있니? 그건 인간의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란다.

 우리 삶이 아름다운 이유는 수 없이 많은 태양이 떠올랐다 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관계에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해서, 영원히 떠오르지 않을까. 언젠가 태양이 떠오를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 때가 되거든 우리는 다시 한 번 ‘단어 그대로의’ 자매가 되어보자.

 너의 생일은 언제나 그렇듯 행복이 흘러넘치는구나. 나는 다만 너를 동경할 따름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편지에 직접적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표현한 적이 없구나.


 안나야, 생일 축하해. 사랑해.


 동생을 사랑하고 지켜주고 싶은 언니가


 p.s. 편지를 너에게 언제 전해줘야 할지 모르겠구나. 그저 쌓아놓을 뿐이다. 언제 줘야 네가 가장 기뻐할지 나는 헤아릴 수 없다.




 페리는 다음 장을 넘길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제 무슨 내용이 나올지 알고 있었기에. 얼마나 절망적인 내용이 써져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안나의 14번째 생일의 다음 번 편지. 그들의 인생에 있어 가장 어두웠던 시기. 외로움이 만들어낸 감성의 소유자가 어떤 글을 남겼는가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이 동시에 생겨났다. 




내 평생을 바쳐 사랑하고 사죄하는 동생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가 빛을 잃었다. 심지어 태양마저도 한때 강렬했던 힘을 빼앗긴 채 죽어가는 빛을 내린다. 내 인생은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마법을 타고난 아이를 어떻게 키우셔야 할지 아버지는 알고 계셨을까? 어머니는 알고 계셨을까? 나는 우리 부모님이 나를 키우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노력하셨는지 바로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안다. 마법을 타고난 아이를 저주받은 아이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신 두 분은 그렇게 나를 낳으시고 계속 정신적인 고통 속에 허무하게 가셨다. 이게 삶인가? 이게 진정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삶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나는, 삶을 바라지 않는다. 어머니께서 오래 전 말씀하셨다. 신은 우리에게 시련을 주어 앞으로 나아갈지 시험하신다고. 이게 과연 그 전능한 신이 한다는 일인가? 만약 신이 있다면, 그는 굉장히 유치하고 불순한 의지를 가진 존재가 분명하다. 일부러 시련을 주는 게 얼마나 가학적인 행위인가. 그래서 우리 부모님의 삶에 무엇이 남았지? 무엇이 남았을까? 두 분의 마지막은 어떠셨을까. 마지막까지 우리를 걱정하셨을까? 행복 속에서 돌아가셨을까?

 아버지께서는 늘 내 마법이 저주가 아니라 타고난 것이라고 말씀하셨지. 이젠 모르겠다. 내 마법은 저주가 아니었을까. 아니, 내 마법은 저주가 확실하다. 내 영혼을 갉아먹는 끔찍한 저주. 너는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부모님을 내가 돌아가시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너는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아, 우리의 삶은 왜 이렇게 고통으로 얼룩져 있을까. 그리고 절대 씻을 수 없는 흉터들과 외면하고 싶은 기억들의 조각이 왜 이렇게 많을까. 너에게 있어 나는 없어야 할 기생충처럼 느껴진다. 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지금 이 순간 이런 생각이 든다. 너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내 실수로 너는 행복해야 할 유년을 슬픔 속에서 흐느끼고, 희망차야할 어린 시절을 동생을 무시하는 언니라는 존재가 가로막혀야만 했다.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다. 그래서 미안하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성 안의 모든 사람들이 부모님의 죽음을 애도하는데, 나는 소리 내어 울 수도 없다. 너는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니?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조차 슬픔을 나눌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겠니? 넌 희망의 소녀이기 때문에 감당하지 못할 거야. 이 일은 오로지 나 혼자 짊어져야만 하는 운명이니까. 끊임없이 추락하는 구덩이. 나는 그 구덩이 속에서 헤어 나올 의지조차 잃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의 파괴. 부모님의 사랑은 이제 남겨진 것뿐이다. 앞으로 받을 모든 사랑을 그렇게 파괴된 것이다.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음식을 먹다가도 입맛이 없어져서 곧 버리고, 손이 닿는 대로 모두 얼리고, 똑바로 서 있다가도 정신이 혼미해져 갑자기 쓰러지기도 한다. 몸이 엉망이다. 내게 있어 부모님은, 단순한 부모님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성장하게 도와준 진정한 스승이자 나에게 유일한 말동무가 되어준 친구이자 내 저주를 사랑으로 감싸는 유일한 보호자였다. 어쩌면 하늘보다도 더 큰 존재가 부모님이었다.

 이틀 째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다. 입맛도 없고, 손에 닿는 대로 전부 얼음이 되어버려 먹을 수가 없었다. 내 몸이 점점 야위어가는 게 느껴진다. 슬픔이 생각까지 먹어버려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이 다만 공간에 존재하기만 할 뿐이다.

 부모님의 장례식을 치룬 날 오후였다. 하늘은 회색빛이었고 모든 사람이 검정색 옷을 입고 있었다. 안개에 가려 그들도 모두 회색으로 보였다. 회색. 온통 회색뿐이었다. 너는 그날 내 방 문 앞으로 왔다.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노크소리였다. 노크소리는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서서히 사라졌던 것이었다. 너의 목소리는 회색을 뚫고 들어온 밝은 물감과 같았다. 슬픔을 담고 있는 너의 목소리엔 색이 있었다. 희망이 있었다. 나는 너의 목소리를 조금이나마 가까이서 듣고 싶어 문에 기대앉았다. 문 너머로 너의 존재가 느껴졌지. 말을 걸고 싶었지만, 말을 걸어서는 안됐다. 무엇보다도, 목에 커다란 게 걸린 느낌 때문에 나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너는 나를 찾았지만, 나는 너에게로 갈 수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나의 운명은 왜 이럴까. 나도 너를 찾았지만, 나는 너에게로 갈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를 봤지. 너의 그런 표정은 생전 처음이었다. 정말 화난 표정은 처음이었다. 너는 내게 그렇게 분노를 느꼈니. 나는 끝없는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내가 그렇게 비탄에 빠져있는 것 외에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내가 어떻게 행동했어야 할지 넌 더 좋은 생각이 있었니? 그래, 말해보렴, 있었니?

 부모님의 죽음은 견딜 수 있었다. 나의 끝없는 외면과 무기력함은 너의 분노의 먹잇감이 되었다. 나는 너의 증오를 단 한 순간도 견딜 수 없었다. 그 누구보다 순수해야할 네가, 나를 증오하는 상황을 나였다면 받아들일 수 있었겠니? 나는 모르겠다.

 하늘이 무너져 내려 그 자리를 모든 부정적인 것들이 채웠다. 나는 도저히 그런 하늘 아래에 일 초도 서 있을 수 없었다. 벌써부터 부모님이 그립다. 나를 불러주시던 그 목소리가 그립다. 애정을 담아 내 목소리를 불러주시던 그분들이 그립다. 왜 진작 그들에게 달려가서 안아드리지 못했을까. 나는 한 번도 온전하게 부모님을 안아본 적이 없다. 왜 나는 부모님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지 못했을까.

 왜.




 동생을 위로하고 싶었던 언니가


 편지는 그녀의 평소 태도와는 달리 격정적으로 쓰였다. 같은 시기의 안나의 편지로 미루어봤을 때, 그녀는 절대 티를 내며 울지 않았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슬퍼했다. 그것은 페리가 공감할 수 있었다. 그녀는 글로써 울었다. 그녀는 문장으로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녀의 감정 상태에 대해 공감하며 책을 덮었다. 그의 눈은 편지를 읽는 새 붉어졌다. 그가 이를 꽉 물며 눈을 감아 엘사의 모습을 생각했다. 홀로 그 모든 슬픔을 감당하고 있을 그녀의 모습을.

 그가 아래층으로 내려가 전시실을 찾았다. 입구는 생각보다 꽤 큰 문으로 되어 있었다. 그는 문을 열자마자 아델을 찾을 수 있었다. 그가 그녀의 표정에서 반가움을 읽었다.

 “이 그림을 보세요. 엘사와 안나 그리고 그들의 부모님이 모두가 나와 있는 그림이에요. 무려 14년 동안 그린 그림이죠.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냐고 물으신다면, 그것은 엘사의 마법 때문이었어요. 그림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엘사는 마법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과 함께 있죠. 이건 그들의 아버지의 생각이었어요. 어쩌면 그는 모든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다만 확실한 것은, 그는 정말 탁월한 선택을 했다는 것이에요. 아버지와 어머니를 먼저 그렸고, 이후에 자매를 그리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그때 사건이 일어나서 그림을 완성할 수 없었어요. 엘사는 마법을 조절할 수 있게 되자 그때 그 화가를 간신히 찾아서 데려왔어요. 다행히 화가는 그때 그 그림을 버리지 않았어요. 자매는 어릴 때와 똑같은 장소에서 그림을 완성하도록 앉았죠. 비록 그때 그 순간 그들의 부모님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림 속에서나마 영원한 가족으로 존재해오고 있어요. 이런 이유로 이 그림은 굉장히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시선을 그림에 둔 채로 말했다. 그는 그녀의 옆에 서서 그림을 바라보았다. 중앙에 엘사가 고급스러운 의자에 앉아있었고, 그녀 대각선으로 안나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팔짱을 낀 채로 서 있었다. 어머니는 오른손으로 엘사의 왼손을 잡고 있었고, 아버지는 불편해 보이는 자세로 서 있었다. 그림 속에 있는 그들은 굉장히 행복해보였고 친해보였다. 가족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그림이었다. 그림에 열중한 사이 아델은 다른 그림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는 옆에 있는 책상에 책을 놓고 과감하게 한 번에 여러 장을 넘겼다. 단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궁금한 일이 없었다. 그는 이미 자매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소설가 특유의 풍부한 상상력만으로 대부분의 사건들을 머릿속에서 구성한 덕이다. 그가 찾는 것은 자매가 만난 그 날의 편지였다. 엘사가 쓴 그날의 기록만 본다면 마음이 후련해질 것이다. 이윽고 그는 편지를 찾았다. 




아렌델의 천사 안나에게


 이 날은 우리가 앞으로도 영원히 기념해야 할 날이다. 기나 긴 외면도 결국 우리를 갈라놓지 못했구나. 기쁨의 나날들이 앞으로 계속되겠지. 

 아침부터 나는 분주했다. 자주 사용하지 않던 문을 사용한다는 건 예상한 것보다도 이질적인 일이더구나. 이 날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성 안의 모든 것들이 분주했다. 사람뿐 아니라, 모든 사물마저도 분주했지. 내 대관식을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감동적인 물결과 같았다. 나를 위해 와 준 사람들에게 감사했지.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본 아침햇살은 평소보다 유난히 빛나더구나. 아름다운 풍경은 그 자체만으로 감동을 준다.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아직 마법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내 방에서 촛대와 보석함으로 대관식 예행연습을 했지. 역시나, 서서히 얼어붙더구나. 그때부터 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대관식을 망쳐버리면 어떻게 하지?’등의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다. 시간은 덧없이 흘러갔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그저 대관식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에 그리며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디선가 네 노랫소리가 들리더구나. 네가 얼마만큼 흥분해있는지는 목소리만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시간이 되자 나는 성의 문을 열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성 안으로 들어왔지. 설렘도 있었겠지,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도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 타인에 대한 두려움과, 마법에 대한 두려움과, 모든 변수에 대한 두려움. 대관식 절차상 너는 내 옆에 서 있어야 했다. 너는 어떻게 할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난 차라리 모든 게 정해져 있다면 좋을 텐데, 라고 생각했다.

 대관식이 시작되고 내 가슴은 점점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대주교의 왕관 수여식은 정말 숨 막히는 순간이었다. 따뜻하고 기분 좋은 공기가 느껴졌지만 나는 그걸 피부로 느낄 틈도 없었다. 위에선 성악가들이 나를 축복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지. 뒤에선 모든 사람들이 나를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아무 문제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왕의 책임과 보살핌보다도 마법을 들키지 않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땋아 올린 내 머리에 대주교가 왕관을 수여하는 순간, 나는 그 왕관의 무게가 너무도 무거웠다. 앞으로 나는 얼마나 힘들어야 할까. 너를 외면해야 할까.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을 대해야겠지. 왕관의 무게는 사실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 순간 느껴지는 무게는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것이었다. 다음 절차는 성물을 양손에 쥐는 것이었다. 장갑을 낀 채로 그것을 들고 싶었으나, 대주교가 내게 눈치를 주더구나. 깜짝 놀랐다. 장갑을 벗는 게 두려워 일부러 천천히 벗었다. 내 장갑과 이별하고 싶지 않았다. 과도하게 떨리는 손으로 성물을 집었을 때 마음속으로 얼마나 많이 마법이 나오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는지 모르겠다. 성물이 얼어가기 시작하는 게 눈에 보이자 나는 주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려놓아 장갑을 꼈다. 네가 봤을지 모르겠다. “아렌델의 엘사 여왕님!” 그 말이 처음으로 반갑게 들렸다. 그리고 이제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 

 “아렌델 왕국의 엘사 여왕님!” 연회장의 분위기가 달아오를 때 즈음 너와 내가 나왔지. “아렌델 왕국의 안나 공주님!” 카이가 너를 불렀을 때, 너는 신난 어린아이처럼 뛰어 들어오더구나. 절차조차 잊은 채로. 어릴 때와 다름없는 네 모습을 보곤 얼마나 반가웠는지. 내 옆에 서는 게 어색하게 느껴졌니? 물론 그랬겠지. 나는 더 이상 머릿속에 두려움이란 단어를 깊이 두지 않았다. 네 어색함을 풀어주고 싶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의 너를 그냥 둘 수 없었지. “안녕.”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수백, 수천 번. 아니, 센다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수없이 되뇌었던 그 단어. 그 단어를 입 밖에 내자 나는 가슴속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던 가시 하나가 빠진 기분이었다. 13년 만에 처음으로 너에게 말을 건다는 게 얼마나 설레는 일이었을까. “나한테 말한 거야?” 당황하며 묻는 너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엄, 안녕.” 정말 어색했지. 마치 처음 보는 사람들의 대화 같았다. “정말 귀엽구나.” 나는 너에게 더 많은 단어와 문장들을 말하고 싶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수많은 단어와 문장들 중 고민 끝에 선택한 단어였다. “고마워, 언니가 더 빵빵해.” 네 단어선택이 어찌나 귀엽던지.(솔직히 당황했단다.) “아니, 살 말고, 언니는 살 안 쪘잖아. 훨씬 예쁘단 뜻이야.” 곧바로 정정하는 네 모습을 보고 나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고마워.” 좀 더 친근한 단어는 없을까하고 생각해봤지만, 고마워 외엔 없더구나. 우리 사이에 더 이상 침묵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대화가 끊기는 걸 원하지 않았지. “그러니까, 파티가 이런 거였었구나.”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 했던 파티를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 때와 비슷한 분위기였으니까. “생각보다 따뜻하네.” 너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을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 “이 근사한 냄새는 뭐지?” 그 때 우리의 코끝을 달콤한 향이 스쳤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우린 거의 똑같은 행동을 했지. 어릴 때와 다름없이. 마치 그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어. “음~ 초콜릿.” 우리 둘의 단어가 섞여서 귀에 들리는 순간이 얼마나 마법 같던지. 간만에 듣는 너의 웃음소리는 언제나처럼 깨끗하더구나. “여왕 폐하, 위즐 타운의 공작님이십니다.” 그 때 우리에게 공작이 찾아왔지. 간만에 누리는 둘만의 대화를 방해하는 장애물이라고 생각했다. “위즐튼! 저는 위즐튼의 공작입니다. 가장 가까운 무역 파트너로서 여왕님의 첫 번째 춤 상대는 당연히 제가 돼야죠.” 공작이 춤을 추는데 어찌나 웃기던지. 기억하니? 머리가 벗겨졌을 땐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지. “어, 고맙지만 전 춤을 안 춰요. 대신 제 동생은 추죠.” 나는 차마 공작과 춤을 출 수 없었다.(그 땐 정말 미안했다!) 위즐튼이 너의 팔을 잡아끌고 연회장으로 가는 뒷모습도 꽤 웃긴 그림이었지. “미안해.” 너의 뒷모습에 대고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다. 그 때 나는 장난기도 발동한 것 같았다. 이런 기분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계속 너를 지켜보고 있는 와중에 공작이 네 허리를 잡아 뒤로 보내더구나. 그 때 너의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와, 활발하신 분이네.” 춤을 마치고 돌아온 네게 그 말 외엔 할 수 없었다. “키높이 구두를 신고도 잘 추셔.” 네 얼굴에선 진심으로 행복하다는 게 묻어나오더구나. “너 괜찮은 거니?” 네 발의 안부를 물었지. “나 오늘, 정말로 즐거워. 늘 이런 분위기에서 살면 좋겠어.” 아, 너의 모습을 보고 그 누가 거절할 수 있었을까. 내 머릿속에서 춤추는 너의 문장들은 모두 잊지 못할 만큼 인상 깊었다. “나도 그래.” 말을 마친 직후, 나는 아침부터 시작된 두려움이 다시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내가 너를 외면해야만 했던 이유.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해야만 했던 이유. 가슴이 내려앉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안 돼.” 내 목소리가 그렇게 단호하게 들릴 줄은 몰랐다. 나도 깜짝 놀랐다. “왜 안 되는 건데? 우리가 둘이…….” “그냥 안 된대도.” 나도 슬펐어. 정말로 슬펐어. 너에게 뒷모습을 보여야만 하는 상황이 얼마나 끔찍하게 느껴지던지. 너의 말을 그렇게 끊고 몇 번을 후회했는지 모르겠다. “나 잠깐 실례할게.” 너를 잡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럴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또 다시 우린 예전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걸까. 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을 때 나는 한 번 더 가슴에 충격을 받았다. 네가 이렇게 작았던가, 왜 진작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나는 너의 뒷모습에서 곧바로 시선을 돌려 바닥을 쳐다 볼 뿐이었다. 무수한 생각의 파도가 나를 덮쳐왔다. 피할 수 없었고 외면할 수도 없었다. 내 안에 부는 바람이 얼마나 소름끼치도록 차가운가. 너는 상상할 수 있겠니.

 “언니! 아니 여왕폐하. 또 전데요. 어, 서던 제도에서 오신 한스 왕자님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네가 그를 데리고 왔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벌써 남자를 만난다니. 대견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남자가 어떨지 몰라 걱정스럽기도 했다. “여왕 폐하. 저희 두 사람을, 축복해 주세요. 우리 결혼할 겁니다.” 또 한 번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결혼 한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니. 한편으론 네가 그동안 얼마나 사랑을 갈망했는지 그 크기가 아른거렸다. 사랑받아야 할 시기에 사랑 대신 외면만을 받아온 네가 얼마나 안으로 상처받았을까. 안타까우면서도 나는 네 미래가 걱정스러웠다. 너를 사랑해줄 사람을 찾는 것은 분명 중요한 일이지만, 이렇게 빠르게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과정이다. “뭐, 결혼을 해?” 나는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한 번 더 물었지. “그래!”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순간 나는 가벼운 현기증을 느꼈다. “어, 미안하지만 좀 헷갈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아직 구체적으로 얘기는 하지 못했지만, 며칠 준비하면 할 수 있을 거야. 스프랑 고기랑 아이스크림도 먹을 거고. 잠깐, 그냥 여기서 살래요?” “여기서?” 네 이기적인 선택에 거듭 놀랐다. 물론 그것을 마냥 이기적이라고 부를 순 없겠지. “네, 그야 물론이죠.” 한스라고 하는 남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루 만에 결혼하는 게 정상적이라고 판단하는 남자였으니까. 그가 의심스럽더구나. “오, 열두 왕자들을 모두 초청해서 여기 함께 머물라고 해요.” 나는 네 입에서 나오는 단어들을 처음으로 막고 싶었다. “잠깐, 잠깐, 진정 좀 해. 누구의 형제도 여기 머무를 수 없어. 결혼식 같은 것도 없고.” 네 실망한 표정을 애써 무시했다. “아니, 뭐야?” “나와 얘기 좀 할래? 단 둘이.” 너에게 알려주고 싶은 게 산더미 같았다. “싫어. 만약 할 말이 있다면 우리 둘 다 있는데서 말 해.” 너의 태도를 누가 말릴 수 있었을까. 나는 그저 한스라는 남자와 너를 한시라도 빨리 떼어놓고 싶을 따름이었다. “좋아. 방금 만난 사람과는 결혼 못 해.” 내가 아니라 부모님이었어도 이 결혼을 진행하진 않으셨을 게 분명했지. “진정한 사랑이라면 할 수 있어.” 네가 얼마나 확신에 찬 표정으로 그 문장을 말하던지. “네가 진정한 사랑에 대해서 알아?” 나는 네게 하고 싶은 말들로 생각이 가득 찼다. “언니 보다는 나아. 언니는 사람들 외면하면서 살았잖아.” 너의 입에서 나온 문장은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너의 순수하고 어린 생각들이 나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 되었는지. 너의 문장이 나를 공격하는 그 순간 아래로 추락하는 기분이 들었다. 더 이상 갈등이 계속되었다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축복해 달라고 했는데, 내 대답은 ‘싫어’야. 그럼, 이만 실례해요.” “국왕 폐하, 잠깐만 저한테…….” 한스의 목소리는 듣기조차 싫었다. 대체 그가 뭐라고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던 거니. “아니요, 싫어요. 그리고 여길 떠나도록 해요. 파티 끝났으니까 성문을 닫아라.” 나는 감정이 불안정한 것을 느꼈다. 더 이상 이 기분을 지속했다간 정말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았다. 네가 나였다면 너에게 결혼을 허락 했을까. “언니 안 돼! 제발 잠깐만.” 이번엔 가슴이 아플 만큼 놀랐다. 네가 내 장갑을 가져갔을 때 아침부터 애써 외면하던 두려움이 올라오더구나. “내 장갑 이리 내!” 머릿속엔 ‘감춰야 해. 느끼지 마.’라는 생각이 미친 듯이 소용돌이 쳤다. “언니, 제발, 제발! 나 더 이상은 이렇게 못살겠어.” 네가 나에게 슬픈 눈으로 애원한다고 해도, 안 됐다. 건들면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너의 눈망울이 안타까웠다.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지. 우선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떠나.” 내 생각을 거치지 않은 말은 이미 내 입을 떠났고 너를 공격했다. 실수했다는 섬뜩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냥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내가 언니한테 뭘 어쨌다고?” 네가 나한테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만해 안나.” 더 이상 너의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나를 공격하길 원하지 않았다. “싫어, 왜, 왜 날 외면했던 거야? 왜 세상과 등지고 살았냐고? 대체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건데!” 너! 그래 바로 너 때문이었다. 너를 사랑했으니까. 그게 다였다. 13년 동안 나는 내 삶을 희생하며 살아왔어. 모든 타인을 사귈 기회와, 모든 즐거울 수 있는 기회와, 모든 밝은 삶을 포기하며 오로지 내 삶은 너를 위해 향하고 있었다고. 근데 너는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그만 하랬잖아!” 손에서 떠나간 마법은 13년 전과 똑같이 소름 돋는 끔찍한 느낌을 선사했다. 내 평생 동안 가장 우려하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모든 시선이 두려웠다. “두려움은 공주님의 적이 될 겁니다.” 트롤의 예언이 떠올랐다. 그 때의 나는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 “언니…….” 네 입을 떠난 목소리엔 걱정이 섞여있었다. 나는 도망가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오랫동안 외면하고 있던 감각이었다. 참을 수 없을 정도의 무력감. 도망치고 싶었으나 광장엔 사람들이 가득 차 있더구나.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를 반기는 많은 낯선 사람들을 무시해야만 했다. 도망쳐야만 했다. “여왕 폐하, 괜찮으신 거예요?” 어느 여인이 내게 물었다. 괜찮을 리가 없었다. 나를 둘러싼 군중들은 사냥꾼과 같았다. 나는 두려움에 뒷걸음질 치며 분수에 손을 댔다. 내가 손 쓸 틈도 없이 분수는 빠르게 얼어갔다. “저기 있다! 잡아라!” 공작이 나에게 손가락질하며 호위병에게 지시했다. “제발, 내게 가까이 오지 마라. 제발 물러나!” 그리고 또 한 번 마법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손을 떠났다. 이젠 매번 그렇듯 슬픈 감정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다. 마법을 조절하지 못하는 상황이 닥쳐오자 눈앞이 깜깜했다. “괴물이야. 괴물이야!” 공작이 내게 소리치는 게 들렸다. 조절할 수 없는 마법에 나는 손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나에게서 멀어져 가더구나. 온 세상이 나에게서 멀어져 가려는 것 같았다. “엘사 언니!” 뒤에서 네 목소리가 들렸지만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마법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지 몰랐으니까. 차라리 이대로 영영 사라져버리는 게 나을 정도로 극심한 마음의 고통이었다. 막다른 길에서 나는 또 다시 두려움을 느꼈다. 다행히 내 발밑의 협곡이 얼어붙었다. “언니! 제발!” 너를 다치게 하고싶지 않았기에 더더욱 빨리 너에게서 멀어지고 싶었다. 협곡을 얼리며 나는 산으로, 네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그러나 네가 언젠가 올 수 있는 곳으로. 그렇게 너에게서 멀어졌다. 내 모든 책임의 무게와 사랑과 20년을 아렌델에 내려놓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슴이 탁 트이면서도 그 대부분을 슬픔이 휩쓸었다.

 하얀 눈 뒤덮인 산 위엔 발자국 하나 없었다. 온 세상이 내 슬픔을 위로하듯 눈을 내렸다. 애써 도착한 도피의 끝자락에서조차 나는 외로움을 느꼈다. 세상에 나 홀로 남은 듯한 기분이었다. 애를 썼지만 내안에 부는 바람과 거친 폭풍을 막을 수 없었다. 나는 대체 무엇을 바라 이 순간까지 압박 속에 살아왔을까. ‘마음 열지 마. 들키지 마. 착한 모습만 보여야 해.’ 내 인생의 모든 순간동안 나를 따라다닌 문장은 여전히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이지? 철저하게 숨겼는데 들켜버렸다.

 이젠 달라야만 한다. 나는 자유를 갈망하는 자유인이었다. 왕관을 내려놓고, 너에 대한 사랑을 내려놓으니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생각났다. 내가 생각하지 않고 있던 많은 것들. 누가 뭐라 해도. 심지어 폭풍 몰아쳐도 나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추위 따윈 처음부터 날 괴롭힌 적 없으니. 나는 나만의 성을 만들었다. 고립된 왕국 속에 홀로 서 있는 외딴 성. 누구도 찾아오지 않고, 누구도 상처 입히지 않는 오로지 나를 위한 공간. 외롭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 나는 태어나서 가장 큰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가장 큰 안정감을 느꼈다. 혼자 있는 성에서 생각이 많아졌다. 아렌델에 대한 생각, 부모님을 실망시켰다는 생각, 너에 대한 생각, 두고 온 것들에 대한 생각, 앞날에 대한 생각, 나는 이대로 끝나는가에 대한 생각. 나는 그대로 얼어붙어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모든 고통을 끝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런데 네가 왔다. 오지 않았으면 했지만, 얼마나 반가웠는지 이루 말할 수 없다. 네가 나를 위해 와준 것이다. 내가 얼마나 감동했는지 헤아릴 수 있겠니. 아래층에서 네가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지. 나를 향하는 그 단어엔 걱정과 사랑이 가득 차 있었다. “와, 엘사 언니. 정말…… 달라 보인다. 아주 새로워 보여. 그리고 여긴 진짜…… 대단하다.” 네 칭찬이 얼마나 기뻤는지. “고마워. 내게 이런 능력이 있을 줄은 몰랐어.” 내 마법이 다시 너를 즐겁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스스로가 대견했다. “이렇게 돼서 정말 미안해. 진작에 알았더라면…….” 나에게로 다가오는 너의 모습이 위태로웠다. 여전히 너를 안고 싶었으나 안으면 안 되는 그런 상황이었다. “아냐, 아냐. 이젠 괜찮아. 넌 사과할 필요 없어. 하지만 이제 그만 가 봐. 부탁이야.” “나 방금 도착했잖아.” 한 걸음씩 내게 다가오는 네 모습이 두려웠다. 전처럼 너를 위험에 처하게 할 까봐. “넌 아렌델에 있어야 돼.” 한시라도 빨리 너를 돌려보내고 싶었다. “언니도 그래야 돼.” 네 타고난 천성은 바뀌지 않았더구나. “아냐, 안나. 난 여기가 어울려. 혼자서. 이곳에 있는 게 맞아. 아무도 다칠 수 없는 곳에.” 그것이 내 생각의 종결이었다. “사실, 그 얘기 말인데…….” 네가 말하는 중에 뭔가가 들어왔지. “잠깐. 저건 또 뭐지?” 올라프였다. 우리가 어릴 때 함께 만들고 놀던 그 올라프. “안녕! 난 올라프고 끌어안기를 좋아해.” 순간 우리의 13년 전 어릴 때 모습이 떠올랐다. “올라프? 네가 살아 움직여?” 올라프가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본 순간 가슴이 꿈틀하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가 어렸을 때 만들던 거랑 똑같아.” 나는 거기서 가능성을 봤다. 희망에 대한 가능성을……. “그래.” “언니, 우리 참 친했는데. 다시 그렇게 될 수 있을 거야.” 네 말이 맞았다. 사실 언제든 우리는 친해질 수 있었지 않았니. 내가 그러지 못했을 뿐이지. 나는 13년 전의 그 일이 떠올랐다. 손을 떠나간 마법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떠나는 사건. 그런 일이 다시는 반복돼선 안됐다. “아냐. 그건 안 돼. 잘 가라 안나.” 너를 또 다시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지. “언니 잠깐.” “안 돼. 난 널 보호하려고 이러는 거야.” 네가 옹알이를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너를 보호하기로 마음먹었다. “언니가 날 보호할 필요 없어. 난 두렵지 않아. 제발 다신 외면하지 말아줘! 제발 다신 문 닫지 마. 이젠 나랑 거릴 두려 하지 마.”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를 이해한다는 너의 말에 흔들렸다. 함께 이 산을 내려가자는 너의 말과 두려움을 떨쳐보라는 격려 그리고 함께해 준다는 너의 문장은 힘을 가졌다. 그러나 넌 가야했지. 문을 열고 매일같이 쏟아지는 아름다운 햇빛을 즐겨야했다. 너의 뜻은 정말로 잘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혼자인 게 차라리 마음 편했다. 너는 나를 멀리 해야만 안전하지 않겠니. 아렌델이 눈에 묻혔다는 너의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내가 모든 세상을 영원한 겨울로 만들었다니. 내가 녹이면 된다는 너의 말이 절망적이었다. 나는 녹이는 법을 몰랐으니까. 너는 나를 끊임없이 격려했다. 용기가 났지만, 도저히 어떻게 하는지 몰랐다. 내안의 폭풍을 멈출 수 없었다. 더 악화되고 말거라는 두려움. 평생 동안 계속되었던 마법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그리고 또 다시 의도하지 않은 마법이 내 몸에서 떠나갔다. 이번에야말로 내 마법은 너에게 큰 위협이 됐지. 네가 쓰러진 모습을 보고 일이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슬픔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안나!” 네가 나중에 소개해준 크리스토프라는 인물이 뛰어 들어와서 너를 부축했을 땐 당황했지. 한스는 어떻게 하고? 네 결혼에 대한 걱정과 그 순간 너의 몸에 대한 걱정이 충돌했다. 누구든 상관없었다. 너희는 돌아갈 필요가 있었으니까. 너는 내 힘을 멈출 힘이 없었고, 겨울을 멈추게 할 힘이 없었다. “난 언닐 두고 혼자 가지 않아요.” 완강한 태도는 내 마음을 심란하게 했지. “아니, 가게 될 걸.” 나는 처음으로 내 의지로 마법을 너에게 썼다. 너를 내쫓겠다는 의도로. 내 손에서 만들어진 눈 괴물이 성을 지켰다. 네가 가고 나서 한동안 나는 비탄에 잠겼다. 네가 찾아왔음에도 내쳐야 하는 운명. 왜 많고 많은 감정 중 매번 슬픔만이 찾아오는 걸까.

 정신 차려야 해. 참아야만 해. ‘못 느낀다…… 못 느낀다…… 못 느낀다, 못 느낀다!’ 얼음은 내 기분에 맞춰서 바뀌는 것 같더구나. 마법을 쓰게 되면서 안 사실이지. 그 즈음 얼음 색은 위협적인 붉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문제가 생겼음을 깨달았지. 성은 안쪽을 향해 날카로운 얼음을 나타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냥 서 있었다. 

 얼마 뒤 밖이 소란스러워서 나가보니 아렌델의 병사들과 눈 괴물이 싸우고 있더구나.(맙소사, 너는 한스에게 군 지휘권을 위임했던 거니?) 위즐튼 공작의 호위병 두 명과 눈이 마주쳤다. 도망갈 곳은 성 뿐이었다. 그들이 내게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내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을까 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이 내게 살의를 가지고 다가온다는 건 태어나서 처음 겪는 상황이었다. 그들 중 하나가 내게 석궁을 겨눴어. “안 돼, 제발…….” 나는 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가길 바랐지. 아무도 다치는 걸 원하지 않았어. 난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괴물이 아니니까.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화살은 석궁을 떠나갔고 내게로 향했다.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막았다. 눈을 뜨니 화살은 코앞까지 와 있었다. 그제야 나는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가까이 오지 마!” 그들을 제압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그들과 한동안 대치했다. 위험한 상황이었지. 그들 중 한 명이 먼저 석궁을 겨눴고, 나는 그를 제압할 생각으로 얼음으로 벽에 꽂았다.(꿰뚫은 게 아니라.) 나머지 한 명은 발코니로 밀었다. 어느새 나는 그들처럼 살의를 가지고 있더구나. 그런 나를 막아준 건 다름 아닌 한스였다. “엘사 여왕님! 그러시면 백성들이 괴물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제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대체 왜 이 상황까지 왔을까. 나는 왜 이런 상황을 겪어야만 할까. 샹들리에가 떨어졌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눈을 뜨니 한기가 느껴졌다. 나는 감옥에 있었다. 내가 왜 감옥에 있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손엔 철로 된 수갑까지 채워져 있었다. 너무하단 생각이 들었다. 몸을 최대한 뻗어 창밖을 보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온통 하얀 세상이었다. 이 사태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한스가 감옥으로 들어왔다. “왜 날 여기로 데려왔죠?” 답답한 마음에 물었다. “돌아가시게 놔 둘 순 없었어요.” 한스는 생각보다 착한 사람 같더구나. “난 아렌델을 위험에 빠트렸어요. 안나를 불러줘요.” 드디어 너에게 설명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안나 공주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네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창밖을 바라봤다. 네가 금방이라도 올 것 같았다. “제발 이 추운 겨울을 멈추게 해, 여름이 다시 오게 해 주세요.” 나도 여름으로 되돌리고 싶었다. 왜 아무도 그걸 몰라줄까. 내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었는데. “모르겠어요? 난 못 해요.” 나도 답답했다. “날 돌아가게 내버려 두라고 해 주세요.” 이 순간 나를 놓아줄 수 있는 건 네가 아니라 한스라는 사실이 싫었다.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 한스에게 내 운명을 걸어야만 했을까? 아렌델의 운명을? 아니었다. 나는 스스로 이 상황을 헤쳐 나갈 필요가 있었다. 수갑은 얼어붙기 시작했지.

 감옥에서 빠져나온 나는 멀리 떠나고 싶었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아무도 찾아올 수 없는 먼 곳으로. 머나먼 고독한 왕국에서 살고 싶었다. 휘몰아치는 눈 때문에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었다.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멀리 달아나고자 할 뿐이었다. 절망적이었다. 마법 때문에 내가 가진 모든 정신을 포기했는데, 이젠 물질적인 것마저도 포기해야 한다니. 앞이 보이지 않아 답답했다. 눈마저도 내 앞길을 가로막는 것 같았다. 내 뒤를 한스가 추적해왔다. 모든 것이 귀찮았다. “엘사! 당신은 이제 달아날 수 없어!” 한스의 말은 눈을 뚫고 곧바로 내 발목을 잡았다. “제발 내 동생을 부탁해.” 한스, 네가 진정한 사랑이라던 한스라면 너를 맡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전히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그래도 믿을만한 인물이라고 판단했다. “당신 동생? 산에서 돌아왔는데, 몸이 얼음덩이 같았어. 당신이 심장을 얼게 했다던데.” 가슴이 뜨겁도록 아팠다. “안 돼…….” 순간 나의 머릿속엔 너 뿐이었다. 어린 시절의 너, 착한 천성을 지닌 너, 천사 같은 너. 내가 가장 사랑하는 너. 부모님보다도 더 사랑하고자 했던 너. 닿고 싶었지만 평생 동안 닿지 못했던 너. 수많은 너의 행복한 모습들이 떠올랐다. “애를 썼지만 구하기엔 너무 늦었어. 피부는 얼음 같고, 머리는 하얗게 셌지.” 그 뒤에 무슨 말이 이어질지 몰랐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스가 입을 열기까지 몇 년이 걸린 것처럼 느껴졌다. “당신 여동생은 죽었어! 당신 때문에.” 정신이 아찔했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현기증에 두 다리로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었다. 가슴이 너무 뜨거워서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아냐…….”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인정할 수 없었다. 우리의 관계는 단순한 자매보다도 더 복잡한 관계니까. 나의 인생은 네가 존재함으로써 완성될 수 있으니까. 내 지난날의 모든 희생과 사랑은 무얼 위한 것이었던가. 인정하면 안 될 것 같았다. 현기증이 파도처럼 크기를 더하며 밀려왔다. 눈을 뜨고 있어도 앞이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모두 멈춰 차라리 세상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고, 어떤 것도 들리지 않았다. 슬픔이 내 정신보다 더 높은 곳에 있었다. “안 돼!” 모든 슬픔을 뚫고 네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네 입에서 나온 말은 곧 얼어붙고 말았다. 네 얼어붙은 손을 보고 나는 그대로 쓰러질 뻔했다. “안나! 안 돼…….” 이미 떠나고 없는 너에게 내가 그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하염없이 얼어붙은 너를 바라보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너의 얼어붙은 얼굴을 어루만지며, 네가 금방이라도 살아나길 기도했다. 덧없는 슬픔이었다. 모든 것이 무의미한 순간이었다. 금방이라도 너의 입에서 “언니”소리가 나올 것만 같았다. 네가 말했던 “언니, 눈사람”을 다시 듣고 싶었다. 눈앞이 흐려서 네 얼굴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네가 완전히 얼어붙고서야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너를 안을 수 있었다. 사랑이란 게 얼마나 허무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양손으로 안아본 너는, 내가 평소에 상상하던 것보다 소름끼치도록 차갑더구나.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적막. 나와 너를 제외하고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멈췄다. 내 슬픔만이 그 거대한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너를 지키지 못했다는 슬픔. 방향을 잃은 사랑만이 남아있었다.

 너의 몸이 다시 녹았을 때, 나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너의 따뜻한 온기. “안나.” 나는 네가 다시 따뜻한 피를 가졌다는 것도 잊은 채로 너를 껴안았다. 내가 상상하던 것 보다 따뜻했다. 차가운 내 몸이 녹을 정도로 네 몸은 따뜻했다. 이제야 나는 너를 용기 있게 똑바로 안을 수 있다. 너의 몸에서 나는 향기는 여전히 좋았다. “오, 엘사 언니.” 네 입에서 나온 단어는 평소처럼 사랑이 가득했다. “날 위해서 널 희생한 거였니?” “사랑하니까.” 너의 그 말엔 애정이 가득 담겨있었다. 나는 가슴이 아팠다. 너의 입에서 나온 그 단어가 왜 그토록 열정적이고 슬프게 들렸을까. 나또한 너의 사랑을 그동안 갈망해온 것이다. “사랑이 녹일 것이다.” 진정한 사랑이 너의 얼음 심장을 녹였다. 진정한 사랑. “사랑! 바로 그거야. 사랑!” 얼음이 녹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마법을 조절하는 법을 알았다. 20년 만에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해가며 나는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렌델에 여름이 돌아왔고 우리의 앞날엔 봄만이 펼쳐져 있었다. “언니가 해낼 줄 알았어.” 너의 말은 언제나 맞구나. “올라프, 기다려봐 꼬마야.” 녹아가는 올라프를 위해 눈구름도 만들어줬다. 너와 좋은 친구가 되었더구나. 그리고 한스. 그를 네가 처리하러 다가갔을 때 어찌나 걱정스럽던지. 난 바로 마법을 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안나? 엘사가 심장을 얼게 했잖아.” “여기서 얼어붙은 심장은 당신뿐이야.” 네 주먹이 한스의 얼굴에 그대로 들어갔다. 어찌나 통쾌하던지! 너는 이제 알았으리라 생각한다. 방금 만난 남자와 왜 결혼을 해선 안 되는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포옹. 너와의 포옹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포옹엔 서로를 향한 애정이 가득 담겨있었다. 너의 체온을 이제야 온전히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감격스러웠다. 이대로 우리는 행복만 가득하길. 오후에 나는 너를 데리고 피아노가 있는 방으로 갔다. 거기서 네게 꼭 들려주고 싶은 곡이 있었다. 어머니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던 곡을 내가 바꿨지. 어머니께서 지은 이름은 ‘공주님들에게’였지만 음이 우울해서 내가 밝은 느낌으로 바꿨다. 내가 지은 이름은 ‘자매의 시간’ 나중에 또 이런 기회가 찾아오거든 네게 들려주고 싶다. 그 다음에 난 아렌델 사람들을 위하여 성에 스케이트장을 만들었다. “성문이 열려있는 게 좋아.” 얼마 전 나는 너에게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없었지만 이젠 달라. “이제 다시는 성문 안 닫을 거야.” 다시는 닫고 싶지 않다. “오, 언니 정말 아름다워 근데 난 스케이트 못타.” 네게 스케이트를 탈 수 있도록 신발에 날을 만들어줬지. 네 말을 듣고 장난기가 발동했다. “해봐, 넌 할 수 있어.” 내게 의지한 채 스케이트를 타는 너의 모습을 내가 어찌나 바라고 바랐는지! 그 모습이 현실화 됐을 때의 감동은 얼마나 거대한지!

 나는 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내 인생 모두, 나는 너에게로 가는 삶을 살고 있었다.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이제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를 떠나지 않기를.


 동생을 사랑하는 언니가 다시 만난 날 모두를 기록하며


 p.s. 크리스토프는 순박하고 믿을 수 있는 청년이더구나. 이번에야 말로 너를 믿어. 사랑해.




 모든 이야기가 끝난 기분이었다. 페리는 기분이 좋았다. 아델이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이제 이야기가 완성되었나요?”


 그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그를 이끌어 한 그림 앞으로 갔다. 굉장히 큰 그림이었다. 그는 그림이 어디선가 본 적 있다고 생각했다. 기억을 더듬고 있을 때 그녀가 말했다.


 “이 그림은 엘사여왕이 대관식 날 성을 만들었을 때 근처를 지나던 화가가 그렸어요. 그림이지만 사진처럼 굉장히 정교하고 세세하죠. 한번 보시겠어요? 그리고 이 산에서 엘사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느끼실 수 있을까요?”


 그림은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배경은 밤인 것 같았다. 그림에선 웅장함이 느껴졌지만 그 뿐이었다. 고요했다. 눈 덮인 산은 고독했다. 그림에선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적막이 느껴졌다. 이런 곳에서 엘사는 살아가려 했던 것이다. 끝없는 외로움 속에서. 자매의 결말이 행복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시선을 옆으로 돌려 다른 그림을 봤다. 그가 처음 기차에서 가고가 난 뒤 본 성의 모습과 비슷했다. 그림 속의 아렌델은 찬란한 빛을 반사하며 낙원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는 뭔가를 놓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곧 그것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책이 너무도 두꺼웠던 것이다. 이후에 뭔가 이야기가 더 있다고 생각한 그가 물었다.


 “이야기는 대관식 이후로 끝인가요?”


 그녀가 이후의 이야기는 괜찮다고 답했다. 그는 문득 호기심을 느껴 다음 편지를 찾았다.




친애하는 나의 천사, 그리고 진실한 구원자인 내 하나뿐인 여동생 안나에게.


 푸른 달빛이 오늘따라 유난히 찬란하게 느껴지는구나. 목조 가구의 서늘한 기운이 내 몸을 감싸는 게 기분 좋다. 열린 창문에서 불어오는 늦가을의 시원한 바람은 곧 겨울이 온다는 것을 알리듯 내 머리카락에서 머무는구나.

 지금 이 시각 많은 일들이 떠오른다. 너와 함께 성 안에서 장난치던 유년, 숨바꼭질 도중 나를 찾지 못해 엉엉 울던 너의 모습, 그리고 운명의 날…… 너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조금 원망했다. 네가 그 때 내 말만 들었어도, 조금만 조심했었어도 우리의 관계는 달라졌을 텐데 하고 아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언제나 이런 생각 뒤엔 결국 내 실수라는 생각이 따라오더구나.

 안나야, 바로 지금 또 다른 생각이 드는구나. 어쩌면 그 날은 우리 둘에게 저주스러운 날이 아니라, 축복의 날은 아니었을까? 만약 그 때 안나 네가 마법으로 다치지 않았다면, 커져가는 마법을 통제할 필요를 느꼈을까? 어쩌면 더 큰 위험이 될 수도 있었겠지. 13년 동안의 단절은 여전히 아쉽고 슬프다. 그러나 나는 그 시간동안 너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그 시간만큼 너를 사랑하는 마음이 눈덩이처럼 하염없이 불어났다. 너의 인내에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한다. 

 최근 이런 생각들을 자주 한다. 작은 우연들이 모여 결국엔 우리 삶을 이루니, 이 세상엔 우연이 없고 필연만이 존재한다고. 만약 그 때 내가 미끄러지지 않았다면 13년 동안의 단절은 없었겠지만, 만약 그랬더라면 우리의 애정이 이토록 깊을 수 있었을까. 내가 대관식에서 도망치고 얼음성에 있을 때 네가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또 내 마법을 통제하지 못해 너의 심장을 얼게 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아렌델은 한스의 손에 끝났을지도 모르지. 조금은 안 좋은 이야기지만, 지금까지 돌이켜보면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은 결국 지금의 나와 우리를 위한 필연이 아니었을까.

 고맙고도 고마운 안나야.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여동생 안나야. 오늘 편지는 절대 다른 뜻이 있어서 쓴 것이 아니라, 대관식 때의 고마움을 미처 말하지 못한 것 같아 쓴 것이다. 너의 진실한 사랑은 비단 아렌델만이 아니라 우리 둘에게 남아있던 벽마저도 녹였다. 앞으로도 나는 네가 준 사랑의 몇 배를 보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우리 어릴 때 부르던 노래 기억나니? 그 노랫말 중에 여행 가고 싶다는 말이 있었지. 너는 언제나 여행 가고 싶어 안달이었고. 곧 겨울이 다가오는데, 올해엔 크리스토프와 함께 남쪽으로 떠나보는 건 어떠니. 그럼 이만 펜을 놓으마. 귀엽고 사랑스러운 내 하나뿐인 여동생아!


 바보같은 여동생을 사랑하는 바보 같은 언니, 엘사가


 p.s. 기침 때문에 편지 쓰기가 힘들구나. 안나 너도 감기 조심하길 바라!




 다른 편지와는 달리 한 결 부드러운 말투였다. 그들은 아마 어색함을 극복한 것 같았다. 그는 결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아델이 그에게 샤프란 향이 나는 차를 건넸다. 한국에 돌아가면, 이 향기가 굉장히 그리울 것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며 그는 머릿속을 정리했다. 성에 도착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처럼 느껴졌는데, 태양은 여전히 밝았다. 그는 차를 마시며 자매의 이야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곧 아까 그 화가의 그림을 어디서 봤는지 떠올렸다. 그가 노르웨이에 처음 도착한 날, 향수병이라고 생각했던 그 꿈이었다. 거대한 산. 그가 그림을 다시 한 번 봤다. 꿈에서 본 그 산이 맞았다. ‘어쩌면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운명 아니었을까.’ 그가 생각했다. 따뜻한 공기와 뜨거운 차가 만나 몸의 힘이 점점 풀렸다. 몸이 나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그와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의자에 양 손을 포개어 무릎에 두고 앉아있었다. 그는 의지와는 반대로 점점 멀어져 가는 의식을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잠들기 전 뭔가를 물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가 간신히 입을 열었지만 그녀는 말이 없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쥐어짜내며 물었다.


 “그 후 그들은 행복했습니까?”


 그의 눈이 감겼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어둠이 주위의 모든 빛을 삼켰다. 그는 처음과는 반대로 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편안함이 그를 감쌌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쉬움이 남았다.






 “네. 오래오래 행복했답니다.”



추천 비추천

2

고정닉 0

0

원본 첨부파일 1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연예인 안됐으면 어쩔 뻔, 누가 봐도 천상 연예인은? 운영자 24/06/17 - -
938794 Test Test(114.111) 14.03.30 9 0
938793 Test Test(114.111) 14.03.30 2 0
938792 Test Test(114.111) 14.03.30 2 0
938791 Test Test(114.111) 14.03.30 2 0
938790 Test Test(114.111) 14.03.30 2 0
938789 Test Test(114.111) 14.03.30 2 0
938788 Test Test(114.111) 14.03.30 2 0
938787 테스트 뭐임 엘사여왕님찬양하라(122.36) 14.03.30 3 0
938786 Test Test(114.111) 14.03.30 2 0
938785 Test Test(114.111) 14.03.30 5 0
938784 Test Test(114.111) 14.03.30 2 0
938783 Test Test(114.111) 14.03.30 1 0
938782 Test Test(114.111) 14.03.30 1 0
938781 Test Test(114.111) 14.03.30 9 0
938780 Test Test(114.111) 14.03.30 1 0
938779 Test Test(114.111) 14.03.30 5 0
938778 Test Test(114.111) 14.03.30 1 0
938777 Test Test(114.111) 14.03.30 7 0
938776 Test Test(114.111) 14.03.30 2 0
938775 Test Test(114.111) 14.03.30 7 0
938774 Test Test(114.111) 14.03.30 1 0
938773 Test Test(114.111) 14.03.30 3 0
938772 Test Test(114.111) 14.03.30 1 0
938771 Test Test(114.111) 14.03.30 2 0
938770 Test Test(114.111) 14.03.30 1 0
938769 Test Test(114.111) 14.03.30 1 0
938768 Test Test(114.111) 14.03.30 7 0
938767 Test Test(114.111) 14.03.30 1 0
938766 Test Test(114.111) 14.03.30 1 0
938765 Test Test(114.111) 14.03.30 1 0
938764 Test Test(114.111) 14.03.30 3 0
938763 Test Test(114.111) 14.03.30 1 0
938762 Test Test(114.111) 14.03.30 1 0
938761 Test Test(114.111) 14.03.30 1 0
938760 Test Test(114.111) 14.03.30 1 0
938759 Test Test(114.111) 14.03.30 9 0
938758 Test Test(114.111) 14.03.30 2 0
938757 Test Test(114.111) 14.03.30 2 0
938756 Test Test(114.111) 14.03.30 2 0
938755 Test Test(114.111) 14.03.30 2 0
938754 Test Test(114.111) 14.03.30 1 0
938753 Test Test(114.111) 14.03.30 1 0
938752 Test Test(114.111) 14.03.30 1 0
938751 Test 테스트(175.118) 14.03.30 6 0
938750 Test Test(114.111) 14.03.30 1 0
938749 Test Test(114.111) 14.03.30 2 0
938748 Test Test(114.111) 14.03.30 3 0
938747 Test Test(114.111) 14.03.30 1 0
938745 Test Test(114.111) 14.03.30 1 0
938746 Test Test(114.111) 14.03.30 1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