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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시릴 간 vs 볼코프 경기 내용 분석글
짤에 나온 프로필 보다 실제 키가 더 큰 두명 시릴 간 195 볼코프 205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레그킥을 차주는 볼코프 초반엔 볼코프 레그킥 조금 통하는 그림 사각으로 빠지면서 원투 꽂는 시릴가네 벽으로 몰리자 순간적으로 빠져나오는 가네 볼코프의 레그킥 타이밍에 카운터 펀치 꽂는 가네 여유부리면서 연타 날리는 가네 들어가다 가네 앞손에 카운터 맞는 볼코프 계속 되는 킥 압박 가네의 가드위를 때리는 볼코프 갑자기 스탠스 바꾸며 때리는 가네 안면 맞으면서 벽으로 계속 몰리는 볼코프 들어가다가 또 앞손에 카운터 볼코프 또 벽으로 몰리는 볼코프 가네 깜짝 날라차기 왼손으로 시야 가리면서 어퍼컷 적중 시키는 가네 또 다시 킥 압박 점점 스피드에서 밀리는 볼코프 빗나가는 플라잉 니킥 위협적인 카운터를 날린 볼코프 하지만 가드에 막혔다 가네의 앞손 잽에 계속 당하는 볼코프 앞손 잽 또 크게 맞는 볼코프 계속 되는 타격 공방 헤드무빙으로 볼코프 공격을 피하며 유효타 넣고 빠지는 가네 5라운드 막판에 손 내밀다가 실수로 써밍을 저지르는 가네 남은 40초에 별일 없이 흘러가다 끝 결과는 만장일치 가네 판정승 현재 시릴 간의 9월 프랑스 대회 상대가 안정해진 상황인데 알메이다 or 볼코프 vs 파블 승자 이 두가지가 가장 가능성 높다고 함 만약에 알메이다가 거절 당하면 시릴 간 vs 볼코프 2차전도 충분히 가능성 있을듯 2차전에서 둘의 타격전은 어떤 그림이 나올지 궁금하다
작성자 : ㅇㅇ고정닉
가미카제 전설을 남긴 몽골의 일본침공..JPG
고려를 정복한 몽골은 일본에 사신을 보내 원나라에 복종하고 조공을 바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유목민인 몽골인들이 바다를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알아챈 일본은 몽골의 요구에 코웃음을 친다. 원나라의 황제 쿠빌라이는 여섯 번에 걸쳐 일본에 사신을 파견했다. 그러나 일본이 계속해서 사신들을 모욕하고 박대해 돌려보내자 일본 정벌을 결행한다. 몽골은 고려에 대해 일본을 정벌하기 위한 준비를 독촉했고, 이에 고려에서는 장인 3만5천명을 동원해 900척의 배를 건조했다. 고려로서는 엄청난 재정부담이자 출혈이었다. 이 당시 일본을 공격하기 위한 병력은 몽골 및 북중국의 한족 혼성군이 2만5천명, 고려군 8천명, 키잡이 등 보조원 6천700명으로 이뤄졌으며 1274년 5월 14일 마산에서 출정했다. 이때 원의 도원수는 홀돈이었고, 고려군은 김방경이 지휘했다. 여·몽 연합군은 월등한 전력과 함께 철포와 화전 등의 신무기를 보유했다. 뿐만 아니라 활도 그 사정거리가 길었다. 먼저 연합군은 대마도를 점령해 대마도주를 죽인 후 규슈로 향했다. 하지만 대반격이 시작된다 전선 사령관 쇼니 가게스케는 시마즈 가문의 병사들과 함께 맹렬히 연합군에 항전했는데 결국 원나라의 좌부원수 유복형이 화살을 맞자 연합군은 함대로 철수한다. 그러나 바로 그날 밤 태풍을 만난 정벌군의 함대는 큰 타격을 받는다. 이때 정벌군 총 2만5천명 중 1만3천500명이 익사했고 고려군 5천300명 중 2천700명만이 겨우 살아 돌아왔으며 200여 척의 전함이 바위와 언덕에 부딪쳐 부서지고 침몰됐다. 2차 정벌 1차 일본 정벌에 실패한 몽골의 쿠빌라이 황제는 정동행성을 설치하고 일본을 재정벌하기 위한 준비를 서둘렀다. 결국 2차 정벌에서도 고려는 엄청난 부담을 안게 되었다. 1281년 남송을 멸망시킨 쿠빌라이는 결국 일본 2차 정벌을 결행한다. 그는 병력을 동로군과 강남군, 크게 두 개로 나눠 일본을 침공한다. 먼저 동로군을 몽골과 고려의 연합군 4만 명에 병선 900척으로 전면에 배치시키고, 강남군은 10만 명과 병선 3천500척으로 후위에서 돕게 한다. 이키섬을 1차적으로 정벌하고 시가노 섬으로 진격했지만 막부에서 미리 돌성을 세우고 대비했기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해 다시 이키섬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그 사이 쇼니 카게스케의 지휘 하에 오토모 가문, 시마즈 가문, 마츠우라 가문, 류조지 가문, 다카시 가문에 속한 1만의 일본군 병력이 이키 섬을 탈환했다. 결국 여몽 연합군은 히라도 섬으로 이동한다. 전선 사령관 쇼니 카게스케는 시마즈 가문의 병사들과 함께 하카타 만에서 맹렬히 연합군에 항전했는데 그 덕분에 여몽연합 강남군이 합류할 비슷한 시기에 일본 본토에서 6만의 대군을 모아 지원군으로 보낼수 있게 된다. 7월 말 드디어 강남군이 도착하지만 싸워보기도 전에 8월 15일 태풍이 북상하면서 강남군은 거의 다 익사하고 큰 타격을 입은 여·몽 연합군은 결국은 퇴각한다. 쿠빌라이 칸은 두 번에 걸친 원정이 모두 실패하고도 포기하지 않고 3차 원정을 계획하고 일본을 복속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계속되는 반란에 직면하는 바람에 추진에는 실패했고, 결국 1294년 80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의 죽음과 동시에 일본 원정은 완전히 중단되었다 - dc official App
작성자 : 환송대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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