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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대공자 5-6

다정독서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8.06.21 07:2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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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명륜전

장삼 호법 앞에서 차마 안아서 옮겨달라고 할 수 없어서 내처 걸었더니 다리가 뻣뻣했다. 나중 200미터 정도는 오른 쪽 다리를 질질 끌면서 걸었는데, 장무원이 그 꼴을 보더니 얼굴이 새파래져서 즉시 나를 들쳐 업었다. 장호법은 그런 나를 불쌍한 눈으로 쳐다봤는데, 무공을 상실한 이후로 동정의 눈을 받는데는 익숙해져서 아무렇지도 않았다.
명륜전은 거의 와 본 적이 없었는데, 밤이라 그런지 건물 자체가 좀 을씨년스러웠다. 전각의 형태가 내원의 것들과는 많이 달랐다. 우리가 들어가자 뛰어다니면서 이런저런 지시를 하고 있던 앵앵이가 날듯이 다가와서 꾸벅 인사를 건냈다.
“공자님 오신 거예요? 어디 아프신 건 아니시죠?”
“아직은 내원에서 여기까지 오는 게 무리라 무원의 신세를 졌다. 내 방은 어디냐?”
“예. 저 쪽입니다. 아! 장호법님도 오셨군요. 공자님 차를 준비할까요?”
“먼저, 수욕 준비를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나도 그렇고, 무원도 그렇고 땀을 많이 흘렸거든. 아예 장호법까지 씻을 수 있게 준비를 좀 해주렴.”
“음. 먼저 공자님 방에서 차를 드시고 계시면 그 사이에 수욕 준비를 하겠습니다. 다행히 이 곳 명륜전 근처에 온천이 나오는 곳이 있어서 뜨거운 물을 금방 쓸 수 있을 것 같으니 좀 기다려 주세요.”
“그래. 무원이 과자를 좋아하니, 그것도 넉넉히 내 오거라.”
“호호, 저렇게 헌앙한 장무사도 역시 달콤한 것을 좋아하는 군요.”
“객적은 소리는 장호법 앞에서. 안내 하거라.”

건실이의 말처럼 명륜전의 규모는 매우 컸다. 풍현각을 세 개쯤 합쳐놓은 크기 정도는 돼 보였다. 내 거처는 중앙 계단을 올라서 오른 쪽 끝 방이었는데, 방의 크기도 실내의 장식도 오히려 풍현각에 있을 때 보다 나았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여태 참고 있었던 듯, 장호법은 무원의 팔을 낚아챘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하다가 곧 피실피실 웃는 폼이 아무도 없으면 춤이라도 출 기세였다.
“어떻소. 장호법님. 무원의 경지가.”
“하하. 대공자님. 이거 정말 집이라도 팔아서 한 턱을 단단히 내야겠습니다. 고작 일류인 제가 아들 놈이 어느 경지에 다다랗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만, 하하 웃음이 멈추질 않는군요.”
“아버지. 이게 다 대공자님 덕분입니다. 오늘 대공자님께서 제게 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래. 그래. 하하. 공자님. 역시 용은 날개를 꺾여도 용이군요. 이 장 모, 크게 감탄했습니다. 무원은 물론이고, 이 못난 사람도 공자님의 한쪽 팔로 살겠습니다.”

장호법은 호탕했다. 앵앵이 가져온 용정차를 단숨에 들이키더니, 앵앵에게 수욕을 하고 나서 대취할 것이니, 술상을 준비해 달라는 명을 내렸던 것이다. 내게 조심스럽게 이유를 묻던 앵앵은 탈태환골을 한 장무원을 몇 번이고 들여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던 것이다. 뭔가 생각이 있는지 인중사이에 작게 주름이 졌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웃었는데, 그 사이 장무원은 아무도 모르게 과자 몇 개를 가지고 있던 유지봉투에 집어 넣다가 내게 걸렸다.
“무원! 그냥 더 달라고 하지. 사내가 그게 뭔가?”
“대공자님. 좀 부끄럽기도 하고. 너무 맛이 있어서.”
“앵앵아. 다른 과자도 좀 더 가져 오너라. 넉넉하게.”
“과자를 굽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지금은 별로 없습니다. 대공자님 야참에 쓸 것 밖에는…….”
“나야 이제 살도 좀 빼야 하고 하니. 장무사를 먼저 챙기거라. 앞으로는 너희들의 무공교두가 되실 분이니까.”
“예?”
“오일회 모임 때 무원이 세가의 기초심법을 가르칠 것이다. 내가 가르치려고 했었지만, 난 지금 능력이 안 되니 어쩔 수 없고. 무원이 들어왔으니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시킬 뿐이지.”

수욕준비가 끝났다고 해서 목욕탕으로 갔더니 목욕탕의 규모도 상당했다. 족히 열명은 한꺼번에 들어가서 씼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단지, 온천수가 있다고 해도 사람이 왔다갔다 하면서 물을 옮겨야 하는 것인지 큰 욕조를 채우느라 추헌을 비롯한 일꾼들의 어깨가 땀으로 젖어 있었다.
“추헌! 미안하네.”
“아닙니다. 공자님. 저희가 해야 할 일인뎁쇼.”
“그래도 미안해. 앵앵이에게 가서 내가 그러더라고 은자 한냥을 달라고 하게. 그걸로 여기 있는 사람들이랑 가서 술이나 한 잔 하게. 앞으로는 좀 더 편해질 걸세. 더는 윗분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야. 어여 나가게.”

연신 고개를 꾸벅이는 추헌을 보면서 장호법은 천천히 옷을 벗었다. 전설적인 일화의 흔적이 그의 등에 남아 있었다. 족히 두뼘은 되는 상처였다.
“아! 장호법님 이것이 그 전설의 상처입니까?”
“뭐 자랑할 일은 아니지요. 호위가 되어서 무공이 강하지 못해 주인을 위험에 빠뜨린 상처인데요. 이 녀석은 이런 상처를 몸에 남기지 말아야 할 텐데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제 몸을 희생한다는 것이야 말로 우리 세가의 자부심이었는데. 장호법님 같은 분이 계셔주셔서 그나마 세가가 버티고 있는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나저나 저 녀석이 걱정입니다. 풍파가 일 텐데 말이죠.”
“아버지 제가……. 왜요?”

역시 연륜이 있는 장호법은 무공만 세진 장무원과는 달리 세태를 파악할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무원을 두고서 쟁탈전이 일 것이다. 내가 가지기엔 무원의 무위와 가치는 너무 높아졌을 수도 있다. 20대 초반의 탈태환골을 거친 절정의 고수는 구파 일방과 오대세가를 통틀어도 셋도 많을 것이다.
“달라고 하면 줘야겠죠. 누구 한 사람의 고집으로 될 수 없는 문제니까요.”
“전 이 아이가 세상의 풍상한설에 몸을 던지게 될까 두렵습니다. 공자님을 이렇게 뵈니 분명 공자님께 더 배울 것이 있을 듯 합니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좀 있으면 사람들이 몰려올 것입니다. 일단 설득을 해야겠지요. 할아버지께서 오실 지도 모릅니다.”
“검신님이요?”
“그 분은 재능있는 젊은 무사를 세상에서 제일 아끼시는 분이시지요.”

수욕을 마치고, 앵앵이 차려준 저녁식사를 장씨 부자와 함께 먹고 있는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역시 온 건가? 하긴 오지 않을 리 없지. 장지 문이 열리면서 앵앵이 들어왔다.
“공자님. 남궁종 소가주와 창궁검단 여러분이 왔습니다. 그리고, 호법원주 남궁태상 장로님과 호법원 일단. 남궁태진 수석장로님과 제 1검단도 왔습니다.”
“많이도 왔군. 나가서 곧 나간다 하거라.”
“예.”

장무원은 좀 두려운 듯 했다.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는 장무원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밖으로 나섰다. 널따란 명륜전 앞마당이 무사들로 가득했다. 내가 모습을 나타내자 종이가 먼저 나섰다.
“형님. 저희 창궁검단원이 여기 있다고 해서 말입니다. 찾아가려고 왔습니다.”
“네 손으로 내치지 않았느냐.”
“그건, 그냥 말 뿐인 질책이었습니다. 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애정어린 꾸중 같은 거란 말입니다.”
“네가 그리 말하면 그리 되는 것이냐? 무원은 이미 내게 속한 사람이다. 그냥 말 잘듣는 아이들이나 충실히 거두거라. 나야 어차피 무위가 없는 사람이니 마음으로 그를 옆에 두겠지만, 넌 무엇으로 그를 거두겠느냐? 무원은 이미 널 뛰어넘었는데. 소가주의 위세로 그를 옆에 두겠느냐? 자괴감이 들 텐데.”

종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남궁태진 수석장로가 앞으로 나섰다. 남궁태진 장로는 내겐 큰삼촌이 되는 양반인데, 내가 무공을 상실했을 때 가장 기뻐했던 사람이 남궁태진 장로라는 것은 세가의 공공연한 비밀 중 하나였다. 이러나저러나 자리에도 사람에도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진아! 네 뒤에 있는 그 청년이 그 소문의 주인공이냐?”
“예. 장로님. 그렇습니다.”
“세가에 또 하나의 인재가 태어났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야. 그렇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장무사를 내게 데려가도 되겠느냐? 알다시피 세가에는 지금 인재가 부족해서 말이지. 이번에 1검단에서 젊은 무사들을 중심으로 해서 돌격대 개념의 검단을 새로 만들기로 했는데, 거기에 장무사가 딱 인 것 같아서 말이야. 네 개인 호위로 쓰기엔 장무사가 너무 넘치지 않겠느냐?”
“그것도 좋겠습니다만, 잠시 여유를 두고 기다려 주실 순 없으시겠습니까? 무원이 깨달은 것은 대연검입니다. 심득을 거둘 시간적 여유를 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탈태환골이 다가 아니질 않습니까. 세가를 위해서도 무원이 새로 깨달은 대연검의 검초는 분명히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리고 세가에서 대연검을 제일 깊이 아는 사람은 유감스럽지만 접니다. 몸으로 펼치진 못하지만 대연검을 익히다 죽을 뻔한 적까지 있으니, 심득은 나눌수록 커질 겁니다. 호법원주님도 무원을 거두기 위해 오신 듯 한데, 3개월의 시간을 무원에게 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무원에게 어울릴만한 장소를 세분께서 협의 하에 결정하는 편이 좋을 듯 합니다.”

종이도 두 장로들도 노회한 사람들이다. 내게 향하는 무원의 눈빛에서 지금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다들 말없이 물러갔다. 그들이 다음에 취한 행동은 무원이 아니라 장삼 호법을 회유하는 일이었다. 호법원주 남궁태상이 돌아서며 장호법에게 뭔가 전음을 날렸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수석대주가 전음을 날렸고, 종이는 돌아가지 않고 두 장로가 돌아가는 것을 기다렸다. 창궁검단을 돌려보낸 종이가 툇마루에 앉아 내게 말을 꺼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장무원은 형이 내게 돌려줘야겠어.”
“무원은 네가 내쳤고, 버린 것을 내가 거두지 않았느냐?”
“실수란 있는 법이야. 형이 진짜 내 형이라면 돌려 줘.”
“사람은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를 뺏은 것으로도 모자라?”

답답했다. 꿈에서 깬 나는 무공과 평생의 꿈을 잃었다.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칭얼대고 있는 종이가 그 환상을 벗어났을 때, 어떤 것을 잃게 될 지가 걱정이었다.



























6.
종이에겐 결국 반 강제적으로 무원을 언젠가 창궁검단으로 돌려보내겠다는 약속을 해줘야 했다. 득의한 미소로 돌아서는 종이에게 한 마디 충고를 잊지 않았다.
“세가는 큰 조직이다. 조직의 수장이 이런 식으로 감정에 치우쳐서 떼를 써서는 종래에는 아무도 네 말을 듣지 않을 거다. 모든 행동엔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게 소가주가 된 자의 숙명이다.”
종이는 뒤돌아서며 내 말을 비웃었다.
“형님이 소가주 셨을 때를 잊으셨나 보오. 형님은 그러셨습니까? 하긴 형님의 기벽이야 다 500년 세가 역사상 불세출의 대천재라는 허명에 가려졌으니 뭐 모르셨을지도 모르지요. 어떻게 합니까. 이젠 하나밖에 남지 않은 예전의 천재였다는 허울도 무원이 몽땅 가져가게 생겼는데요. 하하.”
마지막 말이 가슴 아팠다. 그랬다. 아직도 내게 호의적인 사람들의 대부분은 예전 내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남궁진이니까. 누구도 겪지 못한 전입미답의 경지를 밟았던 천재니까 언젠가는 부상을 극복하고 화려하게 복귀할 날이 있겠지라는 꿍꿍이가 있었던 것이다. 정말 이젠 허명만 남아 모두의 기억에서 아 그 때 그 신동이라는 안타까움만이 남게 될 것인가.
착잡했다. 명륜전에 남아있겠다는 무원을 그래도 절정고수가 된 아들의 모습을 그 어머니에겐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집으로 내치고, 혼자서 앵앵이가 타다 준 커피 한잔을 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결국 난 아직도 무공을 잃은 내 자신의 모습을 완전하게 인정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속이 썼다. 앵앵이가 타온 커피만큼이나 써서 얼굴을 찡그렸다.
“공자님, 무슨 일 있으신 거예요? 청심이를 불러 올까요?”
수심이 가득한 앵앵이의 얼굴이 귀엽고 고마웠다. 볼을 꼬집었다.
“그야. 네가 타 준 이 커피가 너무나 써서 말이지. 넌 다른 재주는 모두 타고 났는데, 차를 타는 건 영 젬병이야.”
금새 볼이 부풀어 올랐다.
“푸, 그러니까, 앞으로 차를 타주는 전속시비를 한 명 뽑으시라고 제가 몇 번이나 말씀 드렸잖아요. 누구는 이 밤에 그걸 타고 싶어서 탓겠어요. 주세요. 제가 다 마셔버릴 테니까요.”
“하하. 장난이다. 장난이야. 네가 있어 참 다행이다. 이렇게 초라한 내 모습을 앞으로도 계속 발견해야 할 텐데. 그 때마다 처져 있을 수는 없는 일이긴 하지. 앵앵아. 앞으로는 둘만 있을 때는 오라버니라 부르거라.”
“아니, 공자님. 어떻게 제가. 감히 시비년 따위가 남궁세가의 적통 대공자님께.”
“왜 무공을 상실하고 하릴없이 밥만 축내는 자를 오라비로 삼기가 부끄러운 것이냐?”
“아닙니다. 어떻게……. 오라버니!”

오라버니라는 소리가 명륜전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만큼 크게 소리치고는 얼굴이 홍당무가 된 앵앵이 밖으로 뛰어나갔다. 후후 웃으면서 반잔쯤 남은 반쯤 식은 커피를 단숨에 털어넣었다. 자괴감에서 억지로나마 벗어나 그런지 아까보다는 달콤했다. 구수한 커피향에 취해서 잠이 오질 않는데, 장지 문밖에서 갑자기 고함소리가 들리더니 곧 챙챙하는 병기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문을 열고 툇마루로 걸어나갔더니 덩치가 좋은 두 사람의 낭인무사가 칼을 맞대고 있었다. 한명은 천생의 신력을 이용한 듯한, 두꺼운 두께의 귀두도를 휘두르고 있었고, 다른 자는 긴 팔을 자유롭게 이용하기 위해선지 얇은 협봉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귀두도를 휘두르는 자의 얼굴이 불콰한 걸 보니 어디서 술을 잔뜩 마시고 온 모양이었다. 팔이 긴 자의 얼굴은 뭐랄까 인상을 특정지을 수 없었다. 어디서나 있는 흔한 인상이라고 하기에도 좀 그렇고, 얼굴의 윤곽이 분명하지 않아서 꽤나 선한 인상이었다. 저런 얼굴로 낭인 일을 할 수 있을까.
명륜전에 기거하고 있는 것을 봐서는 둘 다 신통치 않은 무공내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데, 정교한 초식을 가지고 계속 긴장하다 한 순간에 승부가 끝이 나는 명문가의 검술보다 저들의 거친 검격이 훨씬 생기가 있었다. 승부는 거의 끝이 나 있었다. 귀두도를 가진 자가 일발 역전을 노리고 있긴 했지만, 과음으로 인해 몸의 움직임이 둔했다. 십중팔구는 협봉검을 가진 자가 이길 것 같았다. 크게 피를 보기 전에 그만 다툼을 말리고 싶어서 가죽신을 챙겨 신고 내려갔다. 그 순간 일이 일어났다. 귀두도 사내가 뒤로 슬금슬금 물러서다 단숨에 두걸음을 앞으로 내달으며 날린 귀두도의 궤적이 협봉검 사내의 목으로 향했다. 협봉검 사내는 급히 검을 들어 목을 방어했지만, 귀두도의 강력한 힘을 결국 견디지 못하고 협봉검을 발 아래로 떨어뜨렸고 귀두도가 협봉검 사내의 목을 반쯤 갈라버렸던 것이다.

비무라고 생각했었는데, 눈 앞에서 일어난 살인에도 놀랐지만, 그 살인 후에 보인 귀두도 사내의 태도엔 더 놀라고 말았다. 자신의 귀두도를 죽은 협봉검 사내의 옷으로 슥슥 닦은 그는 땅에 떨어진 협봉검과 허리에 매진 검갑을 들어 결합하더니 자기의 허리춤에 달아버렸다. 그리고 주머니를 뒤지더니 전낭 하나를 찾아내고 나선 싱글거렸다. 충격을 받은 듯한 나를 돌아다 본 귀두도 사내는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날 위협했다.
“사람 죽은 거 처음 보시오. 남궁진 공자?”
“날 아시오?”
“그럼 알고 말고요. 쫓겨난 대공자가 아니십니까?”
“저 자는 아는 사이가 아니오?”
“오늘 세가 쪽에서 의뢰가 하나 있었소. 소작을 관리하는 마름 녀석이 중간에 장난질을 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와서였소. 저기 저 녀석이랑 은자 세 냥을 받기로 하고 나갔지. 냐야 뭐 하는 게 칼질 밖에 없으니 내가 위협하고 저 녀석이 회계장부를 검사하는 역할이었소. 마름 녀석은 빌었지만, 결국 내 칼을 받지 않을 도리가 없었지. 일벌백계를 원했거든. 세가  쪽에서. 내가 칼을 쓰는 동안 저 녀석이 회계장부를 검사해서 부정을 밝혀냈지. 돌아와서 의뢰금을 분배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서 말이지. 사람을 죽인 건 난데, 똑같이 배분하자니 말이 돼? 구리돈 50문이 작은 돈이냐고. 그래서 저렇게 죽었지.”

새로운 충격이었다. 구리문 50문으로 사람을 죽이다니. 내가 살고 있던 세상에도 꿈에서 본 세상에도 없는 세계로의 입문이었다. 애써 침착을 가장했다.
“저렇게 놔둬도 되는 것이오?”
“아침에 일어나면 부지런한 녀석들이 치우겠지. 하인들 대신해서 저런 걸 치워주고는 돈을 받아 챙기는 치들도 있으니. 서로 돕고 사는 거지. 하하. 안 그렇소. 그나저나 공자도 한심한 꼴이구려. 명륜전이야 갈 때까지 간 놈들만 모이는 곳인데. 술이나 한 잔 하러 가십시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우리들이 가끔 가는 민가가 있다오.”
“민가라니. 여염집에 술을 마시러 다닌단 말씀이오?”
“민가라고 하기도 그렇소. 명륜전이 생기고 나선 뭐 주점이라고 해도 무방한 곳이오.”

장철생이라고 이름을 밝힌 귀두도의 사내가 날 이끈 곳은 그의 말대로 명륜전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마을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민가였다. 장철생은 그 우렁우렁한 목소리를 한껏 낮춰서 조용하게 주인을 불렀다.
“이보시게 연홍이 있는가? 나야. 장철생이가 왔네.”
불은 켜졌지만, 쉽게 문이 열리지는 않았다. 장철생이 왕방울 같은 눈을 부릅뜨더니, 곧 나를 데리고 자릴 떴다.
“오늘은 안 되겠소. 제길 선객이 있구려.”
“선객이라니.”
“오늘 의뢰를 갔던 사람이 나랑 죽은 한철조, 그리고 진명군과 초리향이었으니, 아마도 저 안에 들어있는 것은 진명군이겠지. 빌어먹을 한철조 자식. 죽을거면 곱게 목을 내밀고 죽지 이거 뭐 땀만 빼고, 목도 못 축이고.”
“같이 한 잔 하면 되질 않겠는가?”
“지금 안에선 한참 방사 중일거요. 나라도 밤일 하는데 누군가 자꾸 신경을 거스르면 상대방을 죽여버리고싶은 마음이 들지. 연홍이 년이야 누구한테도 돈만 받으면 다 주는 년이니 어쩔 수 없다고 치고, 진명군이 문제요. 그는 나보다 두어수는 고수니 괜히 심기를 건드릴 순 없소.”
“그럼 이건 어떤가. 내가 술을 한 잔 내지. 뭐, 저기 연홍이네에서 제공할 수 있는 종류의 육체적 쾌락은 제공할 수 없겠지만 말이야.”
“뭐 목만 축일 수 있다면야. 나야 어디든 좋소.”
“그럼 명륜전으로 돌아가지.”

명륜전가까이에 왔더니 명륜전 전체가 온통 불로 밝혀져 있었다. 그리고 숨이 턱까지 찬 추헌이 술에 취한 얼굴로 눈물을 글썽거렸다.
“아니. 대공자님. 어딜 다녀오시는 겁니까? 지금 난리가 났습니다. 명륜전 앞마당에서 어떤 괴한이 낭인 사내 한철조를 죽이고 도주했습니다. 거기다 갑자기 공자님도 사라지셔서 저희는…… 저희는……”
“다 큰 어른이 그만 일로 눈물을 보이면 쓰나. 내 무사히 돌아왔으니 된 거 아닌가. 얼른 돌아가서 사정을 밝히고, 불을 끄라하게. 사람들도 재우고. 앵앵이는 자는가?”
“아닙니다. 지금 전각에서 시비들과 하인들을 지휘하고 있습니다.”
“앵앵이에게 주안상을 봐서 내 방으로 가져오라 이르게. 아이들은 해산시키고.”
“예. 대공자님.”

앵앵이의 지독한 잔소리를 안주삼아 들으면서 장철생과 한 순배 술을 나눴다. 내가 사라졌단 소식에 집에서 자다 뛰어나온 장무원도 옆에서 술을 한 잔 받았는데, 입만 대고 놓았다가 장철생의 쌍욕을 들어야 했다. 술에 취한 장철생은 그야말로 거침이 없었는데, 평생 예법 안에서만 살아온 나에게는 파격이고, 신기함이었다. 술 대신 안주로 나온 부침개를 맛있게 먹던 장무원을 욕하던 장철생은 참지 못한 장무원의 기세에 숨이 넘어갈 뻔 하고서는 다시는 장무원쪽으로 뭐라 하지 못했다. 대신 풀지 못한 화를 연락 없이 사라졌던 나를 행해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앵앵이에게 버럭하고 내 질렀던 것이다.
“야. 이년아. 넌 시비면 시비답게 그냥 술이나 따르고 밤에 공자님 몸으로 위로나 해드리면 그 뿐이지 여기 자리가 어디라고 주둥일 놀리긴 놀려!”
모욕감에 얼굴을 붉히면서 눈물을 글썽이다가 앵앵이가 뛰쳐나가 버리자, 장무원이 성난 기세로 장철생을 질책했다.
“여긴 공자님께서 계시는 자리다. 예의를 갖추지 못하겠느냐. 그리고 앵앵소저는 공자님께서 친동생처럼 아끼는 시비다. 다른 일반 시비와는 달라. 나중에 나가면서 정중히 사과하고 용서를 빌도록.”
20대 초반의 장무원이 30대를 훌쩍 넘어 보이는 장철생을 질책하는 모습에서 역시 강호는 힘의 세계라는 것을 다시금 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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