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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백제본기 12대 설왕~18대 전지왕

타이기록보유자 2007.01.07 1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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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대 설왕<契王 344~346 재위기간 2년> 설왕은 분서왕의 맏아들이다. 그는 천성이 강직하고 용맹스러웠으며, 말달리고 활쏘기를 잘하였다. 이전에 분서왕이 붕어하였을 때는 설왕이 어려서 왕위에 오를 수 없었는데, 비류왕이 재위 41년에 붕어하자 그가 즉위하였다. 3년 가을 9월, 왕이 붕어하였다. 제13대 근초고왕<近肖古王 346~375 재위기간 29년> 근초고왕은 비류왕의 둘째 아들이다. 그는 체격이 크고 용모가 기이하였으며, 원대한 식견이 있었다. 설왕이 붕어하자 그가 왕위를 이었다. 2년 봄 정월, 천지신명에 제사를 지냈다. 진정을 조정 좌평으로 삼았다. 정은 왕후의 친척으로서 성질이 흉악하고 어질지 못하였다.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도 까다롭고 잔소리가 많았다. 그는 권세를 믿고 함부로 행동하여, 백성들이 그를 미워하였다. 21년 봄 3월, 신라에 사신을 보내 예방하였다. 23년 봄 3월 초하루 정사일에 일식이 있었다. 사신을 시켜 신라에 좋은 말 두 필을 보냈다. 24년 가을 9월, 고구려왕 사유가 보병과 기병 2만 명을 거느리고 치양에 와서 주둔하며 군사를 시켜 민가를 약탈하였다. 왕이 태자에게 군사를 주어, 지름길로 치양에 이르러서 불시에 공격하여 그들을 격파하고, 적병 5천여 명의 머리를 베었다. 노획한 물품은 장병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겨울 11월, 한수 남쪽에서 대대적으로 군사를 사열하였다. 모두 황색의 깃발을 사용하였다. 26년, 고구려가 군사를 동원하여 공격해왔다. 왕이 이를 듣고 패하 강가에 복병을 배치하고 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불시에 공격하였다. 고구려 군사가 패배하였다. 겨울, 왕이 태자와 함께 정예군 3만 명을 거느리고 고구려에 침입하여 평양성을 공격하였다. 고구려왕 사유가 필사적으로 항전하다가 화살에 맞아 사망하자, 왕이 군사를 이끌고 물러났다. 도읍을 한산으로 옮겼다. 27년 가을 7월, 지진이 났다. 28년 가을 7월, 청목령에 성을 쌓았다. 독산 성주가 주민 3백 명을 거느리고 신라로 도망갔다. 30년 가을 7월, 고구려가 북쪽 변방의 수곡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왕이 장수를 보내 방어하게 하였으나 승리하지 못했다. 왕이 다시 군사를 크게 동원하여 보복하려 했으나, 흉년이 들었기 때문에 실행하지 않았다. 겨울 11월, 왕이 붕어하였다. 고기에는 "백제는 개국 이래 문자로 사적을 기록한 적이 없다가, 이 때에 와서 박사 고 흥이 처음으로 [서기]를 썼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고 흥이라는 이름이 다른 서적에 나타난 적이 없기 때문에,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는 알 수 없다. 제14대 근구수왕<近仇首王 375~384 재위기간 9년> 근구수왕[휘수라고도 한다.]은 근초고왕의 아들이다. 이보다 앞서 고구려 국강왕 사유가 직접 와서 침범하였다. 근초고왕은 태자를 보내 방어하게 하였다. 그는 반걸양에 이르러 전투를 시작하려 하였다. 고구려인 사기는 원래 백제인이었는데, 실수로 왕이 타는 말의 발굽을 상처나게 하였다. 그는 이로 말미암아 벌을 받을까 두려워하여 고구려로 도망갔었다. 그가 이 때 돌아와서 태자에게 말했다. "고구려 군사가 비록 수는 많으나 모두 가짜 군사로서 수를 채운 것에 불과합니다. 그 중 제일 강한 부대는 붉은 깃발을 든 부대입니다. 만일 그 부대를 먼저 공략하면, 나머지는 치지 않아도 저절로 허물어질 것입니다." 태자가 이 말에 따라 진격하여 크게 이기고, 달아나는 군사를 계속 추격하여 수곡성 서북에 도착하였다. 이 때 장수 막고해가 간하였다. "일찌기 도가의 말에 '만족할 줄을 알면 욕을 당하지 않고, 그칠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고 하였읍니다. 지금 얻은 바도 많은데 어찌 더 많은 것을 바라겠습니까?" 태자가 이 말을 옳게 여겨 추격을 중단하였다. 그는 즉시 그곳에 돌을 쌓아 표적을 만들고, 그 위에 올라가 좌우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오늘 이후로 누가 다시 이곳에 올 수 있는가?" 그곳에는 말발굽 같이 생긴 바윗돌 틈이 있는데,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그것을 태자의 말굽 자국이라고 부른다. 근초고왕이 재위 30년에 붕어하자 그가 왕위에 올랐다. 2년, 왕의 외삼촌 진고도를 내신 좌평으로 삼아 정사를 맡겼다. 겨울 11월,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침범하였다. 3년 겨울 10월, 왕이 군사 3만 명을 거느리고 고구려의 평양성을 침공하였다. 11월, 고구려가 침입하였다. 5년 여름 4월, 흙비가 종일 내렸다. 6년, 전염병이 크게 돌았다. 여름 5월, 땅바닥이 깊이가 다섯 길, 넓이가 세 길이나 되게 갈라졌다가 3일만에 다시 붙었다. 8년, 봄부터 6월까지 비가 내리지 않았다. 백성들이 굶주려 자식을 파는 자가 나타나자, 왕이 나라의 곡식을 내어 대신 값을 물어 주었다. 10년 봄 2월, 햇무리가 세 겹으로 둘러졌다. 대궐 뜰에 있던 큰 나무가 저절로 뽑혔다. 여름 4월, 왕이 붕어하였다. 제15대 침류왕<枕流王 384~385 재위기간 1년> 침류왕은 근구수왕의 맏아들이고, 어머니는 아이부인이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9월,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진 나라에서 오자, 왕이 궁중으로 맞아들여 우대하고 공경하였다. 불교가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2년 봄 2월, 한산에 절을 창건하고, 중 10명에게 도첩을 주었다. 겨울 11월, 왕이 붕어하였다. 제16대 진사왕<辰斯王 385~392 재위기간 7년> 진사왕은 근구수왕의 둘째 아들이며, 침류왕의 아우이다. 그는 사람됨이 용맹하며 총명하고 지략이 많았다. 침류왕이 붕어하였을 때 태자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태자의 숙부 진사가 즉위하였다. 2년 봄, 국내의 15세 이상 되는 사람들을 징발하여 관문의 방어시설을 설치하였다. 그 길이가 청목령에서 시작하여 북으로는 팔곤성, 서로는 바다에 닿았다. 가을 7월, 서리가 내려 곡식을 해쳤다. 8월, 고구려가 침입하였다. 3년 봄 정월, 진 가모를 달솔로 임명하고, 두지를 은솔로 임명하였다. 가을 9월, 관미령에서 말갈과 싸웠으나 승리하지 못했다. 5년 가을 9월, 왕이 군사를 보내 고구려의 남쪽 변경을 공격하였다. 6년 가을 7월, 혜성이 북하 성좌에 나타났다. 9월, 왕이 달솔 진 가모로 하여금 고구려를 치게 하여 도곤성을 함락시키고, 포로 2백 명을 사로잡았다. 왕이 가모를 병관 좌평으로 임명하였다. 겨울 10월, 왕이 구원에서 사냥하다가 7일만에 돌아왔다. 7년 봄 정월, 궁실을 중수하면서,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진귀한 새를 기르고 기이한 화초를 가꾸었다. 여름 4월, 말갈이 북쪽 변경의 적현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가을 7월, 왕이 서쪽 지방의 큰 섬에서 사냥하다가 직접 사슴을 쏘아 적중시켰다. 8월, 왕이 다시 횡악 서쪽 지역에서 사냥하였다. 8년 여름 5월 초하루 정묘일에 일식이 있었다. 가을 7월, 고구려왕 담덕이 4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북쪽 변경을 침공하여 석현성 등 10여 성을 함락시켰다. 왕은 담덕이 용병에 능통하다는 말을 듣고 대항하기를 회피하였다. 한수 북쪽의 여러 부락을 빼앗겼다. 겨울 10월, 고구려가 관미성을 쳐서 함락시켰다. 왕이 구원에서 사냥하며 열흘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11월, 왕이 구원의 행궁에서 붕어하였다. 제17대 아신왕<阿莘王 392~405 재위기간 13년> 아신왕[혹은 아방이라고도 한다.]은 침류왕의 맏아들이다. 그가 한성의 별궁에서 태어났을 때 신비로운 광채가 밤을 밝혔다. 그가 장성하자 의지와 기풍이 호방하였으며, 매사냥과 말타기를 좋아하였다. 침류왕이 붕어하였을 때, 그는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그의 숙부 진사가 왕위를 이었는데 진사왕이 재위 8년에 붕어하자 그가 즉위하였다. 2년 봄 정월, 왕이 동명왕의 사당에 배알하고 또한 남쪽 제단에서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냈다. 진무를 좌장으로 임명하여 군사에 관한 일을 맡겼다. 진무는 왕의 외삼촌으로서 침착하고 굳세며 지략이 많았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가을 8월, 왕이 진무에게 "관미성은 우리 나라 북쪽 변경의 요새이다. 그 땅이 지금은 고구려의 소유로 되어 있다. 이것을 과인은 애통해 하니, 그대는 응당 이 점에 마음을 기울여, 이 땅을 빼앗긴 치욕을 갚아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왕은 마침내 1만 명의 군사를 동원하여 고구려의 남쪽 변경을 칠 것을 계획하였다. 진무는 병졸보다 앞장서서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석현 등의 다섯 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먼저 관미성을 포위했는데, 고구려 사람들이 성을 둘러 싸고 굳게 방어하였다. 진무는 군량의 수송로를 확보하지 못하여 군사를 이끌고 돌아왔다. 3년 봄 2월, 왕의 맏아들 전지를 태자로 삼고,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왕의 이복동생 홍을 내신 좌평으로 임명하였다. 가을 7월, 고구려와 수곡성 아래에서 싸워 패배하였다. 낮에 태백성이 나타났다. 4년 봄 2월, 혜성이 서북쪽에 나타났다가 20일만에 사라졌다. 가을 8월, 왕이 좌장 진무 등에게 명하여 고구려를 치게 하니, 고구려왕 담덕이 직접 군사 7천 명을 거느리고 패수에 진을 치고 대항하였다. 우리 군사가 크게 패하였으니 사망자가 8천 명이었다. 겨울 11월, 왕이 패수 전투의 패배를 보복하기 위하여, 직접 군사 7천 명을 거느리고 한수를 건너 청목령 아래에 진을 쳤다. 그 때 마침 큰 눈이 내려 병졸들 가운데 동사자가 많이 발생하자 왕은 회군하여 한산성에 와서 군사들을 위로하였다. 6년 여름 5월, 왕이 왜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태자 전지를 인질로 보냈다. 가을 7월, 한수 남쪽에서 대대적으로 군대를 사열하였다. 7년 봄 2월, 진무를 병관 좌평으로 삼고 사두를 좌장으로 삼았다. 3월, 쌍현성을 쌓았다. 가을 8월, 왕은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하여 군사를 출동하여 한산 북쪽 목책에 이르렀다. 그 날 밤에 큰 별이 떨어졌는데 진영에서 소리가 났다. 왕은 이를 매우 불안하게 생각하여 공격을 중지하였다. 9월, 서울 사람들을 모아 서대에서 활쏘기를 연습하게 하였다. 8년 가을 8월, 왕이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하여 군사와 말을 대대적으로 징발하니, 백성들이 병역을 고통스럽게 생각하여 많은 사람들이 신라로 도망하였고, 이 결과로 호구가 줄었다. 9년 봄 2월, 혜성이 규성과 누성 성좌에 나타났다. 여름 6월 초하루 경진일에 일식이 있었다. 11년 여름, 큰 가뭄이 들어 벼가 타들어가자, 왕이 직접 횡악에서 기우제를 지내니 곧 비가 내렸다. 5월, 왜국에 사신을 보내 큰 구슬을 요구하였다. 12년 봄 2월, 왜국에서 사신이 오자 왕이 이들을 환영하고 위로하였으며, 특별히 후하게 대우하였다. 가을 7월, 군사를 보내 신라 변경을 침공하였다. 14년 봄 3월, 흰 기운이 왕궁 서쪽에서 일어났는데 마치 비단을 펼쳐 놓은 것 같았다. 가을 9월, 왕이 붕어하였다. 제18대 전지왕<전支王 405~420 재위기간 15년> 전지왕[혹은 직지라고도 한다.]의 이름을 [양서]에서는 영이라고 하였다. 그는 아신왕의 맏아들로서, 아신왕 재위 3년에 태자가 되었고, 6년에 왜국에 인질로 갔다. 14년에 아신왕이 붕어하자 왕의 둘째 동생 훈해가 정사를 대리하며 태자의 귀국을 기다렸는데 왕의 막내 동생 첩례가 훈해를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되었다. 이 때 전지가 왜국에서 부고를 듣고 울면서 귀국을 요청하니 왜왕이 1백 명의 군사로 하여금 그를 보호하여 귀국하게 하였다. 그가 국경에 이르자 한성 사람 해충이 와서 고하기를 "대왕이 죽은 후에, 왕의 동생 첩례가 형을 죽이고 자기가 왕위에 올랐으니, 태자께서는 경솔히 들어오지 마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전지가 왜인을 체류시켜 자기를 호위하게 하면서, 바다 가운데의 섬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백성들이 첩례를 죽이고 전지를 맞이하여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왕비는 팔수부인이다. 그녀는 아들 구이신을 낳았다. 2년 봄 정월, 왕이 동명왕의 사당에 배알하고 남쪽 제단에서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내고 죄인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가을 9월, 해충을 달솔로 임명하고, 한성의 벼 1천 석을 주었다. 3년 봄 2월, 이복동생 여신을 내신 좌평으로 임명하고, 해수를 내법 좌평으로 임명하고, 해구를 병관 좌평으로 임명하니 모두가 왕의 친척이었다. 4년 봄 정월, 여신을 상좌평으로 임명하여 군사와 정사를 맡겼다. 상좌평이라는 직위가 이 때부터 시작되었으니, 지금의 재상과 같은 것이었다. 5년, 왜국이 사신을 파견하여 야명주를 보내오니 왕이 특별히 예우하였다. 11년 여름 5월 갑신에 혜성이 나타났다. 13년 봄 정월 초하루 갑술일에 일식이 있었다. 여름 4월,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렸다. 가을 7월, 동부와 북부 2부의 15세 이상 되는 사람들을 징발하여 사구성을 쌓게 하고 병관 좌평 해구를 시켜 이 일을 감독하게 하였다. 14년 여름, 왜국에 사신을 파견하여 흰 포목 열 필을 보냈다. 15년 봄 정월 무술에 혜성이 태미 성좌에 나타났다. 겨울 11월 초하루 정해일에 일식이 있었다. 16년 봄 3월, 왕이 붕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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