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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플] 이순 암행기 4

루비(1.177) 2016.05.01 03:45:45
조회 1058 추천 26 댓글 12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ytSXm

















이날, 정무를 마치고 침전에 들어선 이순은, 사가에서 만났던 


옥정이와의 일들을, 또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사가의 옥정이는, 자신이 세자 시절이었던 훨씬 이전의 시간 속에 


머물러 있음이 틀림없었다.


대나무 골에서 스쳐 지날 때부터, 몇 차례의 만남 이후로도, 


옥정이는 결코,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런 탓에, 옥정이는 이순이 건넨 질문에, 아무런 꺼리낌없이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라는 대답만을 명쾌하게 들려온 것이다.


이순은 아무리 과거의 시간 속이라지만, 온전히 살아있는 


옥정이를 또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감개무량했다.


옥정이를 떠나보낸 이후, 그 얼마나 하고 많은 시간들을, 외로움과 


고독함 속에서 헤매어야 했던가.


이순은 저잣거리에서 옥정이를 만나고 돌아온 이후로, 한동안


고심에 빠져들었다.


그것은, 옥정이가 들려준 대답 때문이었다.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란 그 소리는, 또 다시 새로이, 인연을 


만들어 가라는 소리인 것이다.


각자, 시간의 흐름이 전혀 다른 곳에서, 옥정이에 대한 그 어떤 


기약조차 할 수 없는 이순으로서는, 옥정이의 그 말이 너무나 


꿈과 같은 희망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사가에 있는 옥정이를 떠올릴 때면, 저도 모르게 만면


가득히 흐뭇함이 번져들었다.


사가의 옥정이는 너무나 천진난만한 여느 댁 규수 같으면서도,


제 나름대로의 당돌함과, 패기 마져 있어 보였다.


이내 이순은, 자신이 세자시절, 옥정이를 처음 만났던 그 순간들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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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나갔던 맞선자리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의 몸에 손을 


가져다 대던, 그 패기에 뭉쳤던 여인…………장옥정…………


그리고 사가에서 만났던 옥정이 또한, 여전히 그 시절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 옥정이였기에, 이순은 단 한번의 스쳐가는 인연에도, 그토록 


속절없이 옥정이에게 끌릴 수 밖에 없는 것인지………………


이순은 다시 한번 옥정이와의 해후에,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그날 밤,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이순은, 조용히 


침전을 빠져나와, 아득히 먼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어두운 밤 하늘에는, 둥그런 달 하나가 오롯히 중천 하늘을


지키고 있었다.


그 옆에는 보일 듯 말 듯한 작은 별 하나가, 그 주변을 맴돌며,


작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저 달과 별처럼, 어쩌면 지금의 자신과 옥정이의 위치가 


그러한지 모를 일이었다.


옥정이처럼 바라보기만 해도, 너무나 그리워지는 저 달이…………


그리고 저 달에 가까이 다가가려다……………구름에, 바람에, 


아득히 멀어져 버리고 마는 저 별빛 같은 자신이…………


이순은 그럼에도 하염없이 그립고, 하염없이 다가가고 싶다는


심정에, 저도 모르게 고뇌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밤은 점점 더 깊어져가고, 바람은 소리 없이 일었다가


흔적 없이 흩어지는데…………


이순에게는, 좀처럼 잠들 수 없는 시간이 길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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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 것일까.


이미 떠나고 없는 옥정이를, 또 다시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분명 이 기묘한 인연에는,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 특별한


연유가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이 시간을 이대로 지나칠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옥정이에게 부딧쳐 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순은, 잠시 고심 끝에, 사가에 있는 동평당숙을 생각해 


냈다.


다음날, 이순은 동평 당숙의 사저로 가기위해, 서둘러 채비를 


갖추고 길을 나서게 되었다.









@@@









그날도 옥정이는 부용정 일감으로, 한창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며칠 후, 최참판 댁 둘째 아가씨의 혼사로, 때 마침 주문받았던 


원삼을, 그 댁에 가져가야 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최첨판 댁에 가기위해 길을 나선 옥정이는, 한참 


발길을 서둘러, 큰 저잣거리로 빠져 나오던 중이였다.


그런데 그곳에는, 누군가의 행차가 있었던지, 길을 가던 


사람들이 제각각 양옆으로 자리를 비켜나 있었다.


잠시 길을 돌아갈까 망설이던 옥정이는, 아무래도 시간이 


지체될 듯 해서, 어쩔 수 없이 사람들 틈에 멈춰서야했다.


그때였다.


그곳 앞을 지나던 양반의 평교자가, 불현듯 옥정이 앞에 멈춰


서더니, 누군가의 달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거기 서있는 낭자, 고개 좀 들어보시겠소.”



옥정이는 무슨 일인지,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보았다.


그런데 그 앞에는, 동평군이 환한 웃음으로, 평교자에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동평군 대감!”



“이런, 역시 나의 눈이 틀림없었던 게야. 우리 옥정이, 어디를


그렇게 바삐 다녀오는 길이냐”



“네, 주문하신 나으리댁에, 물품을 전해드리러 가는 길이였습니다.”



“그래? 그렇치 않아도, 네 너를 한번 보러갈까, 생각하던 참


이였다. 옥정아, 그간 내 소식이 궁금하지 않았더냐.”




무언가 기대를 건 동평군의 질문에, 옥정이는 잠시 주춤해 


보이다, 지레짐작으로 되물어갔다.



“혹여, 어디………먼 곳이라도 다녀오신 길이십니까.”



“에잉, 내 그동안 청나라에 좀 다녀 오느라, 한동안 부용정엘 


들리질 못했더니, 정녕 내 소식을 몰랐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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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셨군요. 그 사이 일감에 쫒기다 보니, 송구하옵게도 


동평군 대감께서 청나라에 다녀 오신줄은, 정말 몰랐답니다…………”



“그래도 그렇치, 이거 왠지 섭섭하구나, 내 청국에서 돌아올 때, 


너에게 보여줄 생각에, 그림 서책을 몇 권, 챙겨왔는데 말이다.”




동평군은 옥정이의 얼굴을 넌지시 살피며, 청나라 여인복장이 


실린 그림 서책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이내 옥정이는 그림 서책이란 소리에, 담담하던 표정이, 


일시에 환해져 왔다.



“참이십니까. 너무………보고 싶습니다.”



“그래, 언제 한번 시간이 나거든, 내 부용정에 한번 들리마,


그럼 바쁜 걸음 같으니, 어서 가 보거라.”



옥정이는 동평군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여쭈고, 또 다시 바쁜 


걸음으로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런 옥정이를 기쁜 듯, 아쉬운 듯 쳐다보던 동평군도, 얼마 후, 


유유히 자신의 사택으로 가마 머리를 돌렸다.









@@@









동평군의 사택에 온 이순은, 동평군의 귀택을 기다리다가, 


잠시 문갑 위에 놓여있는 책보에, 눈 시선이 멈춰 섰다.


그리고 왠지 모를 호기심에, 잠시 책보를 펼쳐보았다.


그 책은 청나라 여인네들의 모습들이 그려져 있는, 그림 


서책이였다.


이순은 다시 한번 서책 겉장을 확인을 하고 나서, 괜시리 


웃음이 지어졌다.



‘동평당숙에게 이런 취미가 있었던가.’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밖에서 누군가의 인기척 소리가 들리더니, 그제서야 동평군이


방안으로 들어섰다.


이순이 와있다는 소식에, 동평군은 반가운 얼굴 일색으로 


다급히 이순을 반겨들었다.



“세자저하, 연통도 없이, 어인 일로 이곳까지 납시었습니까.”



“아, 동평당숙, 동평당숙이야 말로, 무엇이 그토록 


바쁘시답니까.”



“저야,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워낙에 많은 지라………………


북창삼우 (거문고와 시와 술)를 찾아, 시간을 강물에 띄우듯 


하며 지냈습지요.”



동평군은 개구진 목소리로 이순을 살짝 야리며 반가운 듯이 


말을 들려왔다.



“저하, 하오신데, 꽃바람 이는 이 춘삼월 봄 시절기에, 어쩐 


일로 이리 납시었는지요.”




동평군의 장난기 어린 모습에, 이순은 넌지시 웃음을 참아


보이며, 입을 열었다.




“내 가끔은 사가에 잠행이 아닌, 동평 당숙과도 즐거운 사색을


즐겨볼까 하여, 이리 발걸음을 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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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거 때마침 잘되었습니다. 곧 며칠 이내로, 


단오절이 있질 않습니까. 애써 사가에 발걸음을 하셨는데, 


이왕이면, 사가의 단오 풍정에, 한번 빠져보심이 어떠


하시겠습니까?”



“그래요? 단오 풍정이라…………그렇다면, 동평당숙 말따라, 


오랜만에 그 단오풍정이나 한번 둘러 볼까요?”



무언가 순탄히 들려오는 이순의 대답에, 동평군은 어찌 된 


일인지 의아해졌다.


가끔 사가에 다녀가기는 하였지만, 사냥이나, 자신과의 검술 


대련이 아니면, 좀처럼 흥미를 보이지 않았던 세자 저하였다.


그런데 왠일인지 사가의 단오절에, 관심을 비춰오다니…………


동평군은 넌지시 이순의 안색을 살피며, 잠시 염려스러운 듯,


말을 여쭤왔다.



“하온데 오늘따라 평소의 세자 저하답지 않아 보이시는 게…………


혹여 무언가 심경의 변화라도 생기신 것은 아니신지요?”



순간 이순은, 예리하게 자신의 심기를 살피는 동평군의 눈빛에, 


애써 태연한척, 답을 들려주었다.



“흠흠, 뭐 굳이 심경의 변화라기 보다는, 아주 가끔은 구중 


궁궐을 떠나, 한운 야학처럼 살고 싶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애써 단오날이라 하니, 이럴 때 아니면, 언제나 단오풍정을 


둘러 볼 수 있겠습니까?”


*(한운야학(閑雲野鶴):하늘에 한가히 떠도는 구름과 들에 


노니는 학이란 뜻으로, 아무런 구속없이 한가한 생활을 하며, 


유유자적하는 경지를 이름.)



동평군은 이순의 그 말에, 작게 납득을 해보이더니, 이내 


명랑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하시다면, 정말 잘 생각하셨습니다. 단오라 하면, 


창포물에 멱을 감는 여인들이 있는가 하면, 사가의 처자들이 


꽃바람에 미끄러지듯이, 그네를 타는 진풍경도 있으니까요. 


하오나, 그 모양새가 면전으로 접하기 낯부끄러운 양반들은, 


단오선으로 얼굴을 가려가며, 그 풍정을 접하기도 하지요. 


어떠하십니까? 이번 기회에, 세자 저하께서도 단오선을 한번 


만들어 보시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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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선을요?…………”



“네, 때마침, 제가 단오선을 만드는 좋은 곳을 알고 있으니, 


그 곳으로 안내 하옵지요.”



얼마 후 동평군은 이순과 함께,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여인 


상단인 부용정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가끔 사가에서 치뤄지는 갖갖은 행사에, 장식구나 소모품들을


만들어내던 부용정이였기에, 동평군 이항은, 그 구경을 빌미


삼아, 가끔 옥정이를 보러 다녀가기도 했던 터였다.


역시나 그곳 부용정에서는 단오날을 맞아, 여러 용품들을 


만드는 작업이 한참 바쁘게 이뤄지고 있었다.


부채를 만드는 준비물과 함께, 부용정의 아낙들은 제각각 맡은 


분야에 바쁘게 일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동평군에 이어, 부용정에 들어선 이순은, 잠시 놀란 표정으로 


부용정 내부를 둘러보았다.


제 아무리 우연이라지만, 동평군이 안내해 온 곳이, 하필이면 


옥정이가 있는 부용정이라니……………… 


그때, 동평군을 따라 방으로 들어서려다, 잠시 옥정이를 궁금해


하던 이순에게, 누군가 말을 건네왔다.



“어라?………선비님은 저번에 시전에서 뵈었던 선비님 


아니십니까”



“아……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또 다시 뵙는구려.”



“아무튼, 잘 오셨습니다. 옥정이도 이제 곧 돌아올 시간이


되었으니, 잠시만 기다려 보시지요.”




때마침 자리를 비우고 없었는지, 이순은 옥정이가 자리에 


없다는 소리에, 작게 실망한 낮빛으로, 좌정을 청했다.


얼마 후, 차를 대접받은 두 사람이 가벼운 담소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옥정이는, 동평군에게, 인사를 여쭈기 


위해, 조심스럽게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환한 얼굴로, 옥정이를 반겨드는 동평군의 곁에서


이순이 눈인사를 건네오는 것이 아닌가.


옥정이는 이순의 뜻밖의 등장에, 놀란 듯이 이순을 쳐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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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선비님께서 이곳엘………………”




동평군은 인사를 건네려다 말고, 놀란 옥정이에게,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아니 옥정아, 니가 어떻게 이분을 알고 있는 게냐.”


 

“동평군 대감, 이 선비님께서 얼마전 시전거리에서 소매치기를


잡아주신 덕분에, 제가 큰 화를 면했지 뭡니까. 어찌보면 은인


이라고도 할 수가 있지요.”


 

동평군은 옥정이가 아직 이순의 신분을 모른다는 사실에, 


슬그머니 이순의 눈치를 살폈다.


이순도 그런 동평군에게 잠시 눈짓을 지어 보이고는, 다시금 


옥정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저희 당숙께서, 이곳에서 단오선을 만든다하여, 이렇게 


발걸음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셨군요. 하오면 잘 오셨습니다. 이왕 오셨으니, 가게 


내에 진열된 물품들도, 한번 씩 눈요기를 해보시지요.”



이내 옥정이는 해맑게 웃으며, 다시 한번 이순의 방문을 반겨 


들었다.


화사한 연홍색 저고리와, 담청색 치마를 두르고서, 단아하게 


자세를 갖추고 앉은 옥정이는, 마치 청초하게 피워난 꽃처럼, 


너무나 고아해 보였다.


그런 옥정이의 모습에, 이순은 잠시 넋을 잃은 듯, 좀처럼 눈을 


뗄 수 없었다.









@@@









얼마 후, 동평군은 능숙한 솜씨로 자신의 단오선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단오선을 먼저 완성한 


동평군은, 자신의 단오선을 펼쳐보이며, 즐거운 듯 춤사위마져 


펼쳐 보였다.


주변에서 작업을 하던 아낙들도, 동평군의 춤사위에, 참다 못해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순은 난생 처음 만들어보는 단오선이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았던지, 무척이나 고전을 해보였다.


얼굴은 조금씩 짜증이 묻어나기 시작했고, 자신의 손이 닿는 


곳마다 풀범벅이 되버리자, 마침내는 하던 작업을 멈추고는, 


부러운 듯이 동평군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이순을 표정을 읽은 옥정이가, 조심스레 이순의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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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잠시 도와드려도 되겠습니까.”


 

넌지시 물어오는 옥정이의 물음에, 이순은 풀 범벅으로 말라


버린 손을 내려다 보며, 난감한 듯, 웃음을 지어보였다.


 

“역시 사내는 붓과 칼을 쥐어야 하는 것인지, 내 분야가 


아니다 보니, 이대로 가다가는 아주 손이 굳어버릴 


지경이라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구겨진 단오선을, 옥정이 앞으로 내밀어 


보였다.


옥정이는 단오선을 건네 받으려다, 문뜩 풀범벅이 되어버린 


이순의 손이, 눈에 걸려왔다.


잠시 후, 돌연히 이순의 손을 닦아오는 옥정이의 손길에, 이순은 


당황한 듯, 옥정이를 쳐다 보았다.


어딘가 무표정해 보이면서도, 상냥함이 베여있는 옥정이의 


모습에, 이순은 흐뭇한 표정 일색으로, 옥정이를 내려다 보았다.


이내 옥정이도 이순의 눈길을 느꼈던지, 어느새 얼굴은 발그랗게 


달아올랐다.


풀범벅으로 굳어버린 이순의 손으로는, 도저히 단오선을 만들 


수 없겠다 싶었던 옥정이는, 조심스럽게 이순의 손을 닦아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신을 지긋히 내려다 보는 이순의 눈길에, 옥정이는 


내심,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짐짓 당혹해보이는 옥정이를 보고, 이순은 그제서야, 겸연쩍은 


듯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정작은, 기쁨으로 흐뭇해진 자신의 표정을, 감추기에


바빴다.


그리고 이제는 풀범벅이 되어버린 자신의 부채가, 오히려 


고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얼마 후 이순의 단오선은, 옥정이의 도움을 받아, 조금씩 


제 모양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풀칠이 된 부채살에, 한지를 잘 펼친 다음, 싸리 빗으로 천천히


훑어 내린 단오선은, 또 다시 공기가 잘 빠지도록 하나하나 


손질을 해 보였다.


그렇게 몇번의 손작업을 거쳐서, 겨우나마 모양새 좋은 


단오선의 모양이 완성되어져 갔다.



 

“이거 낭자에게서 단오선을 선물받은 기분이랄까. 그대의 


손으로 이 단오선이 새롭게 생명을 얻어낸 것 같아, 참으로 


새삼스러운 기분이군요.”


 

“그렇다면 더욱 더 잘 되었습니다. 지난 번의 일로 이렇게


단오선으로나마, 선비님께 인사를 여쭐 수 있어서, 다행이지 


뭡니까.”



얼마 전, 저잣거리에서의 일로, 다시한번 인사를 여쭤오는 


옥정이의 겸손함에, 이순은 지긋히 옥정이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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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런한 눈썹에 이어, 옹달샘처럼 깊고 고아한 눈동자, 


그리고 오똑하게 선 콧대와 이슬을 머금은 듯, 가지런히 다문 


입술마저, 이 모두가 이순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자신의 


옥정이였다.


그때 주변 정리를 마친 옥정이는, 또 다시 자신을 바라보던 


이순과 두 눈이 마주치자, 당황한듯,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잠시 주춤하더니, 갑자기 제 할일이 생각났다는 냥, 


돌연히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내, 이순은 옥정이와 함께 만들어낸 단오선을 내려다 보며, 


흐뭇함 일색으로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얼마 후, 더 이상 부용정에서 지체하고 있을 수 없었던 두 


사람은,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잘 완성된 단오선으로 만족스럽게 부채질을 하는 동평군과 


달리, 이순은 아쉬운 마음으로 옥정이의 배웅을 받아야 했다.


이순과 동평군이 얼마 쯤, 부용정에서 벗어났을 때였다.


천천히 자리를 이동해 가던 이순은, 불현듯 앞서가던 동평군을 


불러세웠다.


부용정을 떠나올 때, 옥정이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던지, 


동평군은 저 홀로 유쾌해 보였기 때문이다.




“동평당숙,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혼자만 웃지 말고, 


내게도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안되겠소?.”


 

동평군은 이순의 질문에, 정색을 해보이더니, 그제서야 


옥정이와의 일을 들려왔다.



“실은 부용정을 나서면서, 옥정이에게 재미있는 조건을 


걸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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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조건이라니요?”



“이번 단오날에, 옥정이에게 그네 타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제가 이번 청국에서가져온 그림 서책을, 선물로 주겠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처음에는 두 눈이 땡그래져서 난감해 


하더니, 누가 부용정의 옥정이가 아니랄까봐, 그림 서책에 


그냥 넘어가질 뭐겠습니까.”



그말을 마친 동평군은 한바탕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다시 한번, 말을 이었다.



“하여, 이번 단오날에는, 아무래도 옥정이의 그네타는 모습을 


볼수 있을 듯 합니다.”



…………………………




이순은 동평군의 장난스러운 조건에, 잠시 옥정이가 걱정이 


되었지만, 그네를 타는 여인네의 모습이야말로, 단오날 볼 수


있는 사가의 진풍경이라하니, 잠시 그 걱정은 밀어두기로 했다.


이순 일행이 부용정을 벗어난 뒤, 옥정이는 저홀로 당혹해 


하고 있었다.


무언가 마음 한 켠이, 비어버린 것 같은 아쉬움 때문이었다.



'왜 그 선비님이 돌아가고 나자, 이다지도 마음이 아쉬워지는 


걸까……………대체, 이 기분이 어찌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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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에, 옥정이는 짐짓 혼란


스러웠다.


그러나 애써 머리를 흔들어 내며, 쓸데없는 잡념이라, 단정


지었다.


오히려 지금은, 그 선비님의 일보다 동평군 대감과의 약속이 


한층 더 시급한 문제였다.


그네타는 일이야, 사가의 여인네들에게는, 누구나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놀이였겠지만, 옥정이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일일 뿐이었다.


지금 껏 단 한번도 단오날에, 놀아본 적이 없었던 옥정이로서는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네를 탄다는 일일랑은, 엄감생신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동평군이 꺼내든 그림 서책의 유혹 앞에서는, 결코 


옥정이도 어쩔 수 없이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잠시 후, 옥정이는 또 다른 궁리에 전념해야 했다.


이왕, 그네터에 나서게 되었으니, 그 많은 사가의 아낙네들 


앞에서, 어떻게 하면 부용정을 알릴 수 있을지, 고심에 빠져든


것이다.


그리고 옥정이는 그날 만들어낸 단오선에, 부용정이 인식 


될 만한 문양과 부용정이라는 이름을 새겨 넣기로 생각했다.


이내 부용정의 아낙들은, 또 한차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을에 사는 그림쟁이도 불러들였고, 갖가지 준비를 갖춘 다음,


서둘러 작업에 들어가야 했다.


이후, 옥정이는 단오날이 되기까지, 좀 처럼 쉴틈없이 움직여야 


했다.


그러는 사이, 마음 한켠에, 자리 잡기 시작한 이순의 존재는, 


그 바쁜 나날들 속에, 고스라니 묻혀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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