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하회마을 탐방 시작,
그 시작의 장대한 계획은
원래 이랬다고 한다.
역시 그린 루트가 엉망임,마을 안의 루트는 크게 신경쓰지않고 그린거니 제대로 된 지도는 인터넷검색 필수!
애초에 시작은 병산서원 → 하회마을 → 시내, 집으로 고고씽 이었으나
시간을 맞추다보니 병산서원 행 버스시간이 안동 도착과 맞지 않아
ⓐ하회마을 먼저, ⓑ이왕이면 서애대감의 '삶'부터 먼저 본 후 그 분을 기리며 만든 건물들인 서원을 보쟈 이렇게 되서
계획을 짰던 거,
하회마을 역시
일단은 '징비록'을 썼던 옥연정사를 먼저가자는게 목표였으나
...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 열심히 전화받으시느라 정신없으신
아저씨......
오 분을 기다렸으나, 아무래도 소심한 나는 '언제 운행해요?'란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북촌댁으로 발걸음을 돌렸다고 한다.
결국 하회마을 안쪽부터 시작된 여행길,
그 결과 이 날 돌아다닌 루트는,
또 더럽게 그려서 죄송합니다............
이랬다고 한다,
선착장에서 바로 보였던 곳이 북촌댁, 즉 지도 속의 화경당으로 들어가는 길이라 그 루트를 택함
2. 북촌댁, 화경당[和敬堂]으로 가는 길
하회마을의 골목은
마을 이름처럼, 그리고 마을을 감싸 돌아가는 낙동강처럼
직선으로 뻗어가다가도
돌아돌아서 뚝 끊어지고
어느 집으로 연결되고를
반복했었어
어떤 때는 기왓장 얹혀진 돌담을 지나다
어떤 때는 황토담을 지나고 있고
또 다시 돌고 있다가도
어느새 어? 하는 순간 직선로가 나오고
북촌댁은
조금 언덕받이에 있는데
처음 만난 길이 이랬어
돌담따라가는 재미를 느끼다보면
어느새 건물에 도착했던 듯
그래서 도착한 북촌댁, 화경당은 이렇게 생겼어
솟을대문을 들어서서 보였던 건물이 저렇게 두 채였어
두 번째 사진에서 가려져 있는 오른쪽에 '화경당'이라는 현판이 있어.
아쉽게 우리는 솟을대문 이상으로 들어갈 수 없어
원래는 한옥체험을 할 수 있고, 한옥투어가 가능한데
이게 한 관광객이 무심코 버린 담배꽁초였나? 때문에
화재가 크게 날뻔 한 적이 있었데
그 이후로는 솟을대문 앞에서 출입이 금지,
문화재 보호차원과
현재 후손이 살고 있는 '거주지역'이다보니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만
참, 안타까웠던 거 같아
(하회마을 집들은 내당은 공개를 안 하고 있어,
충효당-뒤에 나옴-에서 들었던 설명 중에는
내당이 지금 생활구역이기 때문도 하지만
한 인간의 삶이 시작되고,-잉태되고 태어나는 곳-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기 때문에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 그렇게 들었던듯...? 사실 그 뒤로 설명을 잘 듣지 못해서 쩜쩜쩜)
화경당은 나름 '적선지가'로 낮은 소작료로 소작인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홍수가 날 때는 사재를 털어 이웃을 돕고
일제 강점기 때는 독립운동에 앞장 섰다고 하네
나름 의미있는 집이지?
3. 비나이다 비나이다
화경당 솟을대문에서 좀 나가
흙담을 주욱 따라가면
요런 곳을 만난다,
거기서 우측으로 틀면 또다시 자그마한 골목길이 나오면서
요렇게 내외를 할 수 있도록 벽으로 살짜쿵 가린, 점잖은 집도 하나 보이고
조금만 더 가면
이런 골목도 보인다,
하회마을은 이런 골목골목을 따라가면서
길을 잃어버려도
뭔가모르게 여유가 있었던 거 같아
거길 따라가봤더니 나온 곳은
요런 나무가 나와,
띠지 둘러진 걸 보이지만 이 '분'은
하회마을에서 매우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신령스럽게 여기는 삼신당 신목이라고 해
나이는 600살,
(지난번 덕형이 별서 터에서 본 나무가 400살이었는데 얜 여말선초에 살았던 아이군)
하회마을 입향조께서 처음 심었던 나무로,
이 나무 주변으로 아까 본 화경당(북촌댁),
서애 선생이 아버님 상을 당한 후 서재로 쓰려고 지은 원지정사,
마을 대종택인 양진당이 있더라고
나무가 참 큰 녀석인게
무시무시하더라
진짜 신령이 있나? 싶어
옆의 띠지에 아주 길게길게 많은 소원과 바람을 적어서
나 역시 저 새끼에다가 꽁꽁 싸 맸어
아,
이 나무에서 제를 지내는 것으로
하회별신굿이 시작된다고 해!
그만큼 중요한 나무고, 신령스럽게 여기는 곳인데
어떤 분들이 굳이 저 새끼줄을 넘어서
소원지를 나무 가지에 매고
나무 위로 타고 올라가는...
(에비~~~ 밤에 나무귀신 나올라!)
띠지를 매고
다시 나와서
주욱 걸어가 향한 곳은
*주목주목주목*
바로 충효당이었다고 한다.
3. 서애의 숨결이 있는 곳, 충효당.
서애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건물을
들어서는 터라
마음이 더욱 경건해 졌어
먼저 공부한다는 기분으로
'징비록'을 한번 더 펼쳤고, 또 읽었기에 더더욱더 그랬던 것 같아
그.러.나
아쉽게도 그 앞을 점령하고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
다른 분들로 인해 (ㅜㅜ)
한동안 '언제 건물 안에 들어가나' 기다리다
안되겠다 싶어 옆의 작은 쪽문으로 들어갔어
쪽문은, 허리를 낮춰야만 들어갈 수 있도록
높이가 낮게 설계되어 있었어
들어가자 보였던 것은
뜰에 있는 진분홍빛 배롱나무와
충효당 건물.
사실 바로 대문으로 들어간 것 보다
이 문으로 들어간 것이
서애종택을 대하는 바른 자세란 생각도 한켠 들긴 했었음......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니까.
들어가면 충효당의 뒤뜰, 영모당(서애선생의 유물이 전시된 곳)으로 통하는 길에 오는데
그 사이에 보면 단청도 없고 되게 바랬는데 삼문이 비틀려있는 건물을 하나 만나게 되
그 곳이 서애 대감의 불천위가 있는
사당이라고 하더라구......
그 앞에 있는
서애선생께서 세상을 떠나신지 400주년이 되던 해에
후손들이 세운 저 비석,
비석을 보며
'아, 드디어 하나를 만났구나'
싶어 한동안 뚫어져라 쳐다봤다 한다.
그와 동시에 영모당과 마주해서 앉아있는
사당 건물을 향해
조용히 고개를 잠시 숙였어.
이건 충효당 뒷면에서 바라본,
충효당 앞면
아, 앞의 지푸라기들이 건물 여기저기에 달린 것은
문중의 어떤 분께서 돌아가셔서, 란 이야길 들었어
서애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지만
'충효당'이란 이름을 얻은 건
서애선생 사후였다는 건 개롤들은 알징?
(워낙 지금 민속박물관에서 하는 전시회가 이 둘을 강조하니까)
서애선생 역시 마지막까지 '힘써 행할 것은 오로지 충과 효 뿐이다'란 말을 하셨기에
그를 따라 이름 지은 것이 충효당,
원래 이 자리의 건물 역시
매우 검소한 건물이었지만
후손들이 서애 선생을 기리고자
지금의 건물로 지었다고
뒷면의 마루로 내다보는 창을 통해 보면
한옥은 오묘하다,
느껴졌던게
그 창 하나하나가
자연을 담는 액자 틀이 되는 거 같았어
강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며
결코 그 액자로 담을 수 없는 자연을
그래도 담고자 한 이들의 마음이
오늘은 많이 공감됐다고.....
그리고 참 눈에 띄었던,
각 방으로 들어가는 문 마다
가로로 붙여둔 문구들,
방에 들어갈 때 마다 경계하란, 의미로 붙여둔 거 같아
마치 우리가 뭔가를 준비하거나 공부할 때
의지를 다진다며 붙이는 포스트잇처럼.
충효당 뿐만 아니라
많은 건물들에서 저런 문구들을 볼 수 있었어.
이게 정문, 이때가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네
잠시 정문으로 다시 나서기 전에
영모각에 들러 유물들을 봤어
지금 대부분 서울 민속박물관에 있어서
없긴 하지만
서애선생의, 이리저리 터럭이 빠진 갓을 보고 있자니
'오래된 갓이라 그러겠지'란 생각과
'그래도 저 갓이 저렇게, 남아 있는게 다행이다'란 생각이 교차하더라
음, 그리고
서애 선생이 운암이란 호도 썼다고 해,
그래서 징비록 집필 이전에
자신이 영의정으로써 행한 정치와 당쟁에 관해 '징비록'비슷하게 쓴
글을 하나 또 썼다고 하더라구
이건 처음 알았음.
문득,
서애(여기서 절벽 애, 가 하회마을에서 보이는 부용대 맞나??), 운암(구름 바위)란 이름을 보니
서애는 정말 자연 속으로 가고 싶었구나, 자연이 이상향이었겠구나
싶었어ㅡ
그러면서도 그 자연에서
왜 결국 다시 현실을 고민하고 생각하고 놓지 못했을 지,
어떤 심경이었을지가
다시 궁금해졌어
4. 양진당
입향조가 처음 세운 건물인 양진당,
마을 전체의 대종택이라고 한다
'입암고택'이란 이름으로
건물의 사랑에 현판이 있는데
'입암'은 서애선생과 서애의 형님이신 겸암선생의 아버지, 류중영 선생의 호를 딴 것이라고.
후대 문중회의에서 결정됐다는 설명을 봤어.,
역시 이번에도 내당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입암고택 앞에 들어서서 두런두런 들리는
TV 소리와 아줌씨들의 다정한 말소리를 들으니
뭔가 우리네 할머님들과 다르지 않음이 느껴져 정겨웠어
우연히 빼끔 한 쪽만 열어놓은
내당으로 통하는 쪽문으로 찍은 사진
물론 내당은 아니고, 내당은 저 오른쪽 문을 통해야 들어가겠지
하지만 안주인이 꾸며놓은 꽃들과 텃밭을 보니
시골의 구수함과 보드라운 맨드라미가 드러낸 우아함이
함께 느껴졌던 듯
원래 시골에 맨드라미가 많잖아
음, 그 전에 맨드라미가 그렇게 예쁘단 생각을 못했는데
새빨간, 그리고 때론 분홍빛의 맨드라미들이
저 밋밋한 벽을 장식하는 걸 보니
참 예쁘다, 싶었어
보들보들한 맨드라미들은
참 꽂꽂한 줄기를 갖고,
높은 키를 갖고 있었어.
어쩌면 하회마을에 대한 이미지를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파란 하늘, 초록빛의 녹음, 그리고 빨강빛의 맨드라미라 답할 거 같아.
이렇게 양진당까지 살펴본 후
나는 발걸음을 강가로 돌려서
주욱 강을 따라 걸었어......
그 나머지 이야기는
허어....너무 힘들어서 자고 내일 ㅠㅠ
사실 이거보다 건물 하나하나를 보고, 그 기둥을 어루만지며
생각하고 느낀 것들이 많은데
정리가 안되서 다 풀 순 없당 ㅠㅠ
음,
점점 갈 수록 서애를 느낄 수 있는 건물들을 보는데
어쩌다보니
점점 그의 나이먹음,에 따라 건물을 보게 된 기분이라
오묘했었음......
그건 내일로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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