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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애니메이션 프로듀서가 되었나? - 조영각

SV-001/R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4.03.06 20:05:20
조회 1311 추천 8 댓글 3
														

 

저번에 강릉 갔다오는 미친 짓을 감행하고 나서 얻어온 전리품 중에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에서 했던 '한국애니 탐구생활' 기획전 관련한 작은 책자가 있는데 거기에 실려 있던 글입니다.

 

돼지의 왕, 사이비,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제작과정에 참여한 조영각 프로듀서님께서 쓰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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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애니메이션 프로듀서가 되었나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돼지의 왕>, <사이비>,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프로듀서)

 

 

 

한국에도 독립 장편 애니메이션이 필요하다

 

사실 나는 애니메이션을 잘 모른다. 3편이나 되는 장편 애니메이션의 프로듀서를 맡았지만, 그것은 나의 의지라기보다는 상황에 이끌린 선택이라는 표현이 맞다. 독립영화를 보면서 많은 애니메이션을 보았고, 남들만큼 헐리우드의 애니와 일본 애니를 봤지만 소위 '오덕' 출신은 아니다. 단지 우리나라에도 독립 장편애니메이션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상황이 되었고,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2003년 서울독립영화제에 <지옥>을 출품한 연상호 감독을 만나 연이어 두 편의 작품을 하게 됐고, 비슷한 시기에 장편 애니를 만들고 있던 장형윤 감독의 작품에 뒤늦게 결합하면서 세 편의 작품을 하게 되었다. 연상호의 <돼지의 왕>과 <사이비>, 장형윤의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는 내가 참여하지 않았어도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 감독들은 이미 단편 애니메이션을 통해 충분히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작품에 대한 열정과 의지가 워낙 뛰어났다. 다만 장편 애니메이션의 투자 상황이 이들의 작품을 오랜 시간 허락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들은 불행히도 오랜 기다림 끝에 나와 함께 작품을 만들게 되었고, 일정하게 자기 영역을 만들어가고 있다.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간단하게나마 감독들과 함께하게 된 사연을 풀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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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장편 애니메이션의 출발 <돼지의 왕>

 

연상호의 단편 <지옥>은 대단히 뛰어난 작품이었고,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한 선입견을 깨트린 작품이지만 국내 영화제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아니, 좋은 평가는 받았지만 영화제에서 수상하지는 못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했던 연상호는 그에 대한 불만이 많았지만 쉬지 않고 외주작업을 병행하면서 자신의 작품을 만들었다. 2006년엔 <지옥 2>를 만들어 전편과 엮은 <지옥 - 두 개의 삶>을 배급하기 시작했다. 작품 아이디어를 쉬지 않고 내놓은 그는 장편 계획을 이야기하며 <돼지의 왕>의 최초 시나리오를 보내주었다. 2006년의 일이다. 나는 몇몇 아는 영화사에 투자 여부를 물으며 시나리오를 돌려 보았다. 작품은 좋지만 지나치게 어둡고 잔인한 이야기라 투자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뻔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후 연상호는 계속 자신의 작품 계획을 이야기하고, 답답함을 풀고 돌파구를 찾기 위해 집요하게 연락을 해왔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던 나는 그를 만나기가 부담스러웠다. 한동안 만나지 않던 사이, 그는 최규석 작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사랑은 단백질>(2008)을 만들었고 다른 작품들과 함께 <셀마의 단백질 커피>라는 제목의 옴니버스로 개봉을 했다.

 

그즈음 나는 KT&G 상상마당과 함께 '상상 메이킹 장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2007년부터 매년 한 편씩 독립 장편영화에 1억 원 규모의 제작비를 투자지원하고 개봉까지 책임지는 프로젝트였다. 별도의 제작위원회를 구성해서 작품을 선정하고, 영화가 잘 만들어질 수 있도록 서포트하는 지원 프로그램으로 민간 기업이 만든 모범 사례였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작품들이 윤성호의 <은하해방전선>(2007), 신동일 감독의 <반두비>(2009), 김종관 감독의 <조금만 더 가까이>(2010)였다. 연상호 감독은 그 프로젝트를 알고, <돼지의 왕>이 상상마당의 투자를 받을 수 있는지 문의를 해 왔다. 상상마당 제작위원들은 시나리오는 좋지만 과연 1억 원이라는 예산으로 1년이라는 기간 동안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지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연상호의 의지는 대단해서, 이미 콘티가 나와 있고 20% 정도를 혼자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1년 안에 만들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며 제작위원들을 설득했다. 제작위원들은 반신반의했지만 연상호 감독의 의지와 준비 상태를 확인하고, 내가 프로듀서로 결합하는 조건으로 <돼지의 왕>에 투자를 결정했다. 극영화의 프로듀서를 해 본 적은 있지만, 애니메이션은 처음이라 나도 긴장하긴 했지만 연상호의 의지를 믿고 얼떨결에 작품을 맡게 되었다. 투자가 결정되고 나서 2006년의 시나리오와 당시의 시나리오를 비교해 보았는데, 문서틀만 바뀌었지 오타까지도 비슷했다. 연상호는 시나리오를 수정하지 않은 채 원안 그대로 만들 생각을 갖고 백방으로 뛰었던 것이다. 그 후 감독은 무서운 속도로 예산을 짜고 스탭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 제작 시스템을 잘 모르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무실을 구하거나 목소리를 녹음할 배우들과의 미팅을 주선하는 일이었다. 사무실은 미쟝센단편영화제와 영화인회의가 쓰던 사무실을 임시로 사용하기로 했다.

 

2010년 8월부터 본격적인 제작에 착수했다. 나는 너무 급하게 하지 말라고 다독였지만, 목표를 설정한 연상호는 자신의 계획대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제작비도 빠듯했고 짧은 시간에 스탭들을 구성해야 했기 때문에 스탭 중 일부는 청강문화산업대학과 산학협력을 통해 애니메이션과 학생들을 단기 제작 스탭으로 구성했다. 배우들은 <사랑은 단백질>을 함께 했던 양익준, 오정세 씨와 김혜나, 김꽃비, 박희본 씨가 어린 시절 연기를 맡아 주었다. 영화는 2011년 초반에 약 130분 분량으로 완성되어 나왔다. 사실 연상호는 2011년 깐느영화제에 출품하겠다며 1월 말까지 영화를 완성하겠다고 호언장담했었다. 하지만 편집이 마무리되지 않아 출품을 미루고 언제 개봉해야 할 지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오랜 논의와 모니터, 편집 과정 끝에 반복되는 부분들을 줄이고 최종 96분 분량의 작품을 완성했다. 많은 부분을 버리는 아픔을 겪은 것이다. 첫 공개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하고, 11월에 개봉하는 일정을 잡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부산에서 첫 공개를 했을 때 관객들의 반응에 마음 졸이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연상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고, 폐막을 앞두고 갖은 시상식에서 <돼지의 왕>은 감독조합상과 넷팩상, 무비꼴라쥬상까지 3개 부문을 수상했다. 상복이 없던 감독이 <돼지의 왕>으로 한꺼번에 세 개의 상을 받았다. 상을 받아본 적 없는 나도 덩달아 많은 축하를 받았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시상식에 참여했던 깐느영화제 어드바이저 피에르 르시앙이 깐느영화제에 출품했냐며 극동 담당 프로그래머를 연결해 주었고, 서울로 돌아와 깐느영화제 감독 주간 초청을 확인 받았다. 개봉과 함께 다른 영화제 출품 계획을 갖고 있었지만, 모든 것을 취소하고 깐느영화제에 가기로 한 것이다. 영화를 만들어 깐느영화제에 가겠다는 연상호의 계획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하지만 6개월간 아무 말도 못 하고 공식 발표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은 답답하기 그지없었고 연상호는 비밀임을 전제로 술자리에서 지인들에게 찔끔찔끔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어느덧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비밀이 되었다. 그것과 무관하게 개봉 스코어는 많은 사람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2만 명 정도에서 마무리되었다. 아쉬운 수치이지만 <돼지의 왕>은 그해의 데뷔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판타지적인 요소가 전혀 섞이지 않은 어둡고 암울한 영화, 한번 시작되면 멈추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스토리,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와 치밀하게 계산된 연출력. 연상호의 이미지는 이렇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돼지의 왕>이후 연상호의 행보는 더욱 주목을 받았다. <돼지의 왕>이 갖는 의미는 절대로 가능하지 않다고 여겨졌던 저예산 독립 장편 애니메이션의 첫 출발을 알렸다는 점이다. 웬만한 상업영화를 넘어서는 고예산에 오랜 기간 만들어야 완성될 수 있다는 선입견을 깨트리며 자체 제작 시스템으로 장편 애니를 만들 수 있다는 사례를 남겼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시나리오의 완성도보다는 고퀄리티의 컴퓨터 그래픽과 화려한 볼거리 중심의 아동용 기획에 집중했던 국내 애니메이션들의 사례에서 멀리 비켜나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해냈다. 내가 그 작업에 참여했다는 점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2011년은 공교롭게도 <마당을 나온 암탉>이 한국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최초로 200만 관객을 넘는 흥행 스코어를 냈고, 오랜 시간 작업한 <소중한 날의 꿈>이 개봉한 해이다. 더불어 <돼지의 왕>까지 개봉하며 한국 애니메이션의 다양한 가능성을 선보인 중요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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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의 두 번째 장편 <사이비>

 

연상호는 <돼지의 왕>을 마무리하기 전부터 차기작을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에게는 휴식보다는 차기작에 투자할 투자사가 더 필요했다. 다행히 <돼지의 왕>이 큰 성과를 냈기 때문에 투자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나는 그가 좀 더 차분하게 차기작을 준비하기 바랐지만, 그의 머릿속은 이미 차기작 구상을 마쳐놓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프로듀서로 함께 하기를 바랐다. 큰 능력이 있는 프로듀서는 아니지만 감독 곁에서 작품을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듀서로 인정받은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속도는 따라갈 수 없었다. 콘텐츠진흥원으로부터 개발비를 지원받아 프리프로덕션을 시작할 무렵 이미 여러 투자사와 제작사를 만난 연상호는 <돼지의 왕>을 좋게 봤던 NEW로부터 투자를 약속받아왔다. NEW는 한 편이 아니라 차차기작까지 함께 하고 싶어했다. 투자 약속은 2012년 깐느영화제에 가기 전에 결정된 일이었다. 깐느에 갈 때 즈음에는 <사이비>의 프리프로덕션이 진행 중이었다. 그래서 내 명함도 <돼지의 왕>과 <사이비>가 동시에 들어가는 명함을 만들었다.

 

깐느에서 돌아온 연상호는 <돼지의 왕>으로 유명 감독이 되어 있었고, 실사를 포함한 제안이 밀려오고 있었지만 <사이비>의 제작에 착수했다. 누구보다도 빠른 스피드로. 그러면서 그는 강도하 작가의 웹툰 <발광하는 현대사>의 제작에 들어갔다. 이것도 NEW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저에산에 무서운 속도로 작업을 하는 감독의 작품에 투자를 마다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투자사는 연상호의 추진력과 아이디어들을 높이 샀다. <발광하는 현대사>의 감독은 <사이비>의 라인 프로듀서로 결합했던 홍덕표가 맡았고, 연상호가 프로듀서가 되었다. 나는 <사이비>에 매진한다는 이유로 <발광하는 현대사>의 제작에는 빠지게 됐다.

 

<사이비>는 계획대로 착착 만들어져 제작에 들어간 지 1년이 채 안 되는 2013년 여름에 완성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이번에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을 하고 개봉하는 순서를 밟게 되었다. <돼지의 왕>보다 더 지독한 스토리에 완성도는 훨씬 높아졌다. 애니메이션적인 요소도 훨씬 줄어든 작품이었다. <돼지의 왕>에서 다소 거슬렸던 움직임들이 <사이비>에서는 많이 보완되었다. 해외 영화제에서도 여러 차례 수상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하지만 작품의 호평과 <돼지의 왕>보다 커진 개봉 규모에도 불구하고 <사이비>의 흥행 스코어는 <돼지의 왕>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그걸 생각하면 지금도 자다가 깰 정도로 아쉽다. 연상호와 <사이비>를 하면서 소포모어 징크스를 우려했는데, 그런 부분을 상쇄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다. 작품에 대한 좋은 평가와 더불어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어떤 이는 <돼지의 왕>의 여파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너무 빨리 만들어 진 것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어떤 이는 전작의 스타일과 너무 비슷하게 느껴진다고도 했고, 또 많은 이들이 실사로 만들 시나리오를 굳이 애니메이션으로 왜 만드냐고 물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작품을 생산해 내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다. 오래 준비하고 몇 달 만에 촬영을 마치는 극영화와는 다르게 애니메이션은 수십 명의 스탭들이 1년 이상 컴퓨터에 앉아 작업을 해야 한다. 제작을 하고 있어야 스탭들의 고용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그것이 스튜디오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그는 감독과 제작을 겸하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고 당분간 이런 방식의 작업을 고수할 것이다. 고예산으로 오랜 시간 작업하는 것보다 저예산으로 여러 작품을 하는 게 낫다고 연상호는 생각하는 것 같다. 나도 동의한다. 그는 여러 작품을 통해 조금씩 다양한 시도들을 하면서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지켜보는 창작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감독에게 왜 실사영화를 만들지 않고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냐는 질문은 개인적으로 좀 무례하다고 생가한다. 아무도 왜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가,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이 애니메이션이 아니냐고 묻지 않는다. 애니메이션은 어때야 한다는 선입견이 <사이비>에도 그대로 적용된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오히려 연상호가 아무도 하지 않는 실사에 가까운 애니메이션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은 좀 차가웠던 게 사실이다. 흥행결과에는 연상호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적지 않게 당황했다. 어느 정도 유명세가 만들어진 감독의 두 번째 영화이면서 NEW라는 강력한 투자배급사의 배급과 마케팅이 먹히지 않았다는 사실에 충격도 받고 허망하게 느끼기도 했다. 그렇지만 작품에 대한 믿음은 변하지 않았다. 어쨌든 연상호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갈 것이다.

 

연상호는 <사이비>를 끝내자마자 <서울역>이라는 좀비 애니메이션의 제작에 착수했다. 투자 유치 역시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놀라운 속도이다. 나는 다음 영화에는 함께 하지 않게 되었다. 연상호 감독의 속도를 따라가기도 어렵고, 굳이 내가 없어도 완성도 있는 영화를 만들 것이라 생각한다. 연상호의 스튜디오 다다쇼는 이제 세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는 회사가 되었고, <발광하는 현대사>라는 IPTV용 시리즈 애니메이션의 오픈을 앞두고 있다. 화려한 애니메이션은 아니지만 연상호의 색깔이 진하게 묻어 있는 작품을 계속 만들 것으로 기대하고, 그의 행보를 지켜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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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스타일의 감독을 만나다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장형윤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으로 서울독립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영화제에서 단편인 <아빠가 필요해>(2005)와 <무림일검의 사생활>(2007)로 주목받았고, <무림일검의 사생활>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감독이었다. 여러 편의 단편을 만든 그 역시 자신의 스튜디오 '지금이 아니면 안돼'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작품이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였다. 대략 2008년 즈음부터 준비에 들어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돼지의 왕>보다 먼저 제작에 착수했지만, 공적 지원이나 투자를 받지 못해 작품 진행이 더디게 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애니메이션 제작 지원은 콘텐츠진흥원과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등에서 기획개발비, 파일럿 지원, 산학협력 지원, 본편 제작지원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본 영화가 투자를 받기 위한 파일럿 영상을 만드는 데 지원하는 등 프로그램이 다양한 데 반해 장편영화를 제작하기 위한 지원 프로그램은 부족하다. 때문에 여러 공적 지원을 순차적으로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기획개발이나 파일럿 단계에서 프로젝트가 머물게 되는 문제가 있다.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가 그런 케이스였다. 전체 계획 속에 작품이 기획되고 제작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단계 단계를 거쳐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물론 어느 순간에 공적지원을 넘어 투자를 유치하면 바로 제작에 들어갈 수 있지만 그런 경우는 흔하지 않다. 곧 제작에 들어갈 것 같은 영화들이 중간에 엎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비교적 다양한 제작지원 프로그램이 있음에도 우리가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극장용 장편 애니가 많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는 처음 기획부터 같이 시작한 것이 아니라 작품이 난항을 겪게 되고 함께 작품을 하던 프로듀서가 중간에 하차하면서 제안을 받게 됐다. 감독으로부터 제안을 받을 당시 <사이비>가 중간 정도 완성되고 있을 때였는데, 연상호에게 양해를 구하고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프로듀서도 함께 맡게 되었다. 이 작품 역시 나의 적극적인 의지라기보다 좋아하는 감독의 작품을 함께 마무리하자는 생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연상호의 작품이 투자가 마무리 되고 나서 제작에 들어간 반면, 투자를 받지 못하고 공적 지원에 의존한 장형윤의 작품은 제작 규모를 확정하지 못한 채 허비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런 시간의 누수는 결국 제작 기간이 길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돼지의 왕>보다 먼저 기획했던 영화가 <사이비>보다 늦게 나오게 된 것이다. 나중에는 지원받은 예산이 모두 소진되어 내가 투자를 받아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몇 군데 회사에 시나리오와 미완성본을 보여주고 투자를 요청했지만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독립영화계에서 오래 활동했던 '인디플러그'에서 투자를 결정하면서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인공위성 일호와 얼룩소 경천의 목소리에 맞는 배우를 찾기 위해 꽤 많은 배우들의 목소리를 찾아 들었고, 가능하면 인지도가 있는 배우를 캐스팅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행히 정유미 씨가 시나리오만 보고 흔쾌히 응해주었고, 유아인 씨까지 추천해 주었다. 목소리도 감독과 내가 생각한 대로 캐릭터와 잘 맞았다. 그러나 완성 후에는 애니메이션에 성우를 쓰지 않았다고 악성 댓글에 시달려야 했다. 나와 감독은 견딜 수 있지만 선의로 출연한 배우들에게 누가 될까봐 신경이 많이 쓰였다. 영화도 보지 않고 성우를 쓰지 않았다고 배우들의 목소리를 죄악시 하는 분위기에 할 말을 잃었다. 성우를 쓰기 위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배우들의 연기를 단죄하는 것은 지금도 납득할 수 없다.

 

 

장형윤은 허황돼 보이는 이야기를 시치미 뚝 떼고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스타일이다. 연상호와 장형윤은 동시에 한국에서 비슷한 위치에서 작업하는 애니메이터지만 전혀 상반된 성격의 작품을 만드는 감독들이다. 작업 스타일뿐만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방식도 거의 정반대였다. 연상호가 추진력 있게 자신의 계획을 밀어붙이며, 자신이 정해 놓은 틀을 지키기 위해 스트레스를 버는 스타일이라면, 장형윤은 자신이 정한 시나리오에 수정에 수정을 가하고 변형시키는 스타일이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성향이다. 물론 그 자신이 가장 힘들겠지만. 너무나 반대인 성향의 감독들과 동시에 작업을 진행하다보니 어느 장단에도 춤을 추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자주 맞게 되었다. 연상호는 만나고 돌아서면 일이 진행되고 있어서 내가 일을 쫒아가기 버거운 반면, 장형윤은 어느새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고민하고 있었다. 때문에 작업은 더디게 진행되었고, 버리게 되는 그림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황당한 상상력을 그럴 듯하게 만들어 실행하는 솜씨와 긴 시간 포기하지 않고 작업을 버텨냈다는 것을 생각하면 느긋하면서도 대단한 뚝심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된다. 여기에 썰렁한 듯 하지만 실소를 자아내는 유머 감각은 장형윤의 독특한 세계를 만들어내는 원천이다. 그러고 적은 인원이지만 감독을 신뢰하는 스탭들이 어려운 조건에서도 끝까지 함께 했다는 것은 '지금이 아니면 안돼'의 중요한 자산일 것이다.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는 공적지원금과 투자사의 투자금에 마케팅 비용까지 더하면 10억 원의 적지 않은 총제작비가 들어갔다.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위해선 극장에서 30만 명의 관객을 모아야 하는데 예술영화관을 중심으로 한 배급으로는 수치를 맞추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어린아이와 가족관객을 타겟으로 와이드 릴리즈 방법을 선택했다. 인공위성에서 소녀로 변한 일호와 마음을 잃고 얼룩소가 된 경천과의 로맨스가 중심이지만, 판타지 애니메이션으로 포장을 하고 관객들을 만날 준비를 했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애니메이션에 대해 극장은 인색한 편이었다. 와이드 릴리즈라고 하지만 대부분 오전에만 극장이 열린 상황이다. 아지 결과에 대해 속단할 수 없지만 목표로 한 관객을 만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장형윤은 작업 기간이 길어지면서 자신이 애초에 그렸던 시나리오의 모습과는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장형윤의 색깔이 온전히 묻어있는 작품이 탄생했다. <무림일검의 사생활>을 본 사람이라면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를 보고, 그 감독이 돌아왔다고 반가워 할 것이다. 장형윤 역시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 다음 작품은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보다 빨리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그러나 해봐야 안다. 공적 지원이 원하는 만큼 이루어질지, 상업적인 자본의 투자를 받을 수 있을지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 빨리 시나리오를 마무리하고 제작기간을 단축하면서 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 프로덕션을 꾸리는 것이 다음 임무일 것이다.

 

 

 

세 작품을 마무리하고

 

연상호와 장형윤의 작품을 2010년부터 2014년까지 4년에 걸쳐 완성하고 개봉했다. 그런데 나는 그림 한 장 그리지 않았고, 지금도 애니메이션을 잘 안다고 말하기 어렵다. 감독들 어깨너머로 어떻게 애니메이션의 제작이 이루어지는지 지켜봤을 뿐이다. 심지어 예산관리와 회계조차도 스튜디오의 대표인 감독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내가 한 것은 감독들이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되거나 작품의 방향이 잘못 가지 않도록 독려하는 역할이었다. 감독과 시나리오 얘기를 하고, 제작과정을 정리하고 일정을 조절하는 역할 정도. 그에 대해 짜증을 내서 감독들의 스트레서를 가중시키는 일들을 한 것 같다. 어쨌든 이 애니메이션들은 한국 애니메이션이 다양화되고 부흥기를 만드는 데 시금석이 될 것이라 자부한다. 15년 전, 그러니까 2000년 초반 독립장편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한두 편씩 극장에 개봉을 하다가 지금은 독립영화 전용관이 생기고, 한해의 대표작을 거론할 때 독립영화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처럼 언젠가는 연간 10여 편이 넘는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고 개봉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 중에는 물론 연상호와 장형윤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길 바란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극을 받고 영향을 받은 감독들도 탄생할 것이다.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한다. 혹시 올지 모를 기회에 대비해 나도 네 번째 애니메이션 프로듀서가 될 준비를 하고 있어야겠다.

 

 

 

 

 

뒤에 최유진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 사무국장님 글도 있는데 그건 나중에 올려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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