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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축의 이해 - 9부 [탑파건축 개론]
[시리즈] 한국건축의 이해 · 한국건축의 이해 - 1부 [목조건축 개론] · 한국건축의 이해 - 2부 [목조건축 각론 I] · 한국건축의 이해 - 3부 [목조건축 각론 II] · 한국건축의 이해 - 4부 [목조건축 각론 III] · 한국건축의 이해 - 5부 [목조건축 각론 IV] · 한국건축의 이해 - 6부 [목조건축의 역사 上] · 한국건축의 이해 - 7부 [목조건축의 역사 中] · 한국건축의 이해 - 8부 [목조건축의 역사 下] · 한국건축의 이해 - 9부 [탑파건축 개론] · 한국건축의 이해 - 번외 [사찰건축 15선] 탑은 한국의 문화재를 논함에 있어 빠트릴 수 없는 소재임. [한국건축의 이해] 탑파건축 편은 3부 정도로 마무리될 것 같은데, 이번 9부에서는 탑의 종류와 역사, 10부에서는 시대별 탑파건축의 흐름, 11부에서는 부도라고도 불리는 승탑에 대해 다루려고 함. 그리고 목조건축 편까지는 최대한 내 사진을 사용하려고 했는데, 필요한 사진을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냥 문화재청 사진을 사용하려 함. 일단 탑파(塔婆)란 용어는 산스크리트어 스투파(stupa)에서 기원했음. 스투파란 본래 무언가 높이 퇴적된 형상을 이르는 단어였는데, 망자를 장사지낸 뒤 흙을 높여 쌓는 것을 스투파로 부르며 의미가 변화하였음. 이후 석가모니의 불사리를 거대한 스투파에 모시며 스투파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장치라는 현재의 탑과 같은 의미가 되었음.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며 '탑파'로 음차되었고, 이것을 줄여 탑으로 부르게 되었음. [산치 대탑(스투파). 사진 : 세상의 모든 지식] 스투파의 형태는 기본적으로 돔형의 구조물 위에 산개라는 양산 모양의 구조물을 올린 모습임. 돔형의 구조는 수미산을 형상화한 것으로, 불교의 우주관이 반영되어 있음.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초기에는 탑의 각이 몹시 많았는데, 이는 본래 탑의 원형(原形)은 원형(圓形) 평면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임. 아래 사진은 중국 하남성(河南省)의 숭악사(嵩岳寺) 12각15층석탑으로, 534년 제작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탑임. (개인 블로그에 들어가면 최신의 사진들이 많은데, 지식백과에서는 이 사진밖에 구할 수 없음. 컬러사진은 개별적으로 찾아보기 바람) [숭악사 12각15층석탑. 사진 : 한국 미의 재발견 탑] 탑파가 전래된 중국에서는 주로 벽돌이나 나무로 탑을 제작하였음. 이것이 전탑(塼塔)과 목탑(木塔)임. 목탑과 전탑은 중국 탑의 주류가 되었으며, 이것이 불교의 전래와 함께 삼국시대 한반도에 들어왔음. [평양 정릉사지. 사진 : 조선향토대백과] 고구려는 372년 불교가 전래된 이래 393년 수도 평양 인근에 9개 사찰이 생겼을 만큼 널리 전파되었음. 고구려는 목탑만을 수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고구려 목탑의 특징은 팔각형의 평면임. 위 정릉사지 사진에서 팔각형 유구가 목탑지임. [부여 능산리사지. 사진 : 문화재청] 백제 또한 목탑을 수용하였음. 384년 불교를 수용한 백제는 고구려와 달리 방형평면의 목탑이 제작되었음. 이는 가장 늦은 521년 불교를 수용한 신라 또한 마찬가지였음. 이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며 방형탑은 탑의 주류가 되었음. [보은 법주사 팔상전 종단면도와 사천주. 사진 : 문화재청] 현재 한반도에는 목탑이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 탑파건축의 한 축을 이해하는 데 있어 큰 결점이 되고 있음. 목탑은 기본적으로 심주(心柱)라는 큰 기둥을 중심축으로 하여 이것이 탑의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구조임. 심주의 주변을 둘러싼 4개의 기둥을 사천주(四天柱)라고 하는데, 탑이 수미산을 형상화한 것이기에 수미산을 사방에서 방위하는 사천왕이 사천주에 대응한다고 볼 수 있음. [경주 황룡사지 심주초석] 심주는 목탑의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이기에 심주초석에 사리공을 파 이곳에 사리를 안치하였음. [익산 미륵사지 서탑. 사진 : 문화재청] 한편, 200여년간 목탑만 존재했던 한반도에 최초의 석탑이 등장함. 그것이 바로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임. 미륵사지석탑은 최초의 석탑으로, 목탑의 구조적 형태를 똑같이 모방하였음. 따라서 기둥과 면석 등을 모두 별석으로 제작하여 실제 목탑에 대응하도록 하였음. 당시 기둥의 흘림까지 반영하여 실제 건축물과의 유사성을 높였음. [익산 미륵사지 서탑 심주석. 사진 : 문화재청] 미륵사지석탑은 목탑을 모방하였기에 내부로 진입이 가능한 통로와 심주에 해당하는 심주석 또한 제작에 반영되었음. [미륵사지서탑 사리장엄구와 발견장면. 사진 : 문화재청] 본래의 목탑이라면 사리장엄구는 심주 아래의 초석에서 발견되어야 하지만, 석탑이라는 특성상 심주석 내부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음. 같이 발견된 금제 사리봉영기에 따르면 639년(무왕 20) 무왕비 사택적덕의 딸의 시주로 세워졌음. 참고로, 이것이 발견된 2009년 이전까지는 무왕(서동, 맛동)의 부인은 신라 진평왕의 딸인 선화공주로 알려져 있었으나, 무왕의 부인이 전혀 다른 인물인 백제 귀족 사택적덕의 딸로 밝혀지면서 서동요 설화는 큰 타격을 입게 되었음. 최근 재발굴로 익산쌍릉 대왕묘의 피장자가 무왕으로 확실시되는 가운데 무왕과 선화공주 설화의 진위여부는 여전히 오리무중임. [익산 미륵사지 석탑, 1910년. 사진 : e뮤지엄] 미륵사지석탑은 이와 같이 최초의 석탑으로 한반도 탑파건축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탑 중 하나임.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사진 : 문화재청] 미륵사지석탑은 최초의 석탑으로써 그 의의는 높으나, 목탑의 형태를 고수하다 보니 몹시 비효율적이었을 것임. 이러한 불합리성을 해소하고 백제 석탑의 표준이 된 것이 바로 정림사지 오층석탑임.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기단부. 사진 : 문화재청] 백제계 석탑의 특징은 옥개석의 낙수면이 몹시 얇고 기단이 단순하다는 점임. 이러한 백제계 탑의 특징은 10부에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겠음. 639년 미륵사지석탑이 세워지고, 660년 백제가 멸망하였기에 백제의 석탑이 자라날 시간적 여유는 몹시 부족했음. 그 혼란한 20여년의 와중에 완성된 정림사지석탑은 백제의 비례미를 담고 이후의 백제계 석탑의 모델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큼. [경주 분황사 석탑. 사진 : 문화재청] 한편, 신라 또한 석탑을 제작했음. 하지만 신라의 석탑은 목탑이 아닌 전탑을 수용하였는데, 전탑을 모방한 석탑이라 하여 모전석탑(模塼石塔)이라 부름. 벽돌과 비슷한 색의 돌을 벽돌 크기로 잘라 쌓았기에 겉보기에는 전탑과 구분하기 어려움. [경주 분황사 석탑 인왕상. 사진 : 문화재청] 분황사석탑은 미륵사지석탑보다 5년 앞선 634년 분황사 창건 당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됨. 하지만 본질적인 석탑의 시작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흔히 미륵사지석탑을 석탑의 시초로 봄. [경주 감은사지 동 삼층석탑] 실질적인 경주의 첫 석탑은 682년(신문왕 2) 제작된 감은사지 삼층석탑임. 여러 연구결과 둘 중에서도 동탑이 서탑보다 먼저 세워졌음이 밝혀졌음. [경주 감은사지 서 삼층석탑] 백제계 석탑과 달리 통일신라의 석탑은 낙수면의 기울기가 풍부하고, 기단부가 충실함. 백제 석탑이 김부식이 이른 바 '儉而不陋 華而不侈'로 표상되는 절제미와 비례미를 보여준다면, 통일신라의 석탑은 여유로우면서도 풍만한, 장중하면서도 경쾌한 균형미가 돋보임. [경주 감은사지 서 삼층석탑 찰주. 사진 : 문화재청] 초기의 통일신라 석탑은 감은사지석탑으로부터 비롯된 비례미를 따랐음. 감은사탑과 같은 장인집단에 의해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선사지 삼층석탑 또한 석질과 추가된 문비조각에서의 차이만 있을 뿐 감은사탑과 동일한 크기와 양식임.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사진 : 문화재청] 감은사탑 이후 한 세기 동안 라원리 오층석탑, 구황동 삼층석탑, 창림사지 삼층석탑 등 각기 개성을 가진 석탑들이 제작되었음. 그렇게 통일신라 미술의 최전성기였던 경덕왕대, 기념비적인 석탑이 만들어졌으니 바로 불국사 삼층석탑임.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사진 : 문화재청] 불국사 삼층석탑, 일명 석가탑은 751년 제작되었으며, 이후의 모든 통일신라계 석탑의 원형이 되었음. 불국사 삼층석탑은 감은사지 삼층석탑으로부터 시작된 신라계 석탑의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좀 더 날렵하고 상승감 있는 흔히 생각하는 통일신라 석탑의 기초를 잡은 석탑임.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사진 : 문화재청] 한편, 전탑이 아예 한반도에 유입되지 않은 것은 아님. 비록 그 시초가 모전석탑이긴 했지만, 안동지역을 중심으로 전탑이 제작되었음. 현재 제대로 남아있는 전탑은 전국에 총 5기, 그 중 3기가 안동에 위치함. [안동 조탑동 오층전탑. 사진 : 문화재청] 한반도는 지질적 특성상 벽돌을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은 토양을 가졌음. 안동지역은 그나마 벽돌을 제작할 수 있는 지질적 여건을 갖추었기에 일부 전탑이 제작되었음.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 사진 : 문화재청]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은 안동지역 밖에 있는 유일한 통일신라 전탑으로, 상륜부가 남아 있음.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1914년. 사진 : e뮤지엄]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은 5개 전탑 중 규모가 가장 큰 탑임. 전탑은 석탑에 비해 높게 짓기 유리하기에 가장 큰 석탑인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14.5m)보다 큰 17m의 규모임. 조선시대 기록에 금동 상륜부를 관아로 이동시켰다고 하니, 본래 송림사 전탑과 유사했을 듯함. 또한 기와가 일부 남아있어 본래 기와로 덮여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음. [안동 동부동 오층전탑. 사진 : 문화재청] 안동 동부동 오층전탑은 기와가 잘 남아있어 여타 전탑의 원형을 추정해 볼 수 있음. 기와는 많은 부분 복원되기는 했지만, 복원 시점에 다른 전탑들에 비해 기와가 많이 남아 있어 위와 같이 복원되었음. [의성 석탑리방단형적석탑. 사진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편, 토탑(土塔)으로 분류되는 탑도 있음. 전국에 10곳이 안 되고, 형태도 정형적이지 않아 연구가 미비하지만, 사찰에 설치된 것으로 보아 탑의 일종임에는 확실해 보임. 대체로 방형이며 단을 쌓은 형태라 방단형적석탑, 혹은 적석탑으로 불림. 의성 석탑리, 안동 석탑리, 단양 사지원리, 문경 미면사지 등에 그 예가 남아있으며 산청 구형왕릉도 실은 적석탑으로 추정됨. 목탑, 전탑, 토탑은 그 수가 극히 적기에 한반도 탑파건축사에 있어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는 것은 석탑임. 이제 석탑의 상세명칭에 대해 알아보겠음. [석탑 개념도. 그림 : 알기쉬운 한국건축 용어사전] 일단 석탑은 크게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로 나뉨. 기단부는 건물의 기단, 탑신부는 건물의 몸체에 대응함. 초기 석탑의 기단부는 낮은 편이었는데, 석탑과 목탑의 대응관계가 약해지며 점차 석탑 고유의 형태로 변화했음. 종종 석탑의 기단을 층수로 잘못 세는 경우가 있는데, 층수는 탑신부만 세는 것임. [기단부 개념도. 그림 : 알기쉬운 한국건축 용어사전] 기단부는 통상 2단으로 되어 있음. 위 그림에선 상대, 하대란 표현이 쓰였는데 상층기단, 하층기단으로 좀 더 많이 씀. 문경 등 특정 지역에서는 단층기단으로 조성되는 사례도 있고, 드물게 3중기단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음. [경주 구황동 삼층석탑 기단부. 사진 : 문화재청] 석탑의 기단은 가구식으로 표현되어 있음. 즉, 기둥과 면석이 구분되도록 표현되었는데, 이 때 기둥 부분을 탱주, 기둥과 기둥 사이 부분을 면석이라고 함. 또 기단 윗부분에 넓게 깔린 상판을 갑석이라고 함. 불국사 삼층석탑의 비례를 따르는 통상의 통일신라 석탑들은 상층기단은 2분할, 하층기단은 3분할로 구성되는데, 초기 통일신라 석탑들은 상층기단도 3분할인 경우가 많음. [탑신부 개념도. 그림 : 한국 미의 재발견 탑] 탑신부는 탑의 몸체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크게 탑신석과 옥개석으로 구성되어 있음. 탑신석은 건물의 기둥, 옥개석은 건물의 지붕에 대응함. 탑신석에는 기단부와 같이 우주가 새겨져 있음. 탱주가 모든 기둥 형태를 총칭한다면, 우주는 모서리기둥을 뜻함. [안동 옥동 삼층석탑 옥개석. 사진 : 문화재청] 옥개석 아래에는 계단 형태의 층급받침이 있고, 옥개석의 하단 모서리를 따라 홈이 파여 있어 빗물이 탑신석을 더럽히지 않게 함.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 사진 : 문화재청] 옥개석의 상부 모서리를 전각이라고 하는데, 끝으로 갈수록 약간 들려 있어 경쾌함을 주는데 이것을 반전을 주었다고 표현함. 또한 과거에는 석탑의 옥개석 끝에 풍경을 걸었는데, 풍경을 걸기 위해 뚫은 구멍을 풍탁공이라고 하는데, 풍경이 남아있는 경우는 극히 드묾. [상륜부 개념도 : 그림 : 알기쉬운 한국건축 용어사전] 상륜부는 탑의 꼭대기 부분으로, 가장 장식적인 부분임. 상륜부 부재들은 쇠꼬챙이 같은 금속제 원뿔형 구조물인 찰주(擦柱)에 끼워져 올라가는데, 소규모 탑에서는 凹凸 형태로 찰주 없이 끼우는 경우도 있음. 대체로 석제 혹은 금속제인데, 굉장히 약한 부분이라 남아있는 경우가 극히 드묾. 남원 실상사, 문경 봉암사, 장흥 보림사 석탑이 상륜부가 잘 남아있는 대표적인 예시임. [석탑 상륜부와 인도 스투파의 비교. 그림 : 한국 미의 재발견 탑] 상륜부의 형태는 기본적으로 스투파의 모습을 모방하였음. 기단과 대응되는 노반을 시작으로 대략적인 형태가 유사함을 볼 수 있음. 스투파를 보면 스투파의 상륜부는 차트라(보륜)부터임을 알 수 있는데, 상륜은 보륜을 뜻함. 이것이 한반도에 전래되며 노반, 복발, 앙화가 추가되어 스투파 전체의 모습을 나타내게 되었음. [남원 실상사 동 삼층석탑 상륜부. 사진 : 문화재청] 석가모니는 생전에 자신의 사리가 봉안될 스투파에 대해 상륜부를 구성하는 부재는 종류가 꽤나 많음. 먼저 최상층 옥개석 위에 얹힌 방형 석재를 노반(露盤)과 그 위에 스투파의 돔을 형상화한 복발(覆鉢)이 얹힘. 앙화(仰花)는 연꽃잎이 피어있는 형태로 수미산 정상부를 의미함. [남원 실상사 서 삼층석탑 상륜부. 사진 : 문화재청] 앙화 위에는 보륜(寶輪)이 여러 개 올라감. 보륜은 불교의 세계관에서 신들의 영역인 33천을 상징하는데, 보륜을 33개 올릴 수는 없기에 대략 3~6개 정도임. 그 위의 보개(寶蓋)는 신성한 인물을 모시기 위해 씌우는 양산과 같은 것임. 일반적으로 불상 위에 씌우는 닫집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음. [문경 봉암사 삼층석탑 상륜부. 사진 : 문화재청] 보개 위의 길쭉한 부재인 수연(水煙)은 스투파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데, 연꽃잎을 상징한다고 추정됨. 그 위의 구슬 모양인 보주(寶珠)와 용차(龍車)는 스투파의 병 모양 부재인 칼라사가 변용된 것임. [장흥 보림사 북 삼층석탑 상륜부. 사진 : 문화재청] 이렇듯 상륜부는 불교적 세계관이 투사되어 있는 스투파를 모방한 탑의 가장 신성한 부분임. [평창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상륜부. 사진 : 문화재청]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의 상륜부는 금동장식까지 모두 남아 있어 상륜부의 장식성을 확인할 수 있음. 보륜의 테두리에 붙인 금동장식과 풍경이 달린 화려한 보개 등이 돋보임. 이렇게 [한국건축의 이해] 탑파건축 첫 글에서는 탑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에 대해 알아보았음. 다음 글에서는 통일신라부터 조선까지, 탑파건축의 흐름에 대하여 알아보겠음. - dc official App
작성자 : BABO고정닉
픽도의 SR-01 슈퍼삐약이 후기-2
[시리즈] 슈퍼삐약이 · 픽도의 SR-01 슈퍼삐약이 후기-1 · ㄴㅇㅈ) 슈퍼삐약이 후기 1일차 그렇게 9시 출발로 약속을 잡아놓은 상황에서 나의 저녁밥을 해결하고다시 숙소로 돌아와 30분정도 잠을 청했을까동행자 양반이 있는 옆방에서 우당탕 소리가 나서 선잠에서 깼다이때 시간 19시 였나?여기서 더 시간 죽이는것보다 둘다 일어난 상태면 어서 움직이는게 낫겠다 싶어 얼른 전화를 갈김'옆집에 식당 열었으니 밥 해결하고 오시라''ㅇㅋ'그 잠깐의 시간동안에도 첫 숙박전까지 일정이 고되었는지 또 뭔가 먹을수 있는 상태가 되더라 ㅋㅋhttps://gall.dcinside.com/m/cycle/703188 9시간 쉬었다 - 로드싸이클 마이너 갤러리가야한다gall.dcinside.com시간제한있는 장거리 대회는 매운끼 있는 음식 먹다가 속 탈나서 설사하는순간봉크 + 설사로인한 피부안장통 -> 좆망그래서 항상 즐겨먹는 컵라면이 튀김우동 & 짜파게티그리고 이때의 모든 편의점에서 핫식스 원플원 행사 중이어서동행자 양반이랑 카페인 까먹을일 있으면 저걸로 계속 번갈아가며 계산하며 하나씩 먹었다 개꿀ㅋㅋ동행자 양반도 저녁에 투 메뉴로 조져주고나도 저녁먹은뒤 또 컵라면까지 조져주니 배가 든든하더라자전거 명언이 있지배고프지 않다고? 먹어라배부르지 않다고? 먹어라딱 이말이 맞다어쨋든 다시 각자 끼니를 해결하고 출발 하려는데동행자 양반이 DNF 플랜을 세우는거임'만약 더 가다가 아프면 진짜 DNF 칠거임'지금까지 단둘에 상황이 좋지 않아도' 가자 ㅋ 시발거 ㅋ '이런 느낌이었는데분위기 확 가라앉음 십돌산령 가기전 도고터널(3.5km, 5.2%) 가는길PBP완주한 파딱새끼가 돌산령 빡쎄다 하도 겁줘가지고부담감 안고 출발;;;사실상 우리끼리는 수많은 업힐중돌산령>화악산>조침령>해산령>그외 순으로 난이도로 인지더군다나 수많은 랜도너센빠이들이 돌산령 경치 죽인다고 말씀 하셨는데랜도너에게 경치좋다 = 그만큼 많이 올라간다 = 넌 뒤졌다 로 통하기 때문에...돌산령이 본격구간 시작하고나서 얼마 안가 돌산령터널과 돌산령옛길로 갈라지고우리의 코스는 돌산령 옛길로 빠지는데..?생각보다 갈만했음ㅋㅋ일단 기본적으로 돌산령이 국종시리즈인 평화누리길 5번 인데다가자린이들을 위한 국종시리즈를 그렇게 느ㅈr9없이 조질리가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가 나의 추측파딱쉑 근들갑 하나는 알아줘야한다 ㄹㅇ아니 근데 첫숙박때 3시간밖에 못자고 다른짓 한 대가를 지금부터 톡톡히 받는데분명히 갈만한 코스임에도 불구하고 돌산령 70%쯤 지났을까 온몸에 힘이 풀리더라더군다나 파워미터가 배터리교체식 가민랠리고출발때만 해도 양호로 표시되었던 배터리가 화악산 내리막부터 배터리 부족을 띄우더니기어이 돌산령에서 오링나버림페이스 조절을 위한 파워 모니터링이 불가능한 상황아 시발 몸도 힘들고 개같은거 걍 내려왔음반면에 동행자 양반은 무릎이 되살아났다고 존나게 방방 날아다니더라 죽이고싶게 ㄹㅇㅋㅋ컨디션 엄할로 맞춰지게 이양반 일어나자마자 깨웠어야 했나 싶었음그렇게 500미터 끌바 하다가 다시 탈만해져서 타고 정상 도착정상에 가까워짐에 따라지뢰주의 표지판과 민통선 안내문이 다시 우리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상기 시켜준다아.......... 돌산령 경치가 그렇게 좋다던데비때문에 야간주행 선택해서 아무것도 못본게 너무 아쉽다개같은 비구름은 왜 주말마다 우리를 괴롭혀..?바짝 쫄았던 돌산령은 생각보다 오를만 했고더군다나 다음 큰 업힐인 미시령정상 까지는 70km긴 시간동안 리커버리 할수있는 구간쭉쭉 갑시다 시봉방거그렇게 해안면에 내려와서 보급을 위해 정차보급과 동시에 편의점에서 파워미터 배터리 물색배터리 규격이 이런거였는데솔직히 오지에 편의점 있는것 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상황인데저것까지 있길 바라는게 오바긴 했지 ㅇㅇ근데 편의점 직원분이 본인 가업이 철물점이라며옆건물에 있는 철물점 나랑 같이 가서 찾아보자고 하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강원도 지방인심 ㅆㅅㅌㅊ...헌데 찾아봤음에도 나오질 않았고 ㅠㅠ일단 비슷하게 생긴 전지 하나 집어서 껴봤는데 역시 맞질않았음..선심 써주신분한테 괜히 죄송해서 덕분에 잘된다고 연신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면서보급 조져주고 해안면에서 다시 벗어났다친절 잊지 않겠습니다 ㄳㄳ그렇게 긴 리커버리 구간을 지나 다시 미시령 시작미시령도 경치, 산 정상에서 부터 내려오는 물, 중간 중간 나타나는 마을이게 다 눈이 즐거운건데 하필 이때 시간이 새벽1~2시더군다나 동행자양반은 미시령이 처음이래 ㅠㅠㅠㅠ나는 천천히 가는 속초 퍼머넌트 작년 5월달 편서풍 받고 개꿀로 다녀와서 눈요기 하다가 왔는데너무 아쉬운거지..역시나 이때도 몸상태가 몸상태인지라 800미터 남겨두고 끄트머리 고각은 끌바..그렇게 먼저 올라간 동행자 양반은 CP사진 찍어야 하는데가려진 안개때문에 저위에 비석을 전혀 찾지 못하더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정상에서 3분동안 찾아 헤매며 나를 기다렸다고함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또 와본적 있다고 조금 두리번 거리다 찾아내서 얼른 내려왔음사진으로도안개가 자욱한거 보이냐?원래는 이 다운힐동안 속초의 도심의 경관이었어야 했는데뭐 밤에 봐도 나름 볼만 하긴한데 사진으로는 이모양임긴 다운힐을 지나 속초에서 보급을 하려는데새벽 바닷바람 + 몸이 지친탓이라 엄청난 한기가 느껴진다보급후 재출발한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해가 뜰랑~말랑~하지라서 새벽 4시 30분임에도 해가 굉장히 빨리뜬다별거 아닌 낙타등임에도 두사람다 데미지가 상당한 상태라구간 구간 하나하나가 괴로웠다느자구 없는 고각에4번째 끌바 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리고 진짜 이번 랜도너링의 보스중 보스조침령(4.2km, 11%)동행자양반은 설악퐁퐁 참가해본 경험이 있어 계속 좆됐어.. 좆됐어.. 좆됐어.. 읊조리는데이렇게 강한 양반이 왜이지랄이지? 싶었는데가민의 클라임 프로는 조침령이 다가왔음을 알려주고아니 무슨 오른쪽으로 틀자마자 벽이 하나 솟아있는데 욕부터 나오더라일단 빨리 넘어 숙소가서 쉬어야 한다는 일념으로미친듯이 경사 깎아가며 미친듯이 밟았다이때 심박은 180~190 넘나들며한 4km중 1km 쳐냈겠지? 하고 속도계 쳐다보니까300m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앞으로 이페이스로 12번은 더가야 정상이라는거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중간생략)이번엔 끌바없이 피토해가며 올라왔다정상에서부터 다음 마을인 기린면까지 30km30km동안 경사도 완만하게 빠져서힘들게 먹은 경사 맛있게 쓸 수 있는 구간내려가는 동안 멋진 경치도 봐주면서아니 이거 시발 밤주행만 아니었으면이런 경치들이랑 쭉 같이 다녔다는거 아냐..? 개시발ㅋㅋ그렇게 코스보다 800m 우회하면 나오는 기린면 숙소에 도착동행자 양반은 뭐 여기 어딘지 안다 전에 와봤다군부대 어쩌고 저쩌고 한거 같았는데 사실 귀에 안들어왔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숙소 도착하기전에 편의점에서 간단 보급식 사들고 숙소에서 보급 해결한뒤이번엔 짧게 쉴예정이라 버프,양말만 손빨래 빠르게 해주고 잠에 청함..사실 기린면보다 85km나 더 떨어진 홍천에서 숙박하고 싶었는데지금생각해도 미친짓이라 생각듬ㅋㅋㅋㅋㅋ일반적은 브레베면 가능했을지 모르겠지만SR은 브레베의 85km보다 무게감이 훨씬 묵직한 코스기 때문에처음엔 내가 홍천까지 가자고 우기다가 나중가선 퍼져서 기린면에서 자자고 선회하고이양반은 오바라고 하다가 나중가선 갈만했는지 되려 홍천까지 가자고 우기더라 ㅋㅋㅋㅋㅋㅋ근데 조침령 오르고 나니까 둘다 기린면에서 자는걸로 합치됨ㅋㅋㅋㅋㅋㅋㅋ아무튼 그렇게 이틀차 종료
작성자 : CHICAGO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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