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장비 시장 커지는데 한국엔 기술력 1등 업체 없어”
미국 업체 AMAT의 윤기환 공급망 경영전략 디렉터 인터뷰
기자옥기원
수정 2024-03-22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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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환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AT) 부사장을 지난달 20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본사에서 만났다. 옥기원 기자
“메모리반도체 강국에서 1등 기술력을 가진 반도체 장비 기업이 없다는 게 의아하다.”
세계 주요 반도체 장비 업체 중 한곳인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AT)의 윤기환 글로벌 공급망 경영전략 디렉터(부사장)가 최근 한겨레와 만난 자리에서 던진 의문이다. 윤 부사장은 “한국의 반도체 장치 기업들이 줄곧 2~3등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도 말했다.
이 회사는 네덜란드 에이에스엠엘(ASML)과 함께 반도체 장비 분야에서 1등을 다투는 기업이다. 식각·증착·열처리·검사 및 진단 등 반도체 핵심 공정에서 최고 기술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 부사장은 1990년대 후반부터 일본·미국 등 반도체 장비 회사 경험을 쌓은 뒤 지난해부터 이 회사에서 글로벌 공급망 전략을 책임지고 있다. 지난달 20일(현지시각)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만난 윤 부사장은 한국의 반도체 생태계의 취약점을 줄곧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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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으로 반도체 칩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기대된다. 장비 시장 전망은 어떤가?
“장비 시장 역시 커진다. 2030년에 반도체 시장이 1조달러 규모(현재 약 6천억달러)로 커진다고 한다. 그럴 경우 현재 1천억달러 규모인 장비 시장도 두배로 커질 것으로 본다. 첨단 칩 제조와 비슷하게 장비 산업 진입장벽도 높다.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에이에스엠엘, 램리서치, 도쿄일렉트론, 케이엘에이(KLA) 등 소수 업체의 시장 지배력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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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출 규제와 국가별 반도체 공장 유치 경쟁 같이 시장에 긍정·부정적 요인인 동시에 있다.
“매출 비중 20%가 넘는 중국 수출 규제는 우리뿐 아니라 모든 반도체 관련 기업들의 리스크다. 다행인 점은 미국을 포함해 유럽과 일본 정부 등이 나서 공장을 유치하려는데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모든 반도체 공장엔 우리 장비가 들어간다. 반도체 공급망 확대와 함께 중장기적으로 중국에서 빠진 수요를 만회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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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5월 삼성전자 평택 공장을 시찰하면서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반도체 장비 앞에 멈춰 설명을 듣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한국 반도체 장비 업체들의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준이 아니다. 한국에선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가 있어서 장비 판매는 가능하겠지만…. 기술력, 원가 구조 등 장비 구매 기준으로 한국 기업들은 대략 2~3등 수준이다. 기술력이 최고가 아닌데 가격에서도 이득이 없다면 기업 입장에서 구매할 이유가 없다.”
―한국은 왜 세계적 수준의 장비 회사가 없을까?
“최첨단 메모리를 생산하는 기업이 있다면 장비 기술도 함께 발전하기 마련이다. 한국은 그렇지 않다는 게 의아한 대목이다. 삼성·하이닉스에만 납품해도 회사를 운영할 수 있다는 게 오히려 글로벌 시장 도전에 독이 됐을 수도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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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공장 건설 등 투자 계획은?
“한국에 연구개발(R&D)센터를 짓는 계획은 추진 중이다. 한국에 판매한 장비를 점검·관리하는 서비스센터 역할을 한다. 한국에 생산공장 건설도 논의됐는데 무산됐다. 그 대신 싱가포르 공장 등을 확장하고 있다. 한국은 지식재산권(IP) 보호가 잘 안되는 나라다. 중국, 러시아, 멕시코, 북한과 같은 3등급 수준이다. 우리 기술을 한국에서 카피당해도 한국 법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글로벌 기술 기업을 한국에 유치하려면 아이피 보호 체계부터 정비해야 한다.”
―반도체 장비 산업 발전을 위해 필요한 정부 정책은?
“반도체 산업 육성이 국가 대항전처럼 돼버린 상황이다. 정부의 일관적인 지원이 중요하다. 2019년 일본 수출 규제 이후 한국 내 소재·부품·장비 기업 육성 전략이 강화됐는데 몇년 사이 그런 노력이 뜸해진 것 같다. 상대적으로 왜소한 한국 기업들은 정부 지원이 끊기면 규모의 경제를 가진 일본·미국 기업과 경쟁하기 어렵다. 잘나가는 메모리 산업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지만 반도체 산업의 중요한 축인 소·부·장에도 장기적인 관점 속에 지원을 해야 한다.”
샌타클래라(캘리포니아)/옥기원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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