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집

책을 좀 찾으려고

책장을 뒤지다가

우연히 손에 잡힌

오래된 시집 하나

아마 내가 여덟 살 때쯤인가

엄마를 따라 간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라는 딱지만 보고

사달라고 졸랐던, 나의 첫 시집

설레는 맘으로 집에 와

대충 몇 구절 스윽 읽어보고서는

재미가 없네, 하며

책장 한구석에 넣어뒀더랬다

이제 와 다시

그때처럼 설레이며

후후 먼지 불며 펼쳐보는

십년도 넘은 낡은 시집

그 시집 속에서

날 반겨주는 건

아직도 내겐 어렵기만 한

낯익고도 반가운 시인의 이름들

서정주, 김수영, 한용운, 김소월...

순간

부끄러운 마음에

책을 다시

덮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얼마나 어렸던가

내 까짓게 뭐라고

그들의 시를

'재미없다'고

함부로 논했던 걸까

그렇다면

나의 글은 어떠한가

여덟 살의 내가

지금의 내 글을 읽는다면

무어라고 평가해줄까

읽어줄 만하다고는 해줄까

혹여나

읽어주지도 않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한 번, 또 다시 한 번

써내려가고 있는

지금 나의 이 글은

속죄의 반성문인 걸까

아니면, 또 다른 배설물인 걸까

나는 이제

모르겠다

너는 알고 있니

여덟 살의 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