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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219.248) 2015.12.27 01:18:01
조회 126 추천 2 댓글 0

 

우리는 모텔 방에 있었다. 침대 하나와 작은 냉장고 하나만이 겨우 있는 좁은 방. 모텔이라는 간판을 걸었지만 여관이라고 부르는 게 나을 듯한 비주얼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여자와 단 둘이서 함께 모텔을 왔다. 우리는 함께 여행을 다니는 중이었고, 돈은 둘 다 넉넉하지 않았다. 국내에는 볼 것이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호수 앞에서 하루 종일 죽치며 시간을 때우거나 그 동네의 성당에 들어가 기도드리는 일. 모태신앙인 예정에게는 그런 일마저도 즐거운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예정과의 여행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밤은 조금 달랐다. 사건은 기차 안에서부터였다. 권태에서 비롯된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내가 예정에게 짓궂은 질문을 하나 한 것이 시작이었다. 내가 남자였더라면 우리는 사귀었을까? 그런 질문을 예상치 못했는지 예정은 깜짝 놀라며, 붉어진 얼굴로 나를 한 번 빤히 보고, 고개를 숙였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모르겠어. 그러고는 예정은 웅얼거렸다. 나는 너를 좋아하지만, 네가 남자라면네가 사귀자고 하면 사귀었겠지. 나는 예정의 말에 그녀의 지난 남자친구들을 떠올렸다. 아니야. 그랬더라면 네가 사귄 남자들처럼 내가 너에게 상처를 줬을 것 같아. , 그러면 안 돼. 우린 사귀지 않았을 거야. 나는 조금 웃으며 창밖을 바라보며 예정을 등졌다. 예정의 표정도, 기분도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녀가 내게서 약간 놀림 당했다는 기분을 가졌으면 했다. 하지만 멍청하게도 예정은 그런 기분을 갖지 않았던 거였다. 지금 그녀는 열이 난다는 핑계로 침대 위에서, 내 등 뒤에 가까이 붙어 있으니까.

그러나 약간의 숙고 끝에, 나는 예정의 행동에 멍청한 애정만이 깃들어 있는 게 아니라고 판단했다. 너는 여자고, 내가 여자인 너와 그럴 리 없다는 암묵적인 신호. 그녀는 나를 껴안아도 결백하고,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예정의 공격과 방어 의도가 확실히 전달되었다. 어쩌면 예정은 그런 기분을 갖지 않았던 게 아니라, 아침의 놀림 당했다는 기분을 가진 것에 대한 복수로 지금 나를 곯리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것을 예정은 알고 있었다. 예정의 그런 행동에 나는 성적인 충동을 느낀다는 것이다. 물론 예정은 내가 좋아하는 여자 타입은 아니었다. 나는 눈이 작고 선이 얇게 생긴 여자들을 좋아한다. 예정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이렇게 비유해도 괜찮다면, 얼굴이 예쁜 두꺼비처럼 생겼다. 입술도 두껍고 쌍꺼풀도 짙었다. 그렇다. 내 타입이 아니어서 그렇지 예쁜 편이긴 했다. 하지만 성격이 도무지 나와 맞지 않았다. 나는 유머를 잃지 않고, 현실적이면서도 활기찬 성격을 좋아하는데, 예정은 매사에 쓸데없이 진지했다. 심지어는 다소 엄숙하기까지 했다. 많은 부분에서 내가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 인간 타입이었다. 그런 예정과 여행까지 오게 된 것은 순전히 나의 실수였다. 그런데 지금 나는 예정의 두 불룩한 젖가슴을 내 마른, 뼈가 두드러진 등으로 느끼고 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침대가 그리 넓지 못해서, 내가 달아날 곳은 없었다. 예정은 내가 자기를 어떻게 해주길 원하는 것일까. 혹시 나와의 섹스라도 기대하는 건가. 그런 거라면 나는 응할 마음이 있었지만. 아니다, 예정의 성격은 그런 일을 아무것도 아닌 일로 치부할 수 있을 만큼 가벼운 성격이 못된다. 틀림없이 피곤해질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치밀어 오른 나는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몸을 돌려 예정을 껴안아주는 것이었다. 그 상태로 나는 다정하게 물었다. 몸이 많이 아프니? 예정은 내 품을 파고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너무도 귀여웠다. 어린 토끼 같았다. 몸살이 났나 보구나. 나는 마치 예정의 엄마라도 된 듯이 예정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예정은 내 품에서 그렇게 잠이 들었다. 예정이 잠이든 것을 확인한 후, 나는 담배를 피우러 복도로 나왔다. 복도 창문을 열고 담뱃불을 붙였다. 섹스가 고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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