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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삭 좀 부탁한다

D(211.218) 2015.12.29 15:12:38
조회 171 추천 0 댓글 6

, , 잠시만요. , 됐습니다. 편하게 앉으세요.”

 

여자가 들어오자 남자가 책상을 급히 치우며 꺼낸 말이었다. 옷차림을 봤을 때, 그는 의사인게 분명했다. 겉으로 보이는 사무적인 태도와는 다르게, 왠지 모를 어리버리한 모습은 친근한 인상을 주었다. 여자는 동그란 쿠션 의자에 몸을 기대고 앉아 등받이가 있던가? 의사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무슨 일로 상담 받으러 오셨나요? 부드러운 어조로 말한다. 침묵. 의사는그런 상황에 익숙한 듯, 검지로 안경을 치켜 올린다. 그리고는 빙그레 웃는다. 긴장하지 않으셔도 돼요. 하고 싶은 말을 하시면 되는 거에요. 뭐든지 괜찮아요. 그제서야 입을 연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금방이라도 울듯한 표정. 그러니까그게…… 여자는 눈가를 찌푸린다. , 이거 비밀 유지되는 거 맞죠? 의사는 답답한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 그럼요, 그런 쪽으로는 안심하셔도 좋아요. 말했다. 물론 그에겐 일상과도 같은 답답함이었다. 그의 일상, 그는 정신과 의사였다.

 

실은요즘, 너무 외로워요.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갑작스럽게 말을 꺼낸다. , 죄송해요. 너무 뜬금없는 소리였네요. 작게 웃는다. 왠지 모르게 여자의 얼굴이 일그러져 보인다.

 

무엇 때문에 외로우신 건가요? 1년 정도 된 애인이 있거든요. 그런데, 갈수록 점점 저랑 멀어지려 하는 것 같아요. 행동에서 느껴져요. 저랑 헤어지려는 걸까요? 당연한 말이지만 저는 그럴 수 없어요. 그와 만나는 날이 갈수록 줄어가요. 너무 외로워요. 애써 슬픈 표정을 짓는다. 저런많이 힘드셨겠군요…… 여자는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린다. 이제는 익숙하니까 괜찮아요. 괜찮으면 여길 오지 않았겠죠? 속으로생각한다. 하지만 제가 정말 걱정인건, 이 외로움이, 이 슬픔이 대체 언제쯤 끝나는가 하는 거에요. 여자의 눈가가 다시 촉촉해진다. 계속 기다려도 오지 않아요. 몇 시간이고, 몇 날이고 기다려도, 오지 않아요.

 

원래부터 무뚝뚝한 성격은 아니었나요? 애인 말이에요. 아니면 직장 문제라든지. 다른 사정이 있을 가능성은 없나요? 무뚝뚝한 성격은 아니었어요. 이전까진 정말 저를 사랑해 주었어요. 참 행복했죠. 그 외에 다른 사정이라면그가 저에게 뭔가 숨기는 게 있을 지도 모르죠. 하지만 제 착각이 아니라면 우리는 정말 가까운 사이였어요. 제가 모르는 게 있을 리가 없어요.

 

의사는 그 애인이란 사람의 다양한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바람둥이? 보통 이런 경우는 대부분 바람이다. 좋게 생각해 보자면 프러포즈를 준비하는 걸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로 여자가 모르는 비밀이 있을 지도 모른다. 이게 사실이라면 둘은 생각만큼 가까울 사이가 아닐 것이다. 혹은 숨길 수 밖에 없는 비밀이라든지너무 과도한 상상은 금물이다. 아마 애인이 바람을 피우고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남자는 자신이 연애 상담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 내기가 어려웠다. 나는 정신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이 곳에 있는 건데, 그 애인과 헤어지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거기다 의사는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얼마 없었다. 약이나 처방해주는 게 최선이었고, 이런 상황에선 약도 필요 없어 보인다. 남자는 그렇게 결론지었다. 적당히 해서 보내도 되겠지.

 

그때, 여자가 선수를 친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게요. 역시 갑자기 와서 상담을 받으니,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없어서 너무 번잡스레 말한 것 같네요. 그럼, 아마도 내일쯤에. 이 시간대에 다시 올게요. 안녕히 계세요! 남자는 뒤돌아서는 여자에게 한 박자 늦게 인사한다. 언제든지 찾아와도 좋아요! 뭔가 찜찜한 느낌.

 

제가 그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는요그 다음 날에도 상담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남자의 뚱한 기분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손님이 그다지 없었던 까닭도 있고, (어제도 비슷했다) 사실 그게 전부였다. 직업의식을 발휘해서 여자의 말을 하나하나 경청하고 받아 적고 있지만, 뻔한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자니 슬슬 질리기 시작했던 참이었다. 왜 나는 이런 번거로운 일을 계속 하고 있는걸까, 하며 푸념을 늘어놓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남자의 한탄이 이어진다. 여자의 얼굴이 점점 흐릿해지고, 말소리는 메아리 치다 작아져 사라진다. 잡념이 커져 머릿속을 헤집는다. 긴 문장, 짧은 문장. 마치 타자기에 찍혀 나온 듯, 검정 잉크로 출력되는 그것들은 다양한 폰트로, 다양한 크기로 줄줄이 이어진다. 머릿속에서 춤을 춘다. 문장들이 뱀처럼 감긴다. 이제 그 뱀이 나를 노려본다. 하며 혓바닥을 내밀고 낼름낼름…… 제 말 듣고 있는 거 맞아요? 머릿속 뱀이 원래의 그것으로 흩어져 사라진다. 남자는 한숨을 쉰다. , . 물론 듣고 있죠. 굴림체의 문장이 머릿속을 맴돈다. 정말 듣고 있는 거 맞죠? 분노 한 줌이 끼어 들어간, 가면 갈수록 커지는 모양새다. 끝에는 악센트가 들어갔군.

 

당연히 듣고 있죠! 제가 듣지 않으면 들을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같잖은 말을 내뱉는다. 장르가 시트콤으로 바뀐다. 추궁하는 여성, 반박하려 애쓰는 남성. 결국 그가 질게 뻔하지만. –손님은 왕이다! 그래도 그는 특유의 능청스러움이 있었다. 그럼 지금까지 했던 말을 정리해 보죠. , 애인을 처음 만났을 때, 어땠다고요? 자신 있는 문장. 그런 건 당신이 정리해둬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의사는 자신감이 넘쳤다. 정리는 당연히 해두었죠. 일종의 점검 같은 거에요. 제가 잘못 적은 부분이 있나 없나. 여자는 몇 마디 반박하려다 그냥 입을 닫는다. 성공! 그 정도는 이해해줄 수 있죠. 다시 말하기엔 좀 오그라드네요. 비유하자면 꽃밭을 거니는 것 같다고 할까요? 황홀함? 아름다움? 약이라도 하고 오셨어요? 남자는 속으로 빈정거린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주실 수 있나요? 남자는 키보드를 만지작거린다. 타자기라.

 

그리고, , 약간 두려웠어요. 왜인지는 모르겠어요. 지금처럼 될 걸 미리 알았던 것 같기도 하고남자가 원한 건 이런 말이 아니었지만, 보통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이야기를 하면 시간과 장소 정도는 나와줘야 하는 게 아닐까? 그 정도는 이해하고 넘어가 주기로 했다. 황홀했지만, 두려웠다. 그게 대체 무슨 의미죠? 애인의 행동? 외모? 아니면 만난 장소가 이상했던 건가요? 여자는 당황한 듯 머뭇거린다. 뭔가 숨기는 것이 있는 눈치다. 남자는 그 부분을 조금 파고들어 보기로 했다. 치료를 위해서는 빼먹는 부분이 있어서는 안돼요. 설령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는 이야기라도 도움이 될지 모르니까. 이야기가 길어져도 상관 없으니까 제때 말씀해주셔야 해요. 아시겠죠?

 

, 죄송해요. 미처 그런 부분은 생각하지 못했어요. 괜찮아요,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하셔도 돼요. 그런데, 그런데 말이에요. 그첫 만남이 제대로 기억이 나질 않아요. 왜일까요? 제 기억력의 문제일까요? , 까먹을 수도 있죠. 안 그럴 것 같지만 그런 일은 흔해요. 아뇨, 이런 중요한 문제도 기억을 못하다니. 말도 안 되는 거죠. 그렇네요. 그쪽 말씀대로 저는 제 애인에 대해서 모르는 게 참 많았나 봐요. 제가 문제였어요. , 이게 맞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저와 멀어지려 하는 것도 이해가 돼요. 여자는 울기 시작한다. 고개를 숙이고 훌쩍거린다. 긴 머리에 가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남자는 머리를 긁적이다 한 마디 내뱉는다. 오늘 상담은 여기서 끝낼까요?

 

여자는 고개를 들어 남자를 노려본다. 남자는 그 시선을 피해 딴청을 피운다. 그녀는 책상을 박차고 벌떡 일어나더니, 그대로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린다. 남자는 그제야 참았던 숨을 내뱉는다. 가뜩이나 없는 손님을 또 잃은 것 같았지만, 오히려 괜찮다는 듯 남자는 여자의 진료기록을 정리한다. 다시 쓸 일은 없을 것 같았지만. 

 

 

 

 

 

이번 문집에 올릴 글인데, 형편없는 거 알지만 그래도 최대한 볼만하게 바꾸려고 한다. 도움을 좀 주는 게 어떻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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