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좋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무책임한, 무자비한 날로 차마 더는 당신을 겨눌 수 없어
나의 얇고 비열한 입술을 비틀어 물고
내 한 쪽의 넉넉한 허벅다리 가운데를 푹 세차게 찔러 넣었습니다.
비명소리 한 음절 조차 울리지 못할
터무니 없는 꽉 찬 목구멍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향한 증오감으로 가득하길 바라는 어떤 날의 당신은
나를 진절머리 나도록 증오합니다.
그런 당신은 나를 그다지 증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당신을 나는 추호도 증오하지 않을지 모를 일입니다.
이곳은 화창하고 여기는 내내 촉촉한 장마였습니다.
당신 앞의 세상은 오랜 볕이었고 끝이 없도록 볕이지만
조금의 햇빛도 없을 겁니다.
날이 궂다 투정하는 당신이 폭우가 그치고 날이 맑아와도
결코 이 앞에선 질끈 감은 눈을 뜨지 않을 것을 압니다.
내 입은 비틀어졌고 나는 다리를 접니다.
그러함에도 이곳에선, 당신이
비틀린 나의 입과 갈라져 절룩이는 내 한 쪽 다리를 보지 않을 것을 압니다.
당신은 내게 칼자루를 쥐어준 적이 없고
나는 절대로 당신을 찌른 적이 없습니다.
차마 그런 적이 없습니다.
당신은 찔린 일이 없습니다만 어찌해서 온 몸이 구멍 투성입니까?
하물며 내 눈이 구멍 투성입니까?

고맙습니다.
당신이 마음에도 없는 인사를 되감아 뱉습니다.
고맙습니다.
나 역시 그대로 비틀려진 입술 사이로 바른 말씨가 새어댑니다.
본의 아니게도 정중한 사과일지도 모릅니다.
어찌해서 입모양이 찌그러졌냐고
어쩐일로 걸음이 절렁이냐고
어쩌다가 그런 사과를 베어 물게 되었느냐고 물으려 하지 마세요.
당신은 결코 그것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단 한번도 보고싶어 한 적이 없습니다.
그만 예의롭게 꾹 감은 눈을 떠도 좋습니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당신은 보지 못합니다.
당신에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비로소 나는 알아왔던 것을 안다고 합니다.
순수나 진실같은 진위 따위의 여부는
사후에서나 중요했을 법하게나마 포장 되어진다는 변론으로
있지 않은 가해자와 누군지 모를 공범,
잔혹한지 조차도 모른 채 한껏 움켜 쥐었던 칼자루를
태연하게 떨굴 수 밖에 없을 일이었음을,
나보다 더, 당신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수북히도 베여서 능숙히 아무렇지 않을 당신을 배후로 남겨두고 고백합니다.
마땅한 죄인의 몫으로서는 양심이 꼿꼿하여
당신과 눈을 마주치고 당신의 눈에 담긴 것을 읽지 않겠습니다.
사실에 근거하여 한 점도 참회하지 않겠습니다.
그러기엔 우리는 나를 지독하게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날은 넘길만 하게 화창하고 나는 결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