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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서울. 그 스산한 단면.

김수필(210.223) 2018.03.24 22:38:48
조회 137 추천 0 댓글 0

주말의 어느 나른한 오후.

 뒷산의 길고양이도 포근함에 취해 잠들어버릴 만큼 한적함의 기류는 중후했고, 무엇인가 짓누르는 듯한 권태의 무게감은 나로 하여금 그 정체감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게 했다. 뭔가 질려버린 듯한 느낌을 받은 나는 박차고 나가기로 결정했다. 누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 아니었기에 아침에 일어난 모습 그 '꾀죄죄함'을 그대로 보존한 채.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은 날이었다. 푸르러야 할 하늘은 회색빛으로 가득 찼고, 그 와중에 부는 바람에 두 눈이 쓰려 더욱 빛바랬다. 어디로 갈 지는 미리 정하지 않았다. 먼저 정처없이 걷다가 식당이 보이면 밥을 먹기로 했다. 돈까스카레. 나름 맛있었다. 때늦은 점심 식사였기에 저녁인지 점심인지도 모를 그런 애매함과 미묘함이 맛을 더욱 돋구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 버스나 타기로 했다. 행선지는 정하지 않았다. 버스는 서울대를 지나 낙성대를 거쳐 다시 신림역 방면으로 우회했다. 거기가 종점이라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내렸다. 신림역. 관악구의 최대 번화가였다. 

 관악구의 번화가라 해도 정리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난잡하기 그지없는 외관이었다. 각종 원룸 월세공고부터 시작해서 윤락 마사지샵까지 다양한 광고전단들이 산발해 흩날렸다. 길가에는 백이면 백 젊은 연인들이 팔짱을 끼고 돌아다녔고 그들 주변엔 그들의 소비욕구를 자극할 각종 상업시설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그들은 과연 신림역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나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런 덧없는 생각들이 뇌리를 끊임없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더욱 깊숙히 파고 들어갔다. 마치 심부를 찔러가는 심정으로, 그래야만이 신림역 거리 위에 있는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 어떠한 논리적인 이유도 없었다. 걷고 또 걸었다. 깊숙히 다가갈수록, 번화가는 골목으로 점점 좁아져 들어갔고, 더욱 더 적나라한 무질서의 심연으로 빠져 들어갔다. 모텔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고 그 주변에는 차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이들이 모텔 앞에 차를 세워놓고 모텔에서 강렬한 늦은 오후의 격정적인 몸의 소통을 나누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괜시리 몸이 떨려왔고 씁쓸함에 가슴팍이 아려 왔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몸의 강렬한 접촉을 느낄 수는 있었다. 그런 모텔에는 으레 몇 명씩 '여관 작부'들을 두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았다. 끊임없이 주변을 배회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왜 여기에 왔는가','대낮에 들어가 몸의 격정적인 곡예를 시연하는 이들에 비해 나는 대체 무슨 가치를 두기에 이 거리에서 옴짝달싹못하고 있는가?'. 그 길에서 '나'라는 존재의 의미. 그것은 차마 거부할 수 없는 화두였다.  문란함의 공간화가 즐비한 가운데서 나조차 스스로 '기쁨을 찾는 몸'의 도구가 되기를 바랬던 것일까.

 그 거리의 격렬하고도 강력한 인력이 내 육체를 끌어당긴 것만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내 '존재' 일체를 설명하는 전제인가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그 인력의 고리를 모두 끊어버린 뒤 모든 번뇌를 떨치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곳은 말 그대로 '본능의 철저한 내부' 였다. 온갖 동물적 본능성이 창발하는 가장 근원적인 곳이었다. 

밖으로 나와 보니 영화관, 음식점, 잡화점이 한꺼번에 입주해 있는 복합문화시설 고층빌딩이 우뚝 서 있었다. 메트로폴리스로서 상징되는 거대 자본의 산물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맞은편에는 성형외과가 잔뜩 입주해있는 대형 빌딩이 그 위용을 자랑했다.  

 이 모든 것이 '현대인 욕망'의 총화이자 사회적 소산이었다. 바깥의 이들이 일반적인 문명사회 속 생활욕구충족의 첨병임에 반해, 더욱 더 내부로 들어갈수록 근원적이고 동물적인 욕망실현의 저변이 되어 갔다. 근대문명 사회에서 본능적인 것들은 모두 숨어들었고, 은폐를 가능케 한 그 위선의 힘은 '거대한 반작용으로서의 이성'을 낳았다. 이를 통해 형성된 근대적 자본은 점차 실체화되고 더욱 그 힘과 위용을 자랑하며 철저하게 내부를 숨겨 갔다.   

 모두가 겉으로는 문명인으로 보이지만, 속으로는 동물적 욕구로 물들여져 있다. 누군가를 마음껏 비틀어대고 자기도 비틀려지며 끊임없이 서로를 범하고 싶은 야성은 어찌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를 철저하게 숨겨야만 하는 그 위선의 자욱함은 하늘을 뒤덮은 서울의 미세먼지처럼 짙게 드리워져 있다. 

신림역 사거리. 현대 서울. 그 스산한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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