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연필공장의 대표 나연석의 죽음을 가장 슬퍼하던 그의 아내 수아는 인터뷰를 거절하고 싶었다. 2년 간 계속된 인터뷰는 늘 똑같았다. 가슴 속의 분노를 표출하고, 기자는 위로의 말을 전하고, 써낸 기사는 수많은 네티즌들의 가슴을 울렸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지 지금 와서는 잘 몰랐다. 남편이 살아 돌아오기라도 하는 것도 아니고, 당사자는 사형으로 뼛가루가 되어 있을 터였다.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마지막 절규라고 다짐하고 인터뷰에 응했다. 이나건이 귀신으로나마 남아있으면 꼭 이 인터뷰를 들으라는 생각으로.
기자는 젊은 청년이었다. 얼굴을 많이 고친 듯한 성형이 눈에 띄었으나 별 말 하지 않았다. 그는 자그마한 취재용 카메라와 함께 노란색 손바닥만한 수첩을 들고 카페에 앉아 있었다. 인사와 함께 건너편 자리에 앉자 그는 의기소침하게 몸을 떨었다. 보기와는 다르게 내성적인 사람 같았다. 기자인데도.
“죄송합니다. 괴로우실 텐데.”
그는 그 말과 함께 악수를 청했다. 후에는 ABS라는 유명 언론사의 기자증을 보여주었다. 인터뷰가 시작된 건 이젠 일상이 된 상투적인 위로 후 기자가 주문한 커피 두 잔이 나오고 나서부터였다.
수아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얘기를 살짝 놀랐다. 남성기자는 이제까지의 기자와는 다른 질문을 했던 것이다. 나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것. 가해자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으라는 것이었다. 이전에는 그렇게 묻는 기자가 없었다. 우선은 남편을 잃은 자신의 심정을 알려달라는 게 가장 많았고, 두 번째는 이 사태가 왜 일어난 건지에 대해 물었다. 그 다음으론 살인이 있고 난 뒤 생활에 대해 얘기해 달란 것이 대부분이었다. 나건을 어떻게 생각하냐니 그따위. 그건 너무나 진부하고 당연한 질문이었다. 그를 죽이고 싶을 만큼 밉다. 사형으로 끝났지만, 되도록 내 손으로 한 번 더 죽이고 싶다. 그게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 말을 그대로 전해주니 기자는 수축한 얼굴이 되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첩에 볼펜을 끼적였다. 보기와는 다르게 험한 말을 내뱉었으니 그랬던 걸 것이라고 수아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걸로 끝날 수는 없었다. 수아는 질문을 받자마자 가슴 속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 몇 마디로는 해결되지 않을 거대한 분노였다.
“사형이 되면 안됐어요. 사형? 그 제도는 분노를 일순간 꺼트리는 것뿐이에요. 죽으면 끝이잖아요. 이나건은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 했어요. 우리나라 감옥 말고요. 우리나라 감옥은 그 자식이 원래 살던 폐가 같은 집보다 훨씬 깨끗하고 밥도 잘 나오죠. 그러니 어디 더럽고 음침한 곳이요. 베네수엘라에 사바네타 형무소? 한 번 찾아봤더니 그곳은 좁고 밥 먹는 걸로도 살인이 일어난다고 하던데, 그런 곳이 좋겠네요. 평생을 썩어야 했어요. 네, 그런 곳에서요.”
갈수록 기자의 얼굴에선 주름이 늘었지만 수아는 멈추지 않았다. 사십대인 그녀가 예의도 모르는 인간은 아니었다. 더구나 남 앞에서 이런 말을 꺼내기란 그녀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나건에 대해서만큼은 달랐다.
남편이 한 것이라곤 수익성 없이 적자만 나 회사에 폐만 끼치는 공장 하나를 없앴을 뿐이었다. 여긴 한반도의 남쪽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안 되는 공장을 버리는 건 당연했다. 그곳에서 일하는 몇 사람을 위해서 공장을 돌린다면, 회사 전체에 부담을 안겨줄 테고, 더 나가서는 나쁜 결과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이나건이 밝힌 남편을 살해한 이유는 그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일자리를 잃었다는 것이었는데, 남편이 고작 그런 이유로 살해당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생명을 대체 뭐로 아는 건가. 싫으면 냅다 던져버리는 게 생명인가. 나와 내 두 아들은 지금도 그날의 고통을 잊을 수 없는데. 죽은 남편이 눈 감고 있는 모습을 본 게 아직도 엊그제 같은데.
“네에... 네에... 그렇습니까.”
가슴 속에 울리는 말을 전부 내뱉으니 기자는 무표정하게 인터뷰 내용을 쓰고 있었다. 수아는 저도 모르게 쥐고 있던 주먹을 보았다. 무심코 너무 많은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자가 상담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죄송합니다. 제가...”
“아닙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이거면 됐어요. 인터뷰는.”
기자는 말을 더듬다 연필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건너편에 있던 수아 발밑이었다. 떨어진 걸 주어주려 했으나 기자는 괜찮다며, 손을 저었다. 그의 만류 끝에 수아는 가만히 있었다. 대신 묵묵히 얘기를 들어주었던 그에게 커피값이나마 주려고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려고 했다. 그러다 그녀는 보았다.
기자가 가까이와 몸을 바닥으로 틀었을 때였다. 인터뷰 내용을 적는듯하던 수첩이 살짝 드러났다. 그곳에는 날려 쓴 몇 마디의 단어가 어지럽게 적혀 있었다.
나도 생명인데. 나도. 나도. 나도. 내 일자리는 내 생명이었는데. 컵라면 220원. 시발.
“이게 뭐예요.”
수아는 연필을 줍고 돌아서는 기자를 바라보았다.
“네?”
“그 수첩이요. 좀 이상한 말들이 적혀있던데?”
“아...”
기자는 수첩을 보더니 시선을 가로 돌리고 머리를 긁적였다.
“아...”
“왜 그래요?”
“그게, 아뇨, 아뇨... 이건 인터뷰랑 관계가 없는 거라서...”
그는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가 수첩을 웃옷 주머니에 다급히 넣었다.
“그러니까...”
“아뇨. 괜찮아요. 말하기 힘드신 거면 뭐.”
수아는 곤란해 하는 기자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지갑에서 사천 원을 꺼내 주었다. 여전히 그 수첩의 단어가 거슬렸으나 캐묻거나 할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럼 인터뷰는 끝인가요?”
멍하니 돈을 바라보던 기자가 어물쩍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수아는 턱을 숙여 인사했다. 카페는 곧장 나왔고, 사람들로 북적이는 울산 동구의 시내 중심을 걸으면서 집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220원이라는 단어가 왠지 낯설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나건이 범행을 자백할 때 분명 220원이 살인 이유라고 하지 않았던가.
얼마 안 있어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지웠다. 더는 그와 관련해선 어떤 것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7
그는 머릿속이 엉망진창으로 어지럽혀진 것 같았다. 분명 죄스럽고 아렸는데, 처음 인터뷰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그랬는데, 왜 일이 그렇게 풀린 걸까. 그는 참으려 했다. 피해자의 유족인 그녀를 어머니와 겹쳐보면서 얼마나 큰 고통에 휩싸였는지 가늠하려 애썼다. 그러나 들으면 들을수록 머리가 멍해졌고, 수많은 생각이 혀 사이사이에 촘촘히 자리 잡아 당장이라도 튀어나오려했다. 정신 차렸을 땐 저도 모르게 수첩에다 그런 단어를 적는 중이었다. 일거리가 없어 인력사무소를 전전하며 굶고 있던 그와 그의 어머니의 심정이 마치 살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양으로 들렸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행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속죄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의 믿음을 배신할 수는 없었다. 다만 지나간 일을 돌이킬 수 없으니, 지금이라도 뭔가를 해볼 생각이었다. 그 첫걸음으로 인터뷰에서 어떤 욕지거리가 오가든 참을 생각이었다. 그러니. 참아야 했다. 어떤 말이 오가든.
그는 물 한잔을 마시고 숨을 깊게 내뱉은 뒤 모텔건물을 빠져나왔다. 세 번째 인터뷰는 두 번째 인터뷰를 한 후 이틀 뒤였다.
8
최철식의 아내를 대신해 인터뷰에 응한 아버지 최강언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는 앞선 두 번의 인터뷰처럼 먼저 위로의 말을 전하고 악수했다. 카메라 화면을 조정하고, 수첩을 손에든 후, 최강언을 바라보았다. 최강언은 눈썹이 짙었으며 담배를 매일 한 갑씩 피는지 이빨이 누렜다. 미소는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이 인터뷰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인상을 굳게 찡그리고 있었다.
“웃긴 일이죠. 그딴 정신병자한테 목숨을 잃다니. 신이 없다는 거 하나만큼은 알겠습니다.”
“그런가요.”
그는 수첩을 한 장 넘기고 볼펜을 들었다. 인터뷰를 시작하겠다고 말하니 최강언은 소파에 등을 기대고 숨을 골랐다.
“어떤 질문이든 하세요.”
“그럼... 인터뷰하겠습니다.”
세워둔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고 그는 이전과 같은 질문을 했다. 이나건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최강언은 질문의 의미를 이해 못 하는 듯하다 어느 순간 깨닫고 말했다.
“무슨 말이 필요 있겠습니까. 미치광이라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죠.”
미치광이. 단어가 귓속에서 웅웅, 대며 울렸다. 하기야 그 표현도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좀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을까요.”
미치광이로 정의하고 끝내기엔 삼십 분이란 시간이 조금 길었다.
“뭐 말하라면야 못할 건 없죠.”
최강언은 천장으로 시선을 옮기더니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았다.
“철식이 아들이 이제 딱 돌이 됐습니다. 결혼한 지는 이 년 됐고요. 좋은 기업에 들어가 취직도 했습니다. 인생이 잘 풀리기 시작했어요. 정신 차리겠다고 골방에 들어박혀서 공부했던 게 드디어 빛을 좀 보나 했습니다. 그런데 이나건, 그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가 다 망친 겁니다. 철식이가 쌓아올린 인생을 아주 걷어 차버렸어요. 이나건 살인마새끼 전 그 새끼가 아주 잘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말입니다. 법정에서 사형선고 받았을 때, 무덤덤하게 자백하던 새끼가 죽을 땐 울고불고 했다는 거예요. 웃긴 일이죠. 남 죽일 땐 눈 하나 깜짝하질 않던 놈이 지 목숨 아까운 줄은 알고. 어지간히 정신병자입니다. 미치광이에요.”
최강언은 혀를 찼다.
“우리 애가 대체 무슨 관계였는지. 그 인간이 스스로 인생 파탄해놓고 왜 내 아들을 죽인답니까. 그 인간이 살아있었으면 그거나 물었을 겁니다. 왜 곱게 안 죽고 우리 아들을 길동무로 삼았는지.”
그는 최강언의 담담하면서도 분노실린 말을 듣다 물었다.
“학창시절 일 때문 아닌가요.”
육년이나 그를 죽도록 괴롭힌 최철식이 아무런 관계가 없다곤 할 수 없었다. 아직도 그때일은 선선히 떠올랐다. 기절놀이란 걸 한답시고 뒤에서 목을 졸라 기절시킨다거나, 부서진 대걸레로 허리를 내려친다거나, 라이터를 켠 뒤 몸에다 대고 에프킬라를 뿌려 화상을 입힌다거나, 넥타이를 기다란 책상에 묶어 못 움직이게 한 뒤 배를 때린다거나. 저지른 잘못과는 별개로 최철식이 했던 일을 없는 일로 칠 순 없었다.
“학창시절이요? 아, 이나건이 법정에서 말한 학교폭력인가 뭔가 하는 그거 말입니까. 그건 변명이에요. 치졸한 변명이죠. 그놈은 그냥 우리 아들이 부러웠던 겁니다. 공부를 좀 잘했다는데, 정작 자기는 백수가 되었고, 우리 아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에 들어갔으니까요. 그러니 한 마디로 배알 꼴렸다, 이겁니다. 컵라면 220원이 부족했다, 지입으로 말했잖아요. 배알 꼴린 거예요.”
“아, 배알 꼴린 거였군요.”
그는 애써 미소 지었다. 확실히 배알 꼴렸다는 표현에 이견은 없었다. 최철식이란 쓰레기 중의 쓰레기가 쓰레기통에 들어있지 않다는 건 충분히 배알 꼴렸다. 살인을 감행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고.
“그런데 학창시절에 폭력이 없었다는 게 정말인가요?”
그는 아버지란 인간이 학교폭력에 대해 듣지 못했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신고를 두어 번 한 적 있었다. 그때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이끌려 괜찮다고 한 것이 그만 ‘학교폭력 같은 건 없었다’라는 말로 치환되어 종종 무마되었지만, 전화로 통보는 갔을 테고, 아버지가 그 사실을 모를 수야 없는 노릇이었다.
“없었습니다. 우리 애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잖아요.”
그는 최강언의 말을 듣고 다시 가슴 속의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고 몸부림치는 것을 느꼈다.
“만약 있었다면요?”
“제 아들이 했다는 겁니까?”
“있었다면요.”
최강언은 콧방귀를 뀌었다.
“만에 하나 있었다 해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죠. 그 살인마 새끼가 싹수부터 보였을지 누가 압니까. 정신병자한텐 매가 약이에요.”
그는 혀를 달싹였다. 서울에서 술에 잔뜩 취한 최철식의 웃는 얼굴을 보았을 때가 떠올랐다. 자신과는 다른, 어쩌면 자석처럼 극과 극이었던 그의 행복한 모습. 그건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최철식과의 상위관계를 뼛속가득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정신을 아득하게 했다. 자신을 마치 장난감처럼 갖고 놀았던 최철식과 그걸 보고 비웃었던 반 인간들의 모습이 눈에 일렁였다. 그런 최철식이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고 좋은 기업에 취직을 해 저렇게 술 취해서 웃고 있었다. 그 현실이 늘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내게 했다. ‘허구한 날 최철식이란 양아치가 잘 되는 일이 있으면 가만두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 순간의 심정이 지금 그에게 생기고 있었다.
“그렇습니까.”
그는 숨을 조금씩 쉬고 내뱉으면서 억지로 마음을 억눌렀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이려 했다. 살인이라는 죄를 뉘우치기 위해 인터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 정체 모를 인간들이 내준 과제와는 별개로.
“그렇습니까.”
“예. 그 살인마 새끼가 교수형 당할 때는 어찌나 통쾌하던지! 할 수만 있다면야 돈을 내고서라도 보러 갔을 텐데요.”
“그렇습니까.”
“왜 그럽니까.”
“아뇨. 인터뷰는 이거면 충분할 거 같습니다.”
“예? 몇 마디 하지도 않았잖습니까?”
“아니에요.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그는 순간 가슴에 가라앉은 단단한 뭔가가 삽시간에 전신으로 퍼질 거란 걸 알고 있었고, 그 전신으로 퍼진 뭔가가 결국은 입 밖으로도 나올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재빨리 카메라를 잡고 묵례를 한 후 현관으로 걸어갔다.
“커피라도 한 잔 끓여드릴 생각이었는데.”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현관문을 열었다. 뒤에서 마중하려는 최강언의 모습을 보고 다급히 문을 닫았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연달아 누르는 손가락은 자의로는 멈출 수 없을 만큼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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