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죽는 날이다. 죽기 위한 준비는 모두 끝내 놓았다. 죽기까지의 결심이 필요했던 거지. 죽음을 다짐하기 전에 나는 죽음에는 용기가 필요한 줄 알았다. 고통스럽게 죽는 건 싫었기에. 그런데 아니더라, 죽음에 용기는 필요 없었다. 그저 결심이 필요할 뿐.
남은 가족들에게 미안한 감정 때문에 그 동안 죽음을 결심하지 못 했다. 부모보다 자식이 먼저 죽는 건 불효라 하지 않는가. 내가 어떻게 죽든 불효인건 마찬가지지만 자살하기로 결심했다. 살아있는 와중에도 불효자였는데 죽어 불효하나 살아 불효하나 무슨 차이일까. 나는 내 평생 부모님 가슴에 못만 박아온 불효자식인데.
남들이 보기에는 내가 왜 자살을 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 할 수도 있다. 분명 그럴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 없는 삶을 살고 있으니까. 부모님 형제자매 모두 건강히 살아있고, 경제적으로 대단히 불우한 것도 아니며, 교우관계도 완만하고 이성관계도 잘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 왜 자살을 하는 걸까. 분명히 그럴 것이다.
나는 내 삶에 아무런 의욕도, 기대도, 희망도 가져지지 않는다. 어린 시절 내 꿈은 오래 살아서 세상에서 가장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으로 기네스북에 남는 것이었다. 지금은 완전히 바꼈다. 빨리 죽고, 온전한 나로 다시 태어나고싶다.
어렸을 때 부터 나는 유난스러웠다. 또래 아이들이 로봇감을 좋아할 때에 나는 인형을 좋아했고, 축구를 좋아할 때에 나는 소꿉놀이를 좋아했다. 머리를 기르고 치마를 입는 또래 여자아이들을 동경했으며, 나는 그럴 수 없음에 아쉬워했다. 그나마 아쉬움에 그치고 그대로 살아가는 것에 만족했으면 내 삶은 바뀌었을까? 지금보다 더 행복했을까? 오늘 자살을 하는게 아니라 가족들이랑 즐거운 저녁을 함께했을까? 모르겠다. 그랬을지도.
성인이 되어가면서 내 이런 괴리감은 더욱 증폭되어갔다. 더 이상 옷가지와 머리카락에만 동경을 가지는게 아니라 이제는 화장과 섹스에까지 동경을 가지게 됐다. 다른 건 괜찮았다. 얼마든지 참고 견디거나, 혹은 얼마든지 직접 경험하고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섹스는, 내 몸으로는 아무리 경험해도 행복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전적으로 남자이기에.
살면서 누구에게도 말해본적 없는 내용이라 유서로서 남긴다. 나는 남자로 태어난 내 몸이 싫고,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여자이고싶었다. 그럴 수가 없기 때문에 이제 죽는 것이다. 그러나 살아오면서 마주친 모든 사람들에게, 나를 사랑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이루 다 표현 못 할 감사를 느낀다. 동시에 미안하다. 내 고민을 들어줄 기회조차 주지 않아서. 끝끝내 죽지 못 해 살아갈 것이 두려워 말해줄 수가 없었음에 미안하다.
수술도 의미가 없다. 가능한 것은 가슴을 다는 것과 자지를 떼어내고 인공적으로 보지를 만드는 것 뿐. 다시 말해 아이를 가질 수가 없게 되어버린다. 나는 아이를 키우고 싶었기에, 수술을 하고싶지 않았다. 남자로서라도 아이를 낳고싶었기 때문에. 그러나 지금은 그것마저 생각이 없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에 남자로 살아갈 나를 생각하면 너무나도 우울해서.
성욕을 느낄 때마다 오는 이 괴리감 때문에 죽고싶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하늘은 나를 왜 이렇게 낳아서 고통을 주시는 걸까. 관계를 가져도 느껴지는 건 우울함 뿐인 이 저주스러운 삶은 대체 무슨 이유에서 주신걸까.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시다. 죽는 순간까지도 이해할 수 없겠지. 그래서 오늘 저녁에 직접 여쭤보려한다. 왜 그러셨는지.
오늘 자살을 결심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섹스라이프다. 최근 여자친구와 관계맺는 일이 잦아져서 얼마나 오랫동안 많은 관계를 맺었는지 모르겠다. 관계를 할 때 마다 밀려오는 우울함 속에도 웃으며 좋은 척 해야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극도의 우울함 속에서 수면제까지 입안 가득 물었다 뱉아냈었다. 나는 이 삶이 싫다. 일말의 행복도 느낄 수 없는 이 삶이.
지금까지 내 삶을 지탱해준 한 가지는, 내 자신을 나의 남자친구로 생각해서였다. 내가 바라는 남자친구의 모습으로 나를 꾸미고, 내가 바라는 남자친구의 모습으로 생활하며, 내가 바라는 남자친구의 모습으로 섹스까지 했다. 이 단 하나 실낱같은 희망으로 내 삶을 버텨왔다. 나 자신과 헤어지고싶은 수 많은 시련들 속에서. 물론 오늘은 내 남자친구와 헤어질 생각이다. 내 남자친구는 나를 자기 몸 속에 가둬놓았으니까.
매듭진 올가미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참 예뻐보인다. 사실 하나 밖에 안 보이지만. 중학교 하나. 저 꼬마애들은 저마다 꿈을 지고 살아가겠지. 그리고 그 꿈을 이루며 자신의 성별에 어떠한 불만족도 없이 기쁘게 살아가겠지.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기 시작한다. 저 아이들의 삶이 너무 부러워서. 뭘 어떻게 살든 간에 자신의 노력을 원망하는 일은 있어도 성별을 원망하는 아이는 없겠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삶이 아닐까. 나는 왜 그 간단한 걸 못 해서 이러고 있는 걸까.
주변인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죽는 것이 너무나도 마음에 걸린다.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목이 터져라 불러주고싶다. 내 모든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너무 큰 상처를 주는 것이 진심으로 미안하다. 나를 조금이나마 가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준 모두가 다. 나를 조금이나마 살아있고 싶게 만들어준 모두가 다. 나를 온 가슴으로 사랑해준 모두가 다.
두 눈에 그렁거리던 눈물이 마침내 두 뺨을 타고 사정없이 흘러내렸다. 바닥에 주저앉아 찢어질 듯 욱신거린 가슴을 부여잡고 몇 분이고 목 놓아 울었다.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타들어가는 목소리에 놀라시며, 괜찮으냐 괜찮으냐 연거푸 물으시는 어머니 말씀에 도저히 아무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하고싶었던 모든 말을 다 쏟아부었다.
“엄마, 사랑해.”
더 이상 전화를 이어나갈 용기가 들지 않아 통화를 종료했다. 올가미를 쥐어든 양손은 사정없이 떨리고, 붉게 충혈된 두 눈에선 눈물만 두서없이 쏟아질 뿐이었다.
올가미 속에 머리를 집어넣고, 딛고 섰던 의자를 힘껏 밀어냈다. 목을 조르는 압박감에 정신이 번쩍 들었고, 점점 정신을 잃어갔다. 조금씩 조금씩 점점 더.
마침내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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