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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무명

듕슝가(121.175) 2018.09.19 07:38:11
조회 329 추천 0 댓글 23

거미가 저 천장에서 내려오고 있다. 


실을 늘어뜨리며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온다. 그의 얼굴 옆으로 내려와 바닥에 닿은 거미는 그대로 자기 갈 길을 가버린다. 그는 거미를 지켜보았다. 입은 바싹 말라있고 눈은 힘을 잃어버려 가물거린다. 살아있느냐 아니냐로 구분하기엔 애매한 상태였다. 심장은 뛰고 있지만 스스로 온 몸에 흐르는 피에 어떤 반응도 없었으니, 아마 개미가 아직 뜯어먹지 않은 싱싱한 시체 정도로 생각하고 거미가 만찬을 즐겼어도 이상하지 않을 터였다. 그의 사고는 멈추지 않았으며, 머리 속으로 난잡하게 늘어진 생각들은 일자로 바닥까지 이어진 저 거미줄을 폭풍 속에 꼬아놓은 것 같았다. 


거미는 자신의 집을 걸어다닌다. 아, 여긴 내 집인가. 그는 그런 생각을 했다. 숨을 쉬지는 않고 있는데 어떻게 이 모든 것이 이렇게 선명한지 잘 이해되지는 않았다. 가장 현명한 동물이라는 인간은 바닥과 동화되어서 붙어있고, 그의 엄지 손가락 만한 크기의 저 하찮은 미물은 자신의 삶에 충실하다. 벽을 다시 타고 올라가서 거미줄을 만드는 데에 여념이 없다. 


그는 의식이 있었지만 그 의식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손가락에 붙어있는 세포는 그의 말에 따라 주기를 거부하는 듯하다. 비단 그것 뿐만이 아니였다. 정신마저도 멍한 채로, 모든 잡념을 떨쳐내고 편안한 휴식을 취하게도 해 주진 않았지만 열성적인 삶에 대한 태도를 심어주지도 않았다. 이 자리에서, 그저 숨을 쉬고 내뱉는 것만 반복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마 저 거미는 그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터이다. 거미에게 그런 정도의 섬세한 지능이 있는지는 미지수이나, 만약 알아차릴 수 있다면- 거미는 인간이 확실히 무엇도 하지 않고 자신을 향해 쳐다보고 있지도 않다고 단정지을 수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이제 곧 다 죽어가는 거미의 발걸음만큼이나 느리게 움직였다. 


희미한 시각 사이로, 어떻게든 거미의 움직임을 보려 애쓴다. 좁은 틈 사이로 보는 것처럼 시야는 뿌옇다. 바닥의 차가운 기운이 몸 안쪽까지 스며들려고 한다. 거미는 이 인간따위는 아무런 신경조차도 쓰지 않는 듯 했다. 늙은 거미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관찰당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채, 섬세하게 거미줄을 짜기 시작한다. 심히 정교하면서도 일정한 장치이자 건축물은 이제 이 집이 사람의 영역이 아닌 미물의 영역임을 드러내었다.


눈이 가물가물, 점점 감기려 한다. 저항조차 할 수가 없어서, 그는 자신의 몸에 제발 감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수 밖에 없었다. 거미 또한 줄을 만들어내면서 다리를 후들거렸다. 몸에 무리가 가는 듯 싶었다. 어쩌면 이 거미줄을 만든다고 해서 자신이 그 혜택을 볼 수 없을지도 몰랐다. 이 늙은 거미에겐 자식이 없고, 보호해야 하거나 모셔야 할 다른 가족들도 없었다. 허나 거미는 그저 거미줄을 치고 있다. 그 또한 그것을 알아챌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게 엿보기의 한계니까. 깊게 알아낼 수는 없다. 


그는 어쩌면 그 사실에 대해 알았다면 당장 자리에서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거미가 인간에 대해 알아차릴 만큼 섬세한 지능이 없다면은, 인간은 거미의 모습이나 상황에서 그 많은 것을 유추해낼 정도로 거미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거미 그 자체보다는, 자신의 앞에서 무언가가 맹목적이고 열성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었으니 당연할 터였다. 실 하나 하나가 연결될때마다 거미는 그 만큼 생명력을 잃어갔고, 인간은 어째서인지 모를 충족감을 느꼈다. 


거미줄이 모두 완성되었을때, 거미는 더 이상 움직이질 않았다. 거미에게는 지성과 육체의 분리라는 사치스러운 일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스스로 거미줄에 걸려버렸고, 인간은 한 없이 이를 지켜볼 뿐이다. 직선으로 늘어진 거미줄은 시계추처럼 미약한 바람에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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