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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ㅇㅇ(14.46) 2018.09.25 22:18:20
조회 79 추천 1 댓글 0


요즘엔 왜 이렇게 허무주의자들이 떨치고 다닐까. 너도 그렇고. 걔네들은 아마 인생을 제대로 느껴보지 않아서 그럴 거야. 인생의 정말로 많은 고비들을 느껴보지 않아서 그래. 니가 대답해봐, 걔네들이 진짜 인생을 아냐? 인생에는 그런 것보다도 큰 문제들이 많다고. 막상 가족들을 떠올려봐, 그리고 가족들이 굶는다고 생각해봐. 진짜 너무 힘들잖아? 그러면 어떻게 할 거야? 방 안에 처 박혀서 철학이니 뭐니 지껄일 거야? 집 밖에 나가야지. 노가다든 뭐든 하라고. 그딴 생각들은 인생에는 하나도 부질없어.’

그는 담배를 손이 뜨거워지도록 끝까지 피웠다. 앞에는 탄 삼겹살이 새까만 불판위에 있다. 이제 나갈 타이밍을 암시하는 듯이.

형은 그래서, 요즘은 공부 안하고 일만 하시는 거예요? 현장일?’

내가 말했다.

그래, 나 노가다 뛴다. 그니까 너도 나처럼 되지 말고 취직 공부나 해. 철학과니 뭐니 달라질 거 하나도 없는 거 알거 아니냐.’

빈 소주병이 여러 병 있다. 나도 담배를 마저 피웠다. 새벽의 조용함이 맴돌았다.

나가죠.’

그래...’

고깃집을 나오자 바람이 차갑다. 하늘은 깜깜하고, 별이 많이 보인다. 촌의 읍내에서는 특유의 낮은 층의 건물들과 하늘의 조화가 주는 먹먹함이 있다. 담배를 한 대 더 꺼내 불을 붙였다.

형이 했던 말 있잖아요.... 맞는 것 같기도 해요. 저도 형 상황 돼보면 다 포기할 것 같기도 하고요.’

몸이 으슬으슬해서 지퍼를 잠궜다. 그러나 고깃집이 폐점하는 달그락 소리가 따뜻했다.

그런데 포기한다는 게 뭔지... 궁금해요. 대체 뭘 포기하는 걸까요? 우리는...’

어느 쪽으로 가던지 너무 아픈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특별히 다르다는 건 없어요. 그냥 아픈 거죠. 어느 쪽으로 가던지. 그래서 다 아픈 것 같아요. 신을 믿더라도요. 각자의 아픔이 있고... 그런데 웃긴 건 그게 또 허무하단 거예요. 그래서 아까 형이 했던 말이 아프지가 않아요. 아픔이 있긴 한데 그건 형에 대한 아픔이죠.’

몇 초간 침묵이 계속됐다.

말 안했는데, 얼마 전에 내 강아지가 죽었다.’

추워서 나오는 입김인지, 담배 연기 인지 모를 안개를 뱉으며 그가 말했다. 고깃집은 여전히 달그락 거렸다.

키운다는 것 까지 숨겼지. 쪽팔려서. 혼자 사는 남자가 원룸에 개 키운다고 생각해봐. 나 똑똑한 척 많이 하잖아. 애들도 뒤에서 꼰대라고 놀리는 거 다 알아. 근데 강아지를 키운다니..’

그는 가볍게 웃었다. 난 다시 아팠다.

‘5년 전부터 키웠지. 힘이 많이 되더라. 지금도 그렇지만, 지금보다 더 발악하면서 악착같이 돈 벌 때도, 인간관계 완전히 망가지고 완전히 혼자 됐을 때도.... 그런데 며칠 전에 죽었어. 근데 이게 또 죽으니까 힘 된 만큼 아프더라고. 차라리 처음부터 키우지 말걸.. 하고 생각도 하게 되고..’

그래도 어차피 그만큼 아팠겠네요.’

내가 말을 마침과 동시에 정확히 고깃집의 불이 꺼졌다. 거리 양쪽 먼 곳의 가로등만이 유일한 빛이었다. 우리는 담뱃불로만 서로를 알아봤다.

간다.’

나중에 봬요.’

그는 오른쪽으로, 나는 왼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발자국 소리조차 들리지 않도록. 윤곽선만 보이는 건물들, 많은 별들과 아련한 달, 먼 곳에 차가운 가로등,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희미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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