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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우주야사 외전 : 문장이 창조한다

니그라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8.10.26 12: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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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이 창조한다







*본편 이전*


예술마왕 이르마거는 마신족(魔辰族)의 한 큰 두목이었다.


이르마거는 모신제국에 분탕 치러 온 수많은 마신족 마왕 중 하나였지만, 산야강의 힘에 굴복해 유순하게 지냈다. 이르마거는 지금 자신의 성채에서 세상을 창조하고 있었다.


이르마거가 세상을 창조하는 방법이란 온갖 문장들을 휘갈겨 쓰는 것이었다. 예컨대 ‘꾀꼬리가 새장 속에 들어갔다.’라는 문장을 - 이르마거가 생명과 변덕을 불어넣은 - 스스로 움직이는 붓이 써 갈기면 그 문장에 의해 그 문장이 성립되는 괴우주 일반 시공 우주가 무작위로 생성되는 식이었다.


이르마거는 쉬지 않고 엄청난 숫자의 붓들을 움직이게 해 마구 우주들을 만들어내고 있었고 그 작동은 너무나 빠르고 대규모였다.


성채의 대문이 부서지듯 열렸다.


“이르마거, 당장 창조의 폭거를 멈춰라!”


삼미모장의 한 사람인 리기트가 범을 닮은 얼굴에 노기를 가득 담아 지나치게 건장한 몸집을 흔들면서 기세등등하게 파라탐으로 외쳤다. 리기트의 맹렬한 기세에 이르마거는 서둘러 마중 나왔다.


리기트가 말했다.


“소문은 듣고 왔다. 아무 뜻도 없이 저렇게 세계들을 만들어내기만 한다면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함부로 그 피조 우주들을 무책임과 혼돈 속으로 밀어 넣지 말라.”


이르마거가 답했다.


“본 마왕은 이 창조 활동에 아무런 보탬도 없소이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날 죽여 보시오.”


“사양하지 않겠다!”


리기트가 발톱을 세워 휘둘렀다. 이르마거는 리기트의 파라탐 일격에 조각나 소멸되었다가 금방 다시 나타났다. 리기트가 물었다.


“부활인가?”


“난 창조 활동에 영원히 붙들린 존재요. 난 죽어도 차원들이 날 가능성으로 다시 끄집어내어 살린다오. 이 성채를 소멸시키는 것이야 리기트님에겐 간단한 일이겠지만, 성채를 소멸시켜도 창조 작업이 끝나지는 않습니다. 이 붓들이 만들어낸 세계들에서 지성이 나타나 문장을 내뱉거나 쓰면 그것에 어울리는 세상이 드러나고 창조했든 창조 당했든 서로에게 문장으로서 영향을 끼치면서 역사를 만들어 쌓아올리는 것이요. 그런 일들이 무한한 차원들을 넘어 반복되고 있고 이는 괴우주 일반 시공 우주들이 만들어지는 까닭과 맥락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요.”


“수학적이면서 철학적인 괴우주의 실체에 접근하는 일은 그토록 어려운가. 창세가 그토록 허탈할 정도로 쉬운 것이라면 구원은 어디에 있는가.”


“리기트 당신이 속한 삼미모장은 이미 내가 포함된 72마왕을 날 끝으로 모두 굴복시키고 우마왕은 감옥에 가두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니 내가 이리 깍듯한 것이지요. 그렇지만 구원의 해답을 말하지 못 한다면 날 끝까지 복속시킬 수는 없을 것입니다.”


리기트처럼 모신제국의 장군이기도 한 천당왕 엘로힘이 찬란한 모습을 드러내고 그 둘 사이에 섰다.


엘로힘이 말했다.


“그 모든 세계들에서 나오는 모든 삶들을, 가능한 한 확장된 사람의 법정인 인공 명부에서 심판하고, 우리까지 포함된 더 큰 심판은 우리가 결코 상상할 수도 없을 절대자께 맡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신족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공 사후세계의 법정인 인공 명부는 사랑의 원칙 위에도 세워져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우리가 명부를 관리해도 절대자께서 정상 참작을 해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은 자유민주공화정의 가치에도 새겨져 있으니까요. 설령 절대자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지 미리 선을 그어 놓을 필요는 없겠지요.”


“가능한 한 각자의 자리에서 선을 행하려 애써본다는 것이군요. 나 예술마왕 이르마거는 이로서 모신제국의 가치에 동의합니다.”



[2018.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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