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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소서쓰다가.txt

ㅇㅇ(59.17) 2019.03.02 18:02:55
조회 131 추천 0 댓글 2

취업 준비란 매일 갈아야 하는 밭 같아서, 일찍이 카페에 출근 해 커피를 시키고 노트북을 켜 타이핑을 두드리는 일이 몇 달을 넘어 지속된다. 으레 농사에 많은 도구가 필요하듯 취준도 이와 같다고 보면 된다. 노트북과 인적성 기출문제집, 필기구 등과 이것들을 모두 담을 수 있는 튼튼한 가방 따위가 필요한데 이것을 구매 한 이력은 주로 부모인 경우가 다반사다. 그리고 이것들을 주욱 펼쳐놓고선 창 밖에서 혹은 카페 안에서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을 힐끗대며 가끔 식어버린 커피를 홀짝이는 일이 취준생 하루 일과의 9할이 된다고 보면 된다.


1년이 다 되어 거두어 낸 농작물엔 그 결과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농작물의 시세는 그것의 고유한 상품성과 함께 그 해 기후 따위의 환경이 모두 짬뽕되어 매겨지는데, 취준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해 기업이 제시한 인재상, 기업이 처한 상황, 각종 사건사고와 정책 등 다사다난 한 환경 속에서 내가 가진 것들을 쥐어짜낸 자소서는 늘 그랬듯 문전박대 당하고 만다. 시세랄 것도 없이 아무도 사가지 않는 불량품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듯하다. 사실 내가 가진 것들이 거의 전무하니 이런 결과가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다. 내가 가진 고유한 상품성이라고는 우리 부모님께 여쭤 봐도 딱히 놀랄만한 것이 없으니까.


자소서를 쓰기 어려운 것은 특별할 것 없고 가진 것 없음을 감추고 싶어 하는 사기꾼 기질의 부족에서 기인한다. 사기꾼이 되고 싶지 않다고? 프로야구 지명 1순위 급의 인재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거다, 아마. 기후라는 것은 모두에게 비교적 동등하니까, 결국 스스로 가진 때깔과 모양새로 승부를 봐야하지만 그것은 살아온 인생을 비추어 보았을 때 모두 내가 가질 수 없는 것들이다. 사기꾼 기질도 부족하고 가진 것도 없다면, 내가 불과 10년 전에는 고려조차 않던 기업-기업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수 있는-에서 인생의 첫 발을 내딛는 당연한 수순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사실 나는 평범한 척하는 부진아고 나와 닮은 농부들에 위안 받으며 어제와 같은 싸구려 막걸리를 들이키는, 수없이 역사 속에서 사라져간 민중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민중의 힘이라느니 역사의 주인공은 민중이라느니 하는 진통제는 더 이상 듣질 않는다. 이 나이가 되어서야 역사 속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그들이 얼마나 훌륭한 재능을 지녀 역사책 끄트머리에라도 그 이름들을 올려냈는지 실감이 된다. 그에 반해 나라는 인간은 고작 농작물인 척 하는 잡초들을 수확해냈을 뿐이고, 그것들을 요리조리 얼마 없는 말주변으로 꾸며 내어 누구에게든 팔아재껴야만 하는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철든다는 말이 초라해지는 과정을 뜻하는 것이라면, 나는 철들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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