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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 사망시각.

이체(125.140) 2008.01.27 22:44:02
조회 111 추천 0 댓글 4



"오늘 밤이 고비입니다."

나는 그 말을 들은 순간 너를 바다에 데려간 것을 후회했다. 그저 다른 연인들처럼 물장구를 치고, 모래성을 쌓으며 웃었다.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잘 알았지만,
언젠가는 바다의 노을이 지면 나는 칭얼거리는 너를 손잡고 끌고 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지만,
그전에 너는 저 차가운 집중치료실로 끌려가 호흡기를 낀 채 일어나지 않는다.

"사실 오늘 밤이 고비라고 하기 뭣한 게, 그동안 환자가 약을 복용하지 않아서 몸이 많이 약해진 상태였습니다."
"약을 먹지 않았다구요?"
"네."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보는 앞에서 꼬박꼬박 먹었는데요?"
"게워내신 듯 합니다. 머리가 빠진다고 안 드시겠다고 저에게도 말씀하셨는데 설마 이럴줄은..."

나는 망치로 얻어맞은 듯, 강한 충격과 함께 머릿속이 둔탁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감쪽같이 속았던 것이다.
속았다는 분노감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안타까움만이 들었다. 내가 조금 더 너에게 애정을 쏟아부었다면 너는 저기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수간호사의 꾸중만 듣고 병실에서 조용히 잠을 청했을텐데.

"보호자분께서 힘드신 것을 압니다만, 저희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내일까지 기다려 보시지요."

주치의가 저 멀리 사라지고, 투명한 유리벽을 경계로 너와 내가 갈렸다.
히터에서 나오는 따뜻한 바람이 현기증을 유발시킨다.
 피곤한 몸과, 지끈거리는 두통을 안고 나는 유리벽에서 너를 바라본다.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무능력하게 너만을 바라보는 이 순간이 올 줄 알았지만,
나는 받아들이기 싫었다.




"거 봐. 왔으니 좋잖아."
"좋아?"
"응. 참말로 좋다."
"물장구는 안 치네."
"니는 낭만을 모른다. 바라만 봐도 좋은 것을 니는 왜 몰라?"

베시시 웃는 너를 보면서 나는 이것이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이라는 것을 느꼈다.
너에게 차가운 고기를 만져서 제육볶음을 해주는 것도.
너의 투정을 들어주는 것도. 너의 울음소리를 귀담아 듣는 것도.
너와 바다에 가서 좋냐고 묻는 이 순간도. 

갈매기가 네가 쥐고 있는 과자를 낚아채서 먹는다. 
너는 좋아라 웃으며 나에게도 과자를 권한다.
푸석푸석한 머릿결이 햇빛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고,
헬슥한 볼살과 파리해보이는 피부가 해풍을 맞아 기름져 가고 있다.
과자를 줘보라며 손을 흔들어대는 너를 나는 끌어안았다. 그리고 키스를 했다.

말라비틀어진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을 때,
나는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키스를 마치고 너를 바라보면서 나는 너에게 해보일 수 있는 크고 밝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너는 남사시럽게 왠 난리야. 라며 전라도 사투리로 나를 밀었지만,
오히려 밀린 쪽은 너였다.
이제는 비만 맞아도 모든 것이 무너지며 죽을 것 같은 몸으로 변해버린 걸 보며,
 너를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라는 하지 말아야 할 생각까지 했었다.

"푸석한 놈인줄 알았는데, 니 참말로 알찬 년들이 좋아할거야."
"그래?"
"그래. 나같이 드센 여자가 좋아하는 거면 말 다했잖아."
"고마워."
"남사시럽게 왜 이러노."

그 말을 하고 너는 내 앞에서 쓰러진다.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며, 서서히 죽어가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다.
나를 응시한건지, 죽음을 응시한건지.
나는 볼을 때리며, 그리고는 급한대로 인공호흡이며, 심폐소생술이며 너를 살릴 수 있을만한 모든 것을 했다. 

그러나 너는 일어나지 않는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온 몸이 후회로 가득 찼을 때, 갑자기 거친기계음이 들린다.
심박동이 정지하는 소리.
나는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유리벽 옆의 문을 열고 발로 차고 들어갔다. 

"수정아. 수정아. 수정아 정신차려봐!"
"보호자분 이러시면 안됩니다!"

너를 애타게 부르며 달려갔지만 바로 제지당하고 응급의들에게 둘러쌓여 죽음 속으로 빠져드는 너를 바라보고 있다.
재세동기로 충격을 주지만 몸만 떳을 뿐,
여전히 눈을 뜨지 않는 너를 보며 나는 나의 몸을 붙든 의사들을 뿌리치며 너에게 달려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삐삐삐 거리는 소리가 신경질적으로 들린다. 둘러싼 응급의들이 너를 죽이기 위해 온 저승사자로 보이는 순간.

김수정 환자. 사망시각

"말하지마요! 말하지 말란 말이야!"

김수정 환자. 사망시각 2

"말하지 말라고!"

김수정 환자. 사망시각 23시 1

"말하지 말란말이야. 안죽었잖아. 안죽었잖아! 왜 포기하느냔 말이야!"

김수정 환자. 사망시각 23시 15분.

사망시각 23시 15분.
이라는 말을 끝까지 들은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았다.
그리고는 너와 내가 추억으로 남기자며 조그마한 유리병에 담은 해변의 모래들을 꺼내며 너에게로 다가간다.
그리고는 너의 볼을 치며, 또는 그 볼위에 눈물을 뿌리며 일어나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다시는 바다에 데려가지 않을 거라는 마음을 가진 채, 입으로는 다시 바다에 데려가줄게라는 말을 수없이 내뱉고 있었다.

나는 사망시각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인정하기 싫었다. 아니 어려웠다.
그래서 달려드는 의사들을 뿌리치고 너의 뺨을 치며, 너의 팔을 흔들며 기적이 일어나길 바랬다. 눈은 감고 있지만 한번만 더 너에게 살아나달라고 땡깡을 부리면 너는 일어나서 나에게 솜털주먹을 날리길 바랬다.

"놔. 놔!"
"보호자분 진정하세요!"
"프로포즈도 못했어! 밥도 제대로 못 먹였어! 드레스도 못해줬어!"
"보호자분!"
"죽을 정도로 행복하게 해주지도 못했어!"

나는 그 말을 쏟아내고,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된 채 정신을 잃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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