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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나르시시즘.

13월(223.62) 2015.05.06 00:20:01
조회 316 추천 4 댓글 6

 나는 예쁜 눈을 가지고 있다. 내 눈은 홑꺼풀에 큰편이다. 위로도 길고 아래로도 길다, 옆으로도 어지간히 넓다. 속눈썹도 여자처럼 긴편이다. 흰자위는 약간 충혈되어 있지만 검은자는 크고 까맣다. 얼마나 까만가. 물에 젖은 석탄 처럼 종이를 대면 검뎅이 뭍어 나올 것 같다. 동공을 식별하기 어려운 먹빛이다. 꼬마시절 어머니는 나에게 왕눈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래서 왕눈이는 유년시절 내가 가장 좋아한 별명이 되었다.
 스무살 이후로 나는 내 예쁜 눈을 뽐내고 다녔다. 내 눈을봐. 얼마나 예뻐? 떠벌리고 다닌 것은 아니다. 그냥 내 왼쪽 눈으로 수줍어하는 여자애들의 오른쪽 눈을 바라보곤 했다. 그건 즐거운 일이었다.
 군대를 다녀왔을 때 세상은 변해있었다. 완전한 서클렌즈의 세상이 도래해 있었다. 선배, 혹시 렌즈 껴요? 계집애들이 가끔 물어올 때에 이유를 몰랐다. 일회용 렌즈를 가끔 끼고 다니긴 했기에, 렌즈를 낀다고 대꾸했는데 어느새 나는 서클렌즈를 끼고 다니는 약간 괴상한 취향의 남자가 되어있었다. 뻔질나게 클럽을 가거나, 웨이터에게 만원짜리 팁을 찔러 넣거나, 모르는 여자를 픽업하지도 않는 내가 서클렌즈라니. 억울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나는 남자가 아닌가. 시시콜콜 항변할 수 없어 웃고 말았다. 그러나 이민정을 보았을 때 그 억울함은 배신감으로까지 발전 하고 말았다.
 내가 알기에 눈이 가장 예쁜 인류는 이민정이다. 남녀를 떠나 그녀보다 완벽한 까만 눈을 본적이 없다. 우는 사슴 같은 눈. 진실로 아름다운 눈을 가진 여자다. 그런 그녀가, 어느날 티비를 보았을 때 '원데이 아큐브 디파인' 서클 렌즈의 광고를 찍고 있었다. 나는 좌절했다.
 그래서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이, 시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이 감사해진다. 요즘엔 안경을 쓰고 다닌다. 최근 몇년간 눈이 예쁘다는 소리를 들어본 일이 없다. 버스에서 나의 왼쪽 눈으로 모르는 여자애의 오른쪽 눈을 지그시 바라본일도 없다. 회사에서 내 눈이 예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나 혼자 뿐이다. 
 이제는 눈이 예쁘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가끔 하루 일과를 마치면 탁상거울로 내 눈을 바라보는 정도다. 안경을 벗고 먹빛처럼 진한 눈동자를 보며 아주 예전에는, 오래전에는 하루종일 내 눈동자를 바라보아도 지루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고. 상기해본다. 유치하고 초라한 나르시시즘. 마냥 비참하지는 않다. 부끄럽지도 않다. 부끄럽지 않다는 사실이 오히려 부끄러워지긴 한다. 이래서 나는 유치한 인간인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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