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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SF]출산률 0%

니그라토(61.109) 2008.03.03 10:22:39
조회 71 추천 0 댓글 1

출산률 0%


나는 뉴스에서 대체로 경제면만 본다. 하지만 가끔은 시사면도 보는데 그것은 경제와 맞물리는 경우가 다소 있어서다. 전지구의 출산률이 마침내 0%가 되었다는 소식이 올라 와 있었다. 인간은 생물이고, 생물은 기계이며, 기계는 물질이고, 물질은 진공이라는 것이 모든 과학의 왕인 물리학으로부터 기원하는 통찰이다. 아기라는 것은 진공이 조합되어 나타나, 살아있기 위해 주변의 것들을 빨아들이는 미숙하고 무의미한 생존기계일 뿐이다. 나 또한 한때 아기였지만 그런 존재였다는 걸 역겹게 느낀다. 무능력하고, 받기만을 원하는 아기의 실체를 인류가 깨달은 것은 자명했다. 무엇이든 공급해 주는 자궁 속에 한때 들어 있었다는 느낌 때문에 세상 또한 그러하리라 얼토당토않게 믿어서 인류가 자초한 화가 얼마나 많았는가? 사회주의라든지 충효라든지 온정주의라든지 종교라든지 같은, 우주가 무언가를 대가 없이 주리라는 믿음들은 이제 초월되었다.


나를 낳아준 부모는 내가 온갖 감언이설로 사업체를 증여받은 뒤, 관광하러 갔던 아프리카 사바나에 내다버렸다. 21세기 초반이었던가. 그때 내 지위는 높지 않았으므로 별다른 위해가 되지도 않았다. 속아 넘어간 자들이 멍청할 뿐이다. 생물은 이기적이라고 정의 내려지고, 인간은 생물의 범주를 초월하지 못 한다. 유전자는 인간의 가능성을 속박해왔고, 우주의 법칙은 유전자를 속박해왔다. 단순히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이타적으로 행동할 거라 믿었던 두 사람은 얼마나 어리석었나. 효라는 이상이 돈과 권력 앞에 무의미해진 건 자명하다. 돈과 권력 쪽이 생물학적으로 볼 때 더 근본적이다. 부모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난 무척이나 울었는데, 지금 와 생각하면 어처구니없지만 반쯤은 진심이었다. 그때는 순진하게도, 그런 상황으로 부모를 밀어 넣었던 내 인격에 자책감이 들었었다.


좌우지간 부모를 잃은 건 내게 자극이 되었다. 난 더욱 노력했다.


나는 그때 무척 열심히 공부했다. MIT 수학과를 나온 뒤 하버드대에서 생물학과 경영학을 졸업했다. 학창시절에도 금융 및 증권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각종 사업을 벌이는 걸 잊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노력은 꾸준했고 더 가속이 붙었다. 몸에 관심도 있어서 합기도와 펜싱을 아마 선수 수준으로 익혔다. 한국인에 여자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려면 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동양인 여자답게 귀엽고 작은 것은 아니다. 성장이 멈춘 17살 때 난 187cm의 키에 탄탄한 복근을 소유하고 있었고 지금까지 그 우아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내 기업을 만들기 전엔 나도 자본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회사 생활을 해야 했다. 언제나 난 일에 충실했고, 커피를 타거나 팩스를 보내는 등의 허드레 일을 해도 그 업무를 꼼꼼하고 완전하게 파악하려고 애썼다. 회사의 늙은이들에게 알몸으로 봉사하면서 약점을 알아내고 돈을 뜯은 적도 몇 번 있다. 그렇다고 위법을 자행한 건 아니다. 난 순진무구한 얼굴의 굉장한 미녀고 몸매도 늘씬하다. 덕분에 나에게 첫눈에 반했다는 사람들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들끓었는데 이들의 감정을 이용한 적도 많다. 그들의 감정은 내가 느낀 것이 아니므로 내 책임 밖에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꽤나 열심히 일해 왔고 다행히 약속되지 않은 보상들도 뒤따랐다. 사업 내용을 평균 3년마다 갈아 치웠고, 이익을 낼 수 있다면 인간의 법은 교묘히 피하면서 자연법을 추구했으며, 내가 먼저 세상에 내 능력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각오로 뛰었다. 모든 일을 내 자신이 해낼 수 있도록 했고, 그것에 재미를 느껴 여가 생활도 문화생활도 하지 않았다. 일이 곧 취미였고 오락이었다. 결혼 따위는 하지 않았다. 사랑은 포유류의 번식 수단에 지나지 않고, 가족이든 친척이든 친구든 떽떽거리며 언제든 돈과 권력을 내놓으랄 수 있는 무리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을 아예 무시하고 지낸 건 아니다. 사교는 유지하면서도, 내게 부담이 갈 정도의 편의를 제공해주지 않았을 뿐이다.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사기를 치려고 노력을 했고, 몇 번은 성공했다.


난 내 성공 덕분에 21세기 중반엔 각종 의학적 혜택을 받게 되었고, 몇몇 연구들엔 참여하게 되었으며, 관련 사업에 손도 대게 되었다. 장기를 다시 젊게 만들고, 뇌의 신경세포들을 되살리며, 유전자마저 더 이상 늙지 않게 만드는 기술들이었다. 혹자는 이 기술들이 인류 전체에게 공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떤 기술이든 그것이 자본의 축적으로부터 나온 이상 시장 원리에 따르게 되어 있었고 따라야 했다. 기업들은 어떻게든 비싸게 팔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만, 상황은 소비자들에게도 결정권이 있다. 또한 그의 말처럼 인류 전체에 수명 연장 기술이 공유되려면, 어떤 특정 정치 집단이 관여되어야 한다. 인간은 이기적이므로 믿을 수 없다. 설령 그 특정 집단이 이성과 감성에 충만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내 운명을 남의 권력에 내맡기는 짓이다. 남의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마음에 기대는 짓이다. 온갖 수입을 또다시 돈 버는 데에 투자하고, 근검절약하면서 살아온 내가 뭐가 아쉬워서 남에게 기대겠는가.


그랬다. 지금까지 난 그렇게 생각했다. 자유의지와 노력만이 나를 구해줄 거라고 믿었다. 출산률 0%가 되었다는 이 기사 앞에서 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최근 들어 상황이 더욱 나를 압박해오고 있었다. 21세기 중반에 인공지능의 성능은 인류를 추월했다. 인공지능을 머리에 심지 않고서는 각종 업무를 수행하고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게 되었다. 점점 더 좋은 인공지능이 뇌세포와 결합했다. 어디까지가 원래의 나인지를 따지는 질문은, 원래의 뇌세포가 대소변이 되어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순간에도 사치로 치부되었다. 나에게도 가끔 일어나는 동정심이 없지 않았지만, 그런 감정들도 인공지능으로 뭉개버렸다. 전세계에서 사회 복지 혜택이 없어진 지 오래였으므로 한 번 무너지면 끝장이었다. 수없이 발버둥쳤지만 나 또한 결국 체제 내에선 패자의 위치에 섰다. 나 보다 더 좋은 인공지능과 결합된 이들이 존재했고 그런 이들과의 경쟁은 너무나 힘겨웠다. 인공지능을 더 좋은 것으로 바꾸려면 돈을 써야 하는데, 마침내 최근에 버는 돈 보다 쓰는 돈이 많아졌다.


다음은 우주 공학의 시대라고 난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우주 공학의 시대에 뛰어들 수 있을 가능성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


턱이 떨려오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눈물과 함께 혼잣말이 저절로 나왔다.


“엄마, 아빠 죄송해요.”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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