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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5.09.10 02: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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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떠나 정착한 서울이라는 곳에서의 아침은 고요했다.

내 나이 스무살 초반의 일이다. 나를 위해, 내가 걷던 길에서 몸을 틀어 혼자 지내는 나날. 천고마비의 계절은 한겨레의 대명절인 추석을 내세워 좁디좁은 방안의 햇살로 나를 반겼다. 복잡미묘한 기분이었다. 지난 이십여 번의 추석에도 느껴보지 못한 찝찝한 기분이었다. 나는 소위 말하는 지잡대에 재학중이었고 이와 상반되게 나의 동생은 연세대학교에 재학중이었다. 십수년간 반복된 비교와 멸시에 벗어나는 순간이었기에 한 편으로는 안정감을 느꼈으나 도피라는 단어의 의미는 좀처럼 나의 뇌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동생은 워낙 특출했다. 우리 집안은 공학도 집안이었다. 아버지는 기계공학을 전공하셨으며 어머니는 생물학을 전공하셨다. 동생 역시 연세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였고 나는 지방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였다. 장손인 나에 대한 부모님의 기대는 매우 컸다. 매우 컸던만큼 고3 수험생의 신분이 끝나고 맞이한 집안의 분위기는 매우 엄숙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재수를 권유하셨으며 어머니는 아무 말도 않으셨다. 이에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약 세 달간의 냉전이 흘렀다. 그 해 3월, 나는 부모님의 권유를 마다하고 대학에 진학했다. 재수라는 단어는 죽어도 싫었으며 무엇보다 1년 동안 내가 우수한 성적을 거둘 자신이 없었다. 시간과 돈을 베팅하는 도박에 나는 겁쟁이처럼 한 발짝 떨어져 우두커니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동생이 고등학교에 진학하였을 때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동생의 학교는 명문고로 유명한 D 고등학교였고 나는 그저 집 앞 고등학교였다. 그렇기에 설을 비롯하여 추석에도 어김없이 친척들의 이슈는 항상 나의 동생이었다. 겨우 고등학생이 된 동생에게 쏟아진 질문은 나이를 먹은 어른이 들어도 이렇다 할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들이었다.

"이과 갈거니? 문과 갈거니?"

"대학에서 무슨 전공 하고 싶니?"

"우리나라에서 아직 그 전공은 밥 벌어먹기 힘들텐데 다른 전공은 어떻니?"

"돈 못 벌어도 괜찮겠어? 네가 좋아하는 일보다는 페이가 먼저야."

동생은 다소 부담스럽고 난해한 질문에도 일목요연하게 답변하였다. 똑부러진다는 말은 어쩌면 내 동생을 가르키는 말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쏟아지는 질문의 끝에 서있었던 사람은 나였다. 한바탕 질의응답이 끝나면 쏟아지는 눈총들. 나를 피해망상이라 생각해도 좋다. 하지만 나를 달래기에는, 위안하기에는 모든이들의 눈초리가 매우 서늘했었다. 그들이 미웠다. 피를 나눈 사촌이라기에는 나를 대하는 그들의 모습에 괴리감마저 느껴졌다. 그 날 밤, 나는 일찍 잠에들었고 집안 어른분들은 약주를 즐기고 계셨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시기위해 조용히 문을 열고 한 걸음 내딛었을 때, 큰 할아버지 댁 삼촌의 나지막한 소리가 들렸다.

"걔는 형인데 참 공부를 안 했나봐. 동생이 저리 잘 나가면 열등감도 못 느끼나?"

화가 치밀어 올랐다. 물론 내가 공부를 못했든, 안했든간에 동생에 비해 뒤처지는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경제적 풍요로움의 달콤함과 시대상 경제 성장률의 덕택만 맛 본 그가 말했다는 것이 너무나도 화가 났다. 순간 나는 한 쪽 발을 내딛지 못 한 채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왔다. 분개했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이러한 사실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너무나도 괘씸하고 분개하지만 그의 말에 반박을 못하는 내 모습에 나 또한 자괴감이 느껴져 속으로 끙끙 앓았다. 이런 내 모습은 발가벗은 사내마냥 부끄러워 이도저도 못하는 풍경과도 같았다.

내가 스물 한 살이 되던 해, 수능을 다시 공부하기로 결심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과는 없었다. 1년의 시간은 그렇게 알코올처럼 날아가버렸다. 처참했다. 이어폰에서 들리는 의미없는 노래들은 공교롭게도 나를 놀리듯 하나같이 즐겁고 쾌활한 분위기였다. 문득 흘러나온 '그 어떤걸 해도 되는 무한한 도화점' 이라는 가사에 난 코웃음을 쳤다. 이십대는 청춘이라고들 말한다. 다시는 오지 않을 도전의 나이대라고들 일컫는다. 책에 들어갈 그럴싸한 구절이다. 음악의 머니코드마냥 돌고 도는 그런 진부하고 상투적인 표현이다. 내가 생각한 이십대는 여느 작가와 미디어들과는 매우 달랐다. 우리 인생의 팔할은 대학교에서 결정되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청춘은 19살 부터이며 스무 살과 스물 한 살은 팔할을 바로잡느냐, 나머지 이할을 가져가느냐의 교차점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나는 학생이기 이전에 남자였고 군 입대를 진지하게 생각할 시기였다. 더 이상 새로운 시도를 한다면 나의 사회 진출 연령은 늦춰질것이다. 늦춰지기 이전에 그 시도가 성공은 할까. 내 길은 무엇일까. 결혼은 할 수 있을까. 둘이 고달프느니 차라리 혼자 고달픈것이 더욱 낫지 않을까.

그 해 겨울은 공해가 뒤섞인 눈처럼 거무튀튀했다. 3개월 간 자취방 밖으로 나오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려 억지로 수면유도제를 네 다섯알 씩 집어 삼키며 지냈다. 머리가 아파 일어나면 다시 타이레놀 세 네 알 삼키며 수면 유도제 몇 알을 챙겨먹고. 폐인 같은 생활을 하였다. 그 때 일 때문인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한 달에 두어 번은 항상 두통이 심해진다. 가끔 잠이 오지 않아 두 눈을 의미없이 움직일 때, 글 쓰는 것이 좋아 가끔 몇 줄 씩 끄적이나 이내 나의 부족한 재능을 깨닫고 펜을 내려놓곤 한다.

가끔 두통이 찾아올 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오늘 자면 내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 편하게 사람들에게서 잊혀져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나고 싶은 그런 생각. 당시에는 극단적인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인지 나에게 그럴만한 용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추석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이십여 번의 경험은 아직도 나에게 있어서 어색하고 어찌 풀어나가야할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는 문제이다. 화학에서 RDS 라는 용어가 있다. 'Rate Determining Step' 전체 반응의 속도를 결정하는 단계로써 가장 느린 단계를 의미한다. 나는 현재 RDS 단계라고 생각한다. 조금 늦었지만 다시 시도를 한다면 달라질 수 있다는 보이지 않는 희망을 조금 가져보려 한다. 어쩌면 나도 유키 구라모토 처럼 색다른 재능으로 꽃을 피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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