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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럽갤문학] Sentimental Lovelity - 무민이편-

lovely2(124.199) 2016.07.20 02:08:56
조회 964 추천 20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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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햇볕 쨍쨍한 여름. 방학이지만 고3에게는 아무 의미 없다. 쓸데없이 날씨가 너무 맑아서 문제다. 햇살직빵. 현관 경계선만 넘어도 순식간에 땀이 습자지 물머금듯 티셔츠 전체를 덮어버린다. 놀라운 마법이다. 1달 정도밖에 안되는 방학기간마저 특별수업일수를 제외하면 순수 방학은 2주. 그야말로 방학이 아니라 휴가다. 그래도 그게 어디냐. 수업이나 다른 스케쥴이 없다는 것 자체만으로 해방감이 든다. 아무튼 마지막 특별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열쇠로 집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옆집에서 차임벨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요 최근에 옆집에 새 가구가 이사를 와서 시끌시끌 했었는데, 아마 새로들어온 이웃인가보다. 핫팬츠에 품이 큰 민소매 옷차림의 소녀가 수박을 한조각 물고, 한 손에는 수박껍질이 잔뜩한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들고 걸어나왔다. 백옥같이 하얀 피부, 아직 젖살이 덜 빠진듯한 볼에, 크고 깊은 동그란 눈망울. 나이는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인다. 나는 잠시 문을 열어두고 집에 들어가는것도 잊은 채 그 아이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쳤다.


  " 뭘봐요? "


  " 네? 아뇨. 아무것도... "


 목소리를 들으니, 첫 인상보다도 훨씬 어리게 느껴졌다. 하이톤에 맑은 목소리, 그러나 또렷하고 앙칼지게 들리는 소리가, 볼멘 소리기는 하지만 또 한편으로 듣기 좋은 음색이다. 여자애는 뭔가 기분나쁘기라도 한 듯 툴툴거리며 말했다. 나는 '이사오셨어요?' 라고 물어보려다가 관두었다. 어차피 누가봐도 새로 이사온것 같은 상황이고, 굳이 친근하게 굴어봐야 뭔가 더 인연이 없을듯 해서 헛수고처럼 느껴졌다. 여자애는 길 옆 음식물 쓰레기함에 봉투를 투척하고는 처벅처벅 걸어서 다시 집에 들어갔다. 나는 그 모습을 무심히 지켜보다가 이내 관심을 덮고 집으로 들어갔다. 머릿속엔 그저 빨리 샤워하고 눈좀 붙여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2.

 

 " 얘, 오늘 엄마가 주민센터에 갔다가 옆집 사람이랑 만났다. "


 " 그래요? "


 저녁에 집에오신 어머니께서 처음으로 꺼낸 이야기는 새로 이사온 옆집 사람 이야기였다. 주민센터에서 옆집 아주머니를 만나 얘기하다보니 금세 친해지신것 같다.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눈 이웃이 바로 옆집에 사는 사람이란 우연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별 일 없을줄만 알았던 옆집과는 부모님을 통해서 나름 인연이 생겼다. 


 " 그나저나 그집에 가족이 엄청 많더라고? 아들 일곱에 딸이 하나라더라. "


 " 아니 그렇게나 많아요? 다같이 살면 집이 좁아 터지겠는데? "


 " 거기 딸 하나가 막내인데, 오빠들은 몇은 따로 나가서 살고 군대랑 자취랑 해서 딸 하나만 있는 모양이더라. " 


 " 음... 그래요?..... " 


 딸이라.... 아마도 오늘 낮에 봤던 그 여자애인것 같다. 뭔가 퉁명스러운 성격은 오빠들이랑 지내서 그런건가? 아무튼 그 뒤로도 어머니와 옆집 아주머니의 교류는 계속 이어졌다. 같이 장을 보러 가기도 하고, 할일이 없을 때면 어머니가 옆집에 놀러가기도 하시는 등 두분은 마치 10년은 더 된 이웃처럼 가깝게 지내셨다. 그러나 이웃집간의 교류와 왕래는 어머니들의 선 이상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나와 그 여자애도 그날의 잠깐 마주친 이후로는 모습을 본적도 없고 딱히 의식할 일도 없었다.



 하루는 옆집 모녀가 우리 집에 온 적이 있었다. 어머니께서 옆집 아주머니를 초대하신 것이다. 아주머니는 딸을 소개하고 싶으시다며 데려오신 것이다. 



 " 어머, 니가 지애로구나? 실제로보니까 너무 예쁘다."


 " 안녕하세요? "


 그애의 이름은 유지애라고 한다. 어머니와 아주머니는 나와 지애를 서로 소개시키셨다. 그러나 두 어머님들과 달리 우리는 짤막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아무말 없이 어색하게 서 있었다. 어머니와 아주머니는 대화 삼매경에 빠지시더니, 음식을 준비하러 부엌으로 가셨고, 나와 지애는 거실 소파에 서로 떨어져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정말 일초, 일초가 길게 느껴진다. 괜히 머쓱해서 이리저리 둘러본다. 누가보면 내가 손님인줄 알거다. 그나저나 이 여자애는 지난번 마주쳤을때 기억하고 있을까? 어쩌면 이미 잊어버렸을지도? 옆을 슬쩍 쳐다보니, 지애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도 괜시리 스마트폰 화면을 쳐다본다. 아 도대체 어머니는 언제쯤 돌아오시려나? 그냥 방에 들어가 버릴까? 어색한 공기를 도무지 견딜 수가 없어서, 나름 큰 결심하고 말을 걸어 보았다. 


 " 어..... 뭐, 마실꺼라도 갖다줄까?"



 " 아니. 괜찮아. "



 " 그래....... "


 그리고 다시 스마트폰을.... 아니 이게 아닌데.



 " 유지애라고 했지? 이름 이쁘네...... "


 지애는 뭐야? 하는 듯이 잠시 째려보더니 "고마워" 하고서는 다시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아.... 더 어색해지는거같다. 뭐 할말도없는데....... 진짜 있기 싫다.



 " 아, 우리 저번에 본적 있지? 그 며칠전에 집앞에서......"


 " 저기, 미안한데 신경 꺼줄래? 그리고 처음부터 반말이라 좀 불쾌하네."


 " 어? 그렇다면 미안. 아니 난 그냥.... 이것도 인연인데 좀더 친근한게 낫지 않나 싶어서.... "


 " 친근함과 예의는 다른문제라고 생각해.... "


 아니.... 우리가 어른들도 아니고, 존댓말까지야 ;;  솔직히 고3이면 급식충 최고학년인데, 여기서 더 위로 누가있다고.....


 " 실례지만 나이가......? "


 " 미안하지만 나 대학생이거든? 뭔데 반말이야? "


 지애는 계속 휴대폰을 두들겨댔다. 아니.... 정말로? 난 여지껏 외모만 보고서 자연스럽게 중고딩으로 생각했었는데. 방금 얘기를 듣고 뭔가 뒷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공기는 더 무겁고 어색해졌다. 누나였구나.... 근데 막내면.... 그 위 오빠들은 대체 얼마나 나이가?


 아무튼 정식적인 첫 만남은 좀 최악인거 같다.





3.

 그 뒤로도 두 집의 교류는 계속 이어졌다. 나와 누나도 좀 더 자주 마주치게 되었다. 우려와는 달리 그렇게 상황이 나쁘지는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좋을건 더더욱 없었지만. 뭐 얼굴이라도 보이면 형식적인 인사 오가는 정도. 그냥 서로 없는 사람처럼 대한거 같다. 하루는 집에서 공부하기 싫어 뒹굴거리고 있는데, 외출하신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겉절이를 옆집에 나눠주기로 했는데, 냉장고에 준비해놓은게 있으니 대신 주고 오라는 것이었다. 그냥 나중에 주면 안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딱히 할일도 없고 해서 겉절이 통이 담긴 비닐봉투를 들고 옆집으로 향했다.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려도 아무 반응이 없다. "계세요?" 하고 몇번을 불러봤지만, 아무래도 다들 나가고 없는 모양이다. 그냥 돌아가야지 하고 무심코 문 손잡이를 열었는데 문이 열리는 것이었다. 당연히 잠겨있을줄 알았는데.......


 " 저기..... 계세요? "


 ....... 조용한데?


 " 저기..... 실례하겠습니다. "


 용기를 내서 현관까지 들어갔다. 외출할때 문 잠그는거 잊으셨나? 어떻게 해야하나 망설이고 있을 때, 어디선가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있나본데? 나는 들어가겠다고 크게 말하고서 조심스럽게 집 안으로 향했다. 안쪽 방에서 가녀린 목소리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지애누나가 있던것 같다. 방에 있어서 내 목소리를 못들었나보다. 방문이 반쯤 열려 있길래 지애누나를 부르려고 열린 틈으로 선 순간이었다.



 " 빙글빙글 돌아가는 판.람.차~ 세상가장 달콤했던 솜.사.탕~ 행복했던 기억들이 떠.올.라......"


 이, 이건, 뭐지.....  올려 묶은 포니테일에, 리본..... 소녀틱한 의상에 전신 거울 앞에서 귀여운 안무를 추며, 평소보다 더 귀여운 목소리를 노래를 부르는... 지애누나? 그 순간 내가 들고있던 봉투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


 ".............."


 정적이 흐른다.


 " 아.... 저기.... 어머니가 겉절이...."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누나는 내 멱살을 잡고 방문을 쾅 닫더니 날 벽으로 밀어붙인다.


 " 뭐, 뭐야! 언제부터 본거야? 어디까지 본거야? 아니, 너 보, 봤어? "


 "뭐, 뭘요? 무슨말인지 모르겠지마 아아아아아!"


 옆구리에 들어오는 주먹이 아프다.


 " 저, 저 방금왔어요, 별로 안봤어요 그냥 파 판람차 머시기부터....."


 벽에 밀어붙이던 힘이 순간 풀렸다. 지애누나는 고개를 떨군채 아무말없이 한참을 있었다. 그리고 부들부들 떨리는 그녀의 어깨..... 그래... 누나도 여자긴 하지.... 아무래도 내가 너무 부주의했던것 같다. 누구라도 그런 장면을 들키면 챙피했을꺼야. 괜찮아 누나. 난 다 이해해. 그래 사과하고 다 이해한다고 해명해야겠다. 얼마나 부끄러웠으면 이렇게 고개를 떨구고 살기를......... 살기?


 " 너.... 말하면..... 죽인다.........."


 "............네........... 전 아무것도 기억 안납니다!............"




4.

 나중에 알게 됬는데, 누나는 가수를 꿈꾸고 있는 것 같다. 열심히 준비한지도 벌써 4년이나 됬다고 한다. 흠. 지난번 노랫소리 들어보니까 노래 잘하긴 하는거 같더라. 리본 머리끈으로 포니테일도 나름 귀여웠었지. 누나의 모습을 떠올리다가, 기억이 그녀와 눈을 맞추던 순간에 머물자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아, 아무래도 회상하는건 여기서 그만둬야겠다. 그래도 평소 마냥 머장님같던 그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뭔가 신선한 경험이었던것 같다.

 어느덧 2주의 꿀같은 휴식이 끝나가고, 곧 있으면 새 학기가 시작이다. 고3은 특별히 개학전 1주를 수험생 자율학습이란 명목으로 다른 학년보다 일찍 등교를 해야 했다. 말이 자율학습이지 사실상 의무나 다름없지만. 다들 수능이 코앞이라 불평불만할 여유도 없는것 같다. 어차피 해야할 공부 하면서 말없이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교실 안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만해도 충분히 우울한데, 한 이틀정도 시에서 수도공사 관련하여 학교 급식이 불가능하다는 공지가 내려왔다. 오늘 내일은 적어도 도시락을 챙겨오든, 잠시 외출해서 끼니를 때우든 해야 한다. 그런거 일일이 집에 알리기도 귀찮고, 딱히 크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어서 나는 몇몇 친구들과 편의점에서 김밥이랑 컵라면으로 때우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벨이 울리고 점심시간이어서 돈을 챙겨 나가려고 하는 순간, 교실 문이 쾅 하고 열렸다. 아직 남아있는 애들과 복도를 지나가던 몇몇 애들이 교실안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교실 문앞에는 지애누나가 서있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등장이었다. 아니 이게 대체 누구야? 지애누나가 여긴 왠일이지?


 " 야, 도시락. 받아. " 


 지애누나는 두리번거리다 날 발견하더니 내게 다가와 도시락을 건넸다.


 " 누나? 여긴 왠일이야? 그리고 이 도시락은?"


 " 아, 정말 귀찮게시리. 좀 이런거좀 챙기고 다니시지? 괜히 사람 피곤하게 만들지 말구. 울 엄마가 너 챙겨주래. 대체 내가 왜 니 도시락을 챙겨야 되는거야?......"


 참. 그러게말이다. 우리 어머니 말씀드린적도 없는데, 옆집 아주머니는 어떻게 알고? 감사하긴 한데 애매한 느낌? 뭐 추측컨데 우리 어머니께서 학급 부모님들끼리 서로 연락하다가 알게되고, 옆집 아주머니께서 우리 어머니와 수다를 떨다 어쩌다 알게 된 것 같다. 원래 아줌마들이 별의별얘기 다하지않나. 뭐 집에서 기어다니는 바퀴벌레가 몇마리까진지도 서로 나눌정도니... 물론 말이 그렇다는거지. 실제로 그렇단게 아니고.


 " .... 어. 잘먹을게. 아주머니께 감사하다고 전해줘."


 " 나 간다. 그리고 도시락 내가 만들었어. 울 엄마 집에 안계셔서.... 참 엄마는! 그러면서 대체 뭘 가져다주란거야? "


 평소처럼 툴툴거리며 교실을 빠져나가는 누나의 뒷모습을 보다가 나는 누나가 준 도시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도시락을 먹으로 뚜껑을 열었다. 딱히 아무 기대한건 아니지만, 나는 도시락의 비쥬얼을 보고 절로 감탄을 내뱉었다. 이건 완전 도시락 수준이 아닌데? 형형 색색의 반찬이 정말 맛깔나게 생겼다. 이게 도시락 퀄리티야? 나는 젓가락으로 고기를 한점 집어 입에 넣었다. 오! 세상에! 육질의 이 식감이 뇌속 전체를 요동치며 채우는거같다! 비룡같은거 보면 띵~ 하면서 배경음악 나오고 퐈~~ 하는 효과음이랑 함께 시식자가 아스트랄한 세계로 날아가지 않나? 지금 그런 기분이다. 지애누나 요리 잘하는구나? 다른 메뉴들도 이것저것 집어먹어보았다. 한점한점마다 정말 놀라움으로 혀가 즐거웠다. 뭔가 지애누나를 다시보게되는 순간이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아이들이 몰려오더니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 야, 이 도시락은 뭐야? 아까 그 누나는? "


 " 아는 사람이야? 너 누나있었어? "


 

 또 여자 들어왔다고 난리피기는....


 " 그냥, 옆집 사는 누나야. "


 " 오?!! 야! 친해? 이쁘던데? "


 " 아, 뭐 그 정도까진 아니고.... 그냥 아는사이정도?"


 " 야, 빼기는! 그러지말고 말해봐? 왜 그동안 숨기고 있었냐?"


 " 아 그런거 아니라니까? 이사온지 얼마 안됬어. 뭐, 옆집이니까 걍 뭐 그렇고 그런거지~ "


 녀석들은 지애누나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하긴 지애누나가 이쁘긴 이쁘지. 사실 지애누나랑 친분이 있다고 하긴 뭔가 애매하지만, 녀석들의 관심때문인지 나는 내가 지애누나랑 아는 사이란 사실이 뭔가 뿌듯하게 느껴졌다. 딱히 거짓말한건 아니지만, 괜스레 우쭐대고 싶어서 여유로운척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 누나가 노래도 꽤 잘하고, 보시다시피 요리도 잘하는거 같더라고. "


 " 이새끼, 아닌척하더니 꽤 친한가보네? 아 좋겠다. 옆집에 저런 누나도 살고...."


 녀석들이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왠지모르게 기분이 좋다. 순간이긴 하지만, 정말로 지애누나랑 가까워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시작종이 울려서 다들 자기자리로 돌아갔다. 나름 기분 좋았는데, 금방 끝난거같아 좀 아쉽긴 하다. 그러나 아쉬운 기분도 모의고사 문제 몇개를 풀다보니, 금세 잊혀지고 말았다.





     5.

 그날 저녁. 빈 도시락 통을 들고 지애누나 집을 찾아갔다.


 ㅡ띵동 !


 " 누구세요? "


 " 아, 누나 이거. 도시락통. 고마워. 잘먹었어. 누나 요리 엄청 잘하더라. "


 누나는 짦게 대답하며 빈 도시락통을 받아들었다. 지애누나에게 인사하고 집에 가려고 돌아선 순간, 누나가 날 불렀다.


 " 덥지? 시원한거 한잔 마시고 갈래?....... 아무도 없으니까 부담갖지 말고...."


 " 어?.... 그래...."


 나는 괜찮다고 얘기하려다가 얼떨결에 알겠다고 대답했다. 이건 또 뭐지? 그나저나 뭔가 지애누나 말투가 상냥해진거 같다. 그런데 누난 내가 부담스러울까봐 아무도 없으니 괜찮다고 하는거 같은데..... 난 아무도 없다는 사실어 더 신경쓰이는데!..... 


 " 자 마셔."


 " 고마워."


 좀 대화가 건조하긴 하지만. 아직은 누나랑 좀 어색한건 어쩔수 없다. 시원한 음료수 한잔 받아들고, 어찌할 바를 몰라 멀뚱멀뚱 앉아만 있다. 누나는 무릎 한쪽을 끌어안은채 앉아서 내가 음료수 마시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음료수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들어가는지 모르겠다.


 " 누나.... 좀 무섭지? "


 " 아니.... 아니.... 어.... 전혀.... "


 " ㅋㅋ 괜찮아. 나도 다 아니까..... 사실 그러려한건 아닌데......"


 " ......... "


 " 원래 표현하는게 서툴러서.... 좀 툴툴거리는거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그렇진 않아. 오해하거나 너무 어려워말았음 좋겠어."


 ".... 나 괜찮아. 딱히 누나 싫게 느껴진적도 없구. "


 " 그래?...... 고마워...... "


 살짝 고개를 기울인채, 자기 무릎에 기대어 미소를 짓는 누나의 모습이 순간이지만 두근거렸다. 뭐야? 갑자기......


 " 요 며칠간 우리 마주칠때마다.... 왠지 니가 나 피하는거 같더라고... 생각해보니까 처음부터 그렇게 쌀쌀맞게 굴었는데, 그러니까 불편하게 느껴졌겠구나 싶더라구.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들길래, 뭔가 잘해줬으면 어땠을까 싶어서 도시락도 준비해보고.... 그랬던거야....."


 " 아.... 내 모습이 그렇게 보였구나.... 나 절대 그래서 그런건 아냐... 그냥 뭐랄까?.... 내가 낯을 가려서..... 뭐.... 암튼. 참! 도시락 완전 맛있던데? 누나 요리 엄청 잘하는구나!"


 " 맛있다고 해줘서 고마워.... 잘하는건 아니지만, 만드는걸 좋아하는 편이야."


 조금이지만, 뭔가 누나와 가까워진듯한 느낌이 든다. 누나와의 사이에서 가로막고 있는 벽이 녹아내린듯한 느낌? 그러고보니 지애누나도 웃는게 참 예쁘구나.


 " 그. 저기말야. 전번에 누나 방에서..... 그거 미안해... 내가..."


 " 괜찮아. 신경쓰지마. 이젠 아무렇지 않으니까. 오히려 내가 예민하게 군거같아 더 미안하네...."


 " 아냐.. 함부로 엿본 내가 잘못이지. 근데 누나 노래 진짜 잘하더라! 노래도 잘하고 요리도 잘하고.... 재주가 많네."


 또 대화가 끊겼다. 무슨말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홀짝홀짝 음료수만 마시고 있을 뿐이다. 순간이지만 녹았다고 생각했던 분위기가 다시 어색해지는거 같다. 이쯤에서 끊고 그냥 집으로 가는게 낫겠다 싶어서, 잘 마셨다고 인사하려고 지애누나를 바라보았다. 지애누나는 눈을 감은채 미동도 없이 가만히 소파에 기대어 있었다. 아무말 없던게 잠들어서 그런거였구나. 뭔가 많이 피곤했나? 바빴었는지도... 조용히 컵을 놓고 일어나려는 순간, 뭔가 가녀리고 부드러운 물체가 내 허벅지에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애누나의 머리. 하늘하늘한 머리칼이 귀엽게 옆 얼굴을 덮고 있었다. 고요한 거실 안에, 지애누나의 쌔근쌔근한 숨소리가 퍼진다. 아, 나 지애누나랑 이렇게 가까이 앉아있었던건가?  


근데....... 이렇게 보고있으니 한없이 천사처럼 보인다. 가까이서 보니 더 예쁘구나....... 왠지 비밀을 들킨것처럼 심장이 두근두근대기 시작한다. 더워서그런가? 얼굴이 왜이렇게 화끈거리지? 괜시리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누나는 잠들어있지만, 마치 부끄러운 꼴을 보인것만 같은 기분이다. 정말 다행인건, 사방이 어두워서 내 빨개진 얼굴빛이 보이지 않을거라는 사실이다........... 아무래도 일찍 집에가려던 생각은 잠시 접어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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