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흥태는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자신을 붙잡은 팔을 떼어내려 했다.
그런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심통덕이었다.
"흥태야, 우리야.
니 동기 통덕이랑 달필이."
"너희들이 왜...?"
"흥태 니가 말해줬었잖아.
해병은 전우를 버리지 않는다고.
모든 전우들을 구하라고.
그래서 온거야."
심통덕과 마달필은 다른 사람들을 모두 의무대로 대피시키고 쾌흥태가 알려준 연락처에 도움을 요청한 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창고로 돌아온 것이었다.
"일단 지금 여기는 위험하니까 안전한데로 움직이자."
심통덕과 마달필은 쾌흥태를 부축해 일으켜 세운다.
쾌흥태는 자신의 동기들을 보며 깨닫는다.
저들 또한 자신의 든든한 전우라는 것을.
이 해병대가 마냥 어둡기만한 곳은 아니라는 것을.
"아따 마! 요요 앗쎄이 쉐끼덜 피부 탱탱한 것 쫌 보라카이!"
쾌흥태 일행을 추적하던 변왕추가 그들을 발견하고는 쾌흥태를 향해 무언가를 집어던진다.
"흥태야!"
그것을 발견한 심통덕이 순식간에 쾌흥태의 뒤를 감싼다.
"따흐악!!"
심통덕이 단말마가 섞인 비명을 내지른다.
"통덕아!"
심통덕의 항문에 진압봉이 날아와 박혀있었다.
쾌흥태가 잠시 심통덕을 살펴보고는 그에게 묻는다.
"통덕아, 걸을 순 있겠어?"
"으윽... 어떻게든 걸을 수는 있을거야."
쾌흥태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한다.
자신의 몸도 그로기 상태에서 벗어난 듯 어느정도 회복 되었다.
생각을 마친 쾌흥태가 손목시계를 마달필에게 건내주며 말한다.
"달필아, 내가 놈들을 유인할 동안 통덕이 부축해서 배전반 앞 까지 갈 수 있지? 여기 시계 받아.
지금부터 정확히 69초 후 전원을 다시 넣어 줘. 알겠지?"
"알았어. 통덕아, 조금만 참아보자."
"윽... 알겠어. 참을 수 있어..."
쾌흥태가 반대쪽으로 뛰기 시작하고 마달필이 심통덕을 부축하며 배전반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심통덕이, 운동 많이 했나보네? 생각보다 가벼운데?"
"흐흐... 흥태가 그렇게 굴리는데 살이 안빠지는게 이상하지..."
가는동안 긴장을 풀기 위해 실없는 소리도 주고 받지만 심통덕의 안색은 점점 창백해져가기 시작한다.
"통덕아, 임마. 정신 차려. 흥태가 곧 마무리 짓고 도와주러 올거야."
"...달필아, 그냥 나 버리고..."
"시끄러 이 새끼야! 정신 꽉 잡아.
해병은 전우를 버리지 않는다고..."
마달필의 말에 심통덕은 쓴 웃음을 흘리다가 이를 악문다.
"그래... 또 병신같은 소리를 했네... 빨리 가자...!"
그렇게 둘은 배전반 앞에 도착한다.
다행이도 아직 늦진 않았다.
마달필은 심통덕을 한 쪽 구석에 편하게 눕혀놓은 뒤, 시계를 보며 배전반에 손을 뻗었다.
-5
-4
-3
-2
-1!
스위치를 누르자 창고에 불이 들어온다.
남근왕 해병이 어디론가 뛰어가는 쾌흥태를 발견하고는 그의 뒤를 쫓는다.
아까 전의 철사와 토치가 있던 함정쪽이 분명했다.
제딴에는 함정으로 유인한다는 계획이겠지만, 남근왕은 이미 그 함정을 간파한 상태다.
역시나 그 함정이다.
자신이 그 함정에 도달할 무렵 쾌흥태가 갑자기 뒤돌아선다.
남근왕도 그런 쾌흥태를 따라 멈춘다.
남근왕이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말한다.
"어이, 아쎄이. 보아 하니 지금 다친 곳도 있는 것 같은데, 그냥 순순히 항복하는게 어때?
그러면 의가사는 면하게 해주..."
"남근왕 해병님께선 앞으로 예비군도 나오실 필요는 없을겁니다."
쾌흥태가 남근왕의 말을 끊자 갑자기 전기가 들어온다.
그와 동시에 발전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남근왕이 발전기를 한 번 바라보고 함정이 설치된 바닥을 내려다 본다.
철사는 발전기에 연결되어 '트리거'가 아닌 '전선'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토치의 주둥이가 바닥이 아닌 자신의 포신 방향을 향해 뻗어있다.
"씹..."
-화르륵!!
"따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엄청난 불꽃이 일어나자 창고의 스프링클러가 작동한다.
바닥에 쓰러져있는 남근왕의 가랑이 사이, 쪼그라든 그의 포신에선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그런 남근왕을 보며 쾌흥태는 나지막히 말한다.
"새끼, 기열."
한편, 배전반을 작동시킨 마달필과 심통덕은 바깥으로 나가보려 하지만, 창문은 터무니없이 높은곳에 위치해 있고 근처에 있는 문들은 전부 잠겨있었다.
스프링클러의 물소리 사이로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다.
성난 황소의 발걸음 소리가...
잠시 뒤, 옆에 쌓여있던 박스들을 거칠게 무너뜨리며 변왕추가 악마같은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변왕추가 자신의 크고 흉악한 포신을 마달필에게 들이댄다.
"앗쎄이, 전우애 실시!"
마달필은 조용히 변왕추를 노려본다.
그리고, 필사의 저항을 하리라 다짐하며 이빨을 세운다.
그렇게 마달필이 변왕추에게 맞서려는 그 순간
'전신'에서 '발'산하는 어마무시한 '기'세.
변왕추의 크고 흉악한 포신을 '따위'로 만들 정도로 위압적인 포신까지.
주변의 모두가 그 기세에 눌려 움츠러든다.
누군가는 악마라고 부를 수도 있는 모습.
하지만 마달필은 확실히 느꼈다.
그 모습이야말로 모든 해병들에게 평등과 공정을 가져다 줄 진정한 심판자의 모습이란걸.
그 모습을 본 변왕추가 뒤늦게 정신을 붙잡고 다시 자세를 바로잡으려 하지만 쾌흥태는 그런 변왕추의 어께를 거칠게 밀쳐 뒤로 돌게 한 뒤, 다시 포신을 변왕추의 항문에 찔러넣은 뒤 뺀다.
-푸욱!!!
-샤악!!!
"끄윽...! 끄아아아악!"
변왕추는 완전히 풀려버린 다리로 겨우 버티며 일어서 있는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쾌흥태는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는 다시 그의 항문에 포신을 찔러넣고 빼는 '전우애'를 반복한다.
-푸욱!!!!
-샥!!!!
"끄억...! 흐어어어어억!!!!"
변왕추가 무너져 내린다.
처절하게 꿈틀거리는 그런 변왕추의 모습을, 쾌흥태는 벌레 보듯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흐어어어어... 흐아아아아아아!!!!!"
변왕추가 마지막 힘을 짜내어 다시 몸을 일으키려 하지만 쾌흥태는 무자비하게 다시 포신을 찔러넣는다.
-푸우욱!!!!!
-슈욱!!!!!
"끄어윽... 끄어어어어어...!!!"
변왕추가 튕겨져 나가면서 앞으로 고꾸라진다.
변왕추는 스프링클러로 인해 젖어있는 땅을 마치 헤엄치듯 필사적으로 기어다닌다.
그리고 비참하기 짝이 없어보이는 변왕추와는 다르게 거대한 포신을 세우고 위압적으로 변왕추를 내려다보는 쾌흥태의 모습은 밖에서 치는 천둥번개까지 더해져 마치 공포스러운 모습을 풍기는 '심판자'의 모습이었다.
바닥을 기던 변왕추가 몸을 돌려 쾌흥태를 올려다보며 외친다.
"니 뭔데?!!!!!"
하지만 그런 변왕추의 외침에 대답해줄 생각이 없다는 듯, 쾌흥태는 변왕추의 머릿통을 붙잡아 바닥에 눌러놓은 뒤, 그의 허리를 세우고 자신의 포신을 변왕추의 항문에 정조준한다.
그리고 그의 귓가에 나지막히 속삭인다.
"새끼... 기열!"
-퍼어억!!!!!
쾌흥태가 있는 힘껏, 변왕추를 포신에 꽂아 그대로 들어올린다.
"꺼.... 꺼흐으.... 꺼흐윽...
따흐흑~!!!!!"
변왕추의 교성 섞인 단말마가 튀어나온다.
그리고 곧이어
"컥... 커헉!"
그의 입에서 쾌흥태의 백탁액이 튀어나온다.
그 옛날, '전설'이 '불곰'을 응징하던 그 모습처럼.
변왕추의 의식이 흐려지는 가운데 그는 옛날, 자신을 불곰으로부터 구해줬던 전설의 모습을 떠올린다.
왜 자신은 그 전설이 아닌 불곰이 되었을까?
힘을 얻는 과정에서 목적을 잃어버린 것인가, 아니면 힘이 생기니 다른 마음을 먹게 된 것인가?
어찌 되었던, 이젠 뒤늦은 후회일 뿐이었다.
그렇게, 변왕추의 의식은 저편으로 가라앉는다.
그런 변왕추의 모습을, 쾌흥태는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듯 한 모습으로 바라본다.
쾌흥태의 포신에서 변왕추가 힘없이 나가 떨어진다.
그렇게 한 명의 악질 선임이자 폭군이라 불리웠던 해병이 쓰러졌다.
마달필과 심통덕은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 뒤, 바깥에서 싸이렌 소리와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고, 굳게 닫혀있던 창고 출입문이 거칠게 열리며,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온다.
해병대 헌병만이 아니라 다른 군종의 헌병들도 섞여있는 걸로 보아 국방부 직할부대의 헌병들 같았다.
세 사람은 우선 그들을 피해 몸을 숨긴다.
군 법무관으로 보이는 정복을 입은 군인이 주변을 가르키며 말한다.
"여기 있는 녀석들 모두 체포하고, 부대에 있는 자료들은 전부 확보하도록!"
"예!"
마달필과 심통덕은 쾌흥태가 얼마나 큰 일에 휘말려있는지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다.
두 사람이 쾌흥태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자 쾌흥태는 쓰게 웃으며 말한다.
"...여기서 작별이구나.
이 곳에서의 내 역할은 끝났어."
"흥태야..."
"걱정은 하지 마.
여기 있는 놈들 죽인건 아니니까.
영창 갔다 오고서 다른 곳으로 전출가는 정도로 끝날거야.
그래도, 앞으로 너희랑 만나기는 힘들겠구나."
마달필과 심통덕은 고개를 푹 숙인다.
쾌흥태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말한다.
"이젠 너희들 차례야.
변왕추같은 놈들이 더 이상 나타나서는 안 돼.
반드시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줘.
할 수 있겠지?"
"반드시 그렇게 할게..."
쾌흥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헌병들을 피해 두 사람을 밖으로 내보낸다.
"어서 의무대로 돌아가.
거기에 있으면 너희들은 조사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거야."
그리고는 자신은 양손을 들어올린 채, 헌병들의 앞에 나타나고 곧바로 그들에게 제압되어 체포된다.
마달필과 심통덕은 그 모습을 씁쓸하게 지켜볼 뿐이었다.
대부분의 실세층 선임들이 각종 조사 끝에 영창부터 교도소까지 다양한 처벌을 받았고, 일부는 의병 제대를 하기도 했다.
수많은 간부들이 병사들의 일탈행위를 묵인하거나 고발 내용들을 무시하고, 부대 운영비를 빼돌리는 비리 행위들을 저지른 것이 적발되어 역시 처벌을 받게 되었으며, 특히 대대장이었던 곽말풍의 경우, 불명예 제대를 하고 구속수사를 받게되는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쾌흥태는 선임들을 대상으로 저지른 하극상과 그 하극상의 정도로 인해 군사재판으로 넘겨질 뻔 하였으나, 쾌흥태가 그런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부대 내부의 사정과 그런 상황에 대해 내부 고발을 했다는 점이 참작되어 영창 처분을 받고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가는 선에서 마무리가 되었다고 한다.
부대를 발칵 뒤집었던 사건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모든 일이 끝나고, 남은 이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심통덕의 자리에는 책이 몇 권 놓여있었는데 지난번 변왕추가 불태웠던 그 라이트노벨과 동일한 책들이었다.
심통덕이 제일 위에 있던 책을 집어들자 쪽지 한 장이 떨어진다.
[통덕아, 미안.
솔직히 재미없다.]
쾌흥태가 남긴 쪽지를 보고 마달필은 킥킥 웃기 시작했으며 심통덕은 씁쓸하게 웃는다.
그 외에도 쪽지가 더 있었다.
[운동은 가르쳐 준대로만 꾸준히 해주면 돼.]
[달필이도 꼭 운동 시켜. 걔도 좀 움직여야 해.]
쪽지의 내용을 본 마달필은 죽상이 된다.
어찌 되었던 두 사람은 다짐한다.
한 명의 전우가 다른 전우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걸고 만들어낸 기회를 헛되이 하지 않기로.
그 전우가 바라던대로 더 나은 해병대를 만들어 나가겠노라고.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후임병 몇명이 심통덕에게 다가온다.
"심통덕 해병님, 저희 운동좀 가르쳐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이것만 읽고."
"아, 또 그 씹덕책 읽고 계십니까?"
"취존 좀."
살이 빠지고 근육이 붙은 심통덕의 모습은 전입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그는 자기 자신은 몰론 다른 전우들을 챙길 수 있을 정도의 여유도 생겼고 그를 고깝게 여겼던 동기들도 이제는 그를 믿을 수 있는 전우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그를 따르는 후임들도 여럿 생겨있었다.
몰론 그의 취향은 여전히 이해받지 못하고 있었지만.
마달필 또한 몇몇 후임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후임들이 마달필에게 무언가를 물어본다.
"정말 단 한 사람이 저희 부대를 완전히 바꿨다는게 사실입니까?"
"아무리 그래도 막 전입온 아쎄이 하나가 선임이랑 간부들을 그렇게 담궜다는게..."
"안믿을거면 믿지 말어.
솔직히 나도 아직 안믿기니까."
마달필은 피식 웃으며 수양록을 적어내려간다.
그 날 이후, 마달필은 자신이 보고 겪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해 나가는 버릇이 생겼고, 실세가 되고 나서는 후임들에게 그 날의 일을 이야기 해주는 것을 하나의 취미로 삼고 있었다.
시끄러운 사건이 있었다는 것은 알아도 단 한 사람이 만들어낸 일이라는 사실은 대부분 잘 믿지 않는 눈치기는 했지만, 그 날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 사건을 이렇게 부르곤 했다.
쾌흥태 해병의 성기난사 사건.
쾌흥태 해병이라는 단 한명의 활약으로 썪어빠진 부대를 정화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시킨 기념비적인 사건.
쾌흥태 해병은 영창으로 간 이후,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가게되었다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소식이 끊기게 되었다.
비록 그 날 이후, 쾌흥태 해병을 보진 못했지만 그의 능력이라면 어디서든 잘 지내고 있으리라.
마달필이 TV를 틀어본다.
[다음 소식입니다.
오늘 오전 10시경, 포항역 역사 내 화장실에서 해병대원 8명이 항문이 파열된 상태로 기절한 채 발견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의식을 차리자마자 자신들이 가혹행위의 가해자였다는 사실과, 해당 부대의 간부들과 결탁해 사건들을 은폐하거나 각종 비리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사실을 자백해 왔다고 경찰이 밝혔습니다.
조사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자백은 대부분이 사실로 보인다고 경찰 관계자가 밝혔으며 화장실에서 기절한 채 발견된 사실에 대해서는 증언을 거부하고 있다고...]
앵커의 멘트를 들은 마달필은 확신한다.
'그'가 한 일이라는 것을.
마달필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번진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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