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부시로드 라이브 후의 이야기다.

한 열두명정도 왔으려나

절반정도는 늘 보던 밀키안이고

한명은 방학에 알바뛰어서 새벽에 피치타고 간다는 지 몸만한 백팩 맨 대학생이고

그 외엔 좀 이상한 사람들

술자리라고 고른곳이

이케부 뒷골목쪽 어디 노가다꾼 규동거리 옆에

간판이 이랏샤이 이자카야인가뭔가

들어올때부터 술냄새 풀풀 풍기던사람

깜깜한 밤에 이상한 선글라스 끼고와서

말할때마다 힝! 힝! 하고 콧물 마시는 사람

아무튼 테이블 세 개쯤 잡고 두시간동안 먹고 하는데

난방이 과해서 후덥기까지 한 이자카야에

어떻게 그 넓은 테이블에 굿즈 하나 꺼내놓는놈 없이

다들 외투를 꽁꽁 싸매입고 마음조차 숨기듯 가려놓고는

“밀키는 이미 한참전에 나가리고!”

“뱅드림도 이제 포피파에서 모르포니카로~”

“모르포니카도 이제 기성세대지 마이고로 세대교체가 일어날거다”

하는 뜬구름 잡는 개소리에

“일성갤 그새끼 안불러서 정말 다행이야”

“트위터에 그 ㅁㅁㅁㅁ좌? 그친구 진짜 뒷계가 장난아닌데”

하는 험담질이 대화의 대부분이라

대충 듣는둥 마는둥 하고 앉있다가

어느덧 안주도 술도 다 먹어가고 다들 ‘그 시간’이 다가왔음을 짐작하는데

계속 하던 험담도 잦아들고

선뜻 화두를 던지는 사람도 없어졌다

어색하고 무거운 침묵만이 몇분 지나가고

피치를 타고 가야한다는 대학생이

“그래서 술값은 어떻게 하죠?”

라고 묻지만 모두 눈만 깔고 아무 말이 없다

한동안 이어지는 적막함 속에

피치타고 급히 가야한다는 대학생이

“제가 오늘 급히 자리를 떠야 하니 죄송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제가 알바비도 받았으니 제가 사도록 하겠습니다” 라며 일어서자

그제서야 다들 그럴 순 없다며

“아니 그래도 젤 어린분이 사는건 좀;;”

“솔직히 티켓값만 해도 술값 금방 내겠구만요”

“제가 오늘 현금이 없어서 나중에 입금드릴게요”

“이런 자리를 주기적으로 하고 총무를 뽑아서 회비를 내죠”

하며 이랏샤이 이자카야의 7천엔짜리 계산서를 가루가 되도록 흔들면서 토론하는 꼬라지에

‘아 내가 이런 쥐새끼같은 놈들과 밀키를 논하려 했구나’

하는 실망감에 두드려맞고

자리에 앉은채 구겨신었던 내 나이키 운동화를 똑바로 고쳐신고는

럭키스트라이크 한 개비를 꺼내어 입에 물고

핸드폰을 쳐다보며 담배피우는척 밖으로 나와서 안쪽을 들여다보니

다행히 내가 빠져나온걸 알아챈 사람없이

아직도 계산서를 들고 술값 논쟁에 한참인 꼴이라

그대로 뒤돌아 행인들속에 몸을 숨긴채

모퉁이를 돌자마자 전속력으로 달려서 가까운 전철역에서 환승해가지고 겨우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날의 기억은 한달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나를 놓아주지 않고

가끔 새벽이면 끔찍한 악몽으로 나를 괴롭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