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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벙글 의외로 이승만 고로시에 앞장선새끼
바로 박정희임 틀니딱딱이들이 이승만 - 박정희를 거의 뭐 신마냥 빨아재끼는거 보고 오해하는 게이들도 있겠지만 이승만 박정희는 존나 철천지원수였다 ㅇㅇ 사상적으로도 정반대수준인 아예 접점자체가 없는, 차라리 김대중이 더 가깝다고 볼수도 있는 수준이였음 예를 들어 이승만은 끝까지 화폐개혁 할때 예금동결을 "국민의 재산권 침해" 라며 거부하고, 국가주도의 5개년 경제개발 계획도 공산주의 빨갱이나 하는 짓이라며 거부했음. 박정희가 화폐개혁 할때 제일먼저 예금동결에 환급상한까지 만들어놓은 것과는 대조적임. 에초에 이승만이 나라를 세운 국부지위에서 탈락된건 좆팔륙 운동권식 민족사관보다 박정희의 역할이 훨씬 큼 당장 북보르네오 침공(이것때문에 국제원조 완전중단됨), UN탈퇴, 친공산주의,친중같은 개씹똥싸다가 실각된 독립운동가 출신 인도네시아 국부 수카르노만 해도 현재까지 독립과 건국의 공로로 인도네시아에선 국부라고 불림. 이승만도 2공당시엔 실각했으나 여전히 국부로서의 지위를 지키고 있었고, 정치권에서도 이승만당인 자유당 인사들이 자리를 지키고있었음. 민간에서도 6.25 빤스런, 학살자 독재자라는 이미지보다 나라를 세운 큰 어르신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음. 박정희가 5.16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이승만은 아직도 국부자리를 지키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큼 이승만의 이미지는 박정희 집권이후 모든 게 바뀌었음. 이승만을 대체할 국부로 김구를 내세우고(5.16 참여했던 김구아들 김신에게 보답하는 의미도 있었을 것임), 이승만 동상이 있었던 곳에 백범광장을 조성함. 4.19정신을 헌법에 넣은 것도 박정희임. (당시 5.16은 4.19를 계승한다는 의식이 있었기 때문 ㅇㅇ) 참고로 "런승만" 도 박정희가 만든 이미지에 가까운데, 이때 당시 이순신 성역화사업도 박정희가 한 사업 중 하나임. (헌충사 확장, 이순신 동상 건축, 이순신 관련 연극,영화 제작 등) 한국의 나폴레옹같은 정신적 지주가 필요하다 느낀 박정희는 당시 이순신을 성역화시키면서 (당시 이순신은 권율 장군, 곽재우 장군과 같은 구국의 장군이라는 인식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전 국민적인 성역이자 성웅으로서 받들어진 건 박정희의 이순신 성역화 작업 이후임), 의도적으로 자신과 이순신을 오버랩되도록 만들었는데. 나라를 버리고 도망친 선조 = 이승만 (이승만이 왕족이였다는 점도 비슷함) 당파정쟁으로 혼란한 조선 = 2공체제 당시의 혼란 이순신 = 박정희와 혁명 세력들 대충 이런 프레임을 짜놨음. 2공이 민주화이후 재조명되고, 박정희가 폄하되면서 박정희가 짜놓은 프레임은 깨졌지만 선조 = 이승만이라는 공식은 사라지지 않아서 그대로 이승만은 국부보다 학살자 런승만으로 이미지가 굳혀짐. 1. 이승만이랑 박정희랑 존나 사이 나빴다. 2. 박정희는 집권후 자유당파 숙청, 김구 재조명, 이승만 격하등 이승만 개새끼 만드는데에 존나 진심이였다. 3. 결국 이승만이 학살자 런승만이 된 데에는 박정희 지분이 존나 크다. 정치라는게 원래 존나 서로 통수때리는거다. 박그네때도 박정희파 숙청시킨 엔두가 존나 꼬와서 5.18에 존나 호의적이였고, 김대중이랑 노무현도 사이 존나 나빴다. 싱붕이들은 정치인 개새끼들이 만들어놓은 좆같은 프레임에 걸려들지 말자 ㅇㅇ
작성자 : ㅇㅇ고정닉
19세기 미국에서 전설이 된 결투..JPG
1804년 7월 11일, 미국에서 당시 에런 버 부통령 (좌측)과 알렉산더 해밀턴 (우측)전 재무장관이 벌인 결투. 현직 부통령이 맘에 안든다고 전직 재무장관을 결투로 죽여버린, 지금 와서 보면 황당하다는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희대의 사건이다. 에런 버는 과거 해밀턴의 장인어른 상대로 선거에서 이긴 적이 있어 그때부터 둘의 악연이 시작되었다. 해밀턴은 사사건건 틈이 나면 에런 버를 비난했다. 와중에 해밀턴은 미합중국 역사상 최초로 성스캔들로 재무장관직에서 내려오게되었다. (재임중 유부녀 마리아 레이놀즈와의 불륜 스캔들로 인해 물러났다.) 이후에도 해밀턴은 에런 버가 대통령 후보로 나서자, 그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토머스 제퍼슨을 지지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해밀턴은 버를 두고 "위험한 인간, 정권을 맡겨서는 안되는 인물"이라며 비난했고 이에 에런 버는 참다참다 빡쳐서 즉각적인 사과를 요구했으나, 해밀턴은 응하지 않았다. 결국 버는 그대로 폭발하여 해밀턴에게 권총 결투를 신청한다. 1804년 7월 11일 뉴저지 허드슨 강 해밀턴에겐 약간 특별한 장소인곳인데 그의 맏아들이 19세의 나이로 그 장소에서 결투로 목숨을 잃었던 곳이었다. 두 사람은 총구를 서로에게 겨눈다. 그리고... 총성이 울려퍼진다. 버가 쏜 납탄이 해밀턴의 골반을 뚫고 지나가, 척추에 박히게된다. 해밀턴 역시 방아쇠를 당겼으나, 에런 버는 상처 하나 없이 말끔했다. 해밀턴은 다음날 병상 위에서 숨을 거둔다. 이후 해밀턴의 '결투에 대한 특별한 사연', 그리고 결투 전날 썼던 "나는 결투를 원치 않는다. 그를 빗맞출 것이다."라는 글귀가 널리 알려진데다 버는 "사실이라면 멍청한 짓이군" "아침 안개가 시야를 가리지 않았다면 해밀턴의 심장을 맞췄을 것이다" 라며 경솔하게 행동하다가 안좋은 이미지로 굳어졌다. 결국 부통령직을 제대로 맡아보기도 전에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분노로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이러한 이유로 에런 버는 정치가로써 활약이 적어서 오늘날 미국 역사에서도 버는 '해밀턴을 결투에서 죽인 자'로만 알려져있다. 해밀턴은 초대 재무부 장관으로 미국의 금융, 경제체계를 확립했다고 평가받아 미국 10달러 지폐에 새겨진다 - dc official App
작성자 : 방파제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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