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말 안했는데도 비 왔어요? 하고 묻는 도희를 보면서 준수가,
신애라 엄마가 했던 말을 떠올리잖아.
사랑은 세상 사람 아무도 못 보는 걸 봐주는 거라고.

나는 그 씬이 겁네 좋았는데,
사실 준수의 첫사랑은 준수는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끝나버렸잖아.

5살이나 많은, 친동기같이 친하고 편했던 누나가 먼저 좋다고 달려들어 입까지 맞췄고,
그 날부터 정연이 눈을 제대로 못 쳐다보게 됐고,
그냥 소년의 첫사랑은 그렇게 \'반응하듯\' 시작해버렸단 말이야.

10년 뒤에 결혼하자고 프로포즈를 하긴 했지만 그게 엄청 거대한 결심같은 것도 아니었어.
그날 준수의 나레이션을 보면 정연인 코스모스 같은 외모로 깡있는 말투를 쓰는 여자, 딱 엄마같은 여자였고
그래서 어린 시절 엄마같은 여자랑 결혼할거야! 했던 거의 연장선이었단 말이야.

준수의 첫사랑이자 풋사랑이 (정연인 걸 떠나서) 안타까운 건
남자 공준수로서 제대로 사랑을 느끼고 해보기도 전에 그게 산산조각나서 깨져버렸고
그를 덮친 사건이 너무 커서, 그 첫사랑은 기억조차 제대로 나지도 않게 되어버렸단 거야.

근데 도희에 대한 마음을 자각할 때,
준수는 도희의 마음과는 상관 없이 \'자기 스스로\' 사랑을 시작했어.
이성은 여자로 보면 안된다, 아플거다 힘들거다 되뇌이고 있지만
준수가 그 날 정의했던 자기 마음은 \'사랑\' 이었어.

어쩌면 이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게 된다 하더라도,
세상 천지에,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 사람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로
감사하고 가슴벅차다고.
오래 전 그날 엄마가 말했던 사랑이란 게 이거였구나, 하고 말이야.

암튼 준수가 자기 스스로 시작한 거라 나는 그 씬이 겁네겁네 좋았다 그 말.
그래서 예고에서 준수가 자신의 사랑을 게임에 비유하고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패도 자신이 쥐고 있다고 했던 거였을 거임.
도희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원망하고 미워하는 날이 오더라도,
이번만큼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가\' 선택하고 시작한 사랑인 거니까.



는 겁네 뜬금없는 글이긴 하지만 드갤인데 뭐 어떰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