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사한테 뭔 감기에 그리 자주 걸리냐 놀리자마자 감기가 들어오셨다. 첫날 잘 추스렀어야 하는데 김건과 굳이 목욕탕에 다녀오고(명절 직전에 아이와 목욕탕에 가는 거야말로 우리의 근대 풍속 아닌가) 저녁엔 술을 조금 했더니 돌이킬 수 없이 되어버렸다. 아버지 집에서 이틀 동안 누워만 있다가 처가행도 포기하고 돌아와야했다. 이럴 땐 뭐든 과한 것들을 찾아 정돈하는 게 할 일이라 쓰지도 않는 최신 기능들이 비계덩어리처럼 덕지덕지 붙은 프로그램들은 다운그레이드하기로 했다. 조금씩 가벼워지는 컴퓨터를 보자니 내 머리통도 가벼워진다. 아침에 조중사가 그랬다. “닷새는 앓아야 해요.” 하루 남았구나..ㅎㅎ
김단이 졸업했다. 요즘 다 그런지 아니면 강 건너 북한이 보이는 학교라선지 장학금을 받는 아이가 여럿이었다. 김단은 ‘이장협의회\'라는 꽤 정겨운 이름이 붙은 장학금을 받았다. 고생했다, 김단.
내 글은 메시지가 부각되느라 문체를 말하기엔 불리한 조건을 가진 듯하다. 그 소리만 들으면 헛웃음이 나오지만, 나는 이른바 ‘논객’인 것이다. 그러나 나도 자의식이 있는 사람인지라(혹은, 어쩔 수 없는 속물인지라) 이따금 내 문체를 언급한 글을 발견하면 흥미롭다. 뭐랄까, 그것은 종종 지나치게 지사적인 캐릭터로 오해받곤 하는 나에게 얼마간의 정신적 여흥이다. 전에 로쟈가 쓴 것, 그리고 Elliott가 쓴 것.
아직 어리다고 남자친구 사귀는 걸 반대해요저는 올해 13살이 되었구요. 겨울방학만 지나면 6학년이 돼요.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얼마 전에 같은 반 친구인 동석(가명)이가 제 책상 밑에 쪽지를 몰래 놓고 갔어요. 평소에 저를 좋아했대요. 사귀자는 내용이었어요. 저도 사실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는 동석이를 좀 좋아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문자로 사귀자고 답장을 했어요. 사귄 지는 20일 정도 됐구요. 그런데 며칠 전 엄마가 제 문자를 몰래 보고는 동석이와 제 관계를 알아버렸어요. 부끄러워서 엄마한텐 아직 말 못했거든요. 문제는 엄마가 어린 나이에 남자친구를 사귀면 안 좋다며 더 커서 사귀라고 그러시는 거예요. 그 자리에선 알았다고 했는데 솔직히 저는 동석이랑 계속 사귀고 싶어요. 제 나이에 남자친구 사귀는 게 안 좋은 건가요?
삼촌이 지금은 어른이지만 옛날엔 하연이처럼 어린이였잖아? 그러니까 삼촌은 옛날엔 어린이였고 지금은 어른이지. 그게 모든 인간의 삶이잖아. 누구나 한 때는 어린이이고 또 어린이는 반드시 어른이 되지. 그래서 가만 생각해보니까 그런 생각이 드네. ‘어른들은 어린 시절을 단지 어른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으로 여기는구나.’
그런데 하연이도 그래? 삼촌도 어린 시절을 곰곰 생각해보면 그 땐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단 말이야. 어른이 된 지금이나 하나도 다를 게 없이 중요한 삶이었지 어릴 때 삶이 어른이 되고난 후의 삶보다 덜 중요하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어.
남자친구 사귀는 일로 엄마와 생각이 갈리는 것도 결국 그런 차이 아닐까 싶어. 하연이는 지금 남자친구 사귀는 게 지금 그 자체로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이잖아. 그런데 엄마는 나중에 어른이 되고나서 하연이 삶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니까 지금 남자친구 사귀는 건 그다지 가치 있거나 중요하지 않은 거지.
엄마 쪽에서 보자면 어른이 되고난 후의 삶에 분명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무래도 성적일 텐데 남자친구 사귀면 공부하는데 방해가 될 거라고 생각하실 거야. 또 성적인 접촉 같은 것도 걱정이 되시겠지. 결국 하연이가 남자친구 사귀는 걸 좋아할 만한 이유가 없는 거야.
엄마한테는 죄송한 말이지만, 삼촌은 엄마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하연이 엄마뿐 아니라 그런 생각을 하는 모든 어른들이 다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사람의 인생이란 어떤 중요한 시간을 위해 다른 시간이 희생되어도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야. 인생의 모든 시간은 똑같이 소중하기 때문이야.
삼촌은 그걸 잘 알아. 왠지 알아? 삼촌 첫사랑이 초등학교 때였거든. 그리고 그게 삼촌 인생에선 아주 중요한 일이 되었거든. 앞으로도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많지 않을 거야. 삼촌이 그 이야기를 글로 쓴 게 있는데 보여줄게. 어른들 읽으라고 쓴 거라 말이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천천히 읽어보면 읽을 수 있을 거야. 엄마하고 함께 읽으면 더 좋을 거야.
(아, 남자친구를 사귈 때 이런 걸 주의해야 한다든가 하는 말은 삼촌은 하지 않을게. 그런 말을 해줄 어른들은 많을 테고 또 그런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하연이가 이미 잘 알 테니 말이야. 맞지? ㅎㅎ)
박래군이 쓴 ‘진보운동의 새로운 기획’. 팜플렛 분량의 글인데 참세상에 세 번에 나누어 실렸다. 세상이 더럽게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야리꾸리한 인문서 읽을 시간을 줄여서) 필독을 권한다. 글에 대한 내 의견은 정독한 후에.
1. 왜 진보운동의 새로운 기획인가
2. 권력재편기에 진보세력은 무엇을 할까
3. 한국사회 진보 100대 과제 만들자
요즘 동무들은 여자친구 남자친구를 사귀는 일에 참 당당해. 커플링 커플티를 보여 주며 자랑하는 동무들도 많지. 하지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어른의 반대에 부딪칠 때가 있어. 불편함이나 불만도 많을 거야. 누구나 감정을 가진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자유가 있는 건데 말이야. 어른이 이성친구 사귀지 말라고 반대하거나 잔소리하면 기분이 어때? 어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지? 마음속에 숨겨뒀던, 혹은 말하고 싶었던 동무들의 여자친구 남자친구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봤어.
우리도 사랑을 해~
예슬|오늘 주제가 연애라니 나는 좀 그렇다.
찬우|뭐가?
예슬|기분이 이상해. 사생활 침해 받는 기분이야.
진규|그래서… 가명이잖아.
재민|그래, 가명. 근데 너희 중에 사귀어 본 애 있어?
성희|찬우 사귀고 있잖아. 그것도 엄청 오래.
재민|맞다. 너, 진짜 오래 사귄다. 얼마나 됐지?
찬우|헤~ 좀 됐지. 2년째인 거 같아. 5학년 초부터 사귀고 6학년 때 다른 반 됐는데도 계속 사귀었어. 우린 아무것도 아냐. 3년째 사귀는 애들도 있더라. 참, 찬성이도 사귀잖아~
찬성|음……. 지금은 헤어졌어.
재민|어? 너, 사귀어 봤어? 언제?
찬성|헤어졌다니까! 헤어진 지 한 달 정도 된 거 같아. 사귄 건 20일 좀 넘고.
찬우|참, 성희가 찬성이한테 쪽지로 고백했잖아. 히히.
성희|야! 너, 조용히 해!
진규|맞아. 찬성이가 성희한테 성형이나 하고 오라고 그랬다면서?
성희|너희 진짜~!
찬성|아~ 우리 나이에 무슨 연애냐고. 그래서 그랬던 거야. 다 그냥 친구지. 사귀는 게 뭐야?
예주|너 정말 그랬어? 심했다.
미라|그래. 너 심했어. 성희야, 너 아무렇지도 않아?
성희|헤헤. 뭐 괜찮아. 지난 일인데……. 내 성격이 좀 좋아. 그리고 쟤는 아직 나보다 정신 연령이 낮아. 그래서 사랑을 모르지.
찬성|무슨 말하는 거야? 너, 차여서 그러는 거지?
예슬|맞아. 남자들이 우리 여자보다 더 어린 거 같아. 만날 장난만 치고. 얼굴 예쁜 애들만 밝히고 말이야.
재민|야~야. 됐어. 사귀냐 안 사귀냐 로 정신연령을 따지냐?
진규|그~래. 우리 남자애들도 연애한다고~! 그러니까 너희도 사귀는 사람이 있는 거잖아. 너희 여자들끼리 사귀냐, 그럼?
남자가 있으니까 사귀고 그러는 거지.
찬우|그래. 맞네.
미라|알았어. 히히. 화를 내고 그래~ 난 또래보다는 오빠가 좋아. 말도 더 잘 통하고 잘 챙겨 주고.
예주|나도 작년에 한 학년 오빠랑 사귀었는데……. 정말 잘 챙겨 줬어. 가방도 들어 주고 집까지 바래다주고. 게다가 생긴 것도 잘생겨서 완전 킹카였다니까.
진규|근데 왜 헤어졌냐?
예주|방학하면서 흐지부지 되더라고. 그 오빠 이제 중학생 되잖아.
찬우|근데 미라야. 너 지금 기찬(가명)이랑 사귀고 있지 않아?
미라|응. 맞아. 사귄 지 한 달 좀 넘은 거 같아. 22데이 그냥 지나가서 완전 심하게 싸웠잖아.
찬우|걔 너랑 또래잖아~ 오빠가 좋다면서?
미라|원래 바라는 것과 현실은 다른 거야.
“경쟁만 배우면 행복을 모릅니다.”
“경쟁만 배운 아이는 행복을 모릅니다.”
“경쟁만 배운 아이는 행복을 모르는 사람이 됩니다.”
앞으로 고래 홍보에 쓸 문안을 만드는 중.
어떤 게 나은가.. 흠..
(홍기표의 고래 리뷰)
고래 속 각각의 내용들은 독립적이면서 동시에 서로를 보충하고 확대, 심화시키는 유기적 상호 연관의 구조에 힘입어 탄력적으로 읽힌다. 일테면 이렇다.
현실을 똑바로 보는 눈과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된 그림이 혹여 외면 받더라도 꿋꿋이 이겨내며 뒤돌아서서 미소마저 지을 수 있는 것이 만화가의 자세라고 말하는 \'을식이는 재수없어\'는 끼르륵하고 울고, 거칠고 뻣뻣한 털을 가진 그러나 이제는 없는 동물에 대한 우화인 \'코딱지만한 이야기\'와 겹쳐지면서 서로에게 의미를 부여하면서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마침내 \'옥상에서 보는 풍경\'과 \'어른들이 사라진 도시\'에 이르러 확대 심화된다. 보르헤스의 소설 제목이기도 한 \'불한당들의 세계사\'와 \'도구의 역사\'는 현실을 바로 보는 눈이란 무엇일까를 자문하게 만들며 새롭게 연재되는 \'피터 히스토리아\'는 인류사 기술에서 배제되어 온 수메르를 등장시켜 생각의 폭을 넓힌다.
이처럼 현실을 좀 더 풍부하게 드러내면서도 다양한 시선에서 생각하게 만드는 잡지 \'고래가그랬어\'를 읽고 나면 머릿속이 빽빽하게 꽉 차오는 포만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또한 이러한 까닭에 고래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어린이 잡지이면서 한때는 어린이였으나 지금은 아닌 사람들도 배제하지 않는 어린이 잡지 그 이상의 어린이 잡지가 된다. 고래는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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