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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던전 표류 - 1

이매(14.50) 2016.12.12 18:58:12
조회 1179 추천 12 댓글 12

던전 표류


*

게임 불감증이라고 했던가. 어떤 게임도 재미있지가 않았다. 간혹 재미가 느껴지는 게임도 한두 시간쯤 하다가 패턴이 파악되면 금새 질려버렸다. 

영화를 몇 편 보다가 관두고 소설을 몇 권 읽다가 내려둔다. 이쯤 되면 게임 불감증이 아니라 재미 불감증이라고 해야 맞았다.


그러다 던전 크롤 : 스톤 스프를 접했다. 한국에서는 '돌죽'이라 부르며 매니아층이 형성되어 있는 게임이었다.

던전을 탐험하는 게임인데, 한 번 죽으면 게임이 초기화되고 캐릭터가 삭제된다. 새로 게임을 시작할 때마다 던전이 새로 만들어지고 던전 층과 몬스터, 아이템이 일정한 규칙을 따라 랜덤으로 배치된다.

그러므로 매번 상황이 바뀌기 때문에, 딱 하나의 공략법이 있다기보다는 수많은 죽음을 겪어가며 플레이어의 경험을 쌓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 했다. 

게임의 목표는 던전의 가장 마지막 층으로 내려가 조트의 오브라는 것을 가지고 올라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픽이 형편 없었다. 도트 그림들이 턴마다 움직이는 게 전부였고 심지어 사운드도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들이 열광하는 게 아무래도 신기했다. 무료 게임이라고 해서 부담 없이 받아 시작해보았다.

그게 재앙의 시작이 될 줄이야...



*

-푸드득


새가 홰 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좁은 동굴이어서 그런지 크고 선명하게 울린다. 칼을 고쳐잡았다. 아마도 박쥐일 것이다. 게임 초반에 최약체로 나오는 몬스터로, 회피율이 높고 이리저리 날아다녀서 잡기 짜증난다는 것만 제외하면 큰 위협은 아니었다. 보통은 도끼질 한 방에 죽었으니 나에게도...

그 순간 검은 것이 내게로 쇄도해왔다.


'무섭잖아!'


반사적으로 옆으로 굴렀다.

사람 머리통만한 몸집에 날개는 그보다 훨씬 컸다. 그만한 박쥐가 흉폭하게 달려드는데 싸움 한 번 제대로 안 해본 사람이 어떻게 맞서겠나. 게임과는 완전히 감각이 달랐다.

박쥐가 선회하며 다시 날아들었다.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게 얼굴 한 쪽은 그대로 뜯어갈 것 같은 기세였다.

다시 굴러서 박쥐를 피하는데, 급하게 구르다 얼굴이 바닥에 스치자 찐득찐득한 것들이 달라붙었다. 악취가 나는 걸 보니 배설물이었다.


'하 제발...'


게임에서는 똥 같은 거 안 나온다고. 바닥을 구르다 얼굴에 똥 묻는 것도 없고 무서워서 오줌 찔끔 지리는 것도 없단 말이다. 방향키 몇 번이면 죽어버리는 게 이렇게 무서운 생물일 줄은 몰랐다. 

나는 이런 곳에 어울리지 않아. 평화롭고 안정된 삶을 찾아 던전 밖으로 나가야 한다 어떻게든. 여기서 죽을 수는 없었다. 

다시 한 번 나에게로 달려드는 박쥐를 칼로 쳐냈다.


-화르륵


순간 칼에서 불길이 피어오른다. 하지만 박쥐의 힘은 상상 이상이어서 부딪치는 순간 칼을 놓치고 말았다. 칼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저만치 굴러 떨어진다.


'젠장!'


하지만 효과가 없었던 건 아닌지 선회해서 돌아가는 박쥐의 몸통 한 쪽이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혼돈의 팔치온의 효과였다. 혼돈 속성을 가진 무기는 무작위적인 효과를 낸다. 불로 지지기도 하고, 냉기로 얼리기도 하고, 혼란시키거나 마비시키기도 하고, 심지어 상대를 가속시키거나 치료하기도 한다..고, 이 곳에 떨어지기 전에 본 가이드에 나와 있었다.

갑작스런 불에 충격 받은 모양인지 박쥐는 쉽사리 다가오려 하지 않는다. 그 틈을 타 옆걸음질 쳐서 다시 칼을 주웠다. 그러나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건지 몸을 굽히는 순간 나에게로 쇄도해온다. 

다시 쳐낸다!

그 순간 칼날에 안개 같은 빛이 맴돌더니 박쥐에게로 흘러가 감쌌다. 


[낄낄낄낄]


난데없는 웃음소리가 동굴 안을 가득 채운다. 박쥐가 날아가는 걸 보니 아까 그을렸던 몸통 한 쪽이 다시 멀쩡하게 돌아가 있었다. 혼돈 속성에 의해 치료가 발동된 모양이었다.


[재밌구나 장난감아.]


낮고 음산한 목소리로 신이 말했다.


"시끄러 개자식아."

[어머, 얘가?]


순간 목소리가 높고 간드러지게 바뀐다. 무시한다. 집중을 흩뜨리고 싶지 않았다. 다시 칼을 고쳐잡고 덜덜거리는 다리를 단단히 바닥에 고정했다. 이길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의 공격을 두 번 피하고 두 번 쳐냈다. 지금의 신체능력으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라는 의미다.


[더 재미있게 만들어볼까?]


좀은 소년의 목소리로 후하핫 웃더니 신령한 빛을 박쥐에 내리쬐었다. 박쥐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가속 마법이었다. 날개를 퍼덕거리며 바뀐 속도에 적응하는가 싶더니 총알처럼 날아들었다. 너무 빠르다. 옆으로 구르는데 어깨에 쿵 하는 충격이 왔다. 미처 피하지 못하고 부딪친 것이었다.


"크으."


하지만 일어나보니 의외로 아프지 않다. 가죽갑옷이 공격을 막아준 모양이었다. 갑옷에는 발톱이 스치고 지나간 듯 얕은 흠집이 나 있었다. 갑옷이 없었더라면 살점이 한 움큼은 떨어져나갔지 싶었다.

몸통부터 팔뚝까지 갑옷이 있으니 방어만 잘 한다면 빨라도 해볼만 할 것 같았다.

이후 몇 번의 공격을 피하고, 피하지 못할 것 같으면 등이나 팔뚝으로 막아내면서 패턴을 살폈다. 여전히 공격해올 때마다 심장이 벌렁거리지만 조금씩 그 움직임에 익숙해져 갔다.

혼돈의 팔치온을 움켜쥐고 기회를 노린다.


"포착!"


어깨로 공격을 막은 뒤 박쥐가 멈칫하는 틈을 타 팔치온을 내리꽂았다. 하지만 무게중심을 못 잡고 애꿎은 공기만 갈랐다. 박쥐는 다시 선회하며 공격을 노렸다. 아직 기회는 몇 번이고 있다.

박쥐가 달려든다. 얼굴을 노리고 있었다. 왼 팔뚝을 들어올려 막는 동시에 칼을 휘두른다. 

칼에 냉기가 감돌더니 퍽 소리를 내며 박쥐에게 꽂혔다.


-끼이이이이


바닥에 팽개쳐진 박쥐가 죽어갔다. 다시 살아날까 무서워 눈을 질끈 감고 박쥐에게 칼을 박고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게 뭔 개고생이냐..."


얼마나 긴장했던지 몸이 풀려 힘이 들어가지가 않았다. 다리 한 쪽은 아직도 덜덜 떨리고 있었다. 침대가 그리웠다.



-

르피너스의 장난감을 읽다가 더 못 읽겠어서 써봄. 덕질의 끝은 자급자덕이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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