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주인공이자 스캔들의 주인공 하은중.

이 드라마 제목이 <스캔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이라는게 참 재미있다.

이미 여러 평에서 언급되었듯이 이 드라마의 큰 줄기는

외디푸스 비극을 대표로 한 그리스-로마 비극을 따르고 있어.

그리스-로마 비극의 전통은 여러 문화권의 비극으로 전승되어 왔다고 볼 수 있는데

(우리가 잘 아는 세익스피어의 비극도 이를 따르고 있지. 변형된 모습이지만.)

내가 느끼기에 <스캔들>은 현대 한국사회의 비극을 그리려 한게 아닌가 한다.

현대 한국사회의 비극은 스캔들이로구나, 오호라.

비극이 왜 이리 유구한 세월 동안 사랑 받아온 장르일까 하면,

영웅(hero)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지.

우리 인간은 영웅을 갈구한다, 그리고 그 영웅의 고귀함을 그리는 것이 비극.

비극의 영웅은 인간성과 이 세계의 모순을 드러내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자이다.

평범한 우리는 그 영웅을 비극이라는 이야기의 틀 속에서 간접적으로만 향유하게 되는 것이지.

하은중은 비극 영웅의 전형성을 꽤 많이 가지고 있는 인물.

일단 그는 고매한 의지를 타고난 사람이다.

재미있는 것이 하은중은 친모인 윤화영과 양부인 하명근의 캐릭터 중 좋은 부분을 몰빵했다는 것.

일단 직업만 보아도 정의를 집행하고 추구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윤화영과 하명근의 후예이고,

형사로서 일해온 그의 지난날에 대한 묘사를 보면 어떠한 타협 없이 엄밀한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지.

그리고 친부와 장주하, 그의 예비 남편이 대변하는 돈의 세계와 그 논리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다.

그러나 비극 영웅은 고매한 캐릭터와 의지에도 불구하고 결함을 피할 수 없는 사람이다.

영웅이지만 인간이기에, 모순으로 가득 찬 이 세계의 존재이기 때문에 결함은 피할 수 없는 것.

하은중에게 이 결함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 타협 없음, 엄밀함, 곧음이 바로 결함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즉, 동전의 양면인 셈이지.

더 찾아보자면, 그가 훌륭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옳지 못한 행동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양부 하명근과 친모 윤화영의 아들이라는 것 그 자체가 결함이 될 듯.

또한, 그런 결함 투성이인 그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성품을 지닌,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이라는 점이 결함이 되겠지.

이 결함이 영웅을 비극으로 이끌게 된다.

영웅은 고매한 목적을 위해 영웅의 의지를 갖고 행동을 하지만

그는 이 비극의 세계 안에서 결국 좌절하게 될 것이다.

그때에 영웅이 느끼는 고통과 이 세계의 모순을 우리는 간접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지.

이 드라마 전반부에서 하은중은 진실과 정의를 찾기 위해서 수사하지만

그렇게 하면 할수록 자신의 친부를 위협하고 친모를 위태롭게 하게 되고, 

양부의 추한 과거와 맞닥뜨리게 되고, 자신의 모순된 정체성과 마주하게 된다. 더욱더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22회 하은중의 '왜 나야' 라는 대사는, 하은중이라는 인물을 벗어나 화면 밖으로 나와 내게 와서는,

내가 이 세계의 비극 남주구나 오 신이시여, 라는 확인 사살 같았달까? ㅎㅎㅎ

내 생각에는 드라마 후반에도 이 비극의 요소가 어느 정도 유지될 것 같다.

그는 영웅으로서의 목적을 갖고 그걸 추구해 나가겠지만,

이 모순 투성이의 세상에 의해 좌절 당하고, 사랑을 알고 갈구하는 자신의 결함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게 될 것임.

우리는 그걸 보며 함께 고통스러워 하겠지.

고매한 목적을 마음에 품고, 고매한 의지를 갖고 이를 이행해 가는, 

알고 보면 마음도 보드랍고, 게다가 잘 생기기까지 한

우리의 주인공이 이 세계가 자신에게 안겨다주는 좌절과 고통을 마주하며 신음하는걸 보며

우리도 음...;

아무튼 본격 새디스트 드라마라고;

우리는 우리의 주인공에게 이런 고통을 안겨주는

이 모순된 세계와 부정한 인간군상을 우라지게 욕해줘야 할 것이드아;;;

(주의: 이 드라마는 변형된 비극이므로 영웅이 장렬한 최후를 맞이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슴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