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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천&윤강] 비익련리 서장(序章)_上

소이(110.14) 2018.07.27 15:25:01
조회 622 추천 12 댓글 0

하여... 공주님 이대로 장례를 치르고 조사를 갈무리하기로 결정이 났다 하옵니다.”

탁한 목소리로 올리는 유신의 보고에 덕만은 한숨을 얕게 내뱉었다. 벌써 네 번째, 자신의 편에 서겠다고 약속한 자들이 하루아침에 비명횡사 한 채로 발견되고 있었다. 고개를 빳빳이 들고 대들던 춘추에게 주군이자 이모로 인정받고 세력을 규합한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춘추마저 덕만의 밑으로 들어가자 덕만이라는 새로운 황실세력의 성장과 함께 판세를 빠르게 읽은 지방출신의 귀족들, 그리고 골품은 모자라나 막대한 부와 정보망을 가진 상인세력들이 적게나마 공주에게 연을 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대의를 위해, 누군가는 이득을 보기 위해, 누군가는 복수를 위해. 저마다의 동상이몽이었으나 지지기반이 약한 덕만에겐 이유야 어찌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공주궁에 연통하며 도움을 제공하거나 충성을 맹세하기가 무섭게 보름 내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기 일쑤였다.


돌연 덕만의 방문이 열리고 심각한 표정의 알천이 급히 들어와 덕만에게 예를 취했다. 매일같이 입고 다니던 화랑복이 아닌 수수한 검은색 옷차림이었다.


이번에도 같은 자의 소행입니다.”


알천랑, ‘이번에도라니요?”


동그란 눈의 덕만이 알천에게 되물었다.


이번에 당한 현암 공은 제 숙부를 통해 공주님께 연줄을 놓으려했던 자입니다. 지금 숙부의 도움으로 다행히 염습을 하기 직전 현암 공의 시신을 살피고 오는 길입니다. 이전에 죽은 3명과 대동소이합니다. 저항흔 없이 단 한 번의 일격으로 숨통이 끊어진 점, 사병과 노비들이 겹겹이 호위하고 있는 집안에서 당한 점, 하지만 목표물 외에 다른 식솔들이나 목격자는 손대지 않은 점, 살인도구로 쓰인 칼을 시신에 박아둔 채 그대로 도주한 점. 모두 같습니다.”


, 실로 대담한 자객이야. 아님 멍청한건가? 암살에 통용되는 상식을 전부 개나줘버린거잖아. 목격자를 살려두지 않나, 경비가 삼엄한 집안에서 일을 저지르질 않나, 쓰던 칼을 그대로 두고 가질 않나.”


모두가 심각한 가운데 비담만이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며 가볍게 재잘댔다. 사람이 죽었다는 비극보단 수수께끼 같은 사건이 주는 재미에 더 집중한 비담의 모습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덕만은 그저 눈짓으로 주의를 주는데 그쳤다.


저와 뜻을 함께하기로 한 자들이 약속이나 한 듯 허무하게 죽어갔습니다. 이 모든 게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미실의 짓이 분명합니다.”


덕만은 입술을 깨물며 차갑게 단언했다. 곰곰이 듣고 있던 춘추가 조심스레 반문을 제기했다.


허나 공주님, 현암 공을 비롯하여 이전에 죽은 자들은 정세에 이렇다 할 영향력을 가진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미실에게 전혀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 못하지요. 귀족들의 머리, 서라벌 세력의 9할은 지금 미실의 것이 아니옵니까. 미실이 무엇이 아쉬워서 저들을 서라벌 한복판에서 보란 듯이 죽인단 말입니까.”


그래, 바로 그것이다. 서라벌 한복판에서 보란 듯이, 그리 허무하게, 영문도 모른채 죽는 것이다!”


덕만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인 이에 대한 분노, 그리고 자신 때문에 죽은 자들에 대한 죄책감이 섞인 떨림이었다. 그런 덕만을 비담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지금 제게 연줄을 댄 자들은 말씀하신 것처럼 세력이 미약한 자들입니다. 허나, 이들의 수가 늘기 시작하고 더 높은 지위의 귀족들이 저에게 돌아서기 시작한다면요? 미실의 세력 중에 딴 마음을 품는 자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살해당한 4명은 일종의 본보기입니다. 이 덕만의 편에 서는 자들의 최후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서라벌 세력의 9, 아니 그 이상은 미실의 것입니다. 서라벌에 세가 없는 지방출신 귀족들의 살인사건은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기 충분하나 병부나 감찰부에서 사력을 다해 사건을 해결할 정도는 아니지요. 특히나 병부는 설원공이 장악하고 있는 바, 살인사건을 면밀히 조사하지 않는 모습이 이상하지도 않습니다.”


공주님


격해지는 덕만의 말을 끊고 비담이 끼어들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덕만에게 반말을 하던 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정중하고 다정한 목소리였다. 떨리는 덕만의 눈을 바라본 비담이 진정하라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한없이 따뜻하고, 모든 응석을 받아줄 듯 다정한 눈길이었다. 마음을 다잡은 덕만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사건의 진상이 흐지부지 되고 말아버리면 남는 것은 무성한 소문뿐입니다. 아마 지금쯤 백성들 사이에선 이런저런 말들이 빠르게 퍼지고 있을 것입니다.”


공주님, 소문이라 하시면 어떤-?"


유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밖의 유화가 죽방과 고도의 입실을 알렸다. 이들 역시 평소의 낭도 복장이 아닌 나그네 복장이었다. 감쪽같은 변장의 그들을 보는 덕만의 입가가 살짝 미소짓듯 풀어졌다.


어서오세요, 형님들. 알아보셨습니까?”


예에, 공주님. 그것이....”


산만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눈치를 보는 고도를 덕만이 부드럽게 채근했다.


말씀해주세요, 고도 형님.”


공주님께서 예상하신대로입니다요. 저잣거리에는 연쇄살인사건이 귀신의 짓이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공주를 찾아가던 자들이 귀신의 먹잇감이 된다는 소문이요. 살인범을 목격한 노비들이나 가족들의 증언도 이상합니다요. 그 범인 놈을 맞닥뜨린 자도 있는데 하나같이 하는 말이 큰 키를 가지고 새카만 옷에 기괴한 하얀 탈을 쓰고 다닌다고 합니다. 자신들을 목격한 자들을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순식간에 홀연히 사라져버렸대요. 발놀림은 어찌나 가벼운지 기와지붕 위를 빠르게 달려도 소리 하나 나지 않는 게 꼭 날아다니는 것 같다고 합니다. 신출귀몰한 움직임이나 그 형체로 보아 절대 사람 짓일 수 없다네요. 그리고......”


고도가 더는 입에 올리지 못하겠다는 듯 죽방의 눈치를 보았다. 마른 침을 넘긴 죽방이 어렵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것이.... 또다른 소문은 말입니다요, 이 모든 것이 하늘이 노해서 그렇다네요. 새로운 계양자의 등장으로 계림에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지만 성골 남자의 씨가 마른 것은 바꿀 수 없으니까요. 성골남진의 원흉인 쌍음의 한 짝은 공주가 되고 쌍음의 다른 한 짝인 천명공주님의 아드님이 궁으로 돌아온 것을 보고 계림의 신들이 노한 나머지, 덕만 공주를 돕는 이들을 죽여 황실에 벌을 준다는......뭐 그런 소문입니다요.”


, 들릴듯말듯한 외침과 함께 덕만이 눈을 질끈 감았다. 예상은 했으나 미실이 이렇게 빨리 민심을 휘저을 줄은 몰랐다. 월천대사에게 하늘의 힘을 사용하는 것은 자신의 공주 즉위 때가 마지막이라 약속했거만, 이것이 그대로 부메랑처럼 자신을 덮칠 줄이야.


소문의 배후는 보지 않아도 뻔합니다. 모든 것이 미실이 원하는 대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제게 접촉하는 세력들은 급격히 줄어들 것입니다. 철저한 고립으로 저와 춘추의 연합세력이 성장할 여지를 아예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말끝을 흐리는 덕만의 표정에 수심이 가득했다. 황궁에서 미실과의 대결이 순탄치 않을 것을 모르지 않았으나 초반부터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 이들이 늘어가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실도 이를 노렸을 것이다. 생명의 무게를 귀히 여기는 덕만이 자신 때문에 희생되는 자들을 보며 죄책감에 숨통이 막힐 것을. 덕만이 탈출구 없는 생각에 잠겨있을 때 그녀를 건져 올린 것은 비담의 밝은 목소리였다.


에이, 공주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꼬리가 길면 밟히게 되어있습니다! 제가 반드시 산채로 잡아서 공주님께 바쳐 올릴 것이어요. 믿고 맡겨 주세요.”


어린 아이 같은 비담의 호언장담에 유신, 알천, 춘추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덕만 만큼은 희미한 미소로 답을 건넸다.


그래, 말이라도 힘이 되는구나. 고맙다.”


허면, 제게 믿고 맡기시는 겁니까?”


비담의 해맑은 채근에 덕만은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가 정 하고 싶다면 그리하거라. 너뿐만이 아니라 여기 있는 이들 모두와 황실의 충직한 일꾼들도 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수행에 필요한 것이 있느냐?”


여기 있는 이들 모두라니요, 공주님. 오직 저, 이 비담만이 범인을 잡아 공주님께 보일 것입니다. 다른 이들에게 눈길 주실 필요 없이 저한테만 믿고 맡기시면 됩니다. 사소한 말 한 마디에도 누군가에 대한 총애를 보이지 않으려는 덕만의 언사에, 비담은 약간 언짢아졌으나 내색하지 않고 밝게 답했다.


저를 도와줄 이들이 필요합니다, 공주님


허면, 알천랑. 알천랑과 비천지도의 낭도들이 비담을 성심성의껏 도와주세요.”


내키지 않는 얼굴의 알천이 건조한 목소리로 답했다.


, 공주님. 명대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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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 내용분량 제한때문에 부득이하게 상,하편 나눠서 썼어ㅠㅠ

바로 下편 이어서 감상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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