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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천&윤강] 비익련리_001

소이(110.14) 2018.08.04 10:14:03
조회 927 추천 15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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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강전 앞은 아직 조용했다. 편전회의가 길어지는 모양이다. 인강전 문 바로 앞에는 황실의 친위대들. 그리고 그 뒤로는 각 대소신료들의 수행원들이 제 주인들의 서열순으로 자리하여 주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덕만의 근위화랑인 알천의 위치는 황실 친위대 바로 앞. 그리고 그에게서 바로 한 발짝 뒤는 미실을 모시는 자의 자리이다.


알천은 비담에게 행렬의 끝에서 공주님을 모시고 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라 일러두곤 자신의 위치로 가서 자리를 채웠다. 미실의 수행원 자리는 이미 일치감치 채워져 있었다.


역시 나보다 늦게 오는 법이 없군.’


알천은 슬쩍 눈을 돌려 자리의 주인을 훔쳐봤다.


윤강(允剛). 신국 권력의 정점 미실을 지키는 무사. 미실의 목을 노리고 미실궁에 잠입한 수많은 자객들을 단 한 번도 살려 보내지 않았다는 괴물. 화랑도의 부제 보종과 대등한 실력으로 맞붙을 수 있는 실력자. 그리고 수많은 미실의 자식들 중 어미의 미모를 제일 많이 닮은, 미실의 딸.


알천의 시선을 느낀 윤강이 받아치듯 서늘한 시선을 보냈다. 보면 볼수록 미실을 빼다 박은 듯한 얼굴이다. 하지만 풍기는 분위기는 모녀가 확연히 달랐다. 미실이 화려하고 품위 있는 모란을 닮았다면 윤강은 차디찬 겨울 눈바람이 만들어낸 설상화(雪霜花)와 같았다. 윤강과 눈이 마주친 알천은 마치 잘못한 아이처럼 시선을 먼 산으로 돌렸다.


차라리 내 위치가 뒤쪽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같이 있으면 확실히 의식하게 된단 말이지


덕만을 호위하는 알천. 미실을 호위하는 윤강. 덕만과 미실이 마주치면 서로를 견제하듯이 알천도 어느 샌가부터 미실 옆의 윤강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제일 신경 쓰이는 것은 윤강과 자신의 무공이 비교당하는 것이었다.


알천과 윤강의 일은 전투가 벌어지면 앞장서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제 주군의 곁에 붙어 안위를 지키는 것. 때문에 여태껏 두 사람이 직접 맞붙어 자웅을 겨룰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윤강은 보종이 인정한 맞수라는 점, 그리고 보종은 단 한 번도 비재에서 진 적이 없는 화랑이라는 점. 이것들은 알천의 자신감을 흔들기 충분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미실의 호위에게만큼은 밀리지 않았으면 한다. 하지만 알천의 자존심 상 이런 복잡한 심정을 내색할 수도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알천랑.”


윤강이 불쑥 인사를 건넸다. 옆에서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형식적인 인사였다. 알천을 바라보는 윤강의 눈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고요했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얼굴빛과 어딘지 시큰둥한 표정.


안녕하십니까, 윤강낭주


갑작스런 인사에 알천은 짐짓 놀랐으나 곧 표정을 다잡고 예의바르게 답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주군들의 사이가 사이인 만큼 살갑게 말을 주고받을 관계는 아니었다. 숨 막힐 듯한 정적을 먼저 깬 것은 윤강이었다.


"그렇게 잡아드실 듯 노려보실 일은 없지 않습니까.”


“.....? 낭주, 어인 말씀....”


상대를 훔쳐보던 시선을 들켰다는 생각에 괜히 뜨끔해진 알천이 말끝을 흐렸다. 애써 태연한 얼굴을 지으려했으나 이미 그의 눈동자는 당황스러운 빛이 역력했다.


제 쪽을 워낙에 끊임없이 보시길래 여기서 무사들끼리 대치하려는 것은 아닌가 했습니다.”


윤강이 틈을 주지 않고 차갑게 쏘아붙였다. 누가 봐도 윤강의 일방적인 시비였다. 시비라니. 평소 무심한 윤강다운 모습이 아니다. 헌데, 이상도하지. 윤강은 왠지 이 사내만 보면 싸움을 걸고 싶어졌다. 저 단정하고 바른 사내가 제 성질을 못 참고 울그락불그락하거나 곤혹스러워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알천은 윤강의 도발에 보기 좋게 넘어가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하는 기색이었다.


불쾌하셨다면 송구합니다, 윤강낭주. 그런 마음을 품고 바라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그저?”


저도 이유를 명확히 알진 못하겠습니다. 허나, 낭주께서 생각하신 그런 의도를 품은 것은 아닙니다. 거듭 사과드립니다. 앞으론 행동거지를 더욱 삼가겠습니다.”


정말로 자로 잰 듯 예의범절에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대답이었다. 무례한 질문 앞에서도 이토록 반듯하고 정중한 사내라니. 윤강이 먼저 시비를 건 만큼, 상대측에선 얼마든지 문제 삼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알천은 먼저 부드럽게 사과를 건네며 상황을 종료시켰다. 도발이 무산되자 이번엔 윤강이 시선을 먼 산으로 보냈다. 표정은 여전히 매서웠으나 윤강은 왠지 당혹스러운 기분이었다. 그냥 장난 좀 쳐보려 한 것인데. 아니, 사실은 그냥 말 한 번 던져보려던 것인데. 상대가 이렇게 진지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


, ...”


윤강의 짧은 답을 끝으로 둘의 대화는 끝났다. 알천과 윤강 사이의 긴장감이 전염되었는지, 덕만의 시위부와 미실의 호위무사들도 괜히 서로를 의식하며 불편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순간, 이들을 구제해주는 듯 편전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선두에는 덕만, 바로 뒤는 미실이었다. 회의가 치열했는지 두 사람 모두 굳은 표정으로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않은 채 갈 길을 재촉했다. 윤강은 뒤도 안 돌아보고 새주에게 향했다. 알천 역시 덕만에게 다가가 예를 취했다.


"공주님, 편전회의가 많이 치열했던 모양입니다.”


, 아무래도 조세에 대한 안건은 민감하기 마련이니까요.”


아침에 이르신 대로 서고로 걸음하실 예정이지요? 모시겠습니다.”


. , 그전에....”


덕만이 돌연 몸을 획 틀더니 성큼성큼 반대 방향으로 나아갔다. 알천과 유화들이 그 뒤를 급히 따랐다.


미실 새주!”


덕만의 당찬 부름에 오만하게 걸어가던 미실이 잠시 멈칫했다. 미실은 금새 살가운 미소를 꾸며내어 덕만을 맞았다. 덕만과 미실이 마주하자 그 뒤를 따르던 각자의 호위들 사이에도 다시 긴장감이 흘렀다. 물론 궁 한복판에서 돌발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러나 윤강과 알천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이상한 기색이 느껴지면 바로 발검이 가능하도록 온 근육을 팽팽하게 긴장시켰다.


, 공주님. 무언가 하실 말씀이라도....?”


덕만의 입가가 장난스럽게 올라갔다. 미실을 도발할 때마다 나오는 표정이다. 양측의 무사들이 내뿜는 살기에 정작 제 주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미실 역시 공주의 도발이 불쾌하면서도 한편으론 기대가 되었다.


일전에도 말씀드렸으나, 이 덕만은 새주께서 오래오래 사시길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계속 저의 적이 되셔서 제게 더 많은 가르침을 주시길 바랍니다. 최근에 잇따른 연쇄살인사건으로 서라벌이 뒤숭숭하지요. 윤강낭주를 비롯한 무사들은 새주의 안위를 더욱 더, 만전에 만전을 기하여 지켜주세요.”


뜻밖의 지목에 불쾌한 듯 윤강의 입술이 살짝 뒤틀렸다. 미실의 딸이라 하나 아직 어린 나이에 맞는 미숙함을 가진 그녀는 미실만큼 완벽히 표정을 숨기는데 능하지 못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공주님. 무사 윤강, 성심을 다하겠사옵니다.”


윤강의 대답이 끝나자 덕만이 경쾌하게 등을 돌려 열선각으로 향했다. 윤강은 미실의 눈치를 살폈다. 윤강과 달리 미실은 불쾌하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기막히다는 듯, 깜찍하다는 듯, 흥미롭다는 듯한 눈빛. 덕만이 멀어지자 미실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참으로 맹랑하지 않으냐. 저 맹랑함이 너무 사랑스럽고 깜찍해서 하마터면 안아줄 뻔했느니라.”


불쾌하지 않고 사랑스러우십니까.”


그래. 헌데 저 사랑스러운 덕만공주는 최근 연쇄살인사건의 배후로 이 미실을 의심하는 모양이다


, 그리고 그 의심을 숨길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흐음.....”


조치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아니다. 당분간은 이 미궁 같은 사건에 허우적대도록 내버려두자꾸나. 덕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라벌 곳곳을 파헤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그 나름 재미일 것이다.”


, 어머니.”


그나저나 윤강, 어찌 공주의 시위부와 마주칠 때마다 그리 살기를 내뿜느냐.”


“흐음...경계를 강화하는 것이라 표현해주시지요.”


너뿐만이 아니라 다른 무사들, 아니 덕만공주의 시위부까지. 누구 하나라도 거동을 잘못하였다간 바로 검을 뽑을 기세들이지 않느냐. 가끔 덕만과 이 미실은 서로가 더 민망하여 언쟁을 하다가도 물러나게 되느니라.”


미실의 불평에도 윤강은 두려움은커녕 신경도 안 쓴다는 듯 피식 웃으며 답을 하지 않았다. 결국 미실의 말은 귓등으로 흘려보내고 덕만의 시위부와 기싸움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미실은 가볍게 눈을 흘기며 못마땅한 듯 짧게 혀를 찼다.


멀리서 덕만을 기다리던 비담이 헤실거리며 공주의 행차에 합류했다. 알천은 비담 이 자가 꼬리만 없었다 뿐이지, 영락없이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와 같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비담은 덕만의 뒤에서 얘기를 듣더니 돌연 고개를 돌려 묘한 눈빛으로 미실과 그 옆의 윤강을 쏘아보았다. 미실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옅은 미소로 응수했다. 윤강은 시큰둥한 얼굴로 검자루를 만지작거리며 무시했다. 비담. 요근래 어머니의 곁에서 멤돌며 은근히 자주 마주치는 자. 미실을 보려면 반드시 윤강을 거쳐야 하기에 윤강에게도 어지간히 귀찮게 구는 자였다.


처소로 모시겠습니다. 세종공과 하종공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비담을 무시하려는 듯한 윤강의 재촉에도 미실은 한동안 말없이 덕만공주의 행차를 지켜보았다. 덕만이 시야에서 멀어져 그 수행원들도 보이지 않게 되고 나서야 미실은 천천히 새주궁으로 걸음을 옮겼다.


***


비담이라는 자 말이다...”


, 어머니


어찌 생각하느냐?”


"...예?”


요즘 이 어미를 맴돌며 꽤나 귀찮게 하지 않느냐. 윤강, 너는 어미를 보필해야 하거늘 어미에게 다가오는 자들도 예의주시함이 마땅하지 않느냐?”


그 자는 ... 기분 나쁩니다.


그래?”


그 무공, 풍월주 비재에서 보종을 쓰러뜨린 그 무공이 기분 나쁩니다. 이전에 겪어본 적 없는 형태의 무예를 구사하는 자입니다. 일식 예언으로 궁에서 탈출하려 했을 때, 대치 과정에서 반드시 죽였어야 했습니다. 설원공께서 말리지만 않으셨더라도...


보종을 쓰러뜨릴 정도라면 너 또한 예외는 아니겠지.”


“......”


미실은 딸을 도발하는 것이 재밌는 듯 눈꼬리가 휘어졌다.


"하하, 혹 그 자의 실력을 투기하는 것이냐?


어머니!”


윤강이 차갑게 으르렁거렸다. 처음 본 이들에게 벙어리라 오해받을 정도로 과묵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윤강이, 그것도 미실 앞에서 노기를 보인 것은 드문 일이었다.


네가 내 딸이라서 침전 호위로 삼았다 생각하느냐? 아니! 너의 무예가 보종의 그것과 대등하고 자객 여럿을 상대로 싸워 이 미실을 지킬 수 있기에 너를 곁에 둔 것이다. 너보다 실력이 뛰어난 이를 부릴 수 있다면 아비도 없는 너를 곁에 둘 이유가 없느니라말해보거라비담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느냐


-------------------------------------------------


드디어 윤강 등장시켰다ㅠㅠㅠ 엉엉 기뻐라

맨 위에 첨부한 이미지 출처는 k본부 드라마 ㅋㄱㄲ의 여주 (ㄱㅇㅂ 배우) 스틸컷인데 내가 상상한 윤강의 서늘한 분위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갖고와봤오!(혹시 문제 있으면 지적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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