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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천덕만 상플) 봄은 다시 오고 1

절편(211.222) 2020.07.13 04: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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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위하겠습니다."


  "폐하."


폐하를 중심으로 둘러앉은 신하들의 표정이 무거웠다. 그러나 놀란 기색은 없었다. 모두가 오늘을, 폐하의 저 선언을 예상했다.


 "경들도 알다시피 짐의 몸으로 더는 국사를 이끌기가 어렵습니다."


 "폐하, 허나."


왕은 일어났다.


 "춘추, 너는 지금 선위 받기에 모자람이 없는 상태다. 받들어 주면 좋겠구나.”


그러고는 인강전을 떠난다. 애초에 그 자리는 그녀가 논의가 아닌 일방적 통보를 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왕의 수척한 등을 감싼 붉은 도포 자락이 흔들린다. 잠식당한 왕의 퇴보였다.




오늘 밤도 여느 때처럼 침소를 지키는 알천의 귓전에 술을 따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한 시진 정도 지속되다, 그녀가 취기에 젖을 무렵이면 정적으로 이어졌고 그 정적은 곧 흐느낌이 되어 새어 나왔다.


요즘의 늘 있는 일이라 해도, 폐하를 시위해야 하는 그의 처지에서 이럴 때면 언제나 호위의 뜻을 곱씹어보게 된다. 그는 단순히 옥체만을 보존해드려야 옳을지, 그 외에서도 군주를 호위해야 옳을 것인지를 고뇌한다.


문 건너편 왕의 울음이 길어질수록 그의 손은 문가를 향해 간다. 그는 그것을 열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폐하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자로서, 타인의 영역에서는 그나마 가장 그녀의 슬픔을 잘 이해할 수 있었는데, 그 슬픔은 만고의 한이라 어떤 신하된 자도 나서서 관여할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매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지키는 것을 택했다. 매일 밤, 매 아침이 오기 전까지 계속. 깊고 검은 어둠에서 대지를 잡아먹을 것 같은 푸름이 이곳을 덮쳐올 때까지.


그리고 그때가 오면 알천은 왕의 잠듦을 시녀에게 확인받아 다른 시위부에게 제 일을 잠시 넘겨준 뒤에야 얕은 잠에 빠지다 오곤 했다. 이것이 요즘의 반복이었다.




짙푸르고 습한 새벽의 궁 공기가 밤새 어둑한 곳에 서 있다, 귀가하는 그의 감각을 찔렀다. 고개를 드니 파람에 잠긴 하늘에 반짝거리는 무언가가 아직 남아있었다.


저것이 별인지, 아니면 그저 곤함에 잘못 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저 그곳에 있을 뿐인데도 그것은 무언갈 연상케 해, 순식간에 그의 마음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그때도, 이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폐하, 지금 역적 비담이 병사들과 대치 중에 있다 하옵니다!"


 "뭐라?"


왕은 그 충격으로 자리에서 반사적으로 일었다가, 머리를 짚고 쓰러졌다. 시녀들이 가까스로 달려와 부축한다. 소식을 전하러 온 병사의 얼굴이 황망하기 그지없다.


 "사, 상장군과 그 일대의 병력이 아직 역적 비담을 막고 있다는 전보입니다, 폐하."


 "가야겠다."


"폐하, 그게 어인 말씀이십니까." 그 주위에 앉아 있던 춘추와 용춘이 동시에 일어나 그를 저지했다.


 "그곳에 가 봐야겠다. 채비하거라."


 "폐하, 그것은 아니 되옵니다. 부디 폐하의 옥체를 살펴주시옵소서. 어찌하여 폐하께서 직접 역적의 마지막을 보러 가신단 말씀이십니까."


"갈 것이다!" 날카로운 고함이 일순간 울렸다. 그 자리의 모두가 왕의 고함에 잠시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찰나에 왕은 그대로 밖을 나섰다. 그곳으로 가는 걸음은 힘없이 위태로웠으나, 그녀에게는 최선의 뜀이었다.




그 날, 신국 역사에 다신 없을 역적의 이름이 올랐다. 비담, 당대에 따라올 자가 없는 능한 머리로 책략을 폈던 신국의 적인 그가 원했을 결말이었는진 모르겠다. 그저 분명한 것은, 그는 돌아올 수 없이 깊은 오해와 후회로 쌓인 강을 건넜다는 것이다.


필시 다시 돌이킬 수 있는 지점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고, 결국 그녀의 눈앞에서 사내가 아닌 역적의 모습으로 죽어갔다. 멀쩡한 사지로 멀쩡했던 병사들을 불구로 만들었고, 자신도 차츰 병력의 수에서부터 결코 이길 수 없는 전투에서 불구가 되어갔다.


왕은 그가 유신과 알천의 칼에 관통당하고, 자신을 힘겹게 올려다보는 것까지 모든 참극을 지켜봐야 했다. 감당할 수 없는 쓰라림이 두 발로 서 있길 거부했다. 끝내 왕은 흙바닥에 쓰러졌고, 그녀는 자신의 눈이 감기는 순간까지 그의 마지막을 한없이 담았다.




어의는 한동안 주위 측근들에게 시달려야만 했다. 언제 깨어나시는가, 다른 병환이 심해지진 않으셨는가, 정말 괜찮은 것인가.


그런 모두의 걱정 속에서 왕은 삼 일 만에 눈을 떴다. 왕은 깨어난 그다음 날부터 다시 정무를 돌보기 시작했다. 이전과 다른 점은 조금도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측근들을 제외하고, 신국의 왕을 잘 모르는 신하들은 경외의 눈을 보내곤 했다.


왕의 측근들, 왕을 같은 인간으로서도 봐 왔던 자들은 그것이 얼마나 큰일이었는지를 안다. 그래서 어떻게든 한의 홍수를 막아야 함은 짐작하고 있었으나, 유신은 그 날의 난전으로 병부를 수습하기에 얼굴 한 번 보기 힘들었고, 용춘과 서현 역시 크고 작은 일로 바쁜 날에 박차를 가했다.


그렇게, 시간이 점차 흐를수록 난의 사건도 그들의 마음에서 잊히는 듯했다. 하지만 왕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는 알천의 깊은 늪만은 그대로였다.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정무의 잘된 처결에 인자한 미소를 짓는 왕을 보아도 화약이 잔뜩 든 곳에 필연적으로 폐하가 있고, 그 옆을 지키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오지 말길 바랐던 미래가 누군가 장계 속에 몰래 투고한 서신 하나와 함께 차츰 실현됐다.


 "이게 무슨…"


비열한 연꽃 가락지 물고 왕에게 매일 밤 드나들던 역적 사라졌네

이제 그것을 물 다른 위인은 왕의 숨결 곁에 있으니

아무도 그를 천치였다고 하지 않건마는 그는 실로 어리석네

이제 옥좌를 향한 진정한 연심을 문 자가 왕을 향해 갈 것이네


분명 서신이었으나, 앞으로의 일을 알리는 통보로도 해석되었다. 왕의 서신을 잡은 손이 심하게 떨려, 그녀는 한동안 어찌할 지 몰라 했다. 서신을 가져온 관리가 바닥에 엎드려 연신 읍소했다.


당대 신국의 다음 후계는 춘추였다. 누구나 인정하는 공적 사실이었다. 그러니 서신을 보낸 자, 혹은 세력은 춘추를 결코 지지하지 않는 입장일 것이었다. 문제는 그것이었다. 새주가 죽은 지 오래, 그 잔당 세력들은 역적 비담에게 몰렸다가 함께 숙청된 지 고작 몇 개월 후인 시점. 어떤 처지에 있는 자가 보낸 것인지는 아이도 알 것일진대, 그 입장을 자처할 만한 세력이 당시의 신국에 더는 남아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녀를 가장 혼미하게 만들었던 것은 서신 속 연꽃 물건의 서술이었으니, 그것은 궁 안으로 당도한 시신의 목에 걸린 가방 안 가락지였다. 오직 그 자리에 그녀와 같이 있었던 측근들만 아는 사실이었다.


왕은 그 서신을 넋 나간 듯 잡고 있다, 이내 그것을 바닥에 떨구고 당일 편전 회의마저 미룬 채 침소로 들어갔다.












공주, 공주, 공주를 보낸 시절 뒤에 찾아온 폐하. 노력했다. 미실과 같지 않기 위해, 백성의 소리를 무서워하지 않기 위해, 해서 질리는 경지를 넘어 장계 안에 담긴 신국을 읽어내렸고, 밤이 오면 항상 일이 덜 된 것 같은 불안한 심정과 함께 눈을 감았다.


이제 볼 수 없는 이라는 게 더욱 실감 날 뿐인 큰 침상에 홀로 누워 잠을 청한다. 바닥을 알 수 없는 심연이다. 심연을 꿈으로 맞이한 날이면 아침이 오기 전에 터질 듯한 가슴을 잡고 눈을 뜨기 일쑤였다.


그런 날은 어쩔 수 없이 잠에서 쫓겨나 상 앞에 앉는다. 상 위에는 언제나 장계 몇 개가 쌓여 있다. 혹시라도 일찍 눈을 뜨면 일의 덜됨을 재검하기 위해 갖다 두는 습관이었다.


곤하다거나, 힘이 듦을 느껴서는 안 되는 자리였다. 그래서 왕은 심장 반을 빼앗겨도 있는 척을 해야만 했다. 비록 겨우 잠이 들면 천명 공주의 옷을 입은 공주로서의 왕이 있고, 그 상태로 왕은 자신에게 피를 토하며 걸어오다 이내 고꾸라지는 비담을 마주한다 할지라도.


그러나 이름 모를 서신을 받은 그 날, 대낮 인강전에서 기절하다시피 잠든 왕은 춘추의 이상하리만치 긴 칼에 제 심장이 관통되는 꿈을 보았다. 무거운 왕의 관이 바닥에 떨어지고, 대신 연꽃으로 가득 채워진 새까만 관이 지면 위로 올라온다. 한계였다.




소식을 들은 춘추가 곧장 인강전을 찾았지만, 왕은 대면을 허락하지 않았다. 춘추뿐만 아니라, 그 누구와의 만남도 거부했다.


시간은 흘렀다. 왕의 부재도 이어진다. 궁에 떠도는 소문으로는 왕은 어느 밤, 급작스레 야잠만을 걸친 채로 인강전 밖을 나섰다고 한다. 당시 왕은 명료하지 않은 의식 상태로 계단을 내렸고, 끝내 발을 헛디뎌 떨어졌다. 그 소리에 알천과 궁인들이 놀라 달려와 보니 차가운 돌길에 왕은 머리에 피가 맺힌 상태로 기절해 있었다.


역적 비담이 죽은 날로부터 삼 일 만에 깨어났던 왕이 그 일로는 일주일이 다 되어서야 깨어났다. 왕의 눈이 뜨였을 때, 그 안에 비친 것은 측근들도 다른 무엇도 아닌 단지 창밖의 새 한 쌍이었다.








왕은 그 후로 더 이상 편전에도, 집무실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제 침소에서 이따금 술을 들이는 시녀만을 맞이할 뿐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던 어느 날이었다.


상장군 유신이 문밖을 지키던 알천의 저지를 물리치고 들어와, 술잔을 들고 있는 왕 앞에 무릎을 꿇었다. 처음으로 그가 황명을 어긴 순간이었다.


 "폐하."


 "유신, 이게 무슨 짓인가!"


유신은 고개를 들어, 자신 위로 추락한 왕을 응시했다. 술잔을 내려놓고, 대부분의 것이 헝클어진 왕도 유신을 마주했다. 유신은 깊이 고개 숙였다. 알천이 일으키려 했으나, 왕이 손을 들어 저지했다. 유신은 그렇게, 그 자리에서 충언을 가장한 독물을 뿌렸다.


 "폐하, 소신 김유신 감히 목숨을 걸고 아뢰옵니다! 지금, 모든 것이 어긋나 있사옵니다. 이러시면 아니 되십니다. 폐하는 신국의 주인이시며, 그 주인의 책임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결코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유신."


왕이 그를 불렀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취기에 잠긴 정신과 혀가 그것을 묶었다. 절로 실소가 나오니, 방 안 공기는 한층 무거워지고 그 가운데에서도 유신은 제 의지를 이어나간다.


 "예, 폐하. 감히 아뢰옵나이다. 속히 어의를 통해 폐하의 옥체를 보존하시옵고, 부디 그 서신을 보낸 간악한 무리를 추포하라 명하시옵고, 신국의 안정을 위해 다시 편전으로 나가 저희 신하들을 장악하시옵소서."


 "…내가, 어찌해서 그래야 합니까?"


 "폐하시기 때문입니다."


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유신 앞에 섰다. 잠시의 정적, 그러다 그녀는 돌발적으로 바로 뒤에 서 있던 알천의 검을 빼 들어 그에게 겨누었다.


 "나를, 폐하로 인정하는 그대인데 어찌 들어오지 말라는 명을 어긴 것이며 내 호위의 말조차 무시한 것입니까?"


"폐하!" 알천이 반사적으로 왕을 불렀으나, 그때 왕의 주위에는 오직 유신만이 있었다. 아무리 왕의 본을 잃었다고는 하나, 왕의 의지는 천의와 비슷한 권위를 담고 있었다. 유신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며, 무릎 꿇어 낮은 시야 속 그 앞을 곧게 응시한 채 충언을 끝맺었다. 


 "폐하, 폐하의 안위와 신국의 안정은 무엇과도 비교 불가한 제일 높은 위치의 것입니다. 그러하니 간청을 잇나이다. 부디 불충한 소신의 숨을 거두시옵고, 이후 다시 신국을 다스리는 폐하로 돌아와 주시옵소서."






그 날의 일을 한낱 구전으로 담기가 가능한가, 실제로 충신 유신은 그 자리에서 죽음 직전까지 갔을 것이다. 칼을 쥔 왕의 손이 굳어졌고, 알천은 일순간 그녀에게서 왕이 공주였던 시절에 민란 주모자였던 촌장을 처단했던 것을 회상했다. 위기감에 급박해진 알천이 유신의 옆에 나란히 무릎을 꿇고 자신도 고개 숙여 소리쳤다.


"침소에 그 누구도 들이지 말라는 명을 소신 또한 어겼나이다. 부디, 소신도 같이 처결해주시옵소서!"


왕은 웃었다. 진정 우스워서 나온 순수한 웃음이었다. 무엇이 우스웠는가, 폐하와 신하의 관계였다. 한때 정인으로 보았던, 이제는 세상에 없는 자와 바로 자신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자. 둘 모두가 자신의 신하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돌아보기도 두려운 지난날의 패악질 때문이다. 결국, 자신으로 일축된다. 왕은 자신이 우스웠던 것이다.


그 자리에 흥미를 잃은 왕이 칼을 두 사람 앞에 내던지고, 자신이 그 방을 나가는 것으로 그 날의 상황은 종결됐다.


유신의 충심이 퇴색한 왕에게 통한 것이었는지, 그 일이 있고 다음 날, 왕은 어의를 불러 몸을 진맥케 했다. 그리고 다시 며칠 후에 왕은 오랜만에 옷을 겹겹이 둘러 용의 치장을 하고서, 집무실에 측근들만을 모아 그것을 통보했다.




 "선위하겠습니다."














선위를 공표한 날 밤, 춘추와 왕은 독대했다.


 "폐하."


 "네겐 면목이 없구나."


 "그런 말을 듣기 위해 폐하를 뵈러 온 것이 아닙니다."


춘추는 서책 몇 권을 왕의 앞에 놓았다.


 "이것이 무엇이냐."


 "폐하, 선위 대신 친족의 수렴청정을 명하십시오."


 "허나 대소신료 거의 모두가 선위가 아닌 수렴청정은 반대할 것이다. 지금 내가 이러하질 않느냐."


 "명분은 제가 만들 것입니다. 이대로 선위를 받는다면, 저의 의지가 아닌 알 수 없는 다른 이의 의지로 옥좌가 넘겨지는 것입니다. 이를 막기 위해, 폐하께선 단지 수렴청정을 허하는 교지만 써주시면 되옵니다."


왕은 또 웃었다. 정사를 포기했다 생각하여, 자신도 포기했다 자각했더니 천지가 웃을 일이었다.


 "나를 원망하진 않는 것이냐?"


 "원망합니다."


 "헌데 왜 직접 옥새를 가져가지 않고, 내 손을 거쳐 받아 가려는 것이야?"


 "폐하가 한때나마 성군이셨던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소신은, 폐하가 돌아오시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왕은 그 자리에서 곧장 말없이 수령첨정의 교지를 써 나갔다. 그것을 써 내리는 왕의 표정에는 아무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춘추는 옥새가 찍힌 교지를 공손히 받아 들었다. 왕이 말한다.


 “그것이 할 수만 있다면 지금으로써는 최선의 대안이겠구나.”


 "예, 해낼 것입니다."


 "그래, 그 일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예, 폐하."


 "어머니의, 비어 있는 사가로 가고자 한다."


춘추의 교지를 받아 가던 손이 멈추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왕을, 친족이 되는 이의 얼굴을 마주했다. 


여전히 왕은 어떠한 기색도 내비치지 않는다. 생각하길 그만둔 것인지, 아니면 필사적으로 참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낯빛은 얼핏 평온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것이 네가 앞으로 하려는 일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반대할 이유는 없을 터."


 "그렇습니다만, 너무 갑작스럽습니다. 아직 폐하는, 폐하시지 않습니까."


 “…그러한 것이냐. 허나 내 몸이 여기까지인 것을, 어찌하겠느냐.”


춘추는 퇴궁하여 귀가하는 걸음에 아까의 폐하를 떠올렸다. 힘이 든다, 실제로 현 정국에서 가장 몸이 갈리고 있는 자는 춘추였다. 그는 후사가 없는 신국에서 유일한 왕위 계승권자였고, 그런 신분이었기에 폐하가 폐하가 아니게 된 직후부터 정무가 배로 밀려 식사조차 개인 집무실에서 해결함이 잦았다. 전부 최고 결정권물인 옥새가 있는 그곳에서 해결했으면 반 이상으로 줄었을 일들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차라리 궁을 나가 계시는 것이 좋겠다는 무너진 왕에게 던질 가장 패역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 수는 없었다.


다만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마저 여읜 그에게 왕은 가장 가까운 피가 흐르는 개인이었고, 멸사하여 정무를 해결해나가는 춘추라 할지라도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막아 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다른 어떠한 감정이 들지도 않았다. 조금 답답할 뿐이었다. 뒤를 도니 금방 꺼져버릴 듯한 별무리 아래 숨이 막힐 듯한  비대한 궁궐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할 수 있다는 여부를 떠나, 이제 곧 자리가 비워질 저곳에서 무조건 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폐하, 당도했습니다."


작은 가마와 그 뒤를 따르는 시녀 몇, 그리고 검을 찬 평복 사내가 여느 옛 대갓집 문 앞에 멈추었다. 그곳은 궁에서 멀지 않지만, 근방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지대에 산으로 싸여 있어 외부에서는 쉽게 찾아낼 수 없는 곳이었다.


가마 안에서 야윈 손 하나가 나와 호위하는 자의 손을 맞잡았다. 가마 문이 열리고, 왕은 알천의 부축을 받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의 치장 없이 흑색 겉옷 하나만을 걸친 왕은 잠시 마실을 나온, 아주 평범하게 살아왔던 어느 귀한 댁의 여식 같기도 했다.






왕은 거처를 바꾸어도 술을 멀리하지 않았다. 알천이 용기 내어 술을 끊으시라 간언했을 때, 이것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단 이유로 거의 밤마다 탕약과 술을 방 안으로 들였다.


알천은 시녀의 손에 들린 독주나 다름없는 주안상을 바라보며 서글픈 낯빛을 고요히 감추었다. 옛 신국의 왕은 정녕 없어진 것일까, 사가에 드나드는 궁인들은 성군의 없어짐을 전제로 선위에 대해 그것이 옳았다 떠들었고, 알천은 과거 성군의 그림자를 그리워하며 그녀의 밤을 지켰다.


알천은 그녀의 처지를 돌봐주는 이가 더는 세상에 없는 것 같아, 신하된 자로서 괴로웠다. 또한 그녀의 응고한 것들을 해결해 줄 사람 없이 그녀 홀로 가져가야 한다는 사실이 괴로움이었다.






며칠 후, 시간만은 모두에게 공정하게 흘러 천지가 어둠에 뒤덮인 깊은 밤이었다. 알천은 오지 않는 잠에 어쩔 수 없이 사가 뒷문을 돌고 있었다.


낮에 왕을 보좌하러 왔던 궁인 대다수는 돌아가고, 산 바로 아래에 보이는 마을도 불빛 하나 없이 밤에 잠겨 있다.


너무도 고요했다. 그래서 그 밤의 비명은 그에게 더욱 크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아악! 아니야, 아니…"


그 비명을 듣는 순간 여타 무인이 그렇듯 두 다리가 먼저 뻗어 나갔다. 그저 들리기에 뛰어간다. 세상에서 제일 존귀하실 폐하, 알천은 그녀의 침소에 허락 없이 들지 말라는 명을 그 날 처음 거역하게 되었다.




터질 듯한 가슴을 잡고 뛰쳐 들어간 그곳에는 악몽에 잠겨 신음하는 왕이 있었다. 큰 침상을 덮었을 금침은 땅에 떨어져 있고, 간밤의 몸부림으로 잔뜩 구겨진 옷 안의 팔은 침전 바깥으로 빠져나오려 허공을 저었다.


그가 가까스로 이성을 유지하며 폐하를 외친다. 그러나 깨어날 기미가 도통 보이질 않아, 그는 어쩔 도리 없이 그녀의 낭도 시절 이후로 처음, 허공을 도는 그녀의 팔을 자신의 아리는 손으로 붙잡았다. 그리고 다시 외친다. 그러길 몇 번, 왕은 그제야 갇혀 있던 곳에서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


왕은 눈을 떴고, 그 앞에는 형체가 흐린 누군가 제 손을 잡고 있었다. 순간 왕은 자신이 몇 달 전으로 돌아온 것일까 착각했다.


비담은 저 바로 앞에 살아 있고, 자신을 깨워준 것이라고. 그래서 그녀는 초점이 맞춰지는 그 찰나 동안 그이길 간절히 바랐다. 허나 그곳에는 진땀에 잔뜩 젖어, 자신을 비담과는 다른 충실히 신하된 눈으로 보고 있는 자가 있었다.


 "폐하, 정신이 드십니까."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잠에서 깬 왕을 확인한 알천이 그녀의 팔을 놓았다. 왕이 그에 그를 올려다보려 했을 때 그는 이미 시야를 내린 뒤였다.


왕은 그 찰나 동안이나마 그를 보았기에 좋아해야 할지, 왕된 자로 허상에 잠기고 싶단 생각을 해버린 자신을 경멸해야 할 지 헷갈렸다. 


기침이 났다. 악몽은 어느새 저 건너로 사라졌고, 남은 것은 잠결에 험하게 방치됐던 전신의 고통이었다.


 "물 좀, 주십시오."


 "예, 폐하."


시위라곤 하나, 그도 처음 겪는 상황에 놀랐는지 그녀의 눈에 물을 따르면서도 미세하게 떠는 손이 선명히 보였다. 왕은 그것에 어떤 감정을 느끼고, 또 생각해야 할지 몰라 아무 말 없이 그가 따른 물잔을 받았다.


그러나 물을 마셔도 헛기침이 잦아들지 않는다. 아예 몸이 그것마저 거부한 듯, 도리어 목을 찌르는 듯한 통증과 함께 연거푸 기침이 나왔다.


왕은 손수건으로 입을 가렸다. 그 기침은 그대로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무언가를 뱉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많은 양은 아니나, 적다고도 할 수 없는 각혈이었다.


 "폐, 폐하."


알천은 무언가 떨어짐을 느꼈다. 말하는 법을 잊은 것 같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을 보는 왕은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아무 감응도 내보이지 않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아니었다. 왕은 언제부턴가,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자라나 자신을 잡아먹고 있단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이제 실현됐으려니, 놀랄 것이 없었다. 아는 병이었다.


한편 그녀는 자신이 든 손수건을 쳐다보고 있을 그의 표정이 굳이 시야를 올려보지 않아도 그려져, 말없이 그것을 접어 그릇에 놔두고는 시녀가 어젯밤 켜두고 간 촛불을 껐다.


 "무어라 할 말이 없습니다만, 괜찮을 것이니 나가보세요.”


"폐하." 왕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허망함에 풀린 다리가 바닥에 주저앉게 했다. 방에 답지 않게 창가 아래로 뻗어오는 환한 달빛이 가득 들어, 그녀와 그 사이를 비추었다. 왕이 입을 열었다.


 "알천."


 "예, 폐하."


 "알천은, 화랑이지요. 주군을 모시는."


 "…그러하옵니다."


 "낭도였던 내가 잘은 알지 못하나, 화랑도에 따르면 난 더는 그들이 섬길 만한 왕이 아닙니다. 어찌하여 이 사가에 남아 있습니까."


 "어인, 말씀이십니까."


 "어찌 지금 신국의 주인인 춘추를 시위하지 않느냐, 그리 물은 것입니다."


침묵이 이어졌다. 왕은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 그에게 등을 돌렸다. 대답하지 않아도 좋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다시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잠에 빠질 무렵, 그가 느지막이 답했다.


 "낭장을 하고, 마지막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습니다."


 "…제가 나타난 것입니까."


 "예, 천명 공주님의 억울함을 하늘에 넘기고 결의를 끝내려 하였는데, 폐하가 오셨습니다. 그 날 이후로 제 주군은 폐하셨습니다. 오늘 소신을 있게 해주신 폐하께, 마지막까지 충을 다할 것입니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가엾고, 무언가에 끝없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불에 휩싸이는 것 같은 심통이 점차 가라앉는다. 그는 여전히 그대로 있다. 왕은 그에게 자신이 안도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무엇을 해도 사치인, 자신을 텅 빈 왕이라 보는 그녀는 작은 사치를 말해보기로 했다.


 "알천, 내가 잠들 때까지 여기 있어 줄 수 있겠습니까."


 "예, 그리하겠습니다."


 "손을 좀, 주실래요."


그는 왕의 말에 제 손을 침상 안으로 조심히 올렸다. 그의 손은 아직 마르지 않은 땀으로 축축했는데, 왕은 그의 손을 잡고서 눈을 감았다.


마음 밖은 추울지라도 호의를 품고 내밀어 준 이의 손은 간밤에 악몽에 젖어 막 흘린 눈물과 같은 온기였으나 전혀 아리지 않았다.


이곳이 사막일까, 그가 있던 침전일까, 황후께서 불가에 귀의하기 전 하나 남은 여식을 안아주셨던 그 곳이런가, 적어도 그 공간 모두에서는 그녀를 온전히 개인으로 봐주었다.


 "사람이, 보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어인, 말씀이십니까."


 "너무 당연한 것이라 탓할 수도 없으나, 모두가 나를 폐하로 보고 있지 않습니까."


"내 몸을 거쳐 가는 궁인들 또한 나를 폐하로, 그리합니다. 그러니 나 또한 신하밖에 보이지 않아야 하는데, 비담은." 왕은 말을 끊었다.




어지러운 정신에 입만 열면 그의 조각을 뱉어내는 것 같았다. 그 조각을 감당하지 않아도 될 이에게, 그래서 그녀는 그의 손을 강하지 않게 잡았다. 알천의 손에도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점차 왕의 불규칙적이던 호흡이 제자리로 돌아간다. 알천은 그녀와 맞잡은 축축하게 얽혀 있던 두 손이 창가에서 오는 새벽바람에 다 말라버린 뒤에도, 그녀가 잠이 든 후에도, 그 자리에서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멍한 듯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그저 그렇게 있다, 땅에 떨어진 이불을 주워 펴 드리고는 밖을 나왔다.




불과 몇 시진 전에 보았던 풍경인데,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떼어진 손을 찬바람이 여지없이 훑고 지난다. 가슴안에 이러한 상을 매일 담아두고 사신 것인가, 그는 그때, 문득 온전한 생이지 않아도 좋으니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으나 가지지 않고, 전부를 잃어 다른 이의 마음마저 받을 수 없는 자신의 왕에게 끝까지 충이라도 지키는 것이라도 드리리라는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쓰다 보니 너무 무거워진 것 같네..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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