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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유병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 대표팀이 1라운드 결전의 장소인 대만에 입성한 지난 12일 오후. 타이베이 공항 도착 후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대표팀 선수들 사이에서 때아닌 '고참 기준' 논쟁이 벌어졌다.

발단은 김태균(31·한화)의 장난 섞인 거짓말이었다. 김태균은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중 후배들에게 "오늘(12일) 고참을 제외하고 야간 웨이트 트레이닝 훈련이 있다"고 했다. 주위에 있던 후배들은 깜짝 놀랐다. 이날 대표팀 훈련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만은 한국에서 비행기로 3시간 거리에 불과하지만 타이베이에서 선수단 숙소인 자이현까지는 버스로 3시간 정도를 더 가야 한다. 게다가 대만은 17일까지 명절 연휴라 교통체증이 극심했다. 장시간의 이동으로 피곤해진 선수들에게 야간 훈련은 반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김태균의 곁에 있던 강민호(28·롯데)와 이용규(28·KIA)는 "진짜 웨이트가 있냐"고 되물었다. 김태균은 "그럼 내가 거짓말을 하겠냐"며 "고참만 제외하고 웨이트 훈련이 있다. 고참들은 힘들어서 쉴 것"이라고 말했다. 강민호는 "나도 고참에 속하지 않나"라며 어물쩍 넘어가려고 했다. 그러자 김태균은 "네가 어떻게 고참이냐"고 콧방귀를 뀌었다.

강민호의 '고참론'은 이랬다. 그는 "올해로 프로 10년차다. 올 시즌 끝나고 FA(프리 에이전트) 자격도 얻는다. 대표팀 경험도 있지 않는가"라고 주장했다. 강민호의 기준은 프로 생활 10년차 정도면 고참급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프로 13년차인 김태균은 "어림 없는 소리다. 앞으로 2~3년은 더 해야 한다. 훈련 스케줄을 확인해보라"며 강민호의 주장을 일축했다.

이용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강민호와 마찬가지로 프로 10년차에 올 시즌을 마친 뒤 FA 자격을 얻는다. 그러나 이내 이용규는 다른 기준을 내놨다. "결혼하면 고참이다." 강민호와 달리 자신은 지난해 가정을 꾸렸다는 것이다. 이용규의 주장에 일순간 주위는 웃음바다가 됐다. 김태균 역시 크게 웃으며 "유부남은 고참으로 인정한다"고 했다. 그러나 단 한 사람만 울상을 지었다. 김태균의 기준에도, 이용규의 기준에도 미달인 강민호였다. 물론 이날 밤 고참을 제외한 특별 훈련은 열리지 않았다.

WBC 대표팀에는 국내 프로구단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다 모여 있다. 그만큼 선수들의 개성도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한국 야구 정서상 대표팀에서도 선후배 관계는 엄격하면서도 화기애애하다. 이날 '고참 기준' 논쟁은 그런 분위기를 잘 보여준 장면이었다.

대표팀 선수들은 이러한 선후배 관계가 단단한 팀 워크로 이어진다고 입을 모은다. 스타의식을 버리고 선후배가 똘똘 뭉치는 WBC 대표팀. 이것이야말로 한국 야구가 세계무대를 호령할 수 있는 원동력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