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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이해해줄 수 있어요? - 13

유희자(180.229) 2015.01.09 23:58:18
조회 2001 추천 63 댓글 15

 

 

 

전작 : 날 이해해줄 수 있어요? - 12

 

 


 


당연하다면 당연하달까, 오후 1시가 되어서야 지독한 숙취와 함께 눈을 떴다. 필름은 당연히 끊겼다. 그래서 내가 왜 엘사의 침대에서 자고 있는가-이걸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술 너무 많이 마시면 건강에 안 좋아요.” 엘사가 물을 가져다주며 충고했다. 내가 원해서 마신 술이 아닌데. 억울했지만 엘사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그냥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엘사의 목소리가 조금 쉬어있었다. 다소 코맹맹이 소리도 섞여있었다. 손을 뻗어 엘사의 이마에 갖다 대었다. 다행히 열은 없는 모양이었다.

 


“엘사, 감기 걸렸어?”

“그런 것 같아요.”

 


엘사는 내가 깨자마자 매정하다 싶을 정도로 나를 차에 태우더니, 집까지 바래다주고는 당분간 여기에 오지 말아요-라고 접근 금지령을 내렸다. 하지만 내가 그 끔찍한 말을 들을 위인이던가. 차가 떠나자마자 엘사를 간호하기 위해 대충 짐을 꾸렸다. 엘사가 알면 반대할 것이 분명했기에,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엘사가 화를 낼 것을 각오하고 내가 엘사 집 현관문을 열었을 때, 그녀는 스스로 팔짱을 낀 채 한쪽 눈썹을 찌푸리고 있었다. 저거, 축객령을 내리기 전에나 볼 수 있는 집주인의 표정이잖아. 쫓겨나기 전에(?) 나는 소리쳤다.

 


“난 엘사 얼굴 하루라도 안 보면 죽을 것 같단 말이야!”

 


가벼운 한숨과 함께, 옮으면 안 되니까 가까이 오지 마세요-하고 코맹맹이 소리로 말하는 엘사가 귀엽게 느껴졌다. 하지만 엘사는 감기가 나을 때까지 철저하게 일정 거리를 유지하려 들었고, 나는 감기에 걸려도 좋으니 손이라도 잡자!고 달려들었다.
그렇게 치열한 공방전이 몇 번 열렸지만 번번이 엘사의 승리로 돌아갔고, 나는 정확히 2m 떨어진 거리에서 엘사를 볼 수밖에 없었다. 같이 식사도 못했다. 엘사도 불편함을 느끼고 있으리라. 왜냐하면 나 때문에 집안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과장 안 하고, 엘사는 자기 전 아니면 씻을 때에만 벗고, 눈을 뜨면 바로 마스크를 썼다. 나 같으면 1시간도 못 버틸 텐데.

 

 

“미안... 고집부려서.”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난 안나 얼굴 봐서 좋은 걸요.”

“엘사-”

“은근슬쩍 다가오지 말아요.”

 

 

감동받은 척 하면서 안기려는 작전도 실패로 돌아갔다. 나는 미안함이 들었지만 여봐라는 듯 입술을 삐죽였다.
그렇게 키스도 포옹도 없는 우울한 주간이 끝나고, 엘사는 마스크를 벗었다. 감기가 다 나은 것이었다. 접근 금지령이 풀려서 내가 팔짝팔짝 뛰며 기뻐한 건 두말 할 필요도 없겠지. 그런 나를 엘사는 꼭 외계인을 보기라도 한 것 같은 이상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모임 이후로, 엘사가 감기에 걸렸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제법 평화로운 나날들이 이어졌다. 엘사의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져서, 이거 동거중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흐뭇한 상상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만큼 행복한 것도 없으니까.

 


지금 나는 엘사와 함께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엘사는 피곤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있고 나는 그 옆에 앉아 있다. 엘사가 내 손을 잡았다. 그녀가 잠들기 전까지 우리는 두런두런 말을 이어나갔다. 졸린 탓인지 평소보다 더 고분고분 말을 하는 그녀에게 나는 전부터 궁금했던 걸 물어보기로 했다.


“엘사.”
“네?”
“그날, 기억나? 엘사가 나한테 솔직히 말해준 날.”
“물론이에요.”

 


엘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아프지 않았다.

 


“그날, 엘사는 2가지 이유로 나한테 화가 났다고 했잖아. 하나는 내가 엘사를 공격한 거였고.”
“그랬죠.”
“지금은 나머지 하나를 말해줄 수 있나 해서.”
“말하지 않을 거예요, 안나. 이건... 안나가 의도적으로 한 게 아니니까.”

 


엘사는 말을 흐렸다. 무어라 계속 말을 했지만 목소리가 워낙 작아서 잘 들리지 않았다.

 


“....알지만 아직은...”

 


잠들기 직전인 사람처럼 엘사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간간히 이어지던 엘사의 목소리도 이내 뚝 끊겼다.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화단을 가꾼다고 이리저리 돌아다닌 탓에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엘사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그녀가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밖으로 나가려 몸을 일으켰는데, 잠이든 줄 알았던 엘사가 확연한 어조로 내게 말했다.

 


“일이 끝나면, 언젠가 말할게요.”

 

 

 

 

 

 


 


바로 실속을 낼 수 있었던 계열사들이 뜯겨 나간 아렌델 그룹은 추하게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그 버둥거림이 기사회생이 될지 아니면 단말마가 될지 장담할 수는 없게 되었다. 임시로 회장직에 오른 남자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러니 빈센트 아렌델도 이를 부득부득 갈 뿐, 현 회장에게 감히 대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세웠던 계획대로 이어졌다면 진작에 끝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 ‘살충제’를 쓸 시기를 잡아야한다. 그때까지는 그들의 준동(蠢動)을 지켜보아야한다.

 


참기 힘들어져서 온실로 왔다. 새로 지은 집은 앞마당보다 뒷마당이 넓어서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생각하다가, 온실을 지었다. 아렌트 가(家)는 넓은 부지를 이용해 닭도 키우고 개도 키우지만 동물을 좋아하지 않은 엘사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동물은 식물보다 훨씬 더 키우기 까다롭고 더 이해하기 힘들다. 개체마다 다르겠지만 엘사로서는 동물이 마뜩치 않은 존재 중 하나다. 간신히 싫어하지 않을 정도다.
연장선으로 보면 곤충은 혐오의 존재다. 아마 정성스레 가꾼 화초들이 가득한 온실에 벌레 하나라도 생긴다면 엘사는 그 즉시 온실을 뒤엎어버릴 것이다.

 


끓어오르는 머리를 식히려고 미리 주문해둔 모종 심기에 집중하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엘사는 모종삽을 내려놓고, 전화상대를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엘사, 나예요. 당신이 원한 조건은 아시아 헤지펀드였죠? 확인해보세요]

 


엘사는 느릿느릿 움직이며 큼지막한 썬베드과 테이블이 놓인 휴식처로 갔다. 화원이라고는 해도 엘사의 취미 겸 힐링 겸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이런 공간은 화단을 배치하기도 전에 미리 만들어 둔 곳이다. 그리고 옆에는 미니 냉장고가 있어 언제든 시원한 음료나 간식을 즐길 수 있었다.
그녀는 테이블 위에서 잠자던 노트북을 두들겨 깨웠다.

 


“방금 확인 했어요.”

 


노트북을 두드리던 손길이 멈춘다. 화를 돋우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제인도 그 기사를 본건지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찬다.

 


[아렌델 그룹을 보니까 헤드헌팅 건은 정말 아쉽게 됐네요]
“네. 만일 성공했다면 아렌델 그룹은 공중분해 되고도 남았을 거예요.”
[그녀가 당신과 잡은 손을 놓지만 않았어도 말이죠.]

 


큰 프로젝트들을 외부의 힘을 빌려, 혹은 내부에서 미세한 균열을 내어, 잇달아 실패하게 만든다. 그룹의 이미지가 실추됨과 동시에 투자자들에게서 냉대를 받게 한다. 그럴 때 주가가 무사할 리가 없다. 거의 폭락 수준으로 주가가 내려가도록, 미리 매수해둔 아렌델 그룹의 주식을 한꺼번에 매각(賣却)한다. 그리고 실력 있는 헤드헌터를 통해 그룹의 핵심 인재들과 계열사들을 외부로 교묘히 빼돌린다. 이것이 엘사가 계획한 ‘벌레 죽이기’였다. 실제로 거의 성공을 목전에 앞둔 상태였다.
그녀, 엘사의 전 애인이 엘사를 배신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 날 사랑하지 않는 거죠?

 

우는 그녀를, 엘사는 그저 바라만 보다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오해의 오해에 걸쳐진 오해였다고 해명하려 했으나, 왜인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때의 감정은 귀찮음에 가까웠다. 그렇게 그녀는 엘사를 떠나갔다. 사랑이 아닌 목적을 위해 이루어진 만남은 너무도 쉽게 끝이 났다. 그래도 엘사는 이 계획이 성공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엘사에게 있어서 공과 사는 엄연히 다른 것이었다. 엘사의 말마따나 그녀는 프로답지 못한 일을 벌인 것이었다. 연인관계가 틀어져도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엘사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거나 다름이 없었다.

 


“생각보다 공적 업무와 사적인 일을 구분하지 못하더군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엘사의 어조는 평탄했지만 지금 엘사의 얼굴을 본 사람, 그녀를 잘 아는 사람은 사색이 되어 굳어졌으리라. 얼굴이 화를 억누르고 있는 탓에 무섭게 구겨져 있었다. 화를 가라앉히려 온실에 왔는데 오히려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엘사, 나는 어때요?]
“네?”
[난 그녀랑 달라요]

 


고작 한마디 만에 엘사는 제인이 무슨 말을 하려는 지를 알아채버렸다. 엘사가 차갑게 웃으며 대답했다.

 


“만나는 사람이 있어서 그건 곤란해요.”
[.....설마 지금 만나는 사람 때문에 그녀랑 헤어지게 된 건가요?]

 


이런 일에 종사하는 사람답게 제인은 굉장히 눈치가 빨랐다. 엘사는 침묵했다. 그 침묵은 긍정의 의미였고, 제인은 말문이 막혔지만 이내 가볍게 말했다.

 


[안타깝네요. 나에게도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애인 씨는 그녀를 밀어낼 만큼 대단한 사람인가보죠?]
“네. 무척이나... 대단하죠.”
[언제 시간 되면 같이 저녁 안 먹을래요? 물론 그 대단하신 애인님도 같이]
“물어보고 답해주죠.”

 


통화가 끝나자마자 휴대폰은 유명을 달리했다. 액정이 박살난 채 바닥을 나뒹구는 휴대폰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엘사는 썬배드에 몸을 뉘었다. 자신이 설계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은 이상 실패다. 엘사 아렌델은 실패했다. 실패했다. 그 작은 변수 하나 때문에-.

 

 

 

 

 

 

 

 

 

 

“엘사, 나 왔어. 전화 안 받던데 무슨 일 있었어?”

 


팔로 눈을 가린 채, 썬베드 위에 가만히 누워있던 엘사가 몸을 일으켰다. 안나가 온실로 들어왔다.
엘사는 말없이 안나에게 이리 오라고 손짓을 했다. 다소 멍해 보이는 표정 위로, 이채를 띠는 눈동자는 안나를 바라보았다. 안나가 다가오자 엘사는 안나의 팔을 세게 끌어당겨 자신의 품에 넣었다. 아플 정도로 두 팔에 힘을 주어 안나를 구속시킨다. 진동하는 흙냄새보다 더 강한 엘사의 채취가 안나의 뇌를 휘저었다.

 


“왜 지금 왔어요?”
“어? 그게 차가 좀 밀렸고, 게다가 여기 길이 좀 복잡-”
“안나는 타이밍 운이 참 없는 것 같아요.”

 


안나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엘사는 화가 난 상태였다. 그러면서도 목소리는 침착했다. 소름이 돋았다. 왜 이렇게 화가 난 건지 안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안나를 한참동안 끌어안고 있던 엘사가 손에 힘을 풀었다. 그러나 어조는 똑같았다.

 


“나 보지 말고 뒤 돌아봐요. 목소리도 내지 말아요.”

 


말하면서도 믿지 못하겠는지 엘사는 안나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그 상태에서 강압적으로 뒤에서 끌어 안긴다. 엘사의 숨결이 목덜미로 떨어졌다.

 


“지금 안나 얼굴 보거나 목소리를 들으면.... 화를 낼 것 같으니까.”

 


소리 내지 말아요. 귓가에 낮게 울리는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어느새 엘사의 손은 안나의 상의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배려 없는 손은 거침없이 안나의 가슴께를 지분거리더니 다짜고짜 가슴의 정점을 건드렸다.

 


“!”

 


틀어 막혀진 입에서 아무 말도 나오지 못했다. 안나의 몸이 요동쳤지만 엘사는 강철처럼 안나의 몸을 옥죄고 있었다. 엘사의 허벅지가 안나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집요하게 안나를 괴롭혀대는 손 때문에 안나는 다리를 지탱할 힘이 빠지고 있었다.

 


“몸부림치지 말아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엘사가 아프게 안나의 목덜미를 물었다. 다시 안나의 몸이 튀어 오른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은 엘사의 손에 맡겨져 농락당하고 있었다. 고통에서 쾌감이 인 것도 한순간이었다. 엘사의 손은 뱀처럼 허리를 따라 기어 내려가 치마 사이로 들어갔다. 엘사는 거침이 없었다. 흙냄새가 만발하던 화원에서 진득한 살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엘사는 실신하다시피 축 늘어진 안나의 몸을 썬베드에 눕히고는 엉망이 된 옷을 추슬러 주고 위에 담요를 덮어주었다. 안나의 얼굴에 눈물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

 


아직도 헐떡거리는 숨을 몰아쉬고 있는 엘사가 필사적으로 냉정을 되찾으려고 눈을 감았다.
애인에게 감정을 토해냈다. 막힌 입에서 나오는 가느다란 숨소리와 소리 없는 교성이 엘사를 흥분시켰다. 종국에는 필름이 끊기는 게 아닐까싶을 정도로 엘사의 감정은 치솟아있었다.
실패했다. 용납할 수 없다. 엘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유를 말하고 안나에게 화를 내었다면, 어쩌면 안나는 엘사의 분노를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공들여 세웠던 계획들을, 중간에 난입해 들어와 어지럽힌 건 안나다. 게다가 완전히 목표를 이루지도 못했고.

 

- 지금은 말 하지 않을 거예요, 안나. 이건... 안나가 의도적으로 한 게 아니니까

 

그러나 안나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엘사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그래서 말하지 않는다. 이 모든 걸 망친 사람은 그 망할 년이다.
혼자 화를 삭이고 있을 때, 하필 그 시점에서 화를 풀 대상은 엘사의 시야에 안나 밖에 없었다. 엘사는 늘어진 안나를 보았다. 후회도 연민도 동정도 미안함도 없는 심장에서 나오는 건 그저 서툰 말 뿐이었다.

 


“많이 아파요?”
“화내도 돼, 엘사.”

 


숨이 끊어질 듯 안나가 나약하게 말했다. 그 말은 도리어 엘사의 감정을 억눌렀다. 찬물에라도 맞은 것처럼 끓어오르는 머리가 식었다.

 


“난 엘사의 웃는 얼굴을 좋아하지만 나한테 화를 냈으면 좋겠어. 슬퍼하는 모습도 기뻐하는 모습도 화내는 모습도... 무서운 모습도 전부 받아주고 싶어.”
“무섭지 않아요?”
“무서워. 그래도 엘사가 좋으니까.”

 


안나는 힘들게 몸을 일으켜 엘사의 손등에 입술을 떨어뜨렸다.

 

 

 

 

 

 

 

 

 

 


타이밍 운이 없다-고 엘사도 크리스토프도 한스도 나에게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듣기 전까지, 이제껏 나 자신이 가진 타이밍 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엘사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즐겁게 통화하는 모습을 몇 번이나 목격해버린 걸 포함해서 과거를 회상해보니 그들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도.
강압적인 방식으로 안겼다. 물론 나는 화풀이 대상이 되기 위해 엘사의 연인이 된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은 부당하다. 그런데 뿌리치지 못했다.

 


엘사는 손을 움직여 내 옷을 추스르고 담요를 덮어 주었다. 아무리 좋은 썬베드라도 안방에 있는 침실보다 더 포근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은 그저 누워있고 싶었다. 엘사는 여전히 날 표정 없이 쳐다보았다. 흔들리지 않은 푸른 동공과 마주하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중간중간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내 잠을 완전히 깨우지는 못했다.

 


어두운 하늘을 계속 바라만 보고 있는 꿈을 꾸다가 눈을 떴다. 어느새 내 몸은 침대에 눕혀져 있었다. 침대에서는 엘사의 체취가 깊게 배어있다. 무겁고 진하다. 일부러 숨을 크게 들이마셔 엘사를 느낀다. 엘사. 엘사?

 


“깼어요?”
“에, 엘사?”

 


위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놀라 몸을 돌렸다. 엘사는 침대 옆에 의자에 앉은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낮지도 높지도 않은 침착한 어조였다. 다행히 화는 풀린 모양이었다.

 


“몸은 좀 괜찮아요? 아픈 곳은?”
“난 괜찮은데. 지금 몇 시야? 나, 얼마나 잤어?
“한 4시간 정도 됐네요.”
“나 깰 때까지... 기다려 준 거야?”
“네.”

 


엘사는 짧게 대답했지만 나는 가슴이 벅차오를 만큼 기뻤다. 그녀는 내가 깰 때까지 꼼짝 않고 기다려 주었다. 이 단순한 사실에 너무도 행복해지는 나 자신이 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줄게 있어요.”

 


엘사는 테이블 위에 있던 까만 물체를 집어 들어, 나에게 보여준다. 방안이 그렇게 밝지 않다는 것과, 처음 보는 것이어서 이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짐작하기 힘들었다. 딱히 알아맞히기 게임을 하는 게 아니니까 망설임 없이 엘사에게 물어보았다.

 


“이건 뭐야?”
“스턴 건이에요. 기존에 나온 걸 개조시켜서 위력이 제법 좋죠.”

 


스턴 건? 설마 이게- 하고 엘사를 바라보니, 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주려고 내가 깰 때까지 기다린 거야? 하고 물으니 그녀는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왜?”
“....”
“엘사?”
“만일- 그러니까, 안나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내가....”

 


엘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마 그 다음 말을 한 다는 것 자체가 용납할 수 없는 거겠지. 엘사는 자존감이 굉장히 강하니까.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걸, 지금 내 앞에서 입에 담는 것이다.

 


“내가 ‘돌발행동’을 한다면 그걸로 날 기절시켜요.”
“엘사, 난-”
“가지고 있어요.”

 


엘사는 힘을 줘서 내 손에 억지로 스턴 건을 쥐어주었다. 그날 내 목에 상처를 냈던 녀석이 소리 없이 냉기만 뿌리고 있었다. 그걸 준 엘사는 한참이나 말이 없다가, 아까와는 다른 부드러운 힘으로 나를 끌어안았다.

 


“안나가 날 공격해도 화를 내지 않을 게요.”

 


달콤하고 쌉싸래한 초콜릿 같은 말이었다. 나는 흘러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믿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내가 당신을 공격하는 일도 떠나는 일도 없을 거라는 말을 더듬거리며 그녀에게 건넸다. 엘사는 내 등을 쓸어내리며 나지막이 고맙다-고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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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반지대신 스턴건 프러포즈

 

psps. 내용이 점점 더 길어져;;; 그리고 연재주기 어쩔;;; 미얀;;

 

pspsps. 올리기 전에 몇 번이고 확인하고 수정하는데 막상 글올리고 최종확인하면 수정거리가 또 있는 건 왜죠 멍청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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