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극들을 만나고 보내오면서..
막공엔 배우들도 많이 울고 관객들도 많이 울어서


평소보다 더 슬플 거라는 걸 예상하고 가도 그 슬픔에 익숙해지진 않는 구나.

오늘 도리안 배우들 역시 오늘이 정말 마지막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을 만큼 모든 걸 쏟아내준 것 같아.
특히 배질의 죽음 씬부터 도리안의 죽음까지 샤리안의 연기는
마지막까지 차곡차곡 쌓아올린 감정의 깊이가 너무도 대단해서
감정이 아무리 폭발해도 과해서 넘쳐흐르지는 않는,
57회의 마지막 순간에 진정 걸맞는 연기였어.

배질을 죽이고 죽어가는 배질을 끌어안고 오열하던 목소리에
울음이 크게 섞여 있는 바람에
배질을 부르짖는 소리가 평소보다 낮게 울려 퍼졌지만
그 흐느낌으로 인해 객석에 전해진 울림은 어느때보다 길고 길었어.

그리고 헨리가
자신의 실패를 인정할 때,
즉 도리안 자신의 인생이 실패했음을 말하는 헨리를 바라볼 때부터
어깨를 들썩이며, 간간이 흐느끼는 소리까지 내가며 울었는데
내가 사실 그동안 이렇게 고통스러웠다고, 그 고통을 모두
울음으로 토해내는 것 같았어


그 씬에서 헨리의 멱살을 잡던 도리안은
배질과 싸우며 배질을 내팽개치고 배질에게 끌려가지 않아려
악다구니처럼 버티던 그 힘을 모두 상실한 사람처럼
무력해보였어.
결국 자신을 이렇게 헨리에게는 정작 아무런 위해도 가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이나 하듯이.


그리고 헨리가 초상화를 보러 올라갈 때
헨리를 애타게 부르며 뒤돌아서잖아
오늘 샤가 처음으로 얼굴을 슥 닦더라
아무리 울어도 무대 위에서 눈물을 닦던 모습은 잘 보지 못한 것 같은데
눈물을 닦아내는 모습마저도, 그 순간 문득 정신이 들어서
헨리를 말리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가다듬는 도리안 자체의 모습으로 보였어.


그리고
오늘 정말 최고라고 말하고 싶은 도리안그레이.

다 사라지나, 로 운을 떼는 그 소절을
다, 사라지나
이렇게 '다' 뒤에 호흡을 길게 둔 뒤 부르며 노래를 시작했는데
'다' 라는 그 한 마디가 어쩜 그렇게
도리안의 상실감을 모두 담아내고 있나 싶더라
심장이 철렁했어
'다'를 부르던 목소리는 내뱉었다고 해야 맞을 것 같은데
정말 도리안이 지금껏 애써 지켜오던 자신의 삶이
그리고 그 삶을 지탱하던 희미한 의지들이
그 한 소절의 노래와 함께 모두 사라져버리는 것 같았어


오늘 도리안그레이를 부르며 어찌나 울던지
나도 같이 우느라 산주 뿌얘져서 흐릿하게 보이는게 슬퍼서 더울었어ㅠㅠ(?
그렇게 많이 울면서 노래는 어떻게 부르는 건지 신기할 정도였어

서 있는 게 위태로워 보일 정도로 모든 감정을 쏟아내며 우는 걸 보느라
노래가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어느새 초상화 앞에 무릎을 꿇고 울부짖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때 나이프를 들고 일어나면서
"기억이 안나"를 두 번 부르잖아

사실 마지막 "기억이 안나"를 부를 때 살짝 음이 어긋났는데
분명히 실수인데도 실수처럼 느껴지지 않고
너무 울부짖느라 목소리가 안나오는 연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샤의 감정 연기에 오히려 감탄했다..


목을 칼로 긋고 난 후
무대 중앙으로 걸어나올 때
사실 걸어나오지도 못하고 거의 쓰러지듯이 털썩 주저앉아서
푸른핏줄 심장을 뚫고 날 깨운다 - 여기 부를 때의 표정이 어떤 표정인지 늘 궁금했는데 오늘 조금 해답을 찾은 것 같아

헨리가 처음 찬란한아름다움을 불러주는 씬에서
도리안이 초상화 밖으로 걸어나와 서있을 때
헨리가 도리안의 뒤로 와서 어깨에 손을 올리고 노래하면
도리안의 표정이 그렇게 약간은 섬뜩하게, 무언가를 응시하거든


그때 그 표정에서는 초점이 정확했는데
이제는 초점은 사라지고 그때의 환상만을 어렴풋이 떠올리는 표정인 것 같더라

자신의 인생이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 그때부터 시작해서
황금 빛깔 천국의 환상을 보는 지금까지의 인생을 그 짧은 순간에 모두 스쳐지나온 후
"아름다운 소년이 나를 부른다"를 부르며 손을 뻗는데
유독 느리고 긴 호흡으로 '부른다'를 불렀어
그리고 한 글자 한 글자에는
기나긴 여름날 동안, 무대에서 섰던 57회의 순간마다
도리안이 쌓아온 후회와 슬픔.. 그 모든 회한이 담겨 있었어.


노래를 끝낸 샤리안은
마치 죽기 전에 이 노래만은 끝내야 한다고 다짐한 사람처럼,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있는 힘을 모두 끌어모아 한 마디 말을 외치듯 노래하고

철푸덕 소리를 내며 쓰러졌어

샤리안이 쓰러지는 그 움직임과 철푸덕 소리를 들으며
정말 도리안그레이가 죽었구나, 라고 실감한 것 같아


그래서 오늘의 막공은 마지막답게, 이 극이 공연되어온
모든 순간을 통틀어 가장 슬픈 순간을 맞이하며 막을 내렸어.
도리안그레이는 진짜로 죽었고, 우리는 도리안그레이를 보내줘야만 한다고, 그런 생각이 자연스레 들게 만드는 그런 엔딩.



올해 여름 참 더웠지.
9월이 돼도 더위의 기승이 꺾이지 않아서
그 어느 때보다도 덥고 길었던 여름이었던 것 같아.

그리고 오늘에서야 비로소 여름이 끝난 기분이 든다.
견디기 힘든 뜨거운 더위가 계속 될수록
푸르른 빛은 싱그러워지는 여름 그 자체였던 우리의 도리안 그레이를 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