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초까지만 해도 사워가 정말 싫었었다. 두체스를 마시다가 너무 맛이 시고 구리다고 친구 입으로 다 털어넣었던 기억도 난다.
그러다 두체스 생이랑 브루고뉴 드 플랜더스 생 마시고 사워가 점점 익숙해지면서 좋아졌다.

그 후 식초라면 열심히 찾아다녔지만 지금까지도 가장 똑 부러지게 정의하기 힘든 스타일이 람빅일 것이다.
자연발효라는 특성 상 앙조장, 생산 연도에 따라서도 맛이 천차만별이고 심지어 같은 양조장, 같은 연도 생산이라도 배럴에 따라서 맛이 달라 가장 어려운 스타일이 아닐까 싶다.

그 중 괴즈는 특히 영 람빅과 올드 람빅을 어떤 레시피로 얼마나 적절히 블랜딩을 하냐는 변수가 추가된... 더욱 오묘하고 맛있는 맥주라고 생각한다. 양조를 직접 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 원액을 받아오는 괴저리(블랜더리)가 따로 있을 정도.

마침 요즘 입맛이 사워가 끌리기도 하고, 저번에 명품횽이 올린 괴즈 글이 인상깊어서 나도 해보고 싶었고, 라인업이 훌륭하지는 않지만 끌어다 모을 수 있는건 다 끌어모았음.

장소는 남구로 맥주미학 바틀샵... 이번에 사장님과 생각이 맞아 운 좋게 시음회를 열 수 있었음.

맥주 리스트는
미수입 3종 : 깐띠용2015, 틸퀸2015, 호랄 메가블랜드2015
수입분 6종 : 세인트루이스2015, 팀머만스2015, 오드비어셀2015, 분2014, 린데만스2015, 미켈러&린데만스 스폰탄바질

스폰탄바질은 바질 때문에 엄밀하게 정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궁금해서 집어 넣음.
순서는 깐띠용 -> 틸퀸 -> 호랄 -> 세인트루이스 -> 팀머만스 -> 린데만스 -> 오드비어셀 -> 분 -> 스폰탄바질임.
페어링은 포션치즈 + 식빵.

깐띠용은 저번에 2016년 분이 구리다고 욕을 먹어서 걱정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괜찮았다. 특유의 풀향 느낌, 둥글둥글한 살구, 청사과 풍미. 크릭, 감브리누스에 비해 탄산감이 많진 않았다.

다들 입을 모아 칭찬한 틸퀸.
전반적으로 깐띠용보다 더 시면서 살구, 청사과, 브렛스러운 풍미가 더 날카롭게 다가왔다. 일본에서 마신건 작은병이었는데 댓병이 좀 더 브렛 캐릭터도 살고 쿰쿰하고 너무 좋았음. 정말 흠 잡을 곳 없는 최고의 맥주.

가장 기대했던 호랄. 틸퀸에 비해 더 풀향스러운 느낌도 살아있으나 쿰쿰한 것은 덜했다. 다만 과일 캐릭터들은 오롯이 드러나는게 너무 좋았음.

놀랍게도 대부분 틸퀸 > 호랄 > 깐띠용 순으로 선호했다. 한 분은 호랄 > 틸퀸 > 깐띠용이었는데 그 유명한 깐띠용이 제일 뒷선이라니...

이제부터 국내 수입분.
호랄까지 마셨을 때는 벨기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맥주문화가 부러웠는데 얘를 마시자마자... ㅎㅎ.....
이거 구하려고 힘들게 찾아다녔나... 비터와 풀, 식초만 남고 나머지는 다 죽음.

너무 충격먹어서 사진을 간간이 빼먹었음
팀머만스가 입맛을 다시 되돌려줘서 다행. 강한 산미, 산미에 받쳐주는 만족스러운 향...

린데만스도 신기한 인상이었다. 좀 더 효모의 에스테르?한 느낌과 풀 느낌이 지배적이었는데 세인트루이스보다 많이 자연적이고 산미와 잘 어우러져서 좋았음 ㅇㅇ

오드 비어셀도 틸퀸처럼 날카로운 인상. 적당한 산미와 함께 시큼쿰쿰한 향과 나무 냄새가 기분 좋게 풍겨 온다.

여기서부터는 배도 고프고, 냉면과 페어링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는데 형님께서 만두, 물냉, 비냉 사오셨다. 형님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페어링 궁합 정말 좋았다. 만두와 비냉의 기름진 느낌을 괴즈가 잘 잡아주니까. 물냉도 시지 않게 만들어서 괴즈와 잘 어우러졌음.

전통강호 분. 다른 괴즈들 다 놓고 비교시음하니 분 괴즈가 확실히 다른 애들보다 달고 드라이함. VAT79만 그런줄 알았더니 분 양조장스러운 인상이 VAT79에서 더 잘 배어있는 거였음.

개인적으로 '교과서같다'는 말을 많이 쓰는데, 괴즈 추천하라면 분과 오드비어셀, 혹은 분과 팀머만스 놓고 비교하라고 하고 싶다. 세 괴즈 모두 개성 있지만 교과서같은 맛.

번외편 격... 마지막 스폰탄바질. 바질의 목욕탕 냄새가 올라오면서 기분 좋은 화함으로 시작한다. 바질이 괴즈와 잘 어우러져 라임, 낑깡의 느낌을 풍겨온다. 맛있게 마셨던 맥주.

국내 수입분들로 비교하면 스폰탄바질 > 오드비어셀 = 분 > 팀머만스 > 린데만스 >>> 세인트루이스.

전체 순위 : 틸퀸 = 호랄 > 스폰탄바질 > 분 = 오드비어셀 = 깐띠용 > 팀머만스 > 린데만스 > 물냉면 > 비빔냉면 > 세인트루이스

다 마셔도 취하지 않는게 괴즈의 장점이지만 그만큼 속이 너무 아려온다...
뒷풀이 술로 옴니폴로 아나그램 블루베리 치즈케잌 임스 마셨슴당. 노아 피칸 머드가 바로 떠오릅니다. 역시 옴니폴로가 검은 맥주는 잘 만들어. 폭발적인 향에 비해 피니시가 금방 꺼지는건 아쉽.

한 달 동안 괴즈는 쳐다보지도 못할 것 같아요 ㅎㅎ...원 없이 마셨네요.
3분수, 한센스, 지라르댕, 드 톡 못 구해서 아쉬워유...
선뜻 자리 내어주신 맥주미학 사장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