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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픽 11화

ㅇㅇ(180.70) 2018.05.17 18:02:00
조회 968 추천 34 댓글 5

 후우…….”

 

 택시에서 내린 루미는 깊은 한숨을 들이 쉰다며칠 전건우의 문자를 받고 나서 하루에도 수십 번도 더 고민했지만 결국이렇게 와버렸다피한다고 피해질 일이 아니란 것쯤누구보다 그녀 자신이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그나 다른 사람들의 앞에 서는 것이전처럼 웃는 낯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것모두 다 지금의 루미에게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하필 장소를 골라도 여기야강 건우.’

 

프로젝트 오케스트라 연습실로 쓰던 교회를 약속 장소로 잡을 건 분명 의도적이었을 것이다자신의 기획안이 통과되고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오케스트라를 하게 되었다며 좋아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너무나도 달라져 버린 자신과는 다르게 하나도 변하지 않은 이곳은 참만감을 교차하게 만들었다.

 

 “…….”

 

어렵사리 문 앞으로 다가가니열린 틈 사이로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온다그리고 환한 표정을 한 단원들 사이로 아닌 척 하지만 분명히 웃고 있는 마에도 보였다분명 시끌벅적한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겠지그래서 더더욱 쉽사리 안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그래서루미는 도착하고도 한참을아무도 모르게 문 앞에 서있었다.

 

 건우야그러지 말고 루미한테 연락 좀 해 봐아우 얘난 걔 걱정돼 죽겠어.”

 이모잠시만요문자 보내 볼게요.”

 

 자신의 생각에도 그녀가 너무 늦는다 싶어 건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보통 사람 같으면 전화 한 통에 해결될 문제였지만루미와 연락하려면 문자를 통하는 수 밖에 없고그마저도 그녀가 휴대폰 진동을 눈치채지 못한다면기다리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으니행여 오다 무슨 일이 생겼을까 걱정하는 희연의 마음도 당연한 것이었다.

 

 어디까지 왔어혹시 무슨 일 생긴 거야?’

 

그리고 건우는 혹시나 루미가 탄 택시가 보이진 않을까 싶어 밖으로 나온 순간,

 

 루미야…....”

 

문 앞에 등돌려 기댄 채 땅만 바라보는 루미와 마주쳤다그마저도 그녀 어깨에 손을 올리기 전까진제가 밖으로 나왔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 같았지만.

 

 “……! 건우야.”

 여기서 뭐해언제 온 거야?”

 “…... 방금방금 왔어.”

 

거짓말말하는 입은 웃고 있는데 목소리는 한없이 기어가질 않은가도착하고 나서 한참을 이러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들어올까 말까계속 고민했던 거겠지그나 그녀나망설이는 것이 아주 습관이 되어버렸다그러니 이럴 땐시원하게 등 떠밀어줄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하겠지.

 

 들어가자!”

 

건우는 그대로 그녀의 손목을 잡아 끌어 안으로 들어왔다그리고는 아주 큰 목소리로,

 

 루미 왔어요!”

 

라고 말한다저 앞에 서있는그녀와 똑같이 망설이기만 하는 누군가에게 제일 잘 들리라고.

 

 루미 언니!”

 

그런데 그녀를 보고 제일 먼저 달려드는 것은 이든이었다루미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는 볼 멘 소리가 한가득이다.

 

 도대체 뭐냐학교에는 만날 건우 오빠만 보러 오고!”

 

그런 이든의 투정을 알아들었는지건우에 행동에 잔뜩 당황했던 루미도 곧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이든이가 많이 서운했구나알았어다음부턴 이든이 만나러 학교 갈게.”

 

꼭 아이 달래 듯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루미에이든은 그녀를 꼭 끌어안는다어쩌다 가끔건우의 얘기로만 소식을 전해 들었지 직접 그녀를 만나는 건 거의 3년만에 일이었으니까강마에만큼이나 루미가 반가운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진짜이번에도 안 오면 다신 안 보려고 했어.”

 

그리고 이든의 그런 행동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그녀의 주변으로 모여든다한 사람만 빼고.

 

 임마 너는 연락 좀 하고 지내라.”

 잘 있었어선배?”

 루미야어떻게 지냈어?”

 모임에는 한 번도 안 나오고.”

 아유좀 챙겨먹어왜 이렇게 말랐어.”

 우리 악장님어험되게 예뻐졌다.”

 

사람들 틈 사이에서 인사를 받느라 바쁜 루미를 마에는 그저 바라만 보았다그녀를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저와 별반 다르지 않은 걸 보면건우의 말이 사실이었던 모양이다단원들과 연락을 끊고 지낸 사람이 저 하나가 아니라는 것 말이다.

 

 식사하러 나가시죠마당에 준비 다 해놨는데.”

 

쏟아지는 질문에 그녀가 정신을 못 차리자건우는 손바닥을 치며 주의를 환기시켰다대화할 때마다 일일이 사람들의 입을 쳐다보며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루미에게지금과 같은 상황이 얼마나 난감한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이렇게 해야 마에와 루미가 서로 말이라도 걸어 볼 시간이 나질 않겠는가.

 

그의 말에 사람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가자루미는 혼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그리고 그제야멀찌감치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그와 마주할 수 있었다그런데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는 시선을 돌려버린다어쩌면 저렇게 한결같을 수가 있는지딱 그의 성격과 같은 반응에 루미는 그만 작게 웃어버렸다.

 

 잘 지내셨어요?”

 .”

 선생님오늘 모르고 끌려오신 거죠?”

 “…….”

 건우가 선생님한테 비밀로 한다고 엄청 애쓴 모양이더라고요.”

 

두 사람이 대화를 시작하는 것까지 확인하고 건우마저 눈치 있게 빠져주니교회 안에는 정말 마에와 루미만이 남았다.

 

 건우가 선생님한테 뭐라고 둘러댔어요저 되게 궁금한데.”

 하여간에 거짓말을 칠게 없어서 이런 걸.......”

 

루미의 물음에 마에는 그때까지 자신의 손에 들고 있던 그 가짜 후보 리스트를 슬쩍 건네주었다.

 

 이게 뭐에요?”

 소프라노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새로 뽑아야 된데그게 걔 변명이야.”

 하하하하.”

 

그녀가 알아들을 수 있게마에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그리고 그 말을 꺼냄과 동시에 잠시 잠깐 잊고 있었던 아까의 짜증이 함께 올라온다덕분에 그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었던 루미는 오랜만에 크게 웃음이 터졌다.

 

 강 건우진짜 대단하다이런 거까지 만들고하하그래도 교통사고 좀 뻔하네요.”

 걔가 생각하는 게 그렇지.”

 

그리고 그런 그녀의 웃음소리에 마에도 잠깐 옛날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래자신이 알고 있던 루미는 이렇게 웃음도 많고밝은 에너지를 뿜어내던 사람이었다아까까지 사람들에 둘러싸여 반가워하면서도 당황한 듯어색한 미소를 짓던 그녀는 원래의 그녀가 아니었기에이렇게 변한 것을 보면, 3년이라는 시간이 유독 그녀에게만 길고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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