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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카 단편] "이번에는 전차가 가지고 싶어, 전차를 가져다 줘."

냉동고등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7.08.10 21:18:55
조회 18355 추천 215 댓글 31
														

저 망할 년이 또 왜 생때를 쓴단 말인가.


머라우더 청년은 당황한 나머지 장대에 묶던 해골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는 속으로 잠시 해골옥좌에 대한 사과를 올리곤, 투덜거리며 등을 돌렸다. 천막의 입구 부분, 고래뼈로 만든 현관에 노스카 처녀가 기대어 서 있었다. 가무잡잡한 피부 위에서 처진 눈, 불만스런 입술이 반짝거린다. 

부족의 몇 없는 여자 중 하나인 술라는 머라우더인 청년이 남부로 약탈을 나갈 때면 늘 말도 안 되는 선물을 요구하곤 했다. 어렸을 적부터 알고 온 사이였으니 거절할 수도 없어, 나름대로 노력은 하고 있지만 이놈의 요구란 것이 가면 갈수록 가관인 것이다. 소부족의 초짜 머라우더에겐 아무리 생각해도 억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지지난번에는 강철검(힘들여 가져다줬더니 무거워서 싫다면서 금방 쓰던 뼈칼로 돌아갔다)이었고, 지난번에는 롱비어드의 수염이었으며(장신구를 만드는데 쓴다고 했다), 이번에는 전차인 것이다. 도대체 여자가 전차를 어디다 쓸 생각이지?


"내가 잘 못 들은 거라고 말해, 술라."

"남부 놈들한테서 뺏어오면 되잖아. 전차 가져다 줘, 전차. 같이 타고 다니자."


사냥개신이여, 제발. 청년은 한숨을 내쉬었다.


"남부 먹잇감들은 전차를 쓰지 않아. 어디서 뺏어오란 건데?"


술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 왜? 왜 안 써?"

"몰라."

"이상하네. 전차 멋진데."

"아무튼 전차는 안 되니까 다른 거 말해 봐. 좀 적당한 걸로."

"전차."


술라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부족장이 쫑알거리는 것만으로 매머드도 쓰러뜨릴 것이라 호언장담할 끈질김의 소유자인 술라는 턱을 쑥 내밀어보였다. 청년은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없으면 만들어오면 되잖아? 남부는 여기랑 다르게 나무가 사방에 있다면서. 몇 그루 뽑아 와."

"내가 거인인줄 알아?"


그래, 나무는 많지. 그 나무에 달라붙어 가지 하나라도 꺾는 순간 활을 날리려고 벼르고 있을 귀쟁이들도 산더미처럼 있을테고.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술라. 전차는 나무만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럼?"

"나무로 만들 수 있는 건 뼈대까지야. 바닥에는 가죽도 깔아야 하고, 바퀴는 트롤 내장으로 태를 둘러야 된다고. 그리고 너 강철 만들 줄은 아냐? 껍데기엔 그것도 씌우거든."

"그럼 그것들도 구해와. 너랑 나, 두 명까지만 태울 수 있으면 돼. 그렇게 클 필요없어."


말은 더럽게 쉽게 하는 년이다. 청년은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그걸 다 구할 수 있다고 치자. 말은 어디서 구할 건데?"


술라는 그제야 입술을 조금 집어넣는다. 말이라는 고급진 짐승의 언급은 저 막무가네 술라라도 망설이게 하는 위력이 있다. 혼돈의 전사들이 타고 다니는, 입에서 불을 뿜는 위대한 짐승까지 갈 것도 없다. 노스카인들에게 말은 최고급물건의 동의어나 다름없다. 부족 최고의 전사들만이 말을 탈 수 있고, 가난한 부족의 경우에는 부족장이 탈 말도 구하기 힘든 경우도 흔하다. 그리고 소년과 술라의 부족은 그 가난한 부족이었다. 말은 커녕 말총으로 만든 모자 하나 구하기 어려운 부족이니까.

술라가 입을 다문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한 머라우더 청년은 두 개 밖에 없는 오른손을 펴, 그 중 두 개를 접어보였다.


"전차에는 말이 두 마리나 들어간다고."

"두 마리나?!"

"큰 전차는 네 마리도 들어가."

"네 마리!"


술라는 경악한 얼굴로 자기도 손가락을 들어 하나 하나 꼽아본다. 소부족의 처녀에 불과한 술라에게 말 네 마리는 세상을 사고도 남을 거금이다. 청년은 의기양양해져서 떠벌거렸다.


"게다가 여자는 전차에 못 탄다고. 암흑신들께서 진노하실 거야. 거기는 전사들의 자리지, 여자들이나 타고 다닐 곳이 아니라고. 네가 전차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본다면-뭐, 그럴 일도 없겠지만 족장이 널 회쳐서 그 말들의 간식으로 줘버릴 게 분명해."


술라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는다.


"남부에도 말 있잖아. 그거 훔쳐와. 족장이라도 전리품에는 손 못댈걸."

"남부말은 나약해서 우리땅에서는 얼어 죽어. 게다가 전차를 끄는 말은 보통 말보다도 더 힘이 세야 한다고. 포기해."

"내가 이불 만들어주고 운동시키면 되잖아."

"내 이불도 못 만들어주는데 말 이불은 만들 수 있냐?"

"너랑 말이 같냐?"


정말 말이 통하질 않는 상대다. 청년은 질렸다는 얼굴로 팔을 들어올린다.


"도대체 왜 전차가 가지고 싶은데?"


별 대답도 기대하지 않았다. 술라라면 가지고 싶으니까, 한 마디로 통치고 말 테니까. 

그러나 어째서일까, 술라는 평소처럼 짜랑짜랑하게 대꾸하는 대신, 얼굴을 숙이고 손가락을 서로 얽어매기 시작했다. 왜 무릎을 서로 비비고 저러는 거지? 청년은 처음보는 술라의 반응에 어리둥절한다.


"에이씨..진짜 눈치 더럽게 없네."

"뭔 눈치?"


술라는 발 끝으로 바닥을 긁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정말이지 술라가 이상하다싶어 청년은 불안해질 정도다. 샤먼에게 데려가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클 필요도 없고, 큰 말도 필요없어."

"어쨌든 전차가 필요하다는 거 아냐. 그게 말이 안 된다고."

"너랑 나 둘만 타면 된다니까!"

"둘이 전차를 왜 타는데? 넌 전사도 아니잖아."

"너 진짜! 아이, 진짜!"


어째서인지,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당한 청년이 아니라 술라가 화를 내기 시작한다. 청년은 어처구니가 없다. 술라는 답답한지 가슴을 쾅쾅 손으로 치고, 발을 쾅쾅 바닥에 구르며 사냥개처럼 소리친다.


"멍청아, 그냥 죽어! 죽어버려!"


술라는 있는 힘껏 청년의 엉덩이를 걷어차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남겨진 청년은 화가 난다기보단 너무도 어이가 없어 그저 잠시 서있기만 한다. 저년이 드디어 돌아버렸구나. 슬슬 북쪽 부족으로 보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청년은 한참 씩씩거리면서 무기를 챙겨들곤 천막 밖으로 나왔다. 부족터 앞의 얼어붙은 해변에는 이미 낡은 롱쉽이 들어와있다. 부족의 전사들은 롱쉽에 올라타 남부를 약탈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청년은 능숙한 동작으로 갑판 위에 도끼를 던져놓곤 몸을 끌어올렸다. 늙은 머라우더 하나가 청년의 동작을 알아보곤 인사했다. 술라의 아버지 구누트였다.


"왔느냐."


청년은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곤 술라의 아버지에게 조심스런 태도로 투덜거렸다. 


"예, 구누트. 그런데 그거 아세요? 술라가 돌아버렸나봐요."


건성으로 밧줄을 잡아당기던 머라우더 구누트는 당황해 그걸 놓치고 말았다.


"뭐?"

"전차를 가져오라나 어쩌라나, 그거 미친 거 맞죠?"

"전차를?"


청년은 더욱 목소리를 낮춰(걱정하는 어조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속삭였다.


"둘만 타면 된다네 어쨌다나 헛소리가 아주 보통이 아니예요. 전차는 셋이 타는 거 아니예요?"


그런데 어째서일까, 구누트는 정신나간 딸을 걱정하거나 배에서 뛰어내리는 대신 픽하고 웃어버렸다.


"너는 정말 눈치가 없구나."

"네?"

"둘만 타는 전차도 있지. 부족장네 아들이 저번에 장가갈 때 못봤느냐?"


여기서 부족장 아들 이야기가 왜 나와. 청년은 불만스러운 얼굴로 기억을 더듬어본다. 부족장네 아들이 옆 부족의 처녀와 결혼할 때 무슨 일이 있었더라. 트롤 이빨 장신구에 메머드 가죽 천막이 선물로 오갔고, 그리고 아들과 처녀가 같이 전차를 타고 첫날밤을 지낼 천막으로 향했었지.

전차에 둘만 타고서.


청년의 얼굴이 석탄이라도 가져다 댄 것 마냥 빨개졌다. 그 모습을 보며 늙은 머라우더가 낄낄거렸다. 청년은 고개를 홱 돌리고 선미로 향했다. 구누트가 웃음을 거두고, 청년이 다시 입을 연 것은 부두에 던져놨던 밧줄이 모두 회수되고 롱쉽이 출정하기 직전이었다.


"...구누트, 우리 이번에는 어디로 약탈가죠?"

"아직 안 정했다만."

"부레토니아로 가요."

"브레토니아겠지. 말에다 박는 놈들 사는데 말이냐?"

"예."

"거긴 왜? 말이라도 필요하냐?"


청년의 얼굴이 다시 타오르자, 늙은 머라우더는 다시 낄낄거렸다. 청년은 반박하지 못하고 그저 바다를 열심히 쏘아보았다. 구느트가 그 옆얼굴을 보며 웃음어린 조언을 건넸다.


"말을 잡아와도 전차를 만드는데는 한참 걸릴 거다, 수르다 에크."

"상관없어요."

"내 딸은 성질머리가 고약해서 퇴짜도 잘 놓거든. 기껏 만들어와도 모양세가 안 예쁘다며 내치기 일쑤일게다."

"...다시 만들죠, 뭐."

"몇 개라도 그럴 수 있느냐?"

"어쩔 수 없는 거 아닙니까."


롱쉽이 출정한다. 바다를 가르며, 전차를 꿈꾸는 청년을 태운 약탈선이 따스한 남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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