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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프러시아 대피난 - (6)쾨니히스베르크 함락

Payback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1.06.08 1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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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빌리 프뢸
소련 제43군 예하의 여러 부대는 쾨니히스베르크를 지나 잠란트 지방을 가로질러 피쉬하우젠과 필라우를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이 소련군 제43군 부대들 앞에는 쾨니히스베르크를 위시하여 그 동쪽 각 지방에서 쏟아져 나온 수천의 달구지행렬이 해안을 향해 피난길을 다그치고 있었다. 도망치는 독일군들이 그들을 앞지르고 또 소련군이 바짝 뒤쫓아오는지라, 그들은 숨돌릴 겨를도 없이 걸음을 재촉했다.

한편 쾨니히스베르크를 떠나 서쪽으로 향한 마지막 열차에는 \'빌리 프뢸\'과 연로한 그의 어머니가 타고 있었다. 1월 28일에 두 사람은 기차에서 내려 45km가량 떨어진 필라우를 향해 걸어서 길을 떠났다. 의족을 한 경리직원 프뢸에게는 얼음판길을 걷는 것이 몹시 힘들었다. 그런데도 그는 그러한 자신보다 훨씬 곤란한 사람들을 보았다. 두 모자 앞에는 얇은 누더기를 걸치고 야윌 대로 야윈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앞질러 가는 군인들에게 음식을 구걸하며 떼를 지어 가고 있었다. 이들은 \'타피아우\'의 정신요양원 수용자들로서 요양원직원들의 버림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프뢸 모자가 어느 마을에 도착하자 집집마다 문과 창문과 벽에 공고문이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사태가 안정되었으므로 놀라거나 피난할 이유가 없음. 당위원장\'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동네 낙농제품공장이 약탈당해 버터와 치즈가 눈밭에 짓밟혀 널려 있었다. 후퇴하던 군인들이 주인을 잃고 돌아다니는 돼지를 쏴 죽이고는 탄약마차에서 탄약을 끌어내 버린 후 돼지를 싣고 가버렸다. 큰길가를 따라서 파 놓은 얼어붙은 참호 속에서는 민병대의 복병들이 들판쪽을 향해 1차대전때 쓰던 벨기에제 소총과 구식 기관총을 겨누고 있었다. 정규군 병사들은 늙은이들과 어린 소년들로 구성된 이 민병대를 보고 비웃었고, 피난민들은 그들의 용감한(?)모습에 못내 가슴 아파 했다.

프뢸과 그의 어머니가 제에라펜에 도달했을 때까지 그들이 걸은 길은 겨우 15km였으나, 프뢸은 다리의 절단부위가 얼마나 부어 올랐던지 의족이 맞질 않았다. 그는 임시로 의족에 무얼 덧대고 감고 한 뒤 절뚝거리며 제에라펜 기차역으로 갔다. 그는 그만 지쳐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제발 같이 가자고 했다. 다음날 아침 그들은 부상자가 가득 탄 화물 열차에 탔다. 기차가 정거장을 벗어나 필라우를 향해 가고 있는데 뒤에서 맹렬한 총성이 들려왔다. 그 순간 열차에 탄 사람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꼈지만 이윽고 요란한 총소리는 멀어져 갔다.

사실 그 총격은 제에라펜역의 신호소를 막 통과한 쾨니히스베르크발 피난열차를 겨냥한 것이었다. 총격으로 보일러에 구멍이 난 기관차는 서서히 멈추고 말았다. 싸늘한 겨울 대기 속으로 천천히 퍼지던 구름 같은 수증기가 열차를 수의(壽衣)처럼 감싸며 내려 앉았다. 소련군 병사들이 총을 쏘고 고함을 지르며 대부분 여자와 어린이들만 타고 있던 차안으로 뛰어들었다. 이 열차 뒤에도 두 개의 피난열차가 뒤따르고 있었는데 그들 역시 제에라펜과 메트게텐 사이의 선로 위에서 똑같은 운명에 부딪쳤다. 이 사건으로 수백명의 민간인들이 생명을 잃었다.

프뢸이 탄 열차가 피쉬하우젠을 지날 때, 피쉬하우젠 역은 밀치고 아우성치는 사람들로 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열차는 역에 서지 않고 그대로 지나쳤지만 몇사람은 잽싸게 열차에 뛰어 올랐다. 기차가 필라우에서 9km떨어진 로흐슈테터에 다달아 밖을 보니, 도로를 따라가던 피난민 행렬이 서로 뒤엉켜 오도가도 못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프뢸은 자기 모자는 기차를 타고 있으니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프뢸은 다리의 절단 부위가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파왔다. 그는 이래서는 그다지 멀리 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필라우역도 수라장이었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부두로 나가 배를 탈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며 아예 천막까지 치고 살고 있었다. 부두에는 배가 가득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병력수송선 \'리첸티아\', \'팡투름\', \'로트링엔\', \'헤스티아\'였는데, 리첸티아호와 팡투름호는 쿠르란트에서 육군부대를 싣고 왔었으며, 이 병력수송선들은 모두 부상병들과 피난민들을 태우고 있었다. 또한 그 수많은 선박중엔 \'게네랄 폰 슈토이벤\'호(후에 어뢰공격을 받음.)와 해군 훈련선 \'나우티크\', \'오크탄트\', \'오스트마르크\', \'헤라클레스\'도 있었다.

뱃전까지 사람들을 가득태운 배들이 연달아 필라우항을 떠났다. 2월 중순에 이르자 여기서 빠져나간 사람의 수효만도 20만4000명에 달했다. 그밖에도 프리쉐호 앞으로 제방같이 내뻗은 프리쉐네룽을 따라 단치히나 그 너머로 탈출하기 위해 필라우항을 지나간 사람들도 5만 명이나 되었다. 반면 이와 반대로 프리쉐호를 건너 북쪽의 필라우쪽으로 가는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3척의 조그만 연락선들은 올 때나 갈 때나 사람들이 가득한 채 분주히 오갔다.

필라우항구에서 프뢸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항공교통 관제선 \'그라이프\'호와 연결된 배다리 앞에 이르게 되었다. 그 배다리는 막 거둬지려는 찰나였다. 그는 얼른 어머니와 어머니의 여행가방을 배다리 위로 밀어 올렸다. 그러자 수병 하나가 그의 어머니를 끌어 올렸다. 모자는 서로 뒷일을 상의할 틈도 없었다. 프뢸이 "뒤따라 갈께요."하고 고함을 지르기가 무섭게 어머니는 갑판 위의 인파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그라이프호는 당시 노이파르바서에서 공군기지 노이티프 사이를 정기 운항하고 있었다. 이 배의 선장은 배가 모항으로 돌아가는 길에 매번 필라우에 입항하여 피난민을 최대한 태워주곤 했던 것이다. 그라이프호는 수주일 동안이나 이렇게 피난민 수송을 했다.

프뢸은 어머니가 서쪽으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는 노이파르바서로 가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그는 다시 시내로 들어갔다. 어쩌다 보니 그는 민병대 사령부 앞에 가게 되었다. 이 불구의 경리사무원은 그 자리에서 징집 당해 엄청나게 많은 명부와 서류를 처리하는 사무를 떠맡게 되었다.

9.헬라
3월 하순에도 수만 명의 피난민들이 온갖 종류의 배를 타고 고텐하펜과 단치히-노이파르바서를 떠나 안전한 서쪽 항구로 줄지어 떠났다. 그러나 그즈음에는 소련군의 포화가 철수작전을 심각할 정도로 방해하기 시작했다.

3월 25일에는 단치히가 불탔고, 3월 30일에 이르러 고텐하펜과 노이파르바서가 소련군과 폴란드군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단치히의 관공서 건물에는 폴란드국기가 나부끼고, 독일군 제4기갑사단은 이 도시에서 철수하여 조그만 비스툴라 만을 향해 동쪽으로 이동했다. 독일 국방군의 대열에는 난민들이 수 없이 끼어 있었는데 그들은 걷거나, 군용차량을 타거나 혹은 그때까지도 달구지를 타고 가고 있었다.

엘제 부흐베르거가 이끄는 클라인비쉬 달구지 대열은 2개월 전에 출발하여 300km이상을 이동해서 폼메라니아의 후방까지 왔으나, 그들을 앞지른 소련군 때문에 되돌아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불타고 있는 단치히를 가로 질었다. 그들이 폐허가 된 비스툴라만 호이부데 다리에 당도했을때는, 원래 14대였던 달구지가 8대로 줄어있었다.
(그러니까 이 부흐베르거 일행은 프리쉐하프 석호를 건넌후 북쪽의 필라우로 향하지 않고 육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 서쪽으로 향했다가 길이 막히자 다시 북쪽으로 틀어 단치히를 통과한듯 합니다.)

탱크, 트럭, 농사용 차량 그리고 난민들이 다리로 가는 진입로에 엄청나게 몰려 있었고, 소련기들이 다리를 폭파하기 위해 반복해서 저공비행을 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부서진 차량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그들의 피난길이 끝장났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시간 가까이 지나 부흐베르거의 달구지 대열은 다리를 건널 수 있었다.

다리를 건넌 그들은 군용차량 행렬의 뒤를 따라 가면서 조금만 가면 달구지를 세우고 쉴수 있겠거니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8대의 달구지들이 쉴만한 곳을 찾는 족족, 나무 사이에서 참호를 파고 있던 군부대들한테 쫓겨나고 말았다. 여자만으로 된 이 피난민 대열은 여러날을 마차에서 잠을 자며 비스툴라만 숲 사이를 무턱대고 가다가, 마침내 최후의 결단을 내려야 할 때를 맞이했다. 소련군이 올때까지 그냥 눌러 앉아 있느냐 아니면 사람이 넘치도록 타고 있는 빈약한 너벅선에 몸을 맡기고 헬라를 향해 바다로 가느냐 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들은 후자를 택하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말과 수레와 대부분의 살림살이를 내버린 채 그들은 병든 아이들을 데리고 너벅선에 올랐다. 헬라까지 가는데는 4시간이 걸렸다.그들이 도착할 즈음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너벅선은 정박중인 \'우룬디\'호 옆에 나란히 붙었다. 지칠대로 지친 엘제 부흐베르거는 영문도 모르고 줄줄히 늘어선 피난민들을 따라서 우룬디호에 올라 갑판 밑으로 내려갔다. 갑판에서 선실로 내려가는 승강구에는 숨막히는 지린내와 썩은 살내음이 진동했고, 치료를 해달라고 울부짖는 아우성이 끝없이 메아리쳤다. 하지만 그들의 목표는 달성되었다. 이제 서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헬라항에서 피난민들을 싣고있는 배중엔 \'도이칠란트\'호도 있었다. 이 배에는 간호병이 3명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배의 유일한 의사 \'하인리히 필츠\'박사는 추가 인원을 보내달라고 긴급 전문을 발송했다. 그래서 출항직전에 보충인원이 왔는데, 그들은 생포된 소련군 군의와 간호원들이었다. 소련의사와 간호원들은 열심히 환자들을 돌봤다. 그래서 필츠박사는 최상층의 A갑판과 그 아래층의 B갑판에 있는 부상자들을 모두 그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아래쪽에 있는 피난민 환자들을 살폈다. 도이칠란트호가 덴마크를 향해 반쯤 갔을 즈음, 흥분한 간호병 하나가 환자 치료에 열중하고 있는 필츠박사에게 A갑판으로 와 달라고 외쳤다.

지칠 줄 모르고 환자를 돌보던 소련 의사들의 의술은 정말 대단했고 때로는 마취제를 쓰지 않고도 수술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전염병을 염려해서였는지 아니면 소련의 관습이 그래서 그랬던지, 환자가 사망하면 사망자의 개인기록도 전혀 남기지 않은 채 그냥 바다로 내던져 버리는 것이었다. 소련인 책임자와 열띤 입씨름 끝에 필츠박사는 이제부터는 환자가 죽으면 시체를 자신이 직접 검진하기로 했다. 그리고 선장은 시체를 뒤에 처리하기로 하고 앞갑판 밑의 선원실에 보관하기로 했다. 그것은 시체를 바다에 수장하는 다른 선장들의 관례와는 대조적인 조치였다.
(이 이야기에서 소련 의사의 행동이유가 뭐였을까요? 그냥 사람 살리기도 바쁜데 시체에 신경쓸 이유가 없다는 것 아니었을까 싶은데.)

도이칠란트호가 코펜하겐 근해 드로그덴에 닻을 내렸을 때 그 선원실에 보관된 시체는 134구나 되었고, 그중 80구가 즉각 육지로 이송되었다. 부상병들과 피난민들은 \'뉘른베르크\'호와 \'데어도이치\'호로 에 옮겨탔으나, 어느 배도 남아있는 시체를 인수하려들지 않았다. 도이칠란트호의 \'브루노 파인트\'선장은 이틀을 기다려서 술 4병을 주고 어느 예인선 선장에게 그 끔찍한 화물을 넘겼다. 이튿날 4월 9일, 도이칠란트호는 다시 한번 헬라를 향해 출항했다.

10.쾨니히스베르크 함락
쾨니히스베르크는 이제 소련군에게 거의 포위된 상태였다. 소련군 보병 60개사단과 2개 전차대가 최후 공격을 위해 집결했다. 이에 대항하는 \'오토 라쉬\'장군 휘하의 방어군은 고작 4개 보병사단과 민병대, 해군, 경찰과 소방대, 히틀러 유겐트(히틀러 청년단), 기술보조대원 등으로 이루어진 잡동사니 부대였다. 탄약도 부족했고 고대의 성채를 제외하고는 방어진지도 구축되어 있지 않았다.

이 도시에 파견된 보충병력 가운데는 필라우 민병대대가 있었고, 거기에는 어머니와 함께 쾨니히스베르크를 탈출했던 의족을 단 경리직원 \'빌리 프뢸\'도 끼여 있었다. (기껏 피난갔더니 도로 되돌아온 셈이군요.) 그는 동려들이 참호를 파고 가시철조망을 치고 대전차장애물을 설치하는 동안, 대대본부에서 재고기록과 인원명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프린처슈트라세 거리의 어느 빈집에서 자신과 동려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잠자리를 발견했다. 만약 6개월전에 주문했던 새 의족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지금쯤이면 의족이 완성 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그는 포탄을 무릅쓰고 쓰레기가 가득한 거리를 헤치고 의족가게에 다달았다.

가게는 간판이 달아났고, 진열장과 작업장은 텅 비어 있었다. 옆집 아주머니에게서 가게주인이 어느 학교로 옮겼다는 말을 들었으나, 그 부인도 어느 학교인지는 모르겠노라고 했다. 아픔을 못 이겨 얼굴을 찡그리며 그는 절뚝거리며 그곳을 떠났다. 그때부터 프뢸은 시간이 나는대로 이 학교 저 학교를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자기가 찾고있던 학교에 이르게 되었다. 가게주인은 (이미 피난을 떠난 듯) 종적을 찾을 수 없었으나, 나직한 선반에 몇개의 의수족이 얌전히 줄지어 있었고 그중 하나에 그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4월 4일 이후로는 그도 도시방어에 직접 필요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가능한 한 지하에 숨어 있었다. 소련군은 시 중심가에 쉴새없이 포격을 가했고, 저공 비행하는 항공기들은 시내 도처에 폭탄을 투하했다. 그 시점까지도 시민들은 조그맣게 무리를 지어 도보로, 철도편으로, 혹은 밤에 필라우로 가는 운하용 소형 선박을 타고 포위된 도시를 빠져나갈 수 있었다. 나치의 지방당 요원들이 \'각 지구의 보다 귀중한 가족들\'을 골라 철수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4월 7일, 이 도시가 소련군에 의해 완전히 봉쇄되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튿날 남아있던 민병대원들에게는 소총, 대전차 총류탄, 기관총등이 배급되었고 밤 9시에 피쉬하우젠 쪽으로 돌파작전을 감행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민병대와 정규군은 9시까지 준비를 완료했으나, 민간인들이 문제였다. 나치당 간부들이 민간인들에게 \'3시간 30분 후\'에 트롬멜플라츠 우체국 부근의 서쪽으로 통하는 중앙로에 집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명령전달에 혼선이 빚어지고 엉뚱한 소문이 판을 쳐서, 9시가 되기도 전에 수많은 피난민들이 트롬멜플라츠에 밀려들어 줄지어 섰으며, 그 줄은 자꾸만 길어졌다.

한밤중에 독일 탱크들이 서쪽을 향해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별로 나아가지 못했다. 대기하고 있던 소련군이 포문을 열어 단숨에 선두부대를 완파해버렸다. 탱크들이 단말마적으로 마지막 포탄을 쏘아 없애는 동안 민병대원들은 끈덕지게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는 짓이었다.

뒤에서 위험한 행진을 기다리고 있던 수천명의 시민들은 그 요란한 포성을 일말의 희망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이 참혹한 현실을 깨달은 것은 카츄샤 로켓탄이 자신들 사이로 날아와 터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삽시간에 거리에는 아비규환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미친 듯이 숨을 곳을 찾아 헤맸고, 도이치오르덴-링 가로를 따라 파놓은 1인용 참호들은 금방 사람이 넘칠 듯이 들어찼다. 트롬멜플라츠에는 숨을 곳이 별로 없었다. 도망갈 수 없는 사람들은 땅위에 납작 엎드렸다. 부상자들의 비명과 의사를 찾는 아우성들이 잇달아 터지는 폭음에 파묻혔다. 바로 가까이에 있는 슈타인담 거리가 불길에 싸이자 그 끔찍한 광경이 환하게 드러났다.

숱한 사람들이 그랬듯이, 프뢸도 움직이지 않고 소련군이 와서 자신을 포로로 할 때까지 그냥 기다릴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4월 9일, 소련군이 시 중심부를 장악했다. 그래도 최후까지 버티겠다는 사람들이 계속 저항했기 때문에 그날 하루종일 산발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그러나 오후 5시 30분에 라쉬장군이 투항했다.

약 3만 5000명의 독일군, 1만 5000명의 외국인 노동자, 그리고 10만명의 현지주민과 피난민들이 소련군에게 그 운명을 맡기게 되었다.



출처: 본인 블로그 (http://blog.naver.com/bob0845/30044435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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