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슬픈 편 마음 따뜻해지는 편 정신 나가는 편 오만가지 편들이 많지만 나한테는 이번 에피가 안쓰러움 TOP1이었다.

애초에 퍼른 태생부터가 풀의 검의 저주였으니 언젠간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하긴 했다.

보면 퍼른은 뭐랄까, 확실히 핀이랑은 구분되는 사람인 게, 저주가 핀검 속 핀 인격이랑 섞여서 태어난 존재긴 하지만 그래서인지 몰라도 핀처럼 선량하다 보긴 어려운 캐릭터였다.

실제로 퍼른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는 게 풀법사 겁나 줘팸한 편도 그렇고 위스퍼스에서도 스윗P를 멈춘다→힘줄을 자르자! 라는 발상으로 가거나 아직 어린 애한테 겁날 만한 소리도 돌직구로 던지는 점에서 핀가놈하고는 쪼끔 다르단 걸 알 수 있지

문제는 그래도 이놈이 태어나는 과정에서 믹스된 게 핀가놈 인격이라 그런지 자기를 핀이라고 여기는 면이 있다는 거지. 초기에는 그거 때문에 정체성에 혼란와서 물건 다 때려부수고 난리치기도 했고. 이후에 결국 자기는 핀이 아니라 핀과는 구분되는 사람이라고 인정하지만 아마 완전히 해소된 게 아니었을거다. 자주적으로 자기가 뭘 할까를 생각하기보다는 본인이 말하기를 핀처럼 '루저들을 때려눕히면서 의기양양하는 삶'을 살고 싶어한 점에서 말이지.

위스퍼스 편에서 스윗P가 자신의 본질이라고 볼 수 있는 리치를 거부하고 역으로 때려눕히고 좋은 아이로 남았다는 점에서 퍼른도 그런 길을 갈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퍼른도 엄밀히 따지면 태어난지 몇 달도 안 된 놈이잖아. 적절한 교육과 자아 정체성 형성이 성공했다면 핀과도 괜찮은 관계를 유지하고 잘 지낼 수도 있었겠지. 당장 스윗P만 해도 리치로부터 태어났지만 트리트렁스랑 돼지 부부한테 사랑받으면서 자란 이후 자신 내면의 사악함을 이겨내는 데 성공했으니까.

하지만 누가 또 다른 핀가놈 아니랄까봐 이 놈이 태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폭풍같이 사건이 몰아쳤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계속해서 실패를 겪은 퍼른은 멘탈이 깨졌고. 자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놈, 스스로는 아무것도 이뤄낼 수 없는 놈이라고 자괴감에 빠진다. 가뜩이나 내가 핀인지 핀이 나인지 혼란스러워하던 시기를 지난지도 얼마 안 됐는데 그런 일들을 겪고 멘탈이 깨진거다. 게다가 핀은 자기가 그렇게 실패를 겪는 동안에도 꺾이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 길을 달리고, 퍼른에게 있어서 핀은 성공하고 자기는 실패하는, 같은 일을 하지만 자신은 뭘 해도 안 되고 쟤는 뭘 해도 되는 존재로 인식된 거지. 그리고 핀의 굴레로부터 아직 벗어나지 못했던 퍼른은 결국 자신이 성공하려면 내가 유일한 핀이 되는 수밖에 없다는 극단적인 결말로 치닫고.

그리고 그 와중에 퍼른과 함께 지내면서 핀은 퍼른을 무척 가깝게 느끼게 된다. 가뜩이나 아빠는 정신나간 인간이 됐고 엄마는 오로지 섬 내부에서밖에 볼 수 없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되어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기억을 공유하고 알아주는 퍼른의 존재는 많은 위로가 되었을거다. 실제로 Three buckets 중간에 핀이 너랑 내가 진짜 형제가 된 것 같지 않느냐, 아니면 그보다 가까운 사이인 것 같다고 말을 하는데, 누구보다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자신을 잘 이해해주는 진정한 이해자로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뜻이겠지. 불쌍한 핀가놈...그렇게 마음을 주면 안 되는 것도 모르고...흑흑...

그리고 그 당시 퍼른은 이미 핀 자리 차지할 생각 만만으로 사고가 굳어져있었기 때문에 깔끔하게 무시해버린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그 얘기를 듣고 한동안 침묵을 유지하다가 무시했다는 거다. 퍼른도 그 말을 듣고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던 거다. 핀이랑 나름대로 우정을 다지면서 지낸 시간이 아예 의미없는 건 아니었다는 것. 이것이 후 전개의 비극성을 더욱 높여주는 장치가 된다. 하여간 제작진들 피는 무슨 색인지 모르겠어. 분명 리치 색일 것

이미 마음을 굳혀도 단단히 굳혀버린 퍼른은 결국 핀가놈을 유적에 가둬버리고 나오는 길을 택한다. 여기서 또 주목할 점이 퍼른이 핀을 가둔 후에 잠깐 지은 표정. 역시 마음에 걸리는 표정을 하고 있지.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만약을 엿볼 수 있다. 이미 마음을 굳혔는데도 아주 잠깐이나마 고민할 만큼, 퍼른도 핀에 대해서 우정을 느낀 게 거짓은 아니라는 것. 만약에 원소 사태가 터지지 않았거나, 퍼른이 좀 더 일찍 태어나서 멘탈을 좀 더 다질 기간이 있었다면 이런 선택으로 이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아...제작진...당신들은 대체...

무엇보다 확실히 하려면 핀을 그냥 죽여버리는 게 나을텐데도 퍼른은 굳이 귀찮게 유적까지 끌고 와서 가두는 길을 택했지. 한 달에 한 번 쓰레기 갈아주러 들르겠음ㅇㅇ 같은 식으로 관리는 해주겠다는 언급을 하는 것도 그렇고 미트로프 만드는 법을 몰라서 대충 흙을 퍼 담았어도 미트로프 비스무리한 거라도 준비해줬다는 것도 이 점에 대한 근거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버려진 핀은 난 버려지는 거 싫어! 난 이런 거에 민감하단 말이야! 하고 화를 내는데...마틴...가족...으윽...머리가...

이 상황만 봐도 불쌍한데 기계팔 내장 기능으로 탈출한 핀이 퍼른이랑 다투게 되면서 비극은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둘이 한동안 엎치락뒤치락하다가 퍼른이 우세를 점하는데 여기서 핀은 자기가 죽을 거라고 생각하고 퍼른에게 제이크에게 사랑한단 말을 전해달라고 한다. 사실, 보통 때의 핀가놈이라면 이런 식으로 포기하지 않았겠지. 상대가 우세를 점해도 계속해서 방법을 찾고 발버둥치는 게 더 핀 스타일이지 않냐? 퍼른을 발로 까서 밀쳐낸다던지. 하지만 핀은 자신이 불리해지자 죽는 걸 받아들이겠다는 식으로 나갔다. 핀에게 있어서 이미 퍼른은 자신의 진정한 이해자이자 가족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퍼른을 죽이는 것보단 자기가 죽는 걸 택한거겠지. 그리고 이런 건 그만두고 둘이 같이 집으로 가면 되지 않냐고, 이런 식으로 끝나지 않아도 된다고 필사적으로 설득한다.

그리고 쓸데없이 성능 좋은 기계팔 내장 마이크는 finally를 fatality로 알아듣고 그대로 퍼른을 갈아버리지. 껌공아...모탈 컴뱃하니...?

퍼른이 태생부터가 저주였기도 하고 언젠간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중간중간 보여준 모습을 보면 어쩌면 거기서 페이탈리티! 가 시전되지 않았다면 핀의 마지막 설득에 마음을 돌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퍼른은 거기에 대해서 답할 기회도 없이 그냥 갈려버리지.

그리고 퍼른을 죽이느니 내가 죽겠다고 생각한 핀은 그대로 자기 팔에 갈가리 찢겨 죽은 퍼른을 그대로 목도했고.

진심 퍼른 죽이고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한 표정만 짓는 핀 보고 내가 다 마음이 아프더라. 양쪽 다 너무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퍼른도 어쩌면 그런 극단적인 곳까지 빠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줬고, 핀은 진짜, 자기가 소중히 생각하던 존재한테 배신당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고 같이 집으로 돌아가는 걸 더 바랬던 상대를 본의아니게 찢어 죽인다는 게 어떤 기분이겠냐. 정말 핀 멘탈 가루 만들기의 절정을 보여줬다고 생각함.

결국 뭐 어떻게 할 새도 없이 악역으로 끝나버린 퍼른도 의문의 사내 G(팬덤에선 검발드로 추정중이다만)한테 시체가 회수당하는데 나중에 부활한다고 해도 좋은 전개가 될 것 같진 않다. 다시 악역으로 나오든가...근데 그러면 진짜 핀 멘탈 더블 크래쉬행인데 제작진들 피 색은 방사능 색깔이니까 아무렇지 않게 할 듯ㅎ 

여튼 둘 다 되게 안타까운 화였음. 비극성을 더하는 장치도 완벽하게 세팅해줘서 진짜 안쓰러웠다.

시즌3~5까지 핀가놈 어장관리로 이미지 엄청나게 깎아먹은 건 사실인데, 이렇게까지 몰리는 거 보니까 그냥 사춘기 한 때의 과오 정도로 취급하고 넘어가줘도 되겠음.

시즌6에서 카사노바 찍은 거? 그 당시에 마틴 때문에 멘탈 박살나 있었잖냐.

그리고 멘탈 한 번 박살으론 부족하다고 또 박살내는 제작진 인성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