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마이너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제힘으로 벌어먹고 산다는 것의 의미

유지군(220.87) 2018.04.25 12:31:46
조회 204 추천 11 댓글 0
														

어제 當日치기로 出張을 다녀왔다. 3시간 가까이 걸리는 곳이라 고속버스를 이용했다. 3시간 정도 차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이 금쪽같은 시간을 소중히 즐기기 위해 가방에 책을 챙겼다, 이럴 때 유지군은 대체로 소설을 선호한다. 미야베 미유키(宮部みゆき) 여사의 작품이다.

특히 그녀의 에도시대 연작소설은 첫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반해 있다. 무엇보다 상사람들의 애환과 일상이 수채화처럼 묘사되어 있어 읽고 있노라면 달콤한 키스처럼 즐겁다.


이번에 선택한 책은幻色江戶ごよみ이다. 평일에다 아침부터 서둘러 차 안에는 승객도 많지 않고 조용하니 독서하긴 좋았다. 마침 通路 너머 1인 좌석에 책을 펴든 승객도 있었는데 서남아시아풍의 외국인이다. 진지하게 독서하는 모습이 보기에 기꺼웠다.


휴게소에서도 외국인들이 더러 보인다. 관광객보다는 定住者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그러고 보면 한국 곳곳에서 외국인 定住者들을 보는 게 더는 신기하지 않다. 외국인과 공존하는 환경에 위화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일상에 녹아든 세계화의 풍경이다.

이런 현상이 어찌 한국만이랴. 이민에 크게 엄격한 日本도 현재 외국인 定住者가 역대 최고의 기록이다. 자그마치 256만여 명. 일손이 부족한 日本을 보완해 주는 한 축이 된 셈이다.


금쪽같은 시간을 즐기는 독서를 하다보면 의미심장한 문구를 만나거나 인상적인 대목을 접하기 마련인데, 그럴 때는 책을 덮어두고 턱을 손바닥에 괴고 차창 밖을 바라보며 잠시 사색하는 게 유지군의 습관이다. 이번에도 영락없었다.

상가의 雇傭人들이 심기일전하는 문구에서 고도로 승화되는 日本的 상도의 본질을 실감하게도 되고, 인상적인 대목에선 뭉클해져 한동안 차창 밖만 지그시 보기도 했다. 이를테면,


<그 아이가 어엿한 일꾼으로 커서 제힘으로 벌어먹을 수 있을 때까지 내가 책임질 테니까요.>


이 독백은 그야말로 삶의 정수(精髓)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맞아, 맞아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드는 미야베 여사의 안목은 이렇게 깊다. 왜냐하면 제힘으로 벌어먹고 산다는 것은 하나의 一家를 이루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삶의 모든 것이 들어가 있다.


예컨대 아이가 사회에 나가서 한 사람의 제몫을 다하도록 부모는 지극정성으로 가르치고 보살핀다. 아이는 부모의 보살핌 속에 제힘으로 벌어먹고 살 수 있도록 교육을 받고 익힌다. 그리하여 장성한 아이는 마침내 一家를 이룬다. 다시 그 아이가 부모가 되어 자식을 제힘으로 벌어먹고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가르치고 보살핀다. 이러한 선순환이 삶이다. 그 선순환 속에 유지군과 여러분이 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순환 속에서 일탈되거나 뒤떨어지거나 방치되는 경우도 없진 않을 테다. 당연히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하고, 국가가 제도적으로 책임을 다해야 마땅하다. 그걸 제대로 해내는 국가가 선진국이다. 척도가 된다는 얘기다.


<그 아이가 어엿한 일꾼으로 커서 제힘으로 벌어먹을 수 있을 때까지 내가 책임질 테니까요.>


다시 돌이켜 봐도 그 대목은 여전히 뭉클하다. 유지군은 차창 밖을 보면서 제힘으로 벌어먹고 살아가는 것의 의미, 삶의 정수를 사색한다.

제힘으로 많이 벌수록 좋겠지만, 일단 제힘으로 벌어먹고 산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에도시대로 치면 일국의 다이묘인 것이다. 石高250만석이 아니면 어떠랴. 1만석이라도 다이묘는 다이묘다.


여기에는 국적도 국경도 없다. 제힘으로 벌어먹고 산다면 누구든, 어디에서든, 이미 일가를 이루었다. 존중과 배려와 책임으로 사회에서 당당히 제몫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제힘으로 벌어먹고 사는 사람은 이웃나라를 증오하거나, 인간을 혐오하지 않는다. 존중과 배려와 책임이 무엇인지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버스 안의 독서와 사색은 달콤한 키스처럼 여전히 즐겁다.

  



추천 비추천

11

고정닉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SNS로 싸우면 절대 안 질 것 같은 고집 있는 스타는? 운영자 24/05/06 - -
1085 메이지유신시대때도 정부의 관리밖의 구역이 있었나요? ㅇㅇ(175.209) 04.17 31 0
1084 책사풍후 굿즈 광개토 키링 출시 책사풍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11 24 0
1083 책사풍후가 다시 만든 쇼군토탈워 2 겐페이 합전 오프닝 원의경源義經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3 26 0
1080 한국사서는 전쟁으로 많이 소실 되었는데... 관통사(119.198) 23.03.10 180 0
1078 일본사에 관심이 많은데 추천하는 책 있음?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1.11 182 0
1077 살다보면 느낀다 [1] ㅇㅇ(112.152) 22.12.19 252 0
1074 일본 전국시대 전투할때 ㅇㅇ(220.117) 22.08.05 318 0
1072 시로메시 수행승しろめし修行僧 [1] 유지군(49.170) 22.05.15 545 11
1071 에도막부군 계급좀 알려주실분 있나요? .;.(182.219) 22.03.27 366 0
1070 이거 답 아시는 분 [1] ㅇㅇ(49.171) 22.01.02 548 0
1069 대망 읽는 중인데 고슈 신슈가 어디에요? [1] 프나야행복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2.19 526 0
1066 <빵과 스프와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パンとスープとネコ日和> 유지군(49.170) 21.11.07 455 5
560 젠禅 유지군(49.170) 21.08.21 631 8
549 기리/하지 유지군(49.170) 21.07.17 916 8
544 바람의 검심 더 비기닝과 쿠사카 겐즈이 유지군(115.91) 21.05.26 655 11
542 우와나리우치後妻打ち 유지군(115.91) 21.05.03 622 8
540 아케치 히로코明智煕子와 야오야 오시치八百屋お七(2) 유지군(115.91) 21.03.25 537 8
539 아케치 히로코明智煕子와 야오야 오시치八百屋お七(1) 유지군(115.91) 21.03.25 608 8
532 "남친 성폭력하는 거라고" 사유리가 미혼모 된 이유 ose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1.27 326 5
518 항공모함 이부키空母いぶき와 군인의 귀감 [1] 유지군(220.87) 20.08.14 941 13
513 아베 총리대신, 도쿠가와 나이후 그리고 다나카 가쿠에이 선생(2) [3] 유지군(220.87) 20.07.04 495 8
512 아베 총리대신, 도쿠가와 나이후 그리고 다나카 가쿠에이 선생(1) 유지군(220.87) 20.07.04 360 8
510 6월 23일, 류큐, 오키나와를 생각합니다. 많이 사랑합니다. 유지군(220.87) 20.06.23 318 13
507 재밌고 유명한 일본역사소설 있음? [3] ㅇㅇ(106.102) 20.06.19 587 0
506 루~타이완익스프레스路(ルウ)~台湾エクスプレス 유지군(119.75) 20.06.07 175 8
504 쉽게 읽을만한 일본 역사서 추천점 [1] ㅇㅇ(113.131) 20.06.03 295 0
503 人生の扉 유지군(220.87) 20.05.27 416 11
498 행렬의 여신~라면 서유기와 다양성의 관점(2) 유지군(119.75) 20.05.16 245 5
497 행렬의 여신~라면 서유기와 다양성의 관점(1) 유지군(119.75) 20.05.16 1050 8
494 <기린이 온다>와 시대를 만드는 강렬한 개인들(2) [2] 유지군(27.116) 20.05.10 373 5
493 <기린이 온다>와 시대를 만드는 강렬한 개인들(1) 유지군(27.116) 20.05.10 253 8
492 <행복의 노란 손수건>과 이인삼각의 스테이 홈(2) 유지군(220.87) 20.05.01 288 8
491 <행복의 노란 손수건>과 이인삼각의 스테이 홈(1) 유지군(220.87) 20.05.01 206 8
490 좋아요 히카루 겐지군과 헤이안시대(2) 유지군(220.87) 20.04.25 303 8
489 좋아요 히카루 겐지군과 헤이안시대(1) 유지군(220.87) 20.04.25 632 8
487 <불모지대>의 이키 타다시가 보여준 인간형 유지군(220.87) 20.04.23 587 5
485 오늘의 네코무라씨 유지군(175.208) 20.04.12 422 13
482 소중한 사람의 일상을 지키다, 바람의 검심 히무라 켄신 유지군(119.75) 20.04.04 289 13
481 쿠로이다 고로님께 보내는 편지 [1] 유지군(220.87) 20.03.21 338 15
480 양이결행과 스즈키 나오미치 홋카이도 지사의 디테일(3) [3] 유지군(220.87) 20.03.07 288 8
479 양이결행과 스즈키 나오미치 홋카이도 지사의 디테일(2) [1] 유지군(220.87) 20.03.07 214 5
478 양이결행과 스즈키 나오미치 홋카이도 지사의 디테일(1) [1] 유지군(220.87) 20.03.07 214 5
477 형사와 검사의 역설, 문제는 디테일이다!(2) [2] 유지군(220.87) 20.02.29 283 8
476 형사와 검사의 역설, 문제는 디테일이다!(1) 유지군(220.87) 20.02.29 215 5
475 우한폐렴을 토벌시킬 마쓰모토 쇼엔의 역설(2) [2] 유지군(220.87) 20.02.22 322 11
474 우한폐렴을 토벌시킬 마쓰모토 쇼엔의 역설(1) 유지군(220.87) 20.02.22 261 11
473 하무라 아키라가 보여준 日本人의 모노즈쿠리(3) 유지군(211.251) 20.02.15 221 5
472 하무라 아키라가 보여준 日本人의 모노즈쿠리(2) 유지군(211.251) 20.02.15 195 5
471 하무라 아키라가 보여준 日本人의 모노즈쿠리(1) 유지군(211.251) 20.02.15 329 5
470 오늘밤 코노지에서 우물 바깥의 분들과 한 잔(2) [4] 유지군(119.75) 20.02.09 253 11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