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덥지근한 땀이 채 상병의 세컨챈스베스트(방탄조끼) 아래로 흘렀다.

오늘따라 9미리와 무전기가 더 무겁게 느껴졌다.

알라바마 시골뜨기 출신 깁슨 일병은 휘황찬란한 이태원 뒷골목이 신기한 듯 두리번 거렸다.

용산에 처음 배치받은 신병들, 특히나 어린 축들은 대부분 첫 이태원 패트롤을 나오면 빼곡한 포차와 술집들, 클럽에 눈이 돌아가곤 한다.

피곤에 찌든 상경 하나와 잔뜩 주눅 든 일경을 김밥천국에 데려다 준 후 우선 제한구역 업소만 스윽 둘러보기로 했다.

어두침침한 붉은 조명 아래로 컨트랙터 아재들이 마담과 술잔을 기울이며 소일하고 있었다.

게이바 언덕을 내려와 트랜스바 섹터로 넘어갈려던 찰나 전봇대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미헤어컷의, 

딱 봐도 막 한국에 배정 받은 미군 패거리들을 보기 전까진 모든게 순조로웠다.

오늘 같은 평일 밤은 그저 산책하듯 업소들 클럽들 돌다가 1~2시즈음 스윽 복귀해서 플스나 하다 자는게 국룰이다.

그런데 저 무리의 혈중알콜농도는 채 상병의 고요한 밤을 조서작업과 신병인도 작업으로 지새우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채 상병이 제지하기도 전에 우리의 알라바마가 기세 좋게 다가갔다. 

"풔킨 좋은 밤이지 씨발롬들아. 아이디 내놔봐"

무리들 중 한 새끼가 뉴포트 담배갑을 구겨쥐며 받아쳤다.

"ㄴ ㅑ(Nah~)~ 다 알면서 그러시네. 너네 관할권도 없잖아. 경찰놀이 하는 새끼들아"

좋은게 좋은 거라는 일념하에 몸성히 군생활 마치고 싶었던 채 상병은 사람 좋은 웃음으로 끼어들며 중재에 나섰다.

"아이 착한 놈들아. 너네들 딱 봐도 언더에이진데 통금까지 간당간당 하시네요. 좋은 말로 할때 기어 들어갈꺼지?"

그때 모가지 힘이 잔뜩 들어간 알라바마의 손에 PR24가 뽑혀 있는게 채 상병의 눈에 들어왔다.

 *PR24 

채 상병은 다급히 깁슨을 막아서며 다시 한번 빡빡이 주취자들을 설득하려 했다.

"야 니들 배럭으로 돌아갈래 아님 MP스테이션 취조실 바닥에서 잘래?"

그때였다.

걔중 솜털 뽀송해 보였던 힙합퍼 한 새끼가 전력질주 하기 시작했다. 보광동 쪽이었다.

채 상병의 플스와 맥주 한캔으로 쌈빡하게 하루를 마무리 하려 했던 계획은 모두 틀어지고 있었다.

알라바마에서 야구를 했다던 깁슨은 전속력으로 솜털새끼를 쫓아갔다.

'아 씨박 어떻게 하지'

일단 언더에이지가 확실해 보이는 저 솜털새끼만 잡으면 조서도 한장으로 어떻게든 마무리 할 수 있다.

좋다. 결심이 선 채 상병은 무거운 장비들은 찬 채 깁슨을 뒤쫓았다.

골목과 골목이 꺾어지며 솜털새끼가 점점 가까워져 갔다.

근데 깁슨 이새끼가 문제였다. 확실히 야구는 추격전에 별 쓸모는 없는, 레저 활동이다.

깁슨 이새끼 미식축구나 할 것이지....

깁슨은 간간히 외치던 "스탑!"도 그만둔 채 턱을 벌리고 숨을 몰아대고 있었다.

그래도 깁슨은 자기 본분을 끝까지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도주하는 언더에이지드링커, 통금위반자를 꼭 잡고 싶었던 것이었다.

깁슨은 뽑아든 채로 달리느라 걸리적 거렸던 PR24를 그대로 도주자 등 뒤를 향해 던졌다.

"딱!"

채 상병은 자기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단단하고 묵직한 PR24가 마치 나루토 수리검 마냥 빙글빙글 돌며 솜털쉑의 뒷통수에 직격하는 것을 보며 저걸 저렇게 던질 수 있다는게 믿기질 않았다.

아 맞다. 야구.

대가리에서 피가 질질 나는 솜털쉑을 1XX 병원으로 이송시키고 지난한 조서작업과 일등이 보고까지 마친 후 채 상병이 릴리즈 된건 다음날 아침 9시 즈음 이었다.

9미리와 무전기를 반납하고 무전병과 싱거운 농담을 주고 받은 채 상병의 등 뒤로 다음 교대근무자들을 향한 용산헌병감의 절규가 들려왔다.

"PR24 is NOT a ballistic weapon!!! DO NOT! NEVER THROW THEM!!!"

데들리포스에 속하는 아이템을 던질 경우 업무상 과실치사에 군장비 망실 책임 까지 묻겠다는 살벌한 헌병감의 특별교육이 뒤를 이었다.

알라바마는 당연히 한달간 시프트에서 빠질 것이고, 그걸 메꾸려면 누군가의 오프가 짤릴 것은 자명했다.

채 상병은 오늘 밤 시프트가 10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용산이었다.